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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니아 연대기(Zenonia Chronicle)
Episode 1. 게임속 세계(Games in the world)
Chapter 1. 처음의 시작(The Start of the First)
1. 데드 폴(Death Fall)
교복을 입고 신발의 앞부분을 바닥에 툭툭 쳐서 발을 편하게 만든 한 소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우며 문을 열고는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오빠! 다녀올게!~”
그녀의 밝은 톤의 목소리에 집안에서 평범한 검은 색의 긴 바지와 반팔을 입고 있는 소년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다녀와”
그의 말에 빙긋 웃은 소녀는 문을 닫고는 학교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희진이가 문을 닫고 나가자 한은 입가에 지은 미소를 없애며 흔들고 있던 손을 내렸다. 그러고는 굳은 표정을 하고서는 자신의 방이 있는 이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반드시 깨고야 말겠어!’
한은 계단을 올라가면서 열정에 불타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데드 폴(Dead Fall) 던전을 깨기 위해 한 달이라는 시간동안 죽도록 노력했기 때문이다.
단순한 노가다였다면 오히려 쉬웠을 테지만 그 지역자체가 미로형식이며 맵(Map) 자체가 회전을 하고 또한 함정이 많기 때문에 그 패턴을 파악하느라 더욱 고생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로서 종결! 그 패턴은 어젯밤 완벽하게 파악했다!’
한은 잠도 자지 않고 지난 한달 간 노력했던 자신에게 눈물겨운 칭찬을 보내며 고개를 끄덕이며 굳게 닫혀 있는 자신의 방문을 거칠게 열었다.
쾅!
방안에는 창문 바로 아래에 놓여 있는 침대와 바로 옆에 있는 책상과 컴퓨터가 있었고, 방 한구석에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만한 커다란 달걀형태의 기계가 있었다.
한은 그 달걀형태의 캡슐을 바라보았다.
그 캡슐의 정식 명칭은 [ New World Connection ]. 일명 새로운 세계의 연결점으로 꽤나 거창한 수식이 붙어 있지만 그러한 수식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로 뉴월드커넥션은 실제와 같은 그래픽을 자랑하는 최초의 가상현실 게임, 제노니아 온라인에 접속할 수 있는 유일한 기기였다.
“그러고 보니 이 게임을 한지 벌써 3년이구나....”
제노니아 온라인이 출시된 것은 한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그 당시 아직 살아계셨던 부모님의 병원비와 생활비를 벌기위해 학교도 그만두고 미친 듯이 막 노동과 알바를 뛰었던 시기이기도 하였다.
그렇게 힘든 생활을 하던 중 어느 날, 게임 회사 헤븐즈는 제노니아 온라인이라는 최초의 가상현실 게임을 만들어 캡슐을 발매하였다.
한은 게임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다는 자신감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생각으로 1천만원이 넘은 캡슐을 구매 후 돈을 벌기위해 PK도 가리지 않으며 게임을 했다.
처음 2개월은 힘들었으나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자 약 5개월 쯤 부터는 수입이 제법 많아지더니 3년이 지난 현재는 한 달에 3천만원이 넘은 돈을 벌고 있었다.
‘뭐, 지금은 정원이 딸린 집도 사고, 희진이 대학 등록금과 결혼비용, 희진의 명의로 된 아파트도 있으니 굳이 게임을 할 필요는 없지만’
게임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끈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 게임이라는 것이 VRMMORPG라면 더욱 그러했다.
새삼스럽게 떠오른 사실에 고개를 끄덕인 한은 캡슐의 Open버튼을 눌렀다.
우웅!
그러자 반투명한 유리면이 위로 올라가며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한은 내부로 들어가 그곳에 있는 푹신한 의자에 몸을 기댄 후 캡슐 안에 있는 연결 플러그 모자를 썼다.
툭툭!
착용감이 좋은 모자를 두드려 보던 한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힘차게 외쳤다.
“Game Start!”
화아악!
밝은 빛이 눈앞을 덮치자 한은 눈을 감았다.
‘반드시 클리어 하겠어!’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지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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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기운만이 가득한 거대한 통로, 주위에는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운 생물체가 기분 나쁘게 생긴 검은 색의 피를 뚝뚝 흘리면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곳의 이름은 데드 폴(Death Fall), 말 그대로 죽음의 함정이란 의미로 이곳에 빠지면 벗어나기 위해서 매우 까다로운 패턴을 풀어야만 했다.
