오래 전, 알프스에선지 국내에선지 좀 헷갈리긴 한데 이 책의 저자를 처음 만났을 때 뭔가 조금 이상하긴 했습니다.
기우뚱거리는 발걸음이 말이죠.
주변 지인의 말로는 발가락이 모두 없어 걷는데 지장이 크다는 거였습니다.
저야 기껏 새끼 발가락 하나(뼈 세 마디)만 없어 이제껏 잘만 걸어 다니는데, 발가락 열 개가 다 없다면 아무래도 지장이 있기 마련이라 봅니다.
하기사 제가 아는 또 다른 (에베레스트 등정과 맞바꾼) 열 발가락 상이 산악인은 축구도 잘만 했지만 멀쩡한 이들보다는 걸음걸이가 불편한 건 사실이리라 봅니다.
이 책 말미에 지은이 자신의 동상사고를 언급한 내용을 보니 헐~~~ 발가락뿐만 아니라 오른쪽 발바닥 1/3이 없다고...
이 책을 읽은 이제야 지은이가 다른 열 발가락 상이 산악인들보다 좀 더 걸음이 불편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죠.
이 책의 저자는 저에겐 약 10년 선배님으로서 젊은 시절 열혈 산악인으로 청춘을 불사르다 당시(1978년) 국내 아니 아시아 최대의 빙벽이었던 설악산 토왕성 빙벽 등반중 불의의 사고로 그렇게 동상의 사고를 당했던 건데, 그 후 더는 수직의 세계에서 열성적인 등반활동을 이어가기 어려워 수평의 세계에서 행할 수 있는 다른 여러 스포츠들로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고 아웃도어 용품업체를 성공적으로 경영하기도 한 분입니다.
자전거는 지은이가 동상사고 이후 오래도록 헌신한 스포츠였는데, 알프스에도 종종 잔차를 가져와 저와도 몽블랑 일주를 두 번이나 돌기도 했습니다.
책 표지 뒷면에 있는 사진도 저와 함께 할 때의 (제가 찍은) 장면인데, 이 책에 실린 (몽블랑 트레킹 일주를 잔차로 돌았던) 그 기록들을 들춰보는 재미가 솔솔하더군요. 당시 함께 한 분들과의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나 읽는 재미가 배가 됩니다.
(몽블랑 트레킹 붐이 일기 훨씬 전이었던) 당시 선배 세 분과 함께 잔차로 몽블랑을 일주하면서 몽블랑 남측 꾸르마이예에 도착해 유명한 산악장비회사 그리벨의 사장이 마련한 저녁식사에 초대받아 맛있게 전식 한 접시를 비울 때까지만도 만족스러운 하루였지만 곧바로 속이 뒤틀려 밖으로 뛰쳐 나온 저는 배를 움켜 잡고 토해내고선 그날 저녁을 졸졸 굶고 말았죠.
가만히 생각해보니 (너무 호사스런 초대 음식에 위가 놀란 게 아니라) 하루내내 힘든 라이딩을 하면서 수분공급을 충분하게 하지 못한 탓에 심한 탈수상태에서 기름지고 짭짤한 전식이 그만 위를 뒤집어놓았다고 봅니다.
사실 선배 세 분은 일명 고무호스 물병을 사용하면서 틈틈이 물을 마셨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왠지 빨아마시는 습관이 들지 않아 물을 마실 때마다 잔차를 세우고 배낭을 벗어 물통을 들이키다 보니 자연히 수분섭취를 등한시했던 셈이죠.
그런 경험후 저도 고무호스 물통을 하나 구매해 놓긴 했지만 아직 한번도 사용치 못하고 고스란히 보관 중인데 아마 앞으로도 빨아 마시는 습관은 들이지 못할 듯 합니다. 햄버거와 함께 마시는 콜라도 빨대로 빨아본 적이 없으니....
이 책은 주로 자전거를 이용해 산티아고나 히말라야, 알프스 등 세계적인 도보 코스들을 답파한 기록이 주를 이루지만 앞서 밝혔듯 자전거 마니아 이전에 산악인이었던 자신의 정체성을 이 책 후반에 '1978년 겨울의 토왕성 빙폭 등반기'에 남겼습니다.
당시 겨우 구조되어 아는 분이 원장으로 있다는 모 군병원에 갔더니 동상이 너무 심해 두 무릎 아래까지 절단해야 된다는 진단에 질겁하고 서울 모병원으로 옮겼다는 등의 경험으로 지은이는 아웃도어 활동도 의료시설이 좋은 지역에서 해야 더 즐겁다는 신조를 밝혔는데, 산악인으로서의 경험적 습관으로 어디서든 잘 자고 뭐든 잘 먹다 보니 해외출장 등 자신의 사업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더군요.
여하튼 잔차맨이든 보도꾼이든 산악인이든, 달리든 걷든 오르든 누구든 대자연에서의 열정은 아름답고 멋지게 보입니다.
이 책을 덮으며 저도 언제 한번 산티아고 길에 가봐야 하긴 할텐데 싶지만 평지가 많다기에 걸어가긴 지루할 듯 싶어 그럼 잔차나 타고 갈까 합니다.
아마 간다면 적어도 십 년 후에나 가지 그 전엔 절대 아닐 듯 싶군요.
어디든 여전히 가볼 곳이 있다는 점에서 살아볼만 할뿐더러 이 책 또한 읽어볼만 하다 싶습니다.
제가 잔차로 산티아고에 갈 십여 년 후에는 이 책이 반드시 유용하지 않을까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