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올림픽의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인 1988년 10월 16일.
북가좌동 한 가정집에서 탈주범 4명이 가족을 인질로 삼고 경찰과 대치하다가 10시간만에 자살 또는 사살되는 유혈극이 벌어졌다. 인질범은 마지막 순간에 비지스의 할러데이를 들으면서 깨진 유리로 자기 목을 그었다. 그 인질범은 바로 지강헌이었다.
그리고 '유전무죄 무전유죄', 돈 있으면 죄가 없고 돈 없으면 죄가 있다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회자되었다.
그들이 인질들에게 밝히고 다닌 탈주 원인은 10년에서 20년까지 내려진 과중한 형량이었다. 5공화국은 형사 피의자의 체벌형량을 대폭 강화하는 특별법을 양산했다.
이들의 탈주를 유도한 것은 형량의 불평등이었다. 지강헌은 "돈 없고 권력 없이는 못사는 게 이 사회다. 전경환의 형량이 나보다 적은 것은 말도 안된다", "대한민국의 비리를 밝히겠다. 돈이 있으면 판검사도 살 수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우리 법이 이렇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돈 있고 빽 있는 자는 죄를 지어 재판을 받아도 특혜를 받고, 돈 없고 빽 없으면 중형을 그대로 받아야 하는 현실. 중형 그 자체보다 이 상대적 불평등이 그들을 분노하게 하는 원천이었다.
지강헌. 그는 동정받을 이유가 없는, 상습적으로 강절도를 저질러온 범죄자였다. 우연히 대마초에 손을 댄 것이 계기가 되어 범죄의 길로 들어섰고 그것이 돌이킬 수 없는 길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또한 5공화국이라는 그 시대가 낳은 비극이기도 했다.
5공비리로 대표되는 전두환 전대통령과 그 일가의 부정부패가 빈민층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가속화했다. 그러한 시대적 분위기가 '유전무죄 무전유죄'에 대한 강력한 공감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2004년 오늘,사건이 일어 났던 80년대보다 빈부격차는 더 커졌고, 부익부 빈익빈의 구조는 더 고착화되었다. 80년대가 욕망의 좌절을 의미했다면 오늘날은 완전한 희망의 좌절을 의미한다고 한다.
16년전 탈주범 지강헌이 던졌던 '유전무죄 무전유죄', 그 말이 전하고 있는 빈자들의 소외감, 그 것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