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의 마을
-박진형
히브리어 시편을
나는 읽지 못한다
까막눈이 예수도
한글 시편을 읽지 못한다
낮게 낮게 모국어의 눈이 내려
지상의 낮은 골짜기를 적시고
뼈다귀만 남은 포도나무 감싸안는다
철사줄 십자가에 묶인 아기 예수가
안으로만 흐르는 고드름 오려 붙이면
포도나무는 연신 초록 불 켜대고 있다
가죽 성경은 낡고 낡아서
배고픈 새끼 염소가 뜯어먹는다
식은 지 오랜 구들장에
아내는 가난의 시편으로
장작불을 지피고
-매일신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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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2025 새해도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소설이 지난 초겨울날, 샤갈의 마을 가까이에 눈이 내립니다
눈은 내려서 시인의 여윈 몸을 적십니다
모국어로만 내리는 눈은 잎이 다진 포도나무 철조망에 못 박힌 예수의 형상을 지웁니다
그러므로 가죽 성경은 나달나달 배고픈 새끼 염소가 뜯어먹으리라!
까막눈인 시인이 지쳐 잠들면 아내는 가난의 시편으로 오래 식은 구들장을 장작불로 데울 테지요
그러므로 가난의 한글 시편도 눈이 되어 내리는 게 아닐까요?
헌법 위반 행위를 벌주려는 '탄핵'이 조자룡 헌 칼 휘두르듯 이어지니 불안불안합니다
찬성과 반대는 저마다의 의견일 터 다양한 민주주의 정치형태로 자리잡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까막눈이가 되어 일상을 견디려니 마음은 답답하네요
이럴 때는 우리 마을에도 하얀 잣눈이 쌓여 순백의 세상을 펼쳐주면 참 반가우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