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וָאֶתְחַנַּן 바에트하난" 토라포션
"וָאֶתְחַנַּן 바에트하난" : 토라포션 알리야(Aliyah) in 5780
신3:23-7:11(To), 사49:14-51:3(Haft), 마23:31-39, 막12:28-34(Brit), 사10:5-20:6(Ne),
시92-100(Ke), 행1:1-6:6(신약)

화요일(셋째 날)
신4:41-49(To), 행2:37-47(신약)
신명기에 들어오면서 주님을 더 깊게 알고, 주님과 더 깊은 사랑에 빠지고, 부부의 사랑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시간을 갖고 있다. 부부의 사랑은 꼭 결혼을 해야 아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들이 부부 라는 말을 알아듣는다 라는 것은 이미 여러분들 속에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알고 있는 것이다. 원숭이에게는 아무리 사람의 말을 가르쳐도 알아듣지 못한다. 우리 영혼이 케뎀이 있었다 라는 것은, 어린 아이들이 말을 배우는 것을 보면 대개 신기하다. 많이 들으면 그것을 말할 수 있게 된다. 많이 들어서 그런 것인 줄 우리는 착각한다. 그러나 원숭이에게 아무리 사람 말을 많이 들려줘도 사람말을 하지 못한다. 우리가 많이 들었을 때 이런 말을 하게 된다는 것은 굉장히 놀라운 것이다. 이렇게 말을하게 된다는 것은 케뎀에 있었던 기억이 되살아 나는 것이다. 우리가 인식하게 되는 모든 것들은 케뎀에 있었던 기억들이 되살아나는 것이지 말을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들이 결혼하면 내가 결혼을 해야 결혼을 아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하기 전부터 결혼을 알게 된다. 결혼이 기억난다. 그래서 그것을 하게 되는 것이다.
드바림에 오면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첫 명령이 שׁמע 쉐마인 것을 알 수 있다. 쉐마 이스라엘, 이스라엘아 들으라.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명령하신다. 주님의 명령 중 첫 번째이다. 쉐마란, 명령형이다. 그래서 주님의 명령 중 제 1계명, 가장 최고의 명령이 무엇입니까 라고 했을 때 주님이 쉐마 이스라엘, 들으라 이스라엘아 라고 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명령이기 때문이다. 이 명령은 무엇을 이야기 하는 것이고 이것이 왜 가장 큰 명령일까? 이 명령이 가장 큰 명령인 이유는 이래야 기억나기 때문이다. 쉐마란 기억나게 하는 가장 핵심적인 것이다. 뭘 기억나게 할까? 사랑을 기억나게 한다. 주님과의 사랑, 쉐마 이스라엘 아도나이 엘로헤이누 아도나이 에하드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기억나면, 주님이 나와 에하드였다, 주님과 나는 하나의 관계 라는 것이 기억나면 베아하브타 에트 아도나이 엘로헤이카, 너의 하나님을 너희가 사랑한다, 사랑할 수 있다! 주님이 에하드인 것을 계속 기억나게 한다. 주님이 너의 하나님이고 너와 에하드 라는 것을 계속 기억나게 한다.
실제로 부부 관계가 되고, 이스라엘과 이방인은 부부 관계이고 하나의 관계, 한 몸이다 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체도 One body One heart 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계속 가르치는 것도 이것이다. 너희들은 하나이다. 우리 주님이 기도하신 것도,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들이 하나됨을 알게 하여 주십시오. 이것이 굉장히 큰 기도이다. 이것이 가장 핵심적인 것이다. 이스라엘이 One body One heart, 이스라엘은 이것이 제일 중요하다. 이것을 계속 가르친다. 이것을 가르치는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귀가 뚫여 있어야 한다.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말 좀 들으라고 하는 이유는, 네가 이 땅에서 살아가려면 너의 존재가 먼저 생겨나야 하는데, 너의 존재가 생겨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때가 기억나야 한다는 것이다. 진화론이 악한 이유 중 하나는 우리를 원숭이 라고 하기 때문이다. 나는 창세 전에 생겨난 것은 없고 이 땅에서 태어났다, 여기에서 살아간다 라는 것이다. 진화론은 쉐마를 정면으로 반대한다. 쉐마 기도를 아침 저녁으로 해야 하는 이유는, 쉐마 기도를 어린 아이들에게 항상 불러줘야 하는 이유는, 그것은 진화론을 이겨내는 삶을 살기 위함이다. 내가 원숭이라고 하는 한, 원숭이 삶 밖에 못산다. 내가 물질이라고 하는 한 물질적 삶 밖에 못산다. 내 모든 것이 뇌 라고 하는 물질에서 나온다, 그러면 뇌의 기능 밖에는 못한다. 그런데 쉐마란, 에하드였던 것을 기억나게 하는 것이다. 귀 있는 자는 들을 지어다. 들을 줄 알게 되면 내 존재가 케뎀에 있었다 라는, 하나님과 에하드였다 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살 수가 있다.
