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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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골 사는 어린이입니다. 그리고 나 에게는 아버지와 늙으신 할머니만 계십니다.
몹시 추운 겨울, 갑작스럽게 열이 나면서 생명의 위험까지 느낍니다. 더구나 한밤중에 40°가까운 고열 오른다면 무조건 병원 응급실에 가야 합니다.
이 시가 처음 발표된 1955년 무렵 시골에 눈이 많이 내린 날, 당시엔 시골에선 병원이 있을 턱이 없겠지요.
아이는 엄청난 열로 시달리면서 점점 기력이 빠지며 죽음에 이를 지경입니다.
그때 아이의 아버지가 나섰습니다.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눈길을 헤치며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한방에선 해열제로 최고의 약재가 산수유 열매라지요.
아버지는 길을 잃거나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을 수도 있지만 오직 아들 생각만 하면서 산수유 열매 찾아 산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침내 아버지는 빨간 산수유 열매를 따서 돌아왔고, 할머니가 그 열매를 달인 약을 먹고 아이는 살아났습니다.
아이는 자라서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눈 속을 헤치며 산수유 열매를 따온 그날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죄인들을 구원하려 당신의 목숨을 바친 그리스도처럼, 아들의 목숨을 구하려 죽음을 각오하고 산속으로 들어가신 아버지가 그렇다고 느끼는 거지요.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 먹은 나는 과연 내 아이들에게 그때의 아버지가 해준 것처럼 해줄 수 있을까 생각하나 고개를 흔들 뿐입 니다.
오늘도 어른이 된 ‘나’가 사는 도시에는 옛날 처럼 반가운 눈이 내리는데 갑자기 그때의 아버지가 떠오릅니다.
나를 위해 서슴없이 한 치 앞도 모르는 눈 속에 몸을 던진 아! 바로 그 아버지.
24.12.26.목.
성탄제/김종길
어두운 방 안에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聖誕祭)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의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