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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모데전서 4징 15절 은혜와 진리의 가치 10-성장과 성숙
오늘은 은혜와 진리의 가치 열 번째 말씀으로 신앙의 성장과 성숙에 대하여 말씀을 듣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진리의 말씀은 사람을 죄 가운데서 구원하심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지만 거기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우리 나라 교인들이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아 천국간다는 사실을 믿었지만 구원과 천국 사이에 있는 자신의 일생을 하나님께서 성화시키시는 부분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시기까지 계속해서 동행하셨던 것처럼 이 땅을 살아가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과 언제나 함께 동행하시면서 하나님과의 신뢰관계를 더욱더 돈독하게 하십니다. 이 과정을 성화라고 부릅니다.
이 성화를 다른 말로 말하면 거룩한 성장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영적인 성장의 목표는 어디일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13절은 이 진리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 말씀을 보면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모습을 온전한 사람을 이루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성경은 여러분들의 온전한 모습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표현을 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에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시는 은혜와 진리는 여러분들을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합니다. 여러분들을 제 이의 그리스도로 빗어가시며 성장시키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세상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선 예수님은 여러분들이 본받아야 할 온전함을 가진 대상이 하나님 아버지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5장 48절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여기서 “온전”이라는 단어를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모습을 갖는 것이 온전한 것인가 하는 것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국어 사전의 정의로는 “변화되지 않고 본바탕대로 고스란하다”로 해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온전하심에 대하여 말하면 더이상 변할 수 없는 완전한 상태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원래 가지셨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성장하지 않으십니다. 이미 완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끝없이 변화합니다. 어떤 사람은 성장하는 모습으로 변화하지만 어떤 사람은 퇴보하는 모습으로 변화합니다. 성령은 여러분들을 성장하는 모습으로 변화시키시지 퇴보하는 모습으로 변화시키지는 않으십니다. 성령은 여러분들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도록 안내하시며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러분들은 그 과정에서 넘어지기도 하고 쓰러지기도 하며, 시험에 들기도 하고 때로는 교만의 함정에 빠지기도 합니다. 또 때로는 낙심이라는 골짜기를 지나가기도 하고, 숱한 대적들에 애워싸여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신앙의 길이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쉬운 일만 만나고 행복한 일만 만난다고 하지는 않으십니다. 오히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도 바울 역시도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고난은 필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16장 21절을 보면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고난의 길을 먼저 앞서 가셨습니다. 그리고 에수님을 따르는 제자들 역시 고난을 받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 9절을 보면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고난을 받고 환난을 받으면서도 예수님 안에서 성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온전한, 그리고 장성한 분량의 모습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이것은 단순히 외적인 온전함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온전함은 내면의 온전함과 외적인 행동의 온전함이 하나가 됩니다. 예수님이 그러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땅에서 성장의 과정을 거치셨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을 믿고 뒤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거쳐야할 과정을 미리 겪고 지나가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셔서 많은 고난을 받으시면서도 온전함을 향해 가시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셨다면 예수님으로 인해 오는 고난을 당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실족해서 넘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를 받아들이시셨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앞에서 갈등을 겪기는 하셨지만 그러나 그 갈등을 아버지의 뜻 아래에 두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 순종과 복종에 의해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루어지고 그 백성들로 인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온전한 신앙생활 가운데 나타나는 두 가지는 바로 여러분들을 만나는 사람들이 여러분들의 온전한 모습을 보면서 여러분들을 구원하신 그리스도께 나아오게 되고, 또한 그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일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그런 여러분들을 사랑하셔서 여러분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를 그들 앞에서 친히 증거하십니다. 마치 예수님이 침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신 후에 물에서 올라오실 때 성령을 주시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그렇게 사랑을 고백하시고 증거하신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자들을 향하여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에게 고난이 오고, 환난이 오고, 박해가 온다고 해서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사랑하지 않는 증거라고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그것은 마귀가 가져다주는 거짓말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환난 가운데 참으며 인내로써 열매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다시 말해 성숙한 신앙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사도행전 14장 22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교회에 대하여 권고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천국은 행위로 들어가는 것처럼 말하면서 순종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르치는 순종에서 고난과 환난을 뺍니다. 