토라는 사실상 민수기까지인데, 드바림의 내용도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무엇을 어떻게 살지에 대해서 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약속의 땅 이후인데 말이다. 우상을 부숴라고 하면 어떻게 부숴야 하는지에 대해서 전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성전을 짓는 이야기도, 성전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전혀 쓰여있지 않는다. 성막과 성전은 전혀 다른데 말이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거들랑, 하면서 설명은 하는 것 같지만 구체적인 설명이 하나도 없다. 왜 그럴까?
예수를 믿고 나서도 신약성경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거의 쓰여있지 않는다. 거듭나고 나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거의 쓰여있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 힘들어하는 것이다. 예수 믿고 나서의 삶이 설명이 되어 있으면 참 잘살텐데 심리학 교과서보다도 더 안 쓰여있다. 별 도움이 되는 것이 없다. 그래서 성경을 안 읽게 되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살다가 회상 생활할 때 나타나는 문제들, 승진 문제들, 어떻게 해서 돈을 많이 버는지에 대해서 쓰여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오히려 거듭나고 난 다음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더 많은 부분을 써야 하지 않는가? 이 세상의 많은 종교들, 많은 학문들은 그런 부분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할애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성경은 그 부분에 대해서 할애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기가 없다. 어떻게 보면 정죄하는 영역에만 굉장히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너희는 안되, 그래서 죽은 이야기들에는 굉장히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데 정작 거듭나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할애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하나님이 무책임하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의 존재 자체를 바꿔놓으면 사람이 그냥 거기에서 산다. 사람이 변하면 그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안다. 호랑이는 산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안다.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말이다. 물고기는 물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안다. 물고기를 물에 집어 넣으면서 물에 들어가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것처럼 어떤 존재가 되게 하면 그 존재는 당연히 사는 것을 가르칠 필요가 없다. 그것을 살아낸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것도 어떤 메뉴얼을 갖고 사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고 내가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 같이 사는 것이다. 내가 옛자아를 가지고 사니 옛자아처럼 사는 것이다. 시키지 않아도 그것은 잘 안다. 시키지 않아도 이기적으로 사는 법, 내 마음대로 사는 법, 화내고 짜증내고 자기 중심적으로 사고하고, 기가 막히게 잘 안다, 그런 것들은 훈련을 하나도 안 시켰는데 삐지고, 어떻게 그렇게 잘 살까? 시기하고 질투하고 탐내고. 분명히 언어를 가르쳐도 그것을 갖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라고 안 가르쳐도 가십하고 뒷담화하는 것은 너무 잘한다. 왜? 그런 존재이기 때문에 옛자아가 되면 그렇게 된다. 마찬가지이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어떻게 하나님의 신성을 사느냐? 하나님의 신성으로 만들어버리면 그 땅에서 하나님의 신성으로 사는 것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아도 다 그렇게 산다. 드바림은 바로 이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너희들이 그런 존재가 되면, 이것을 새로운 피조물, 새 인간이 되면, 너희들은 하나님의 신성을 살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존재가 도대체 뭐냐? 그 존재를 에하드 라고 한다. 너희들이 에하드인 것을 알면, 너희들이 에하드로 존재하면, 너희들은 약속의 땅 자체가 마법이 아니다. 너희들이 에하드가 되면 하나님의 신성을 살아낼 수 있고 하나님 나라를 살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너희들에게 얼마나 많은 무기, 능력을 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원숭이에게는 핵무기를 줘도, 다이아몬드 수천케럿을 줘도 소용이 없다. 옛자아에게는 아무리 토라를 줘도 소용이 없고, 메시아를 줘도 소용이 없다. 하나님의 가장 큰 갈망은 너희들이 에하드 라는 것이다. 너희들이 에하드인 것을 제발 기억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단독자로 살지 말라는 것이다.
