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사태가 1997년 12월에 터졌고 그 해 중에 강도범 신창원이 교도소를 탈주하여 1년 넘어 못 잡고 전국이 잡느라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다음해인 98년 늦가을 며칠 휴가를 내어 남도 여행을 떠났다. 첫날은 대덕단지의 지금은 없어진 롯데호텔, 객실은 비록 60여개이었으나 아담하고 서울에서 멀지 않아 오후 병원 일과를 마치고 출발하여도 거기에서 저녁을 먹 을 수 있고.
IMF 때가 아닌가. 지방도로는 차들이 달리지 않아 텅 텅 비어 있었고 가는 길에는 흉물스럽게 짓다만 콘도나 호텔 들. 승주 선암사에서 점심을, 보성과 강진을 거쳐 월출산까지 왔다. 절 입구에 붙어있는 현수막에는 ‘IMF 실직자는 무료입장’ 평일에 나다니는 사람은 보나마나 IMF 실직자로 보는 분위기 이었다. 그래도 민박 아닌 숙소라고는 모텔 비슷한 ‘월출산장’. 늦은 저녁을 맥주와 같이 하고 잠자리에 들어 한잠을 자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방문을 ‘쾅 쾅’하고 두드린다. 대충 옷을 주워 입고 문을 열었더니 ‘임검 나왔습니다.’ 복도 가득 경찰과 전경들이 에워싸고 있는 게 아닌가. 나야 뭐 꺼릴 것도 없는 사람. 들고 온 숙박부와 우리 주민등록증을 확인하니 내 처의 또박또박 글씨체로 인적사항이 그대로 일치한다.
내가 그렇지 않아도 목포에서 지검장을 하는 후배에게 전화나 해볼까? 하다가 괜히 사람 성가시게 굴고 까딱하다간 술자리에서 분위기 잘 잡는 후배와 어울리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몰라 연락을 하지 않았더니 자다가 이런 변을 당한다. 라고 말했다.
이 놈들이 나에게 경례를 부치며 ‘근무 열심히 하고 있다고 전해 주십시오.’ 한다. 그 후배는 나중 검찰총장이 되었다. 연유인즉 왜 헤드라이트가 왕눈이처럼 생긴 하얀 Benz E 320이 내 차이었고, 소문은 신창원이 젊은 여자(?), 하긴 지금부터 15년도 더 전이니 내 처도 젊은 여자임에 틀림이 없었지만, 와 외제차를 타고 도피를 다닌다 하였으니 정황을 보면 내가 신창원이 틀림없다. 신고를 받고 득달같이 달려 온 것이다.
다시 잠을 청하였으나 잠은 오질 않고 절에서 들리는 새벽 예불소리.
IMF 때라 그 차는 일 년 만에 사람들이 오며 가며 발로 차고 못으로 긁고 하여 거의 중고가 되었고 그래도 그 차를 타고 대학에 들어가면 이사장 차가 BMW 말고는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교수가 없었다. 꼬박 12년을 타다가 바꾼 와인색의 Benz E 300은 4년을 넘어 탔어도 주행거리가 3만 킬로도 되지 않는다. 작년 6월에는 토요일에 할 일이 있어 병원에 나왔다가 점심 병원 자장면을 먹고 커피 한잔 마시고 병원주차장에서 나오는데 차가 뭐에 긁힌 것 같아 집에 와서 확인하니까 왼쪽 문짝이 왕창. 견적 오백만원에 보험처리를 하였고 11월 정기 검사를 받으러 검사장에 갔다가 세워 둔 차 기어를 넣으니 들어가지 않아 정비사를 불렀더니 힐끔 보고는 ‘시동을 안 걸었잖아요.’ 차를 갖고 나온 김에 기름을 넣고 세차를 하는데 앞에서 막 고함을 지르는 순간 차안에는 물이 가득, 나 역시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다. 카드결제하며 창문을 닫지 않은 탓. 내가 거꾸로 야단을 쳤지요. 눈도 잘 안보이고 귀도 잘 안 들리는 늙은이에게 고함을 지르면 어뜩하냐고.
요즈음 나의 생활습관이 바뀐 것 두 가지 중 하나는 운전을 하기 싫은 것과 붉은 고기를 먹고 싶지 않은 것이다.
첫댓글 젊었을 적부터 독특한 인생을 사셨습니다. ^^ 신창원이랑은 안 닮으신 것 같은데... 나는 자동차 자차보험은 안듭니다. 돈이 너무 많이 나가고, 아까워서... 그러나, 문제가 생기면, 수리비가 아주 많이 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