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의 일이다.
초저녁 강총과 신구회장인 여회장과 이회장이 한 자리에 모여 술을 한 잔 하는 자리에서
석좌교수란 말이 나와서 교수한테 물어보면 잘 알 것이라고 전화를 걸어왔다.
혼탁한 사회에선 교수라는 직함이 그런대로 먹혀 들어가는지 다들 교수라는 타이틀이 들어가는 자리을 얻어려고 기를 쓰는 모양이다.
석좌교수,초빙교수,겸임교수,외래교수,명예교수,연구전담교수,강의 전담교수,실습전담교수 등등 교수 타이틀도 천지삐깔이다.
대학에 출입하는 시강강사도 부를 때는 다 교수라고 부른다.
하지만 대학에서는 전임강사이상의 직급을 교수라고 한다.
전임강사가 (정)교수가 되려면 강의와 연구에서 일정한 점수를 특해야 진급이 된다.
보통 전강에서 조교까지 2년, 조교수에서 부교수까지 3년, 부교수에서 정교수까지 4년 정도 소요된다.
정교수가 되면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정년까지 보장되며,정년퇴직후 재직기간이 보통 15년이상 되면 명예교수로 추천된다.
명예교수규정은 대학에 따라 다른데 최소 15년이고 보통은 20년 이상 재직한 교수라야 학과나 학부에서 추천되어 단과대학에서 심의한다.
명예교수가 특별한 이득이 따라 붙는 것은 아니고 그야말로 명예에 불과하다.
내가 있던 대학에서도 처음에는 강의 수당을 시간강사의 두 배정도를 지급했다.
그렇게 되고 보니 어떤 명예교수는 강의시간이 많아서 퇴직 전보다 월급이 더 많아지는 기현상도 발생했다.
그 후 강의시간을 주당 3시간으로 제한했고 기간도 퇴임후 3년간이었다. 등록금동결후 학교재정이 나빠지자 명예교수 강의수당도
일반 시간강사수준으로 환원되고 말았다.
위에서 말한 석좌교수는 대학행정상의 정상직급은 아니고 특정 연구소 소속의 교수로서 사회적으로 유명한 분을 초빙한 경우이고
초빙교수는 장.차관이나 국장 출신의 고위공직자를 대학에 일정기간 채용하면 정부에서 월급을 주는 그런 자리이다.
그리고 겸임교수는 직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대학에서 실무가 필요한 학생들에게 일정기간 강의를 맡기는 직책이다. 겸임교수 보수는 본래 직장이 있다고 해서 시간강사보다도 훨씬 낮다.
외래교수는 병원에 가게 되면 벽에 많이 걸려 있는 임명장으로 일부 의사들이 특정한 분야에 대해 의과대학에 나가서 강의를 하는
경우를 말한다.
자유당시절 어떤 사기꾼이 자신이 이승만의 아들이라고 지자체장 또는 경찰서장들을 속여서 돈을 뜯다가 검거된 경우도 있었다.
권력과 사기꾼이 판을 치던 세상이었다.
얼마전 이 아무개 점 서울대교수가 명예교수도 아니면서 자기 소개에 서울대 명예교수라고 떠들고 다니다가 망신을 당했다.
그는 "위안부 성노예는 없었다," "일제가 쌀을 수탈해 간 것이 아니라 쌀을 수출한 것이다"라는 등 식민지 근대화를 주장하는 뉴라이트의 대표적 인물이다.
교수라면 인격적으로나 학문적으로 높은 경지에 도달한 사람으로서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는 타이틀이다.
하지만 그는 도요타의 연구비를 받아먹고 잘못된 시각으로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그가 생존하고 있는 위안부출신의 할머니들의 한맺힌 절규를 한 번이라도 들어 보았는가?
만약 자신의 가족중에 그런 사람이 있었더라면, 어찌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되묻고 싶다.
그는 지난 8월6일 유튜브 채널 이승만TV에서 ‘조국 교수에게 묻는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통해 “평생 비정치적으로
연구실을 지켜온 사람을 두고 ‘부역·매국·친일파’라고 매도했다”며 “나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내무장관으로 김구 선생과 함께 임시정부를 사실상 끝까지 지켜온 차리석 선생은 저의 외증조부가 된다”라고 했다.
또 “저는 어릴 때부터 독립운동가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자라왔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차리석 선생이 외증조부라는 그의 발언은 시사저널e 취재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차리석 선생의 외아들인 차영조 선생에 따르면 이 명예교수는 차리석 선생의 직계 후손이 아닌 선생의
큰형인 원석씨의 외증손자다. 원석씨는 아들이 없었고, 그의 딸의 딸의 아들이 이 아무개라는 게 차영조 선생의 설명이다.
‘외증조부’가 아니라 ‘외외증종조부’가 되는 것이다.
명예교수는 명예를 먹고 산다. 명예교수도 아닌 것이 명예교수를 팔고 있으니 명예에 먹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