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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경상도 어우러진 '화합의 장' 옛 명성 시들고 관광상품화 '씁쓸'
조영남 덕분이다. 화개장이 유명해진 건. 그러나 지금은 조영남이 그토록 칭찬했던 화개장은 없다. 그의 노래시비만 눈에 띌 뿐이다. 5일장의 의미가 퇴색된 지도 오래다. 지난 2000년 맞은편 자리로 새로 옮겨 조성되면서 거의 상설화 됐기 때문이다. 하동에서 시원한 섬진강 물줄기를 따라가면 남도대교를 지나 도로 오른쪽에 자리 잡은 화개장터가 나온다. 초가집으로 만든 가게들이 눈에 들어온다. 특산물 판매장. 식당가. 방앗간 등 정형화된 집들은 마치 민속촌에 온 느낌이다. “한 4~5년 됐어요. 조영남 노래 발표 나고 유명해지는 바람에 아예 관광 상품이 돼 버렸지예.” 매실 파는 아주머니의 말이다. 실제 별로 사람도 눈에 띄지 않는다. 가끔 버스로 효도관광 온 할아버지 할머니들만 한바퀴 휭 돌고 갈 뿐이다. 입구에 늘어서 있는 화개장의 역사를 알리는 알림판. ‘소설 역마의 배경’을 설명하는 조형물. 최근에 새로 지은 듯한 커다란 장옥까지. 모든 것이 인위적으로 변해버렸다. 게다가 장옥에는 아직 입주를 다하지 않은 듯 서너곳을 제외하고 텅 비어 있다. 대신 화개장 끝 쪽으로 할머니들이 파라솔을 치고 약초. 고추. 매실 등을 팔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이곳이 더 5일장 느낌이다. 옛 화개장은 구례군과 하동군의 경계에 위치해 섬진강을 이용하는 수운 때문에 발달한 장터였다. 화개장이 한창일 때는 남해 거제 삼천포 등 남해안의 해산물이 이곳까지 실려와 구례 남원 함양 등지의 내륙 농산물. 지리산에서 나오는 임산물의 교환이 활발히 벌어졌다. 광복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5대 시장 중의 하나로 손꼽혔던 화개장. 지금은 관광객들이 잠시 거쳐 가는 하나의 관광 상품으로 전락해 씁쓸함이 전해온다.
김동리는 소설에서 “하동. 구례. 쌍계사의 세 갈래 길목이라 오고가는 나그네로 하여. ‘화개장터’엔 장날이 아니라도 언제나 흥청거리는 날이 많았다. 지리산 들어가는 길이 고래로 허다하지만. 쌍계사 세이암의 화개협 시오리를 끼고 앉은 ‘화개장터’의 이름이 높았다. 경상 전라 양 도 접경이 한두 군데일리 없지만 또한 이 ‘화개장터’를 두고 일렀다”며 당시 화개장의 명성을 확인해주고 있다.
조식의 <유두류록>에는 “삼백리길 바다와 산을 유람했지만 오늘 하루 동안에 세 군자(고려 말 섬진강변에서 은둔한 선비인 섯바위의 한유한. 화개의 정여창. 옥종의 조지서)의 자취를 다 보았다. 물을 보고 산을 보다가 그곳에 살던 사람을 보고 그 세상을 보니 산 속에서 10일간 품었던 좋은 생각들이 하루 사이에 언짢은 생각으로 바뀌었다”고 화개의 풍광과 이곳 사람들은 술회한다. 이외에도 화개를 둘러보고 노래한 시인 묵객들은 아주 많다. 고운 최치원을 비롯해 목은 이색. 서산대사. 남명 조식. 화담 서경덕. 부사 성여신. 율곡 이이.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 많은 선인들이 학문의 성취와 깨달음을 이곳에서 얻었다고 한다. 화개를 노래한 시문만도 400여 편이 넘는 게 그 근거일 듯싶다. 동서 화합의 상징성을 지닌 화개. 지금은 변모해 버렸지만 어렴풋이 남아있는 옛 흔적을 더듬어 보며 한번 들러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글·사진 최승균기자 july9th@knnews.co.kr">july9th@knnews.co.kr <장터사람들> 화개장 대모 약초상 장영분(70)씨 "솔잎가루 고혈압에 좋고…" 이름만 대면 효능 줄줄~
