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이런 자리에서 책 읽으면 안 돼!”
선배가 내 책을 빼앗아 버렸다. 대학 선후배간에 만남의 시간을 갖고 흥겹게 노래 부르며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서 청승맞게 이게 무슨 짓이냐는 거였다. 신입생인 우리를 환영하는 자리였지만 얼굴 선하게 생긴 선배에게 “저요, 막걸리 못 마시니까 곁에 꼭 붙어서 홍보 좀 해 줘요” 하고 신신당부했는데, 알고 보니 내가 제대로 임자를 만난 것이었다.
생애 처음으로 막걸리와 맥주를 마셨다. 거의 그 선배가 들이부은 술이었다. 그날 이후, 그는 자기가 속한 문학동아리를 광고하며 반강제적으로 입회하도록 만들었다. 그는 회원 가운데 가장 열심히 작품을 썼고, 나와 만나던 그해에 시인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지식도 해박하고 삶의 깊이가 있어서 그 선배와 잠시라도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날은 왠지 허전했다. 그는 항상 자신의 자리를 알았다. 논쟁을 하다가도 상대방이 억지를 부리면 조용히 듣고 있기만 했다. 남의 책을 복사해 쓰는 일 없이 그 비싼 전공서적을 모두 사서 읽었다. 그는 참으로 열심히 인생을 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바쁘더라도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늘 최선을 다했다.
2학년이 되면서 나는 틀에 박힌 삶이 싫어 이카루스의 날개처럼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고 싶었다.
며칠 동안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고, 색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나기도 했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참뜻을 느끼기에는 내가 너무 젊었던 것 같다. 그러나 어떤 자리에서건 일에 몰두하는 습관을 들이게 된 건 모두 그를 만난 때문이었다.
“밥풀이 입가에 묻으면 웃지 않지만, 콧등에 묻으면 웃지?”
싱긋 웃으면서 한 마디씩 던지는 선배를 생각하면 이런 시구가 생각난다.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그 선배를 만난 지도 상당한 세월이 흘렀다. 그는 교직생활을 하며 작품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칠 년 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그는 대뜸 첫마디로 다음과 같이 물었다.
“자네, 지금 어디에 있나?”
그렇다. 나는 지금 어느 자리에 있을까! 다른 사람이라면 흘려들었을 그 말이 정말 뼈 아프게 나를
돌아보게 했다.
윤영기 / 광주 북구 동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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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뒤늦게 읽기시작하였지만 봉서방님의 귀한 글올리심은 저에게 많은 힘을 주시고 있습니다."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한복음 14:18"... 감사합니다. 재미있는 농담에 저의커피맛이 최고^^..거듭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