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다섯번째 가르침이 산상수훈이다.
산은 하나님 만나는 곳이자 하나님의 권위가 있는 곳이다.
마태는 예수님을 제 2의 모세 또는 더 크신 분으로 묘사한다.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복의 개념을 바꾸고, 복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가르치셨다.
사람들의 상황들을 보여주시는데 8가지 상황에 처한 자들에게 복이 있다고 선언하신다.
애통이란, 패테오, 가장 강한 슬픔을 표현하는 것으로 삶이 무너지거나 가슴이 찢어지는 상태를 의미한다.
애통하는 자가 복되다!
애통은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첫째, 상실에서 오는 슬픔은 자신의 건강을 잃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등,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둘째, 죄에 대한 슬픔은 하나님 앞에 어찌할 수 없이 무능하고 무력한 자신을 내던지게 만든다.
[롬7: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롬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애통하는 자에게 위로가 있다.
그 어근이 파라클레토스, 우리 곁에 오셔서 돕는 분, 바로 성령님이시다.
인간적인 위로가 아니라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위로는 세상이 주는 위로와 달라서 우리 영혼의 복이 된다.
[계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그 날에 주님께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주님 강림하시는 날, 모든 것이 회복될 것이다.
애통하는 사람들을 가만 보면
사람들이 슬픔 속에서도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것들로 덮으려고 한다.
아무 생각없이 다른 일에 몰두하거나 먹는 일로 대체한다던가 또는 하나님을 원망하는데
바로 이것이 죄성이다.
슬픔을 빨리 정리하는 자가 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슬픔 속에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
하나님은 슬픔이 끝난 후에 오시는 분이 아니라
슬픔 속에 찾아오신다.
[시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계시록21장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주시는 날이 올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를 붙들고 지나가신다는 신학적 용어가 성도의 견인이다.
[요11:33-35]
33 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34 가라사대 그를 어디 두었느냐 가로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나사로가 죽어 마리아가 우는 것을 보시고 주님께서도 눈물을 흘리셨다.
주님은 십자가 고난 앞에서도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머물러 계셨다.
[시22: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시22:24]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 얼굴을 저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부르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시22:31] 와서 그 공의를 장차 날 백성에게 전함이여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할 것이로다
하나님은 슬퍼하는 사람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공의를 행하시는 분이시다.
왜 애통하는자가 복이 있는가?
하나님께서 떠나지 않으시고 함께 하셔서 도와주시니 복이 있다.
[사43: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애통함이 있을 때 그대로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가는 자가 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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