에하드인 것을 기억해내면 사랑을 한다. 그래서 너의 하나님을 온 마음과 온 힘과 온 영혼을 사랑하라고 한다. 그런데 쉐마가 없으면 사랑을 할 수가 없다. 에하드인 것을 기억해내지 않으면 사랑을 할 수가 없다. 우리가 교회 생활을 해도 교회에 와서 인생이 바뀌었다, 예수 믿고 인생이 바뀌었다, 사실 다 거짓말이다. 인생 좀 힘들어지면 본색을 다 드러낸다. 교회에 와서 조금 뭔가 변한 것 같은 것은 뭔가 떡고물이 좀 많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이때는 신나서 주님 사랑한다, 우리 교회 최고다 라고 한다. 그런데 삶이 좀 힘들어지면 바로 본색을 들어낸다. 에이, 그거 아냐.
얼마 전에 제자 하나가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다. 이 비전 아닌가봐, 이러는 것이다. 이 비전만이 진짜라고 그렇게 난리를 피우더니 이 비전 아닌가보다 라는 것이다. 그 이유가 왜 그러냐? 자기 삶이 어려워지니 말이다. 그 제자가 이야기 하는 이 비전은 아닌가봐는, 자기가 만들어낸 비전이다. 주님을 사용해서 자기 삶이 좋아지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 삶이 좋아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는 쉐마 이스라엘, 이스라엘이 들으라. 너희들이 하나인 것을 제발 기억해내라, 너는 에하드 라는 것이다. 이것이 정말 어려운 말이다. 너 전체는 Unity 라는 것이다. 전체 가운데 너는 속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하는 것은 사랑 밖에 없다. 이런 사랑의 관계에 들어오면 비로소 진정한 삶을 살게 된다. 이런 하나됨의 관계 속으로 들어온, 이런 하나됨의 관계를 가르치는 것을 드바림이라고 한다. 이 하나됨의 관계 속으로 들어오면 ואתחנן 바에트하난, 에트하난은 간구하다 라고 번역했다. 에트란, 히필동사로 여호와께 간구하는데 히필동사란 자기가 스스로 뭐를 하는 것이다. 샤워하다 라고 하면 누구를 씻겨주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뭐를 하는 것이다. 이것이 히필동사이다. 그런데 여호와께 간구하다 라고 하면 히필동사 라고 하면 안된다. 여호와께 하는 것이니 피엘동사든지, 사역동사를 써야지 내 스스로 하는 것을 쓰면 안된다. 일종의 내가 아내에게 샤워한다, 말이 안되지 않는가? 내 스스로 샤워를 하는 것인데 내가 아내에게 샤워한다, 무슨 뜻일까? 이 자체가 말이 잘안된다. 내가 여호와께 간구한다, 이 말이 잘 안된다. 희한한 기도이다.
이것은 에하드 안에서만 일어나는 기도이다. 부부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기도이다. 하나됨 안에서만, 너가 나일 때 일어나는 기도이다. 여호와께 기도하는데, 사실 모세가 기도하는데 그 기도가 여호와의 기도인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가 대상이 아니라, 내가 하는 기도인데 그것이 여호와가 하시는 기도 라는 말이다. 이 기도는 굉장하다. 에트하난 이란, 하나되었을 때 하는 기도이다. 바에트하난에서 가장 놀라운 기도가 쉐마 기도가 나오는 것이다. 이것은 모세가 이야기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아도나이는 에하드이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명령한 것이 아니라 모세의 명령이다. 그런데 그것이 여호와의 명령이다. 모세는 어떻게 이렇게 담대할 수 있을까? 하나이기 때문이다.
신4
1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
2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לֹא תֹסִפוּ עַל־הַדָּבָר 로 토쎄프 알 하다바르 : 그 말씀위에 더하지 말라
אָנֹכִי מְצַוֶּה אֶתְכֶם 아노키 메짜베 에트켐
하다바르 라고 한 다음에 더하지 말라는 것이다. The word이다. 이것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그 말씀 위에 더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에 더하지 말라고 하지 않고, 모세의 시점에서, 내가 너희들에게 명령한 그 말씀에 더하지 말라는 것이다.
לֹא תִגְרְעוּ מִמֶּנּוּ 로 티그레우 미메누 : 그것으로부터 감하지도 말라
לִשְׁמֹר אֶת־מִצְוֹת יְהוָה אֱלֹהֵיכֶם 리슈모르 에트 미쯔보트 야훼 엘로헤이켐 :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
אֲשֶׁר אָנֹכִי מְצַוֶּה אֶתְכֶם 아쉘 아노키 메짜베 에트켐
미쯔보트는 명사형이다. 여호와의 명령들을 지키기 위해서 내가 너희들에게 명령한 말씀들에 더하지도 빼지도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호와의 명령, 아쉘 이라고 하면서 아노키 그러면 '나', 메짜베 동사형을 쓴다. 너희들에게 지금 명령하고 있는 여호와의 명령이다. 지금 모세가 명령하고 있는데 그것이 여호와의 명령이라는 것이다. 여호와의 명령은 모세가 지금 명령하는 것을 통해서 나타난다. 이것이 명사와 동사의 관계이다.