화아악!
어둠만이 가득했던 곳에 갑자기 밝은 빛이 퍼졌다.
잠시 후 빛이 잠잠해 지자 그곳에는 검은색 코트를 입고 있는 한 사람이 서있었는데, 그의 주위에는 밝게 빛나는 둥근 돌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는 검은 색의 긴 머리가 귀를 덮을 정도로 길게 자라 있었고 얼굴은 아직 성인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어린, 청소년의 티가 나고 있었다.
“크으으....”
그의 주변에는 혐오스럽게 생긴 검은 물체들이 밝은 빛을 보고 모여들고 있었다.
방금 막 로그인한 한, 아니 세인트가 자신의 주위에서 기분 나쁜 물을 뚝뚝 흘리는 다크 스펙터들의 모습에 인상을 와락 구기며 말했다.
“어째 이놈의 몬스터들은 한 달 넘게 봐도 적응이 안 되냐”
오랜 시간 봐왔지만, 정말 혐오스러운 저 모습은 절로 고개를 젓게 만들었다.
세인트는 그들을 빨리 없애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웨폰(Weapon) 발현”
파지직!
스파크가 일어나며 아무것도 없던 양손에서 손가락을 따라 긴 손톱같이 생긴 것이 길게 생겨나며 안내창이 떠올랐다.
-제노사이드(無)를 발현합니다.
공격력이 1180 증가합니다.
체력이 13,000 증가합니다.
힘 스탯이 180 증가합니다.
민첩 스탯이 270 증가합니다.
체력 스탯이 90 증가합니다.
특수 패시브 스킬 광폭이 발동합니다.
특수 패시브 스킬 흡혈이 발동합니다.
학살자 칭호의 효과가 두 배로 증가합니다.
세트 아이템 ‘학살자’를 80% 착용하였습니다.
-세트 아이템 효과
공격력이 500 증가합니다.
방어력이 780 증가합니다.
마법 저항이 820 증가합니다.
체력이 2,000 증가합니다.
모든 스탯이 120 증가합니다.
물리 공격 피해량의 10%를 흡수합니다.
마법 공격 피해량의 18%를 흡수합니다.
특수 액티브 스킬 가디언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특수 액티브 스킬 폭주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특수 패시브 스킬 데스 오라가 발동합니다.
데스 오라로 인하여 모든 스탯이 10% 증가합니다.
데스 오라로 인하여 명성이 1,000 감소합니다.
데스 오라로 인하여 어둠 계열의 면역성이 30% 증가합니다.
그냥 사기적인 아이템이었다. 항상 볼 때 마다 생각하는 것이지만 이 게임은 밸런스 붕괴가 참 쉽다.
세인트는 그런 생각에 피식 웃고는 자신의 손가락을 덮고 있는 대략 30cm정도의 은빛색의 제노사이드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기분 나쁜 침을 뚝뚝 흘리는 다크 스펙터를 향해 손을 가볍게 휘둘렀다.
사아악!
서걱!
무언가 베이는 섬뜩한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공격 범위 내에 있던 다크 스펙터들의 몸이 여러 갈래로 조각났다.
그런데 조각난 다크 스펙터의 몸들이 갑자기 부풀며 커지더니 펑 소리와 함께 터지며 각종 몬스터가 생겨났다. 그 몬스터들은 저마다 눈이 없는 기괴한 모습에 온몸이 검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던 세인트는 오른쪽 눈빛이 붉게 물들더니 그의 분위기가 변하였다.
“크워어어...”
막 몬스터 들이 포효를 내지를 때었다. 그들의 몸에 가느다란 선이 생기더니 그 선을 따라 몬스터들의 몸이 양분되었다.
촤락!
세인트는 자신의 클로에 묻어있는 피를 털어내고는 어느새 주위를 가득 메운 다크 스펙터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시작할까?”
파앙!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앞으로 박차고 나간 세인트는 눈앞에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세인트는 붉었던 오른쪽 눈동자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세인트는 인상을 와락 찌푸린 상태로 마음속의 누군가와 열렬히 말싸움을 하고 있었다.
-이봐 아르덴! 누가 마음대로 내 몸 쓰라고 했어!!