교회 목회자들의 말에 따라 교회에 충성하는 것만이 복받는 길인 것처럼 가르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많은 환난도 겪어야 할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있고, 또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이 계신 천국에 있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사도 바울이 강조하는 하나님 나라는 이 두 가지를 다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확장되는 하나님 나라는 성도의 많은 환난을 매개체로 하여 확장됩니다. 그리고 영원한 천국은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로써 일하시는 성령의 역사하심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성령은 성도를 성화의 과정 가운데 두시고 인도하심으로 많은 고난 속에서 온전하게 빗어가십니다. 그리고 그 온전함으로 빗어가시는 모습은 점점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함에 이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땅위에 누가 완전하게 온전함을 가지고 있겠습니까? 세계적으로 유명한 부흥사입니까? 아니면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목회하는 목회자일까요? 곳곳에 다니면서 치유사역하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전세게를 다니면서 봉사활동하는 사람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계속해서 그와 함께 동행하시면서 아름답게 빗어가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점차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하심과 같이 점점 온전해져 갑니다.
하나님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까지도 고난을 비켜가는 특혜를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히브리서 5장 8절을 보면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우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고난이 아니면 온전한 순종을 배우지 못하셨다는 말씀이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들의 길에 고난이라는 막대기를 두셔서 순종함을 배우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죄가 하나도 없으신 아들이신대로 말입니다.
그 고난을 통해 순종하신 예수님으로 인해 누가 유익을 얻었습니까? 히브리서 2장 18절입니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그가 시험받는 자들의 아픔과 그 마음을 알게 되셨습니다. 스스로 아버지께서 예비하신 고난을 겪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 고난을 통해 얻은 결실에 대하여 히브리서 2장 10절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예수님 역시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은혜와 진리를 믿은 사람들 역시 고난을 통해 온전함을 배우지 않겠습니까? 에베소서 4장 13절을 다시 보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온전함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릅니다. 그런데 그 앞부분을 보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말씀을 보면 “온전한 사람이 되려면”이 아니라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왜 “온전한 사람이 되려면”이라고 하지 않고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라고 했을까요? 그 이유는 온전함이 개인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교회라고 하는 에수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공동체는 함께 성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온전함에 이를 수 있습니다. 혼자만 성장하면 안됩니다. 함께 성장해야 합니다. 만일 교회가 경쟁하는 공동체라면 올림픽 경기의 개인종목처럼 혼자만 성장해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어느 특정한 개인만을 성장시키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함께 같이 나아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운동경기로 말한다면 배구나 축구나 농구같은 단체 경기를 하는 선수들처럼 함께 성장하고 한 마음으로 호흡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 안에서 하나된 몸의 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앞서 가던 사람이 발걸음을 늦추는 것을 의미하며 뒤쳐져 가는 사람이 앞사람의 도움을 받아 더 열심을 내게 되고 강해지는 것을 나타냅니다. 교회는 협력하는 협력공동체입니다. 그로인해 같이 성장합니다. 그리고 같이 온전해집니다. 그렇게 교회가 같이 성장하고 같이 하나가 되기 위해 힘써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것에 대하여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많은 교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또 공동체적으로 아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갖지 못하고 오직 교회를 통해서만 관계를 맺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는 예배도 드리고 기도도 하고 찬송도 하고 봉사도 하며 성경 말씀도 읽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일체 그런 일들을 하지 않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목사님의 말씀을 시청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공동체적으로 말씀을 듣거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개인적인 경건생활 역시 반드시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한 가지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교회는 모든 공동체가 함께 그리스도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함께 손잡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개인적인 신앙과 공동체의 신앙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교회는 혼자 일등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일등이 되어야 합니다. 함께 가다가 넘어지면 달리던 달음질을 잠시 멈추고 서서 뒤돌아가서 함께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손을 잡고 다시 함께 달려가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는 넘어지건 말건 혼자 가려고 합니다. 시험든 사람이 있으면 그가 믿음이 없어 시험들었다고 손가락질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열심을 가지고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신앙생활을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면서 공격적인 언어로 말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많은 성숙한 신앙을 가진 사람은 다릅니다. 왜 그가 뒤에 쳐졌는지, 왜 그가 시험이 들었는지, 왜 그가 지금 함께 나아가는 것을 그렇게 힘들어 하는 지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에게 다가가 도움의 손을 내밉니다. 이 성숙한 신앙인이 경쟁적인 교인과 무엇이 다른지 아시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인격적인 면에서 차이가 납니다.