명사는 무엇이고 동사는 무엇이냐? 명사는 noun 동사는 verb이다? 왜 언어체계는 이렇게 되어있을까? 명사는 어떤 것의 이름, 개념을 갖고 있다. 모든 개념은 여호와가 갖고 계신다. ברא 바라, 창조란 사실 개념의 창조주를 말한다. 모든 명사의 창조주이다. 이름의 창조주이다. 하쉠인 것이다. 그런데 동사란, עשׂה 아싸이다. 행하다, 그 개념을 행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이 세계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세계로 보내셨다. 왜 주님의 이름으로 행하는가? 주님의 개념을 행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란 주님이 만들어놓으신 개념을 살아내는 것 뿐이다. 내가 여기에서 내가 만든 개념을 사는 것 같지만, 주님이 만들어 놓은 삶을 에서 살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명령이란 내가 명령하는 것이다.
서양의 언어와 우리의 언어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점은 우리는 명사를 더 중요시 여긴다. 돈이 있고, 버는 것이 있다. 돈을 벌다, 그러면 뭐가 더 중요한가? 돈이 더 중요하다? 그런데 서양 사람들은 버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나는 돈을 벌다 라고 이야기 하는데 서양 사람들은 벌다 돈을 이라고 이야기 한다.
아싸를 말쿠트 라고 한다. 우리는 이 땅에 아싸 하기 위해서 왔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에게는 이 왕국의 개념이 엄청나게 발달되어있다. 그래서 나라 이름도 UK, United Kingdom, USA, United States of America. 다 킹덤의 에하드를 굉장히 중요시 여긴다. 그런데 우리는 킹덤을 중요시 여기기 보다는 동양은 한민족, 하나의 민족이다, 한 가족이다, 킹덤보다 에하드를 더 중요시 여긴다. 킹덤보다 창조의 세계, 조물조의 세계, 파라다이스의 세계, 형이사학적인 것이 엄청나게 동양에서 발달한다. 킹덤이 동양에서 확장되어 나오자 동양에서 대항할 것이 하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속절없이 무너진다. 그래서 동양에서 이것이 안되겠다, 이것만 가지고는 안되겠구나 그래서 우리도 킹덤의 개념을 발달시키자 라고 해서 막시즘,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것들은 킹덤의 개념을 인간적으로 엄청 발달시킨 것이다. 킹덤이 더 중요하다, 킹덤이 인간을 다 다스려야 한다고 되는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여서 이 개념이 밥 먹여주냐? 성리학. 리, 이치, 개념이 밥 먹여주냐? 밥 절대 못 먹여준다 라고 하면서 막시즘이 동양을 완전히 뒤덮어 버린다. 특히 중국, 중국은 엄청난 형이사학을 발달시켰는데 아주 작은 나라에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이것은 아니구나, 라고 하면서 이 영역을 발달시키기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영어 배우고, 기독교 들어오고, 기독교도 서양에서는 다 킹덤으로 발전한다. 바티칸, 교황, 다 킹덤의 형태를 띄운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될 것 같았는데, 정말 중요한 문제일 것 같았는데 사실 동사가 발달하다 보니 명사가 부족하면 동사는 망한다. 그러니 다시 명사에 주목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 얼마나 중요시 여겼는가? 그런데 하나님 나라는 정작 개념이 없는 것이다. 다시 동서가 만나고 있다. 이것도 중요하다 라고 하면서 겁데기만 있으면 안된다 라고 하면서 서로 하나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그래서 동서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에트하난이다. 말이 하나되었을 때 하는 기도인 것이다. 모세가 명령하는데 그것이 여호와의 명령인 것이다. 하다바르 라고 하면서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이라고 한다.
신4:1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
וְעַתָּה 베아타 이스라엘 이라고 한다. 이것이 무슨 소리인가? 알렢 아타가 아니라 아인 아타이기 때문에 베앗타 이다. 베앗타는 Time, עת 에트 라고 하면 시간이라는 말이다. 카이로스의 시간을 의미한다. 이 시간에서 이스라엘아 들으라고 한다. 쉐마! 주님의 시간 안으로 들어와라, 기억하라, 네가 어떤 존재인지를 들어라. 그 시간으로 들어와야 한다. 이 시간 안에 들어오지 못하면 안된다.