아르덴은 귀찮음이 팍팍 묻어나는 말투로 건성건성 답했다.
-이곳에 들어온 지도 벌써 한 달인데 나를 부르기 않기에 나를 잊었나, 해서 그냥 한번 해봤어
아르덴의 말투에 세인트는 황당함을 느끼며 말했다.
-....분명 이곳 몬스터들 기분 나쁘다고 네가 ‘나 찾지 마’ 이러지 않았냐?
-....
세인트는 아르덴에게서 아무런 대답도 없자 한숨을 내쉬었다.
저 녀석과 만난 지 벌써 2년 가까이 되었지만 정말 저 녀석의 두뇌구조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세인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뭐 어쩔 수 없나?”
“크워어어!”
후웅!
괴성을 지르며 자신에게 거대한 몽둥이를 휘두르는 트롤의 공격을 간단한 도약만으로 피한 세인트는 터널을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한동안 그렇게 계속해서 터널을 통과하던 세인트는 자그마한 무언가가 어둠속에서 반짝이며 빠른 속도로 동굴안쪽으로 들어가는 것을 발견하였다.
‘찾았다!’
세인트는 평소보다 일찍 열쇠를 찾은 것에 속으로 환호성을 지으며 달리는 속도를 더욱 높였다.
“크워어!”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바로 앞에서 거대한 몽둥이를 들고 포효를 내지르는 싸이클롭스의 모습에 세인트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너를 만난 게 반가워야 하는데 지금은 조금 짜증나네.”
타악!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달리는 속도 그대로 높게 점프를 한 세인트는 자신에게 휘둘려지는 몽둥이를 강하게 발로 찼다.
콰앙!
거대한 몽둥이가 굉음을 내며 박살났다. 몽둥이를 가볍게 박살낸 세인트는 벌써 저 멀리까지 간 열쇠에 작게 혀를 차고는 손을 휘둘러 놀란 눈빛이 되어있는 싸이클롭스의 몸을 조각내었다.
후두둑!
싸이클롭스의 조각난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닥을 축축하게 적시며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다크 싸이클롭스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가 10,750 증가합니다.
세인트는 메세지창을 바라보며 갑자기 미동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었다.
몬스터들은 인간이 갑자기 멈추자 의아해 했으나 그것도 잠시, 이내 저마다 괴성을 지르며 세인트에게로 돌진했다.
“크워어!”
그중 제일 먼저 세인트 앞에 당도한 호랑이 같이 생긴 검은색의 레드리온은 세인트를 집어 삼킬 듯이 거대한 입을 크게 벌렸다.
세인트는 거의 먹힐 직전이 돼서야 살짝 점프 했다.
후웅!
가벼운 도약만으로 거의 20m가까이 점프한 세인트는 아래쪽에서 자신을 바라보며 괴성을 지르는 몬스터에게 눈길한번 주지 않은 채 검은 빛으로 물들어 있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그극!
천장은 기괴한 소음을 내며 미약하게 이동하고 있었다.
세인트는 그 모습에 조금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걸 놓친 게 조금 아쉽지만, 뭐 어쩔 수 없나?”
콰앙!
세인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천장에서 굉음이 울려 퍼지며 거대한 파편들이 아래를 향해 낙하하였고 그 파편들 사이로 지렁이 같이 생긴 다크 드레이크 웜이 그 거대한 입을 벌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세인트는 떨어져오는 돌덩이들과 다크 드레이크 웜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플루시드 윙 발현”
화악!
반투명한 1미터 정도의 긴 날개가 그의 등에 생겨나며 예의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플루시드 윙을 발현합니다.
이동속도가 20% 증가합니다.
민첩성이 10% 증가합니다.
체력이 1,300 증가합니다.
안내 창을 보던 세인트는 날개를 한번 흔들어 보고는 중얼거렸다.
“에어 스페이스 컨프레스(Air Space Compress)”
우우웅!
세인트의 발아래 어떠한 푸른빛이 맺히고 그와 동시에 세인트의 눈동자에 렌즈 비슷한 것이 떠올랐다. 렌즈 구석에는 조그마한 글씨가 빛나고 있었다.
-컨프레스빌리티 50%.....60%.....70%.....