‘뽕잎가루-당뇨·항암’. ‘솔잎가루-뇌졸중·고혈압’. ‘산마-위·변비·피부미용’. 메실 엑기스-‘소화불량’. ‘느릅나무-위궤양·십이지장궤양’. 약초마다 명칭과 그 효능에 대해 붙어있는 이름표가 눈에 확 띈다. 컴퓨터로 깔끔하게 만든 명찰을 달고 있는가 하면 철자도 틀린 어설픈 글자의 명찰이 미소를 짓게 한다. “총각. 솔잎가루 한 번 봐이. 고혈압. 피부미용에 최고여. 어머니 하나 사다 드리면 효자지~” 약초상 장영분 할머니(70). 지금의 화개장에서 4년째 약초를 팔고 있다. 주로 약초는 구례. 남원 등 지리산 인근에서 가져온다. 일부는 직접 재배한다고 한다. 비록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한 연차는 짧지만 현재 화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 중 나이가 가장 지긋하다. 한마디로 화개장의 대모. 고향은 충청도지만 화개로 이사온 지는 20년이 넘는다. 처음엔 장사를 위해 이것 저것 약초의 효능을 소개하다 기자 신분을 알고는 소원 하나 풀어달라고 애원한다. 작년 6월 화개장 노점상에는 불이 났다. 당시 20여명의 상인들이 피해를 봤다고 한다. 그 피해자 중 할머니도 한 명. 그때 본 피해만해도 2천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정확한 화재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데다 노점상이 불법이라는 이유로 보상조차 전혀 받지 못했다. 그 이후 군에서는 현재의 장옥을 건립해 10년 이상 된 주민들에게 공개입찰을 했다. 안타깝게도 할머니는 거기서 탈락한 것. 장옥으로 들어가지 못한 할머니는 주위에서 다시 노점을 하기 시작했다.
“현재 장옥 자리가 불난 자리여. 임대분양 받아놓고 장사도 하지않는데 왜 그냥 방치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이왕 놀릴 바에야 피해를 본 사람이라도 (장옥에서 장사를 할 수 있게) 우선 배려해 주면 좋으련만.” 할머니는 놀고 있는 장옥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힌다. 최승균기자 화개장에는 섬진강에서 직접 채취한 재첩과 은어. 차 시배지로 녹차가 유명하다. 그러다보니 음식도 이들을 가미한 게 많다. 화개장 입구에서 바라보이는 식당가에는 담백한 국물 맛이 일품인 재첩국(4천원). 녹밀면에 재첩을 듬뿍 넣은 칼국수(5천원). 녹차냉면(5천원) 맛이 일품이다. 소설 역마의 주막이던 옥화주막의 이름을 딴 식당도 자리하고 있다. ▲남도대교= 화개장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하동군 화개면 탑리와 전남 구례군 간전면 운천리 사이 섬진강을 가로지르는 길이 359m. 폭 13.5m 다리로 경남과 전남의 가교 역할을 한다. 멋진 아치형으로 섬진강을 위에서 걸어가는 낭만을 맛볼 수 있다. ▲불일폭포= 불일폭포는 지리산 10경의 하나이다. 불일폭포 오른쪽에 위치한 불일암터는 보조국사 지눌이 수도했다고 전한다. 쌍계사에서 3km지점에 있어 쌍계사를 답사한 후 불일폭포를 등산하면 좋은 여행이 된다. 높이 60m. 폭 3m의 지리산 유일의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거폭으로 상하 2단으로 된 폭포다. ▲쌍계사= 신라(新羅) 성덕왕(聖德王) 21년(722) 의상대사의 제자인 삼법이 유학을 마치고 돌아올 때 중국 불교 선종 제6대조인 혜능의 정상을 모시고 와 이곳에 안치하여 선을 닦은 유래가 있는 곳이다. 지금의 절은 임진왜란 때 소진된 것을 벽암선사가 조선 인조 10년(1632)에 다시 지었다. 이곳에는 국보 1점(쌍계사 진감선사 대공탑비). 보물 3점(쌍계사 부도. 쌍계사 대웅전. 쌍계사 팔상전 영산회상도)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6월25일= 진주 미천장. 진해 마천장. 사천 사천·곤양장. 김해 진례·불암장. 밀양 송백장. 양산 물금장. 의령 칠곡장. 함안 가야장. 창녕 영산장. 남해 무림장(이동). 하동 횡천·계천장. 산청 차황·단성장. 함양 마천·안의장. 합천 가야·초계장. ▲6월26일= 창원 신촌·가술장. 진주 금곡·대곡장. 사천 완사장. 밀양 무안장. 의령 궁류장. 함안 대산장. 고성 고성장. 하동 화개·악양·고전장. 산청장. 거창장. 합천 묘산장
화개장, 없어지다.