카이로스의 시간이란, 완성을 보는 비전이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 굉장히 특이한 것이다. 오히려 시간이라는 말보다 시간을 초월하는 것이다. 케뎀에서의 내가 진짜 나라는 것을 알게 되면 이 세상에서 움직이는 것들에게 그렇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태경이가 어떤 모습을 보인다고 하면 그냥 태경이의 완성을 본다. 이것이 에트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에트의 시간으로 들어가면 그 시간 속에서 케뎀이 보이는 것이다.
완성을 본다는 것은 다른 말로 십자가를 보는 것인데, 십자가를 보는 것은 이 세상적인 것들을 다 죽이는 것이다. 다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완성을 본다. 그 세계는 시간을 초월한 주님의 세계이다. 세상 온데 간데 없고 주님만 보이는 그런 시간이다. 나 조차도 온데간데 없고 주님만 보인다. 그것이 에트이다. 이제는 너희들이 그런 시간 안으로 들어왔으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그러는 것이다.
내가 세상에 얽매이고 세상에 눈을 집중하고 있는 한 절대로 이것을 들을 수 없다. 내가 하나님과 에하드였다? 이것을 절대로 들을 수 없고 믿지도 않는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지만, 그 들음이란 케뎀의 것을 듣는 것이다. 케뎀의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듣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도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에 케뎀의 소리를 절대 듣지 않는다. 이 세상이 이야기 하는 것, 다른 사람이 이야기 하는 것을 듣는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한 마디만 하면 난리가 난다. 왜냐면 그것이 내가 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어떠함에 대해서 난리가 난다. 내게 벌어진 일을 가지고 난리가 난다. 그런데 베아타란, 내게 어떤 벌어지든간에 세상은 온데간데 없고 주님만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드디어 들을 수 있게 된다. 뭘 들을 수 있게 되느냐?
엘 하후킴 베엘 하미쉬파팀, 규례와 법도를 들으라 라고 한다. 규례와 법도를 향해서 귀를 기울이라는 말이다.
חֻקִּים 후킴 from חק 호크 : 규례
생명의 소망이 무엇이냐? 이 생명이 뭐가 될 것이냐에 대한 이야기를 좀 들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아타의 시간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이 생명이 무엇이 될 것인가에 관심이 없고 그저 내 육체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만 관심이 있다. 내 육체가 조금 있으면 배고파 질 것이다, 이런 소리는 기가 막히게 듣는다. 내 육체가 조금 있으면 삶이 힘들어 질 거이다, 육체가 병이 들 것이다, 내 삶에 문제가 생길 것이다 라는 이야기는 기가 막히게 듣는다. 그런데 내 생명이 하나님의 생명이고, 이 생명이 어떤 소망 가운데 있을 것인가에 대한 것은 전혀 듣지를 않는다. 그런데 이것을 들으라는 것이다.
מִּשְׁפָּט 미쉬파트 : 법도
미쉬파트란 말이 무슨 말이냐? 샤파트 하면 다스리고 통치하다 라는 말이다. 미쉬파트는 굉장히 어려운 말이다. 형상의 입구가 열려서 그 지혜, 본질이 내려오는 것이다. 그 본질, 선함 가운데 있다는 것에 우리의 옛자아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귀를 기울일 이유도 없다. 뭔 말인지도 모를 것이다. 형상에 대한 입구가 열려서 지혜, 선함이 내려온다, 이것이 도대체 뭔지 귀를 기울일 이유가 없다.
형상에 대한 입구가 열려서 선함이 내려온다는 것은 다 도르를 이야기 한다. 도르란 우리 전체가 다 하나다 라는 것이다. 세대란, 우리가 하나로 묶어내는 것이다. 시간의 하나됨에는 두 가지의 영역이 있다.