그러한 글씨를 바라보던 세인트는 근처까지 다가온 다크 드레이크 웜의 모습에 컨프레스 속도를 더욱 높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다크 드레이크 웜은 맹렬히 세인트에게로 내려오고 있었다.
“캬아악!”
바로 눈앞까지 온 다크 드레이크 웜의 거대한 입이 세인트의 몸을 집어삼키려는 찰나의 순간, 세인트는 그 입을 바라보며 외쳤다.
“클리어(Clear)”
파아앙!
엄청난 속도로 나아간 세인트는 다크 드레이크 웜의 몸을 그대로 뚫고 지나갔다.
후우웅!
한동안 그렇게 낙하는 파편들과 가끔 떨어지는 몬스터들을 죽이며 위로 상승하던 세인트는 정신없이 떠오르는 메세지창을 바라보았다.
-다크 드레이크 웜을 처치했습니다. 경험치가 22,090 증가합니다.
-다크 쉐도우 벨을 처치했습니다. 경험치가 4,730 증가합니다.
-다크 드레이크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가 3,310 증가합니다.
-다크 레드리온을 처치했습니다. 경험치.......
“안내 창, 상시 오프(Off)”
세인트는 갑자기 안내 창을 끄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곳은 아까 아래쪽에 있었던 곳과 똑같이 생긴 터널이었는데 그 터널주위에는 어둠속에 각양각색의 거대한 눈동자를 빛내고 있는 몬스터들이 있었다.
“크르르!”
그 몬스터들은 아까 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대하였는데 한눈에 봐도 상급인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험악하게 생긴 몬스터들이 침을 흘리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세인트는 자신을 바라보며 침을 질질 흘리는 몬스터들의 모습에 또 다시 오른쪽 눈동자가 붉어진 얼굴로 씨익 웃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가볼까?”
파앙!
몬스터들을 향해 돌진한 세인트는 거대한 도끼를 들고 있는 다크 미노타우로스를 향해 제노사이드를 휘둘렀다.
서걱!
무언가 절단되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다크 미노타우르스의 몸이 깨끗하게 양분 되었다.
쿵!
거대한 다크 미노타우르스의 시체가 굉음을 내며 바닥에 떨어지자 주위의 몬스터들은 겁을 먹기는커녕 더욱 눈빛을 빛내며 사납게 세인트를 향해 돌진했다.
세인트는 사방에서 돌진해오는 몬스터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음을 느끼자 작게 혀를 차고는 공중으로 높게 올라갔다.
후웅!
아슬아슬하게 먹이를 놓친 몬스터들은 공중으로 올라간 세인트를 향해 재차 달려들었다.
“캬아아!”
세인트는 괴성을 지르는 몬스터들을 향해 손바닥을 내밀며 외쳤다.
“에어 스페이스 컨프레스”
우우웅!
몬스터들은 갑작스럽게 무언가 위에서 누르는 느낌에 버텨보려고 했으나 점점 거세지는 힘에 결국 땅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쿵! 쿵!
거대한 소음을 내며 땅바닥으로 추락한 몬스터들은 약간씩 꿈틀거리기만 할뿐 괴성조차 지르지 못하고 있었다.
세인트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고는 씨익 웃으며 외쳤다.
“블래스트(Blast)”
파아앙!
무언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있던 수많은 몬스터들이 폭발에 몸이 터져나갔다.
휘익!
세인트는 갑자기 자신에게로 몬스터 시체의 파편이 날아오자 인상을 와락 찌푸리고는 몸을 옆으로 돌렸다.
화악!
“....!”
몬스터 시체의 파편인줄 알았던 조각이 갑자기 커져 자신의 팔을 붙잡자 놀란 세인트는 그것을 잡고 뜯어냈다.
후드득!
기괴한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나간 그것은 흡혈 몬스터의 일종인 블러드 웜이었다. 졸지에 몬스터에게 헌혈한 세인트는 기분이 하양곡선을 그리는 것을 느끼며 제노사이드를 휘둘렀다.
사악!
서걱!
깨끗하게 절단된 블러드 웜은 아래를 향해 추락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세인트는 갑자기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그의 눈동자는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야 이 자식아!!!
세인트의 화난 음성에 아르덴은 짜증을 내며 답했다.
-아 또 왜?!
세인트는 오히려 자신에게 짜증을 내는 아르덴의 말투에 인상을 더욱 구기며 말했다.