경쟁적인 교인은 모두가 다 경쟁대상입니다. 그래서 자기보다 더 헌신적이고 뛰어난 사람이 있으면 그보다 더 잘하기 위해서 몸을 내 던집니다. 오늘날의 교회 문제는 그런 사람을 칭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숙한 신앙을 가진 교회는 항상 함께 하나가 되어 함께 앞으로 나아가며 성장을 통해 성숙한 신앙을 갖기를 원합니다. 디모데전서 4장 15절을 보면 이렇게 권고를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여기서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이 모든 일”이 어떤 일일까요? 디모데전서 4장 12-13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여기서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반드시 믿는 자들의 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교회를 권하고 가르치라고 말씀하십니다.
본이 되는 삶은 사람들을 의식해서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시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경건하게 살다보니 그것이 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 1절의 말씀처럼 담대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그가 이렇게 담대하게 말했던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자신이 최종적으로 본받으려고 했고 모든 교회가 본받기 원했던 대상 때문입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같이” 이것이 사도 바울의 삶이었습니다. 또하나는 에베소서 5장 1절에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하는 말씀 가운데 있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사랑이 많으신 분입니다.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자신이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신 분이십니다. 오랫동안 인내하시는 분이십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그 성품을 이야기 하려고 한다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는 하나님의 성품의 바탕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여기서 충성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에게 보이셨습니다. 그러니까 성숙한 신앙은 성령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습니다. 그들에게서 예수님의 향기가 납니다. 그들에게서 거룩한 하나님의 성품이 드러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신 이 은혜와 진리로 인해 날마다 조금씩 개인적으로 자라가며, 예수님의 몸의 공동체인 교회와 함께 자라가기 위해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악한 것을 쳐내고 선한 것을 쌓아야 합니다. 이 죄악으로 어두운 세상에 그리스도의 참 빛을 비춰야 합니다. 앞서 가는 신실한 신앙의 사람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를 본받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6장 12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우리 제석교회는 성숙한 신앙을 갖기를 원해야 합니다. 혼자가 아니라 언제나 함께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이루어나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함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런 교회에 승리의 면류관을 씌워주십니다. 그리고 의의 면류관을 씌워 주십니다. 생명의 면류관을 씌워주십니다. 성숙한 신앙을 가진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실 하나님의 풍성한 상이 영원한 천국에 예비되어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가까이에서 그리스도와 많은 성도들을 섬기는 특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제석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신 은혜와 진리는 여러분들을 매일매일 조금씩 성장시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로써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으로 충만해질 때까지 매일매일 조금씩 자라가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어서 함께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이제 거듭난 사람도 있습니다. 아직도 거듭나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많이 성장한 사람도 있습니다. 산꼭대기의 정점에 그리스도가 계신다면 산 맨 아래에 이제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 그리스도인이 막 신앙의 산에 오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중턱에 올라간 사람도 있습니다.
그 신앙의 산에서 어떤 사람은 어린 신앙을 위해 아래로 내려와 함께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다른 어린 성도를 위하여 아래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그의 신앙은 점점 성숙한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바로 어린 신앙, 구원할 사람을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내려오신 온전히 성숙하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바로 자신을 겸손히 낮추고 그리스도와 함께 어린 신앙을 세워주고 섬기면서 온 교회가 하나가 되고 온전함을 이루어 성장하고 성숙하도록 돕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길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