1. 시간적 하나됨
2. 공간적 하나됨
그래서 지금 공간 안에 있는 사람들과 하나이기도 하고, 공간이 주는 것은 당대이다. 내가 물질로 존재한다는 것은 우선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간 안에서 만난다. 공간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이것이 공간 안에서 만나게 될 때, 어라... 공간 안에서 왜 만났지? 저를 왜 만나셨는가? 목사님이깐? 목사님을 왜 만나야 하는가? 사랑하니깐? 만나기 전에 사랑해서 나타난 것인가? 에하드였으니깐 공간 안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믿어지는가? 아픈 다리 이끌고 왜 새벽마다 이렇게 왔는가? 누가 소개시켜줬으니까? 소개 시켜주면 다 가는가? 그때는 몰랐다. 왜 안 가는가? 이만큼 들었으면 됐지, 딴데 가야지 왜 안 가는가? 가긴 어딜 가는가 에하드였는데 말이다. 왼쪽 다리에게 오래 살았으니 딴데 가라고 이야기 해도, 죽었다가 깨어나도 안 간다. 그런데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망할까봐 두려워한다. 망한다는 것은 나를 떠날까봐 두려워한다. 여러분들에게 돈이 계속 들어온다. 돈이 있지만, 언제나 충분치 않은 것, 그것을 욕심이라고 한다. 인간 관계도 충분치 않고, 그래서 더 네트워크 해야 하고, 언제나 불만이다. 그러나 눈을 들어서 에트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면 나에게 충분하다. 하나님은 나와 에하드였던 자들을 충분히 보내주고 계신다. 그들을 사랑하기도 사실 바쁘다. 그런데 또 욕심을 내고, 백마탄 왕자님을 구한다. 제가 장담하건데 결혼을 못했다 라는 것은 없다. 하나님이 나에게 보내준 것도 사랑하려면 시간이 없다. 공간도 부족하다.
바에트 하난에 오면 하나님이 그런 통치를 얼마나 잘하고 계시는지에 정말 감사해야 한다. 내 자식들, 내가 원하는대로 만들려면 불만이지만 그러지 말고. 그래서 이 공간 속에서 하나됨이 있다. 그것을 당대 라고 한다. 그런데 전 세대라고 했을 때는 시간 상으로도 하나이다. 나만이 아니라, 이 나는 윗대에서 나왔다. 저는 우리 아버지와 너무 똑같다고 했다. 윗대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도 우리 아버지는 그 윗대에서 나왔다. 또 아버지는 그 윗대에서 나왔다. 내가 영의 세대로 들어왔으면 이것이 나인 것 같다. 내가 주님을 믿고, 나만 있는 것 같지만 나의 영의 세대의 윗대 윗대에서 생겨난 나이다. 이것이 영적인 태어남 마저도 도르 안에 있다. 여러분들이 사도바울이 좋다고 하는 것고,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라인이다. 왜 이름에 다윗이 있는 것도 다 그 이름의 라인이다. 종수, 종속되고 이런 것은 다 다윗 라인이다. 따를 종자 들어가는 사람들, 다 다윗 라인이다. 그래서 이 시간 조차도 전 세대 조차도 다 하나다 라는 것이다. 단독자가 내가 아니다.
다스림과 통치란, 법도란 도대체 뭐냐? 시간과 공간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다, 이것이 다스림이다. 시간과 공간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로 여기는 것으로 다스릴 수 있다. 왕, 제사장, 선지자가 이 미쉬파팀을 한다. 누가 다스릴 수 있느냐? 시간과 공간이 다 하나인 자가 다스릴 수 있다. 그렇지 않고는 못 다스린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끊임없이 다스리려고 한다. 우리는 친구마저도, 결혼해도 부인을 다스리려고 한다. 그런데 다스림에 항상 실패를 한다. 왜 실패를 하느냐? 이런 생각을 못 가지는 것이다. 이 공간 안에서 다스리려면 하나다 라고 생각을 해야 다스릴 수 있다. 그래야 다스려진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다스림을 못하는 이유는 다 하나다 라는 생각을 못하고 내가 원하는대로 만들려고 한다. 그러니 다스림을 못한다.
그리고 합당한 법도대로 다스리려면 지원이는 지원이라고만 하면 안된다. 지원이는 전 세대와 하나이다. 지원이의 육의 세대라고 하면, 육의 세대를 다스리려면 지금 하는 행동이 아니라 그 세대가 하는 짓이라는 것을 알아야 다스릴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지원이를 하나로 여긴다. 쟤 왜 그러는거야? 그러니 다스릴 수가 없다. 그런데 이것이 육의 세대를 이런 면을 대표하고 있구나 하면 다스릴 수 있다. 육의 시대를 죽여 버리고, 너는 이런 영의 세대의 이런 지파의 핵심이라고, Home을 만들고 따뜻하고 아름답고, 사람들을 섬기고, 먹이고 입히고 하는 아주 놀라운 아이들을 태어나게 하고 그 하나님의 집에서 자라게 하는 놀라운 영의 세계의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 영의 세대의 라인이 대기하고 있다가 마치 파원 전원을 주듯이 지지직 하면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미쉬파팀 이라고 한다.