-그걸 지금 몰라서....
아르덴과의 전쟁 아닌 전쟁은 세인트가 말을 하다가 갑작스럽게 고개를 뒤로 젖히자 싱겁게 끝이 났다.
서걱!
세인트의 바로 앞부분이 무언가 절단되는 소름 돋는 소리와 함께 세로로 쩍하고 갈라졌다.
세인트는 아슬아슬하게 피한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러한 공격을 한 대상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한 청년이 거대한 대검을 들고 서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지겹다는 표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그는 온몸이 몬스터의 피로 점칠 된 세인트를 바라보며 말했다.
“또 너냐?”
그는 세인트를 아는 듯 했다. 세인트는 짜증이 팍팍 묻어나는 그의 말투에도 웃으며 답했다.
“그럼 여기 올 수 있는 사람이 나 말고 또 누가 있겠냐?”
세인트의 말에 가만히 생각해보던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뭐 그렇긴 하다만, 어차피 네 실력으로는 결과가 모두 같을 텐데 왜 자꾸 오는 거야?”
“그냥 이 거.지.같.은 던전을 깨고 싶거든”
파직!
유난히 ‘거지같은’을 강조한 세인트의 말에 카르벤은 이마에 혈관이 돌출되었다.
이 레어의 가디언 중 하나인 카르벤은 이곳의 레어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성스러운 레어를 더러운 던전이라 부르며 더구나 거.지.같.은 이라는 상스러운 언어까지 사용하다니, 원래는 귀찮아서 그냥 대충 쫓아내기만 하려고 했으나 마음이 바뀌었다.
카르벤은 예의 그 거대한 대검을 세인트에게 겨누고는 이를 갈며 말했다.
“그렇게 말한 대가는 네놈 목숨이다”
파앙!
빠른 속도로 세인트에게로 쏘아져 나간 카르벤은 일격에 무너트릴 생각으로 온 힘을 모아 세인트에게로 강하게 휘둘렀다.
후웅!
세인트는 카르벤의 평소보다 빠른 속도의 공격에 급히 몸을 틀었다.
파츳!
하지만 완벽하게 피한 것은 아닌 듯 얼굴에 작은 생채기가 나며 피가 흘러내렸다.
세인트와 카르벤은 서로에게서 물러났다.
카르벤은 자신의 일격을 가볍게 피한 세인트의 모습에 입술을 깨물었다.
‘이 자식, 이렇게 민첩했던가?’
카르벤이 평소에 보던 세인트란 놈은 항상 자신과 비슷한 거대한 대검을 들고 속도보단 파괴를 중심으로 싸우던 녀석 이여서 쾌검을 위주로 하는 자신의 공격에 번 번히 당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방금 전 그 녀석은 자신의 쾌검을 가볍게 피했다.
그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 세인트를 자세히 살피던 카르벤은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였다.
‘그러고 보니, 저 녀석 대검이 아니라 클로 형식의 무기를 쓰고 있잖아?, 왜지?’
평소에 쓰던 무기를 갑자기 클로로 바꾼 세인트의 의중을 생각하던 카르벤은 뭔가 떠올라 웃기 시작했다.
“큭!, 하하하하!”
“.....?”
미친 듯이 웃어대는 카르벤의 모습에 세인트의 눈빛에 의아함이 감돌았다.
카르벤은 고개를 갸웃거리는 세인트의 모습에 한참을 더 웃다가 이내 진정된 듯 웃음으로 인해 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무기를 가볍게 바꾸면 나를 이길 거라 생각한 거야? 큭! 정말 재미있는 녀석이야”
“아하! 그래서 웃은 거였어?”
그제야 이해한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세인트의 모습에 카르벤은 피식 웃었다.
정말 멍청한 녀석이다. 항상 실패하는 것에 계속 도전할 때부터 알아보긴 했지만, 이정도 일 줄을 몰랐다.
카르벤은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띠우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세인트에게 말했다.
“오늘은 웃겨줬으니 특별히 깔끔히 죽여줄게”
선심 쓰는 것 같이 말하는 카르벤의 모습에 세인트는 미소를 더욱 짙게 하며 입을 열었다.
“네가 언제 나를 죽인 적이 있던가?, 내 기억으로는 한 번도 없는 것 같던데?”
