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칼럼
[박건형의 닥터 사이언스] 우주 대항해 시대를 여는 질문 “달은 지금 몇 시죠?”
조선일보
박건형 기자
입력 2023.03.21. 00:05업데이트 2023.03.21. 00:08
https://www.chosun.com/opinion/2023/03/21/4OFDKWYAORARBIQG3GENSDCYAU/
※ 상기 주소를 클릭하면 조선일보 링크되어 화면을 살짝 올리면 상단 오른쪽에 마이크 표시가 있는데 클릭하면 음성으로 읽어줍니다.
읽어주는 칼럼은 별도 재생기가 있습니다.
일본 우주기업 아이스페이스가 제작한 달 착륙선 ‘하쿠토-R’은 4월 말 달에 도착한다. 미국 스타트업 인튜이티브 머신스의 원통형 로봇 ‘노바C’는 6월 달의 남극점에 착륙한다. 미항공우주국(NASA)은 내년 4명의 우주인을 달 궤도에 보낼 계획이고, 2025년에는 1972년 아폴로17호 이후 처음으로 우주인들이 달에 착륙하는 ‘아르테미스 미션’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도 2030년까지 자국 기술로 우주인을 달에 보내겠다고 했다. 한국 첫 달 탐사선 다누리는 지난해 말 달 궤도에 안착해 올 2월부터 본격적인 관측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2032년 한국산 달 착륙선 발사를 위한 장기 계획도 마련돼 있다.
15~16세기 신대륙과 수많은 항로를 발굴했던 대항해 시대, 19세기 일확천금을 꿈꾸던 사람들의 미 서부 골드 러시가 21세기 달을 무대로 재연되고 있다. ‘문 러시’ 시대인 셈이다. 달은 우주로 가는 전초기지이자, 헬륨-3와 희토류처럼 지구상에서 찾기 힘든 자원의 보고(寶庫)이다. 달에 안정적으로 도착하고 거주할 수 있게 되면 인류는 지구를 벗어나 다행성 종족(Multi-planetary species)이 될 수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우주 개발 경쟁은 더 안전하고 성능 좋은 로켓을 값싸게 만들 수 있느냐, 더 효율적인 궤도는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집중됐다. 하지만 최근 유럽우주국과 NASA를 중심으로 새 화두가 등장했다. 바로 독립적인 달 표준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러스트=이철원
현재 우주 시간은 편의상 로켓이나 탐사선을 보낸 국가의 표준시를 기준으로 한다. 중국 표준시는 한국 표준시보다 1시간 느리고, 프랑스는 8시간 느리다. 1972년 1월1일부터 ‘협정세계시(UTC)’ 사용을 전 세계가 약속했기 때문에 언제 어느 시점에 누구에게 물어봐도 동일한 답이 돌아온다. 그런데 38만4000㎞나 떨어진 달은 표준시가 없다. 달 탐사가 가뭄에 콩 나듯 있던 시절에는 누구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각 나라의 탐사선들이 지구상의 대형 안테나와 각자 교신하는 것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국 탐사선들이 동시에 달 궤도를 돌거나 착륙을 시도하고 기지를 짓게 되면 충돌이나 혼선, 통신두절 같은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경고이다.
지구를 기준으로 한 협정세계시는 지구 밖 시간 흐름과 다르다. 달을 예로 들면 달의 중력은 지구의 6분의 1 정도인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중력이 강한 곳일수록 시간이 더 느리게 흐른다. 과학저널 네이처는 “지구의 24시간을 기준으로 달의 시간은 56마이크로초(1마이크로초=100만분의 1초) 빠르게 흐른다”고 했다. 지구와 같은 시간 기준을 달에 설정하면 계속 빨라지면서 오차가 누적된다는 것이다.
전 세계 과학자들과 도량형 기구들은 지난해 11월부터 달 표준시 제정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아직 어떤 방식으로 달 표준시가 만들어질지는 확실치 않다. 지구의 위성항법장치(GPS)와 같은 측정 시스템과 통신망을 달 궤도에 구축하는 방안, 달의 자연스러운 시간 흐름을 반영한 원자시계를 달 표면 또는 궤도에 설치한 뒤 이를 지구 표준시와 동기화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유럽우주국은 “이 작업은 결국 화성을 비롯한 태양계의 표준시를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고 했다.
구소련의 스푸트니크 1호로 시작된 우주 개발 역사에서 아직 시간대가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왜 과학자들은 고민을 사서 하고 있는 걸까. 사소한 실수나 안이한 태도가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지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1999년 화성에 진입한 NASA의 ‘화성기후탐사선’은 궤도 진입 직후 행방불명됐다. 엔진 추력을 계산한 록히드마틴과 이를 프로그램에 입력한 NASA가 각기 파운드와 kg이라는 다른 단위를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록히드마틴이 건넨 수치를 NASA가 환산 없이 그대로 사용했고, 4200억원이 투입된 탐사 미션은 수포가 됐다. 6.4㎜ 두께의 고무링 불량으로 일어난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사고, 타일 정비 부실이 불러온 컬럼비아호 사고도 막을 수 있었던 인재(人災)였다. 지구 밖은 위험하고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칼 세이건의 말처럼 우리는 이제 우주(코스모스)라는 거대한 바다에 겨우 발가락을 적셨을 뿐이다. 아무리 대비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얘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