그러니 이스라엘아 이런 이야기를 좀 들어라. 단독자로 살려고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하지 말고 너를 케어하지 말아라. 늙은 왕이 먼저 와서 우리를 육신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살면서 늙은 왕이 맨날 하는 일이 늙게 하고, 병 결리게 하고, 배고프게 하고,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하니 육신에 매여서 배고프지 않으려고, 병 들지 않으려고 육신에 매여서 나를 그렇게 케어한다. 나 죽을까봐, 나 힘들까봐 말이다. 그런데 나를 케어하면 절대로 쉐마를 할 수가 없다. 나를 케어하면 에하드의 세계에 들어올 수 없다. 나를 케어하면 주님의 카이로스의 시간 안으로 못 들어온다. 크로노스의 시간, 인간의 시간이란 다 자기를 케어하는 시간이다. 그 시간은 제로이다. 그 시간은 한 시간도, 단 1초도 안 흐른다. 그 시간은 허상이고 아무것도 없다.
사람이 드바림, 말씀 사역 가운데로 들어오면 자신을 케어하지 않는다. 자기에게 관심이 없다. 그것이 부부이다. 희한한 시간 속으로 들어가서 듣기 시작한다. 호크와 미쉬파트를 듣기 시작한다. 더 놀라운 것은 아쉘 아노키 밀라메드 에트켐, 또 모세가 이야기 한다.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미쉬파팀 이라고 한다. 하나님이 가르쳐야 우리는 직성에 풀리는데 자꾸 모세가 가르치는 미쉬파트, 호크를 들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드바림에 오면 절대로 하나님이 직접 이야기 하시는 것은 없다, 이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모세가 가르쳐야 한다. 왜 가르쳐서 지키게 하라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이유는 이 모든 것을 가르칠 수 있는 자가 출현해야 한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시냐면 가르치는 자로 이 땅에 오셨다. 지금 하나님과 메시아의 관계를 이야기 하는 것이 드바림이다. 하나님과 메시아가 에하드이다. 하나님과 인자와의 관계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르치는 자로 오셨다. 그래서 내 말을 들으라고 하는 것이다. 나의 가르침을 받아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들을 가르쳐서 지키게 하라는 것이다. 예수님과 하나님이 하나이듯이 우리와 예수님은 하나이다. 우리와 예수님의 관계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위치이고 우리는 예수님의 위치이다. 즉, 하나님과 모세와 관계와 비슷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가르치게 되어있는 것이다. 이 신비 가운데로 들어오는 것이 바에트하난이다. 내가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기도하신다. 하나님이 기도하시는 것이 모세가 기도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가르치는데 모세가 가르친다. 하나님의 명령인데 모세가 자기가 명령하는 것을 들으라고 한다. 하나님의 명령인데 모세의 명령이다. 모세의 명령인데 하나님의 명령이다. 이런 일은 어떻게 발생되느냐? 에하드의 신비 속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발생할 수가 없다.
* 기도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어떤 능력자를 원한다. 나도 그런 능력을 가지길 원한다. 그런데 진정한 신부는 김중배의 다이아몬드에 눈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신부는 그냥 하나된다. 하나되면 하나님의 삶이 내 삶이 되고, 하나님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말씀이 되고, 하나님의 기도가 내 기도가 되고, 바에트하난은 정말 놀라운 사랑이야기이다. 하나님의 가르침인데 그것이 내가 가르치는 것이고, 하나님의 법도인데 그것이 내 법도가 되고 하나님의 소망인데 그것이 내 소망이 되고, 그것이 진정한 신부이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과 에하드의 시간으로 들어가길 원합니다.
바에트하난에서 참 희한한 것을 봅니다. 모세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 하나님과의 하나됨임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결국 완성하신 것이 그 하나됨을 완서하신 것을 봅니다. 우리의 신랑으로 오셔서 신랑과 신부의 아름다움, 그 하나됨 속으로 우리를 인도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바에트하난, 우리 모두 그 요한의 아름다운 사랑을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비드리 목사
바에트하난 넷째날 29일 토라포션(신5:1-18, 행3장)
성전파괴일의 시작은 열정탐꾼의 디바로 시작되었다. 나를 위한 말 때문이다.
제1성전. 제2성전이 파괴되고 사탄의 힘이 가장 크게 역사하는 날이다. 하나님의 모사가 드러나는 바에트하난의 주간이다. 메시야의 손이 나타나는 때 이기도 하다.
