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보석딱정벌레
책을 다 읽지 못한 벌레 같은 나의 불성실을 자축하며 글의 포문을 연다. 동시에 변호를 시작해본다. 벌레라,,, 꽤나 도전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우리모두 그들을 닮아 있다.
‘우리는 모두 유전자 운반 생존 기계일 뿐이다.’는 아주 재밌고도 충격적인 주장을 하는 [이기적 유전자]는 리처드 도킨스의 파격적인 주장을 담아내고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어느 날 고대 바다의 친 번개로 유기물이 형성되고 오랜 시간이 지나며 그 유기물은 아미노산->단백질의 형태로 변화되기도 하고, 결국 여러 종류의 세포를 만들어 낸다. 그 세포는 서로 증식하며 본인들의 유전자를 만들며 자연선택에 의해 생존에 유리한 유전자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한 생명체가 탄생한다. 그 생명체를 분해하다 보면 결국 그 끝에는 유전자가 있다. 그 유전자는 특수한 일종의 명령을 생명체에게 부여한다. 사자에게는 ‘너의 힘을 이용하여 동물들을 사냥해라.’ 토끼에게는 ‘너의 두 다리를 이용하여 강한 포식자에게서 살아 남아라.’ 하는 식이다. 유전자의 명령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요즘 키가 커 보인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옛날 같으면 분명히 설레며 들을 말이겠지만 최근 2년 가까운 세월 동안 조금의 변화도 없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는 나한테는 그저 의야 할 뿐이다. 그러다 깨달았다, 최근 나의 머리가 많이 볶아진 것을. 키가 큰 것이 아니라 머리카락이 풍만해진 것이다! 내가 조금 키가 큰 것이라는 달콤한 착각에 빠져 있는 엄마는 말한다. “키 좀 큰 것 같은데?” 어림도 없다, 나는 나의 놀랍고도 우스꽝스러운 깨달음을 엄마에게 전파한다. 그대도 어째서 인지 포기하지 못한다. “10센치는 더 커야지! 남자는 군대까지 큰 데.” 의문이 생긴다. 왜 저 작자는 나의 키에 그리 관심이 많은가? 왜 사람들은 큰 키를 좋아할까?
도킨스의 답변은 만능이다. 유전자 때문이다. 긴 다리를 가지면 사자와 같은 맹수에게서 빨리 벗어날 수 있고 또 먹잇감을 사냥할 때도 도움이 된다. 이런 긴 다리를 유전자는 은연중에 원한다. 번식의 대상을 정할 때는 중요한 선택지로, 나의 새끼를 키울 때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유전자가 그리 만든다.
최근 발달하는 학문인 진화심리학에서 이런 예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유명한 이야기로는 여성의 골반과 관련된 것이다. 이따금 남성은 여성을 볼 때 골반을 쳐다본다. 조금은 느끼하고도 역겹게 느껴지는 그 시선은 도대체 왜 존재할까? 신이 부여했을까? 도킨스의 답은 남성안에 있는, 사실상 그의 몸의 주인인 유전자는 생존을 원한다. 자신의, 또한 자신과 같은 유전자들의 생존이다. 그러고 싶으면 결국 이 껍데기인 남성의 씨가 많이 뿌려져야 한다. 2명만 낳아도 이 껍데기와 같은 유전자의 수이니 되도록 많은 씨를 남길수록 좋다. 그 과정에서 남성의 유전자에게 여성의 골반은 분만에 유리한 아주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이성을 볼 때의 입도, 코도, 눈도, 귀도, 어떻게 보면 인성과 가치관 조차도 도킨스는 이런 식으로 설명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현재 이화여대의 교수로 있는 최재천 교수는 어릴 적을 회상한다.
그는 미국 하버드에서 생물학을 공부 하고 있을 때 수업 교재인 [이기적 유전자]를 맞이한다. 숙제를 하려 핀 책에 최재천 교수는 밤새 빠져들게 된다. 그렇게 밤새 읽은 ‘인류 역사와 심리와 행동거지를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해 내는 책’의 충격적인 주장에 무언가 다라지는 것을 느낀다. 그동안 느꼈던 이질감들이 하나의 질서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창문을 열고 어느때와 다름 없이 펼쳐진 풍경을 보고 그는 그때의 감정을 고백한다. “세상이 달라 보였어요. 인간의 모든 행동이 설명되기 시작했고,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 것 같았죠.”
이제 그의 세상은 ‘유전자가 호모사피엔스를 통해 역사는 법’ 그 자체였다.
코스트코에 들렸다. 코스트코에 오면 반드시 나쵸를 사야만 한다. 3~4배 작은 걸 편의점에서는 6000원 돈에 파는데 이곳은 대용량으로 10000원이면 된다. 그 나쵸를 카트 위에 싣는 것을 상상하면 행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없다, 도무지 어떻게 된 것이 원래 나쵸가 있던 자리에 썬칩이 올라가 있다. 염치없는 놈이 어떻게 저 자리를 빼앗을 수 있단 말인가?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엄마가 고기 한 무더기를 카트에 담아 내지만 그딴 건 아무래도 좋다.