비아냥거리는 세인트의 질문에도 카르벤은 어깨를 넓게 피며 한손을 허리에 척 올려놓고는 당당하게 답했다.
“그건 내가 살려줬기 때문이지, 결코 네 녀석 힘으로 죽지 않은 게 아니라고”
자만심 가득한 말에 세인트는 입가에 걸려있던 미소가 싹 사라짐과 동시에 오른쪽의 눈동자가 또다시 붉은 빛을 발했다.
그러고는 감정이 담기지 않은 눈빛으로 카르벤을 바라보며 온몸의 살기를 내뿜었다.
사아아!
흠칫!
소름 돋는 살기에 카르벤은 약간 몸을 떨었다.
그러고는 살기의 주인을 찾아 고개를 두리번 거렸으나 이곳에는 세인트와 자신뿐이라는 것을 깨닫자 이내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이런 약한 녀석한테 찰나이지만 두려움을 느끼다니,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변한 세인트의 태도에 불안한 느낌이 들기는 하였다.
카르벤은 자신의 손에 쥔 대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물론 조금 자존심이 상하기는 하지만 말이야’
카르벤은 상한 자존심은 세인트를 죽이면 복구될 것이라 생각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세인트를 마주 바라보았다.
잠시 동안 그렇게 이내 서로를 바라보던 중 세인트가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막아봐”
“무슨 소...”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말하던 카르벤은 그 말을 끝마치지 못하였다. 어느새 자신의 눈동자 바로 앞에 핏빛으로 물들은 클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카르벤은 긴장으로 인해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어...어떻게?”
카르벤의 말투에서 느껴지는 놀란 기운에 세인트는 무표정을 지우고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네놈이 아까 그랬지? 내가 살려줬기 때문이라고, 뭐, 그거랑 비슷한 이유라 보면 되, 원래는 좀 더 놀려고 했는데 이제 시간이 별로 없어서 말이야, 그럼 잘 가라”
“자..잠..”
서걱!
말이 끝남과 동시에 몸이 세로로 길게 절단된 카르벤의 눈동자에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을 담고 있었다.
세인트는 이미 죽은 카르벤을 향해 감정 없는 말투로 말했다.
“평소보다 8할 정도의 실력을 숨기는 것은 기본중의 기본 아닌가?”
그럼 여태까지 카르벤이 상대했던 것은 평소의 20%의 힘을 사용한 세인트라는 소리였다. 결국 카르벤은 한 달 동안 세인트의 손바닥위에서 놀아났던 것이었다.
세인트는 조각난 카르벤의 시체를 뒤로 하고는 왠지 데자뷰 같은 상황이지만 또 다시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외쳤다.
-제발 그만 좀 사용하라고!!!
-아 귀 아파, 알았어. 이제 사용 안할게
세인트는 아르덴이 반가운 소리를 하자 확인을 하듯 연거푸 물어봤다.
-진짜지? 정말이지? 사실이지? 확실하지?
-....넌 사람 말 못 믿냐?
-헹, 네가 사람이냐? 도플갱어지!
세인트의 도플갱어란 말에 아르덴은 무슨 일인지 순순히 수긍하였다.
-알았어, 이제 네 몸 네가 부를 때만 사용할게
-내가 내몸쓰라고 부를 일 없으니깐 그렇게 알어!
매몰차게 말한 세인트는 몸을 남이 조종하는 이상한 느낌이 아직도 남아있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하으! 정말 빨리 도플갱어 프리센스를 마스터 하던지 해야지’
세인트는 새로운 목표를 추가시키고는 이내 생각에 잠겼다.
‘싸이클롭스 지점에서 상공으로 무너진 지점까지인 3층 돌파 후 32분 뒤에 왼쪽 구멍이 열린다, 현재 32분정도 되었으니 이제 열릴 때가 됐겠지?’
그그극!
생각이 끝남과 동시에 터널 벽 한쪽이 예의 그 이상한 소리와 함께 열리자 빙긋 미소를 지은 세인트는 새로 생긴 터널로 들어갔다.
그그극!
그러자 그곳은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새로 생긴 터널이 닫혔다. 넓은 동굴에는 몬스터들과 카르벤의 시체만이 아직 데이터화 되어 사라지지 않고 비릿한 혈향을 내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