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오피니언
[사설]UBS에 인수된 크레디트스위스, 신뢰 무너진 은행의 말로
입력 2023-03-21 00:00업데이트 2023-03-21 08:42
악셀 레만 크레디트스위스(CS) 이사회 의장(왼쪽)과 콜름 켈러허 UBS 이사회 의장이 19일(현지 시간) 베른에서 기자 회견을 갖고 악수하고 있다. 이날 두 은행과 스위스 정부는 UBS가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CS를 30억 스위스프랑에 인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베른=AP 뉴시스
글로벌 9대 투자은행(IB) 중 하나인 크레디트스위스(CS)가 파산설이 본격화한 지 일주일도 안 돼 스위스 1위 은행 UBS에 전격 인수됐다. 세계 금융시장에 ‘블랙 먼데이’ 충격이 닥칠 것을 우려한 스위스 정부가 주말을 넘기지 않고 긴급 조치를 취한 결과다. 일단 CS발 도미노 은행 파산 위기는 막았지만 국제 금융계에는 여전히 불안감이 감돌고 있다.
UBS는 그제 30억 스위스프랑(약 4조2300억 원)에 CS를 인수합병하는 계약을 맺었다. CS가 헐값에 인수되면서 CS가 발행한 주식, 채권을 보유한 글로벌 투자자들은 큰 손해를 보게 됐다. 한국의 국민연금도 CS 채권을 1359억 원어치 보유하고 있어 손실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국에선 JP모건 등 11개 대형 은행이 실리콘밸리은행(SVB)에 이어 뱅크런 위기에 처한 소형 은행에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는데도 은행 연쇄 파산 우려가 계속되고 있다.
CS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잘 이겨낸 은행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공격적으로 위험자산 투자를 늘린 게 화근이 됐다. 재작년 영국 그린실캐피털, 미국 아케고스캐피털 파산으로 10조 원 가까운 투자 손실을 봤다. 해외에서는 고객의 세금 탈루 등 각종 범죄에도 연루돼 막대한 벌금을 내야 했다. 적자가 계속되면서 작년 말부터 150조 원이 넘는 고객 자금이 빠져나갔고, 결국 미국 SVB 사태의 불똥을 맞아 당국의 압박으로 인한 강제 인수로 마침표를 찍었다.
이번 위기는 금융회사의 규모, 예전의 성가에 관계없이 고객의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 자금이 한꺼번에 이탈하면서 발생하는 게 특징이다. 벤처기업들이 맡긴 예금을 위험회피 수단 없이 장기국채에 집중 투자했다가 손해를 본 미국 16위 SVB는 36시간 만에 파산했다. 취약한 내부 통제에 대한 고객들의 불안을 털어내지 못한 CS는 167년의 역사를 마감해야 했다.
금융당국은 이런 점을 고려해 국내 금융권의 실태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해외 금융권보다 지나치게 높은 변동금리 대출을 유지하는 은행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큰돈이 물린 상호금융 등 ‘약한 고리’를 철저히 점검해 신뢰의 위기가 번지는 걸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