세상을 바라본다, 창고에 갇힌 세상이다. 사람들은 이리저리 오가며 물건을 만진다. 사파리의 사자들이 인간이 깎아 만든 편한 돌에 모여 있듯 사람들이 배치되어 있는 캠핑 장비들에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 보고 있다. 아쿠아리움 펭귄들이 생선을 먹으려 줄 선 듯 소시지 냄새나는 시식 코너에 줄을 선다. 다 먹고 난 후 이쑤시개는 원숭이가 바나나 껍질 버리듯 바닥에 팽개쳐져 있기도 하다. 주름 잡힌 손으로 아이의 머리카락 만져주는 손은 새끼 털 골라주는 원숭이의 것과 비슷하다. 참 재미난 감상을 할 줄 아는 시선이 내 안에 만들어 졌구나 싶다.
아주 유치한 것에 속으로 감정 품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니 어찌나 초라한지.
호주의 어느 한 길가에 밤새 벌여진 홈파티의 흔적으로 맥주병이 널브러져 있다. 그저 그런 흔한 풍경이었을 것이다. 다만 좀 징그러운 것은 벌레가 득실거렸다는 것이다. 이 광경을 두 명의 생물학자가 목격한다. ‘왜 저놈들은 맥주병에 몰려 있을까?’ 학자들이 더 자세히 그 주인공을 살피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징그러운 벌레들은 최근 개체수가 급감하고 있었던 거대보석딱정벌레였다. 그토록 보기 힘든 놈들이 왜 이런 곳에 몰려 있다는 것인 가? 학자들의 연구열을 올리기에 충분한 주제였다.
학자들은 그 벌레들이 거대보석딱정벌레의 수컷들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왜 암컷은 없었을까? 학자들은 암컷과 수컷을 놓고 비교해 보았다. 그들은 연구에 연구를 한 끝에 놀라운 결과를 내놓았다.
거대보석딱정벌레의 암컷의 외관은 갈색의 윤택이 났고, 약간의 돌기가 난 체 곡선으로 휘어 있었다. 무언가 연상되지 않는가? 그렇다, 그 모습은 마치 맥주병과 같았다! 그럼 이 다음 단계는 뻔하다. 수컷 거대보석딱정벌레들은 자신들의 번식 때가 될 때마다 다른 벌레들과 경쟁하고, 경쟁했음에도 자신에게서 도망가는 암컷들보다, 가만히 어떤 저항도 없지만 더 크고, 우람하며, 광택과 갈색, 돌기로 마치 암컷의 것과 점철되어진, 아니 오히려 더 뛰어난 대상인 맥주병에게 교미를 한 것이다. 당연히 암컷은 알을 밸 수 없었고, 개체수는 급감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호주의 정부는 특정 맥주병 디자인을 금지해야만 했다!
아주 재밌는 일화이다. 하지만 그 뿐일까?
선진국, 아니 성(性)진국으로 유명한 일본에는 “리얼돌”이라 하는 것이 있다. 인간과 똑같은 형태로 제작된 실리콘 덩어리의 용도는 아주 단순하다. 말하자면 거대보석딱정벌레한테 맥주병과 같다. 경쟁해야 쟁취할 수 있는 이성, 나를 피해 도망가는 이성보다는 차라리 리얼돌 하나를 마련하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물론 리얼돌을 맥주병과 비교하는 건 실례다. 거대보석딱정벌레에게 맥주병과 인간에게 리얼돌의 퀄리티는 비교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 점에서 맥주병은 현실보다 뛰어난 것이고 리얼돌은 아직은 현실보다 못한 것이다.
망상을 더해본다. 만약 리얼돌이 맥주병이 된다면 어떨까? 사람보다 매력 있는 리얼돌이 탄생한다면 인간은 멸종하지 않을 수 있을까? 보다 큰 골반, 매력적인 눈과 입과 코. 큰 키를 추가하고 싶다면야 기꺼이. 그 리얼돌 앞에 인간의 역사는 굴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봐! 사람은 육체만 보지 않는다고?’ 흠, 그럼 감성을 터치해주면 된다. 영화 [그녀]에서 우리의 너드남 테오도르는 Ai와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육체도 없고 뇌도, 자아도 없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모든 감정을 터치해줄 수 있다. 망각을 더한다면 더할 나위 없는 나의 그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이따금 들리는 목소리는 스칼렛 요한슨이다!
박보검의 얼굴, 근육질 몸매와 이상적인 키. 목소리는 달콤한 성우톤에 인성은 당신이 원하는 감정을 터치해줄 정도로. 우리의 맥주병이 안될 것이 무엇인가?
이 맥주병 앞에 인류는 멸종하지 않고 배길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