화개장터는 있으나 장날은 없어졌다 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5일마다 펼쳐지던 장날은 없어졌으나 장터는 그대로 남아 있음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장날이 없어졌으니 장터가 시장처럼 매일 열리게 되었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다소 어리둥절하겠으나 '장'은 열리지만 더는 예전의 '장'은 아니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화 개 장 터] 조영남 작사, 작곡, 노래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엔/ 아랫말 하동사람 윗말 구례사람/ 닷새마다 어우러져 장을 펼치네/ 구경 한번 와 보세요/ 보기엔 그냥 시골장터지만/ 있어야 할건 다 있구요/ 없을 건 없답니다 화개장터 광양에서 삐걱삐걱 나룻배 타고/ 산청에선 부릉부릉 버스를 타고/ 사투리 잡담에다 입씨름 흥정이/ 오손도손 왁자지껄 장을 펼치네/ 구경 한번 와 보세요/ 오시면 모두 모두 이웃사촌/ 고운 정 미운 정 주고받는/ 경상도 전라도의 화개장터
노래비에 새겨진 이 노래는 널리 불리고 알려진 유명한 노래라서가 아니라, '장'이 갖춰야 할 이런저런 요소를 잘 표현하고 있어서 더 정겹고 흥겨우며 마음에 와 닿는지 모릅니다.
이미 예정된 3월 2일의 고로쇠 축제(약수제)는 날씨의 영향으로 고로쇠 수액이 나오지 않아 3월 8일로 연기되었다 합니다. 3월 1, 2일의 연휴를 맞아 장터는 등산객이나 관광객들로 제법 성시를 이루고 있었고 쌀쌀한 날씨에도 장꾼은 다른 날 보다 많아 보였습니다.
화개장터의 상설건물들은 전통가구방식과 초가지붕으로 잘 가꾸어져 있고 소설 '역마'의 기념조형물과 가수 조영남의 노래비, 장터를 조망할 수 있는 팔각의 2층 정자까지 갖추고 있습니다만 더러는 전통과 현대의 부조화가 느껴지기도 하고 좀 더 정리하고 다듬었으면 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초가지붕 위의 파나플렉스 간판이나 음료회사에서 제공하는 붉고 푸른 플라스틱 간이식탁, 색동의 비치파라솔 등은 전통형식으로 대체하던지 정리됐으면 하는 생각도 듭니다.
난전의 봄나물이나 지역의 특산물인 녹차, 매실 제품, 밤 등을 제외하면 어느 장이나 관광지에도 있을법한 상품들이 대부분이고 풍경 또한 비슷하거나 같다 할 수 있습니다.
장터에서 국밥 맛을 안 보면 섭섭하기도 허전하기도 하겠지요. 점심으로는 이른 시간임에도 국밥집은 빈자리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메뉴를 보는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국밥은 기대 이하였고 아이들도 밥을 남기고 눈치만 보고 앉았습니다. 소설 속의 계연이가 말아내는 국밥을 상상하고 기대한 잘못만은 아닙니다. 30여 가지의 메뉴를 소화할 수 있는 조리사도 드물겠지만 어떻게 재료의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을지...알 수 없습니다.
희한하게도 보리밥집 앞에는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에는 저 줄에 끼어볼 생각을 합니다. 국밥집에도 보리밥집에도 수족관이 갖춰져 있고 빙어와 은어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빙어튀김을 수북이 쌓아놓고 맛보라는 인심을 쓰는 모습도 같습니다.
장 구경은 난전이 더 재미있습니다. 달래와 물미나리, 찐쌀을 조금씩 사고 아이들에게는 각설이 놀음이 한창인 엿장수에게서 깨엿 한 봉지를 사서 맛없는 점심의 보상을 했답니다.
장은 물건을 사는 곳만이 아닙니다. 물건을 사기도 팔기도 바꾸기도 하며 세상과 이웃들과 소통하는 공간이고 기회입니다. 이웃마을의 길흉사를 전해 듣기도 하고 먼 친지나 길떠난 가족의 소식을 전해 듣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속도의 시대에 장이 가지는 입지는 점점 더 줄어들거나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화개장을 즐겨 찾던 장꾼들은 이웃의 구례 장이 더 크다며 옮겨갔다 합니다. 화개장은 김동리의 단편소설 ‘역마’의 무대이며 그 기념조형물이 어울리지 않게 한 편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3월 8일은 고로쇠 축제인 '약수제'가 화개장터에서 열린다 합니다. 또, 광양시와 청매실농원은 3월 7∼16일에 청매실농원이 위치한 광양 매화마을에서 문화축제를 열며 매화꽃밭에서는 꽃길음악회, 매실음식 시식회, 사진촬영대회, 백일장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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