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6장 36~56절 기도로 걷는 순종의 길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들이 보낸 사람들에게 체포되기에 앞서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에 있는 겟세마네 동산으로 기도하러 가셨습니다(36절).
겟세마네는 “기름을 짜는 틀”이라는 의미를 가진 지명입니다. 아마도 감람열매(Olive)로 기름을 짜기 위한 틀이 있었던 장소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기다리라고 하시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조금 더 가셔서 이들에게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신 후에(38절), 예수님은 조금 더 가셔서 기도하시기 시작합니다(39절).
이때 주님의 심정은 고민하시면서 슬퍼하시는 상태였음을 반복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37절, 38절).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그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것을 생각하시면서 그 마음이 많이 상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시는 것은 육신적으로도 무척 고통스러운 것이었겠지만,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셔야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의 자리에 서셔야 하는 것이 더 큰 고통이셨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과 이 고통을 함께 나누길 원하셨고(38절), 주님께서 이 대속(代贖)의 사역을 위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음을 분명히 알고 있으셨음에도 불구하고,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39절)라며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그만큼 십자가를 지시고 죄인의 자리에 서시는 것이 전혀 죄와 상관없으신 의로우신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는 무척 고통스러운 것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신의 고통을 회피하지 않으셨습니다. 할 수만 하시거든 이 잔을 지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지만,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시면서 하나님의 뜻에 전폭적으로 순종하셨습니다(39절).
이 기도는 예수님께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고 있으시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 번씩이나 이와 같은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시면서 십자가를 맞이할 준비를 단단히 하셨습니다(39절, 42절, 44절).
그런데 마치 감람열매를 쥐어짜서 기름을 내듯 온 마음을 쥐어짜듯 간절히 기도하시는 주님과는 달리 제자들은 주님과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하지 못하고 잠들어 있었습니다(40절, 43절).
주님께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있어 기도하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41절), 육신의 피곤함을 이기지 못한 제자들은 끝까지 주님의 고통을 함께하지 못하였습니다.
주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41절)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의 육신은 연약하기에 기도로 무장하지 않으면 시험에 들 수밖에 없다고 교훈하신 것입니다.
▶ 제자들이 주님께서 하셔야 할 대속(代贖) 사역을 주님과 마음을 같이하여 함께 간절히 기도하며 준비하였더라면 대제사장들이 보낸 종들에게 어설픈 대응도 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예수님이 잡히실 때에 뿔뿔이 흩어져서 주님을 알지 못한다고 부인(否認)까지 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주님은 세 번의 기도를 마친 후에 제자들에게도 자고 쉬라고 말씀하시면서(45절) 십자가를 대할 만반의 준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46절)라고 말씀하시면서 십자가를 향하여 기꺼이 나서셨습니다.
▶ 겟세마네의 기도를 통해 가장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죽음을 마주 대할 준비를 모두 마치신 것입니다. 우리가 위대한 사역을 하려고 한다면, 기도로 무장하는 것은 매우 중요함을 깨닫게 합니다.
가룟 유다는 대제사장들이 보낸 사람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찾아왔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은 예수님께서 자주 기도하러 오셨던 곳이기에 가룟 유다도 이 장소를 쉽게 찾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잡으러 온 이들과 서로 신호를 짜서 약속한 대로 예수님께 입 맞추며 인사를 하여 예수님을 체포하도록 돕습니다(48절~50절).
이들은 칼과 몽치로 무장하고 예수님을 잡으러 왔는데, 주님께서는 이들에게 체포되는 것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꺼이 잡혀주는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55절). 베드로가 칼을 뽑아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쳐서 떨어뜨리게 하였는데, 주님께서는 베드로를 만류하시며 맞서지 말라고 하셨습니다(51절, 52절).
주님은 때가 되었기에 이제는 기꺼이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 함을 아시고 있었고, 자발적으로 체포에 응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쩔 수 없이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구속(救贖)하시기 위해 기꺼이 십자가에서 죽임당하신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구약에서 이미 예언한 대로 성취되고 있는 것임을 강조하셨습니다(54절, 56절).
주님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겪지 않으셔도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기꺼이 이 엄청난 고통을 기꺼이 당하신 것입니다.
[결단]
하나님과 우리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이번 한 주간 고난주간을 보내게 되는데, 이 엄청난 주님의 사랑을 마음 속에 깊이 되새기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고난을 묵상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202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