바에트하난(내가 간구하다).
신3:23 그 때에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내가 기도하는데 그리스도가 기도하고 주님이 기도 하시는데 내가 기도한다. 우리들의 자유의지가 필요하다. 뭔가가 필요할 때 간구한다.
1. 모세의 간구
시72:17 그 이름이 영구함이여 그 이름이 해와 같이 장구하리로다 사람들이 그로 인하여 복을 받으리니 열방이 다 그를 복되다 하리로다
그는 메시야. 그의 이름이 영구하다. 그의 이름(쉠)이 해같이 장구하다가 눈. 그래서 메시야의 이름이 눈이다. 바에트 하난의 끝에 눈자가 들어간다. 모세가 그리스도를 구하는 이유는 그의 이름이 영구함이요 또 빛이시다. 예슈아의 이름은 눈의 아들 여호수아이고 모세가 간구한 이름은 빛이신 그리스도 예슈아를 간구하는 기도다.
고전2:9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우리는 어둠이기 때문에 눈으로 볼 수가 없다. 그래서 빛 되신 예슈아를 간절히 간구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2. 에에브라(건너가게 하소서)
신3:25 "구하옵나니 나로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편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제발 건너가게 해주세요 라고 간청한다. 에에브라의 이브리는 건너가다, 보다. 건너가서 아들을 보게 해달라. 나를 중심으로 하는 삶에서 아들을 보는 곳으로 건너가게 하소서.
모세의 바에트하난은 어둠인 우리가 빛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보게 건너가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너는 요단을 건너가지 못하고 먼저 여호수아가 건너가야 할것이다 한다.
신3:28 너는 여호수아에게 명령하고 그를 담대케 하며 그를 강경케 하라 그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건너가서 네가 볼 땅을 그들로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여호수아를 따르는 믿음이 요단을 건너가게 한다.
3.우리의 간구.
약속의 땅을 주십시요, 하아레쯔 하토바를 간구할 때 여호수아가 나타난다.
요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하나님의 생명으로 사는영생이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그것만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 에하드이신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요17: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4.여호수아의 간구.
예수님, 여호수아의 간구는 저들도 에하드 인것을 알게 해달라고 간구 하는것이 바에트 하난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도 알려주는 기도다.
직접 오셔서 돌판에 써준신 십계명이다. 예수님은 에하드로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신다.
안식일을 지키라와 짝을 이루는 게 거짓증거 하지 말라이다.
내가 여호와와 같은 에하드의 존재인데 그렇지 않다는것이 거짓증거 하지 말라이다.
하나님과 나는 에하드인데 나는 약하니 하나님도 약해야 하는데~ 하는 부분적으로 분리되서 산다. 이것은 에하드와 상관없는 삶을 산다.
이스라엘의 실로:형상을 훈련하는곳. 여호수아가 기업을 분배 했던곳이고, 한나의 기도문이 있는곳.
삼상2:1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여호와롤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이다
한나는 애를 못낳아서 애낳게 해달라는 기도는 없고 여호와 안에서 내가 기뻐한다고 기도한다.
삼상2:2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한나는 여호와 안에서 기뻐한다고 여호와를 계속 찬양하는 기도를 한다.
삼상2:3~7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찌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 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유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않도다 전에 잉태치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한나의 기도는 다 여호와를 위한 기도다.
5. 잉태(이부르)의 간구. 자기를 캔슬하는 기도다. 여호와를 잉태하고 싶다는 기도다.
잉태는 우리의 모든 삶에서 여호와가 나타나는 것이다. 말씀을 잉태해서 여호와가 나타나고
여호와를 닮은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다.
한나는 헨, 수동에 신실한다. 주님과 나는 에하드이다 라고 나를 위한 게 아니라 여호와를 닮아갈 생명을 잉태하고 싶다할 때 사무엘이 탄생한다.
창세전의 생명은 육신의 눈으로 보기엔 다르다. 그러나 모두 하나의 생명. 에하드다. 이
스라엘이다.
여기에 하나님의 모사가 있다. 야샤르 엘. 하나님께로 직진한다. 큰 알파벳 라메드는 늘 회초리,훈련이 따른다. 회초리로 훈련하고 잉태해서 간구하는 기도를 삶을 사는 자가 이스라엘이다.
간(카바드:영광). 나 중심의 삶에서 아들의 나라로 건너가서 하아레쯔 하토바를 구하는 기도를 할때 에하드가 있는 약속의 땅으로 갈 수 있다. 나 자신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를 해서 영의 자녀를 잉태 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