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 7,14-15.18-20; 마태 12,46-50
+ 오소서, 성령님
복음에서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여기서 나오는 ‘형제’가 예수님의 친형제가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계시지요? 예, 잘 알고 계시겠지만, 복습하는 의미에서 다시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히브리어에는 ‘사촌’을 뜻하는 단어가 없었기 때문에, 사촌이나 친척 형제들을 가리킬 때 ‘형제’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히브리어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칠십인역 성경’에서는 ‘형제’라는 뜻의 ‘아델포스’라는 단어가 사촌이나 삼촌, 때로는 계약으로 맺어진 다른 가문의 사람들을 가리키기도 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형제’ 역시 ‘아델포스’인데요, 이 말은 예수님의 사촌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당신께서 사랑하는 제자를 가리키며 성모님께, “이 사람이 당신의 아들입니다.” 하시잖아요? 만일 예수님에게 친동생이 있었다면, 성모님께 “둘째네 집에 가 계세요” 하셨겠죠.
한편,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마태 13,55)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요,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 멀리서 지켜보던 여인들의 명단에는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마태 27,56)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이처럼 야고보와 요셉이란 이름이 반복해서 나오기 때문에, 아마 그들이 예수님의 사촌이었고, 그들의 어머니 역시 성모님과 같은 이름의 ‘마리아’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무튼 성모님과 예수님의 친척들이 예수님과 이야기하려고 찾아왔지만, 예수님께서는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고 반문하십니다. 이어서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께 친형제가 있었는가’, 또는 ‘예수님이 성모님께 왜 그리 모질게 대하셨는가’가 아니라, ‘누가 예수님의 참된 형제인가’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당신 어머니와 친척들이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 “이분들이야말로 내 어머니요 형제다”라고 말씀하셨더라면 어떠셨을까요? 복음은 유다인들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고, 이방인들에게 선포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혈육이 우선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복음은 혈연·지연을 초월하여 이방인들에게, 곧 우리에게 전파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가 예수님의 형제요 누이가 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미카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과수원 한가운데 숲속에 홀로 살아가는 당신 백성을 … 보살펴 주십시오”라는 말씀으로 시작되는데, 과수원은 이방인이 차지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숲속에서 살아야 하는 처지를 가리킵니다. 구약에는 이처럼 이방인을 배타적으로 대하는 표현이 많이 나오는데요, 그러고 보면 예수님의 오늘 말씀이 얼마나 파격적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미카’라는 이름은 ‘미카야후’의 줄임말인데요, ‘누가 야훼와 같으랴?’라는 뜻입니다. ‘야후’ 대신에 ‘하느님’이라는 뜻의 ‘엘’을 붙이면, ‘미카엘’이 되는데 이는 ‘누가 하느님과 같으랴?’라는 의미가 됩니다. 18절에 나오는 “당신 같으신 하느님이 어디 있겠습니까?”에 그런 표현이 나오는데요, 이 말씀을 하느님께 직접 드림으로써, 하느님의 자비를 간청하게 됩니다.
또, “그분은 기꺼이 자애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다시 우리를 가엾이 여기시고”라는 구절이 나오는데요, 여기서 ‘자애’와 ‘가엾이 여기시고’에는 각각 ‘헤세드’와 ‘라하밈’이라는, 하느님의 자비를 표현하는 구약의 대표적 단어들이 사용되었습니다. 헤세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약속을 끝까지 지키시는 한결같은 사랑을, 라하밈은 어머니가 자식을 품듯 애틋하게 가엾이 여기시는 마음을 뜻합니다. 미카 예언서는 이처럼 하느님의 자비를 간절히 호소하며 끝을 맺고 있습니다.
우리 또한 죄와 나약함으로 무너져서 스스로 하느님의 아들, 딸이라고 부르기가 민망할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때라도 하느님은 변함없는 자비와 사랑으로, 당신을 아버지라 부르라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오늘도 감히 하느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께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또한 이 자리에 함께 한 모든 이가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 각 사람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께서 그렇게 기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미사 중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가장 완벽하게 실행하신 성모님을 모시고 함께 기도드릴 수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그리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협력할, 우리의 의지를 아버지께 봉헌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노은동 성당 2층에서 바라 본 전경
촬영: 2026년 5월 11일 오전 6시 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