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냐? 문화방송이냐? 2023.03.02
유명인들 중에는 본명보다 약칭이나 애칭으로 불리는 경우가 흔하다. 대표적인 예가 정치인 DJ(김대중) YS(김영삼) JP(김종필)이다. 디자이너 앙드레 김(Andre Kim)은 국회 청문회 증인으로 나와 김봉남이란 본명이 밝혀지기 전까지 애칭만으로 존재했다.
그런 약칭 가운데 공중파 방송이 있음을 새삼스레 생각하게 된 것은 작년 말 서울 종로구 관훈동 관훈클럽 정신영회관에서 열린 ‘광주문화방송 한글 이름, 그 의미와 과제’라는 제목의 세미나를 참관하고 나서였다.
한국방송공사(Korea Broadcasting System) 문화방송(Munwha Broadcasting Corporation) 서울방송(Seoul Broadcasting System)이 본명인 이들 방송은 로마자 약자인 KBS, MBC, SBS가 본명처럼 불린다. 이중 SBS는 설립 당시의 ‘서울방송’이란 본명이 지금은 아예 ‘주식회사 에스비에스’로 바뀌었다.
KBS는 프로그램 중간에 ‘정성을 다하는~국민의 방송~KBS~한국방송’이라고 PR용 캠페인방송을 하고, MBC도 그동안 줄곧 ‘만나면 좋은 친구~mbc~문화방송’이라고 캠페인 방송을 하다가 최근들어 ‘문화방송’을 빼버렸다. SBS는 그냥 문자로 ’SBS’만 내보낸다. 원래 호적 이름을 캠페인용으로나마 쓰는 방송은 한국방송뿐인 셈이다.
세미나의 주제는 작년 10월부터 광주mbc가 모든 프로그램에 ‘광주mbc' 또는 ‘mbc’ 대신 ‘광주문화방송’ 또는 ‘문화방송’이라는 로고를 화면 우상단에 붙여 방영하고 있는 것에 관한 것이었다. 한글날을 기념해 1주일간 시행하기로 시작한 캠페인은 연말까지 연장됐다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김낙곤 광주문화방송 사장은 "재임하는 동안 지속하겠다"고 했다.
광주문화방송의 캠페인 의도는 ‘mbc’ 대신 ‘문화방송’으로 문패를 바꿔 달자는 것이다. 현재의 약칭은 해방 후 미 군정청이 한국방송공사에 KBS라는 이름을 붙여준 이래 문화방송과 서울방송도 이를 흉내 내어 쓰게 된 것인데, 문화방송만이라도 이제는 본명을 찾을 때가 되지 않았냐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뿌리 깊은 나무’의 발행인 고 한창기 씨가 1976년 ‘똥묻은 개와 겨묻은 개’라는 글을 통해 통렬하게
광주문화방송의 문패갈아달기는 2005년 '문화수도 광주'로 시작돼 현재는 자체 제작프로엔 '광주문화방송', 본사 제작프로엔 '문화방송' 로고로 송출 중이다.
제기했다. 그는 한국의 방송사 약칭은 서양 흉내 내기 좋아하는 일본의 공영방송 NHK가 ‘일본방송협회(Nippon Hoso Kyokai)’의 음역인 것만도 못하다고 했다.
MBC의 경우 ‘문화’를 영어의 ‘Cultural’이 아닌 우리말을 로마자화한 ‘Munhwa’로 한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그랬더라면 MBC는 ‘CBC’가 될 뻔했고, 오늘날에 와선 뼛속까지 외세지향적 이름이라고 비판의 대상이 될 뻔했으니 말이다.
SBS가 ‘서울방송’이라는 본명을 버린 것은 ‘서울’이 강조되면 지방에서의 시청률에 영향이 미칠 것을 의식한 고육지책이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영어의 한글 음역으로 본명을 바꿔버린 것은 지나쳐 보인다.
‘광주문화방송’의 ‘문화방송’ 찾기는 2005년 김상균 사장 시절 ‘광주 MBC’ 로고 안에 ‘문화수도 광주’를 병기한 것으로 시작됐고, 현재는 화면 우상단 로고를 자체 제작 프로엔 ‘광주문화방송’, 서울본사 송출 프로에는 ‘문화방송’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같은 시도에 대해 문화방송 내부에서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는 듯하다. 광주문화방송 사내 홈페이지 여론조사 결과, 70% 이상이 잘된 일이라고 찬동하고 있다. 그들은 제작상의 사고위험 증가와 업무량 증가 등 애로가 있지만, 현재대로 계속 표기되기를 바란다.
반면 편성운행의 통일성 일관성을 위해 'mbc' '광주mbc'로 돌아가자는 소수 의견도 있다. 서울 본사에서는 지역방송이 임의로 편성내용에 변경을 가하는 것에 불만을 표시하면서, ‘mbc’가 방송통신위에서 부여받은 이름인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방송에서의 외래어, 특히 영어의 오남용은 심각한 수준이라, 광주문화방송의 시도를 우리 것에 대한 정체성 확보차원에서 바라볼 필요도 있다. 방송은 공공재이고 문화방송은 공영방송이다. 이에 대한 논의의 범위를 좀더 넓힌다는 차원에서 문화방송 본사 제작프로의 화면 우상단에 표기된 'mbc' 로고. 이런 형태의 로마자 로고 표시는 국내의 모든 방송에서 동일하다.
mbc 본사는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공중파 외에 케이블, 유튜브, IPTV 등 온갖 종류의 방송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그렇게 많은 방송사가 하나같이 로마자 이름으로 표기 및 호칭되고, 한글 본명의 방송국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국어가 한글임을 무색케 하는 것이다.
국제공용어로서 영어의 효용성을 무시할 수도 없고, 이름의 다양성도 시대의 흐름으로 거역할 수는 없다. 이런 여건이라면 ‘문화방송-mbc’ ‘한국방송-KBS'에서 '문화방송' '한국방송’이 사라지고 'mbc' 'KBS'만 남게 될지도 모른다.
이미 모든 TV방송의 화면 우상단 방송사 로고는 영어 알파벳이름으로 굳어져 있다. “우리말에 대한 작은 관심에서 시작한 이 캠페인이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한다”는 광주문화방송의 김낙곤 사장의 호소를 한 귀로 흘려버려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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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 임종건
한국일보와 자매지 서울경제신문 편집국의 여러 부에서 기자와 부장을 거친 뒤 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실장 및 사장, 한국신문협회 이사를 끝으로 퇴임했습니다. 퇴임 후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을 지냈습니다. 필명인 드라이펜(Dry Pen)처럼 사실에 입각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