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인 동시에 정서적인 존재다. 정서는 이성이 판단한 것을 실행하도록
하는 힘을 제공한다. 이러한 이유로 시는 리더에게 조직을 통솔하고 조직원과 소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역사는 개별적인 것을 말하고 시는 보편적인 것을 말한다. 그렇기에 시대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은 역사가 아닌
시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다. 여기서 시는 단지 시뿐 아니라 세분되지 않은 문학작품을 포괄한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인 동시에 정서적인 존재다. 정서는 이성이 판단한 것을 실행하도록 하는 힘을 제공한다. 동시대를 살아가지만 다른 맥락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과 어떻게 다르게 살고 있는지, 왜 다르게 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성찰과 포용’을 하게 해준다. 인간의 삶에
대한 복합적인 시각의 제공과 이해, 그것이 시와 문학의 가장 큰 효용일 것이다. 공직자, 리더들일수록 ‘문학작품을 읽는 것’은 인간이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공공기관의 기관장을 지낸 H씨는 “세계 문학 고전을 섭렵하니 인간이 절로 이해되더라. 보고를 받으러 들어온 직원들의 눈썹
찡그림 하나만 보고서도 그 심경이 파악되더라”며 “문학을 통한 사람의 이해가 경영과 무관치 않다. 아니 직결된다”고 지적한다.
공자는 리더십에서 문학의 효용, 문학을 통한 ‘인간의 이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인식한 리더였다. 천하를 주유하다 뜻을 이루지 못한
공자가 나이 68세에 고향에 돌아와 당시의 ‘구비문학’인 <시경> 편집에 매진한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子曰 詩三百 一言以蔽之 曰思無邪(자왈 시삼백 일언이폐지 왈사무사-위정편-)
공자는 <시경> 300편의 시를 ‘생각에 사악함이 없는 것’이라고 한마디로 압축한다. 즉, 순수하다고 말하고 있다. 공자는
기원전 10세기 무렵부터 구전되던 민간가요 3000편을 현재 남아 있는 305편으로 줄여 <시경>을 엮었다. <시경>은
오늘날 말로 하자면 민요로서 민심을 담은 기록이다. 중국의 고대 제왕들은 지방까지 시를 채록하는 채시관을 파견해 민가에 떠도는 노래와 가사들을
모았다. 민심의 동향을 알아보고 이를 정치에 참고하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민요는 백성들의 성정뿐 아니라 여론도 담고 있어, 당대의 인간과 사회를
개괄하기에 알맞은 텍스트 역할을 하고 있었다.
<시경>은 크게 풍(風), 아(雅), 송(頌)의 세 가지로 나뉘는데 ‘풍’은 15국의 민간가요이고, ‘아’는 궁정의 아악,
‘송’은 제사 음악을 뜻한다. 공자는 여기에 수신제가의 ‘교과서적’인 시뿐 아니라 연애시, 원망하는 시 등을 담았다. 이른바 민중가요의 가치를
공자는 이해했던 것이다. 지피지기란 말은 정치경영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민중을 이끄는 데, 민중을 모르고선 안 된다는 인식을 공자는 하고
있었다.
공자는 <시경>이란 민요모음집을 통하면 상대가 군주든, 백성이든 감동을 일으키기가 한결 쉽다고 생각했다. <시경>은
민심의 증표로서 이것을 활용하면 감동이 증가돼 설득이 쉽다는 것을 알기에 아들에게도, 제자에게도 힘주어 배울 것을 강조했던 것이다. 문학과
역사서를 모두 편찬(그는 71세 때 편년체 역사서 <춘추>를 편찬했다)한 그이지만 다른 책보다도 유독 <시경>을 배우고
익힐 것을 제자는 물론, 아들에게도 강조했다. 심지어 <시경>에서 말조심에 관한 내용인 ‘백규(白圭)’를 하루에 세 번이나 마음속에
새기고 암송하는 것이 마음에 들어 남용이란 제자를 조카사위로 삼기까지 했다. 공자는 <시경>을 읽으면 좋은 점으로 여섯 가지를
지적한다.
子曰 小子何莫學夫詩? 詩 可以興 可以觀 可以群 可以怨 邇之事父 遠之事君 多識於鳥獸草木之名(자왈 소자하막학부시? 시가이흥 가이관 가이군
가이원 이지사부 원지사군 다식어조수초목지명-양화-)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제자들이여, 너희들은 어찌하여 시를 배우지 않느냐? 시는 감동을 일으킬 수 있으며, 관찰할 수 있으며, 무리지을 수
있으며, 원망할 수 있으며, 가까이는 어버이를 섬길 수 있고, 멀리는 임금을 섬길 수 있고, 새와 짐승, 풀과 나무의 이름을 많이 알 수 있게
한다.
첫째, 可以興. 감수성을 풍부하게 할 수 있다. <시경>의 시들엔 연애시, 세상을 원망하는 시들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관저(關雎)편에선 대장부를 그리는 애절한 여인의 마음, 야유사균(野有死麕)에선 혼전의 남녀가 서로 유혹하는 내용, 석서(碩鼠)에서는 탐관오리를
큰 쥐에 빗대어 세태를 풍자했다. 이 모두가 꾸밈없는 솔직한 사람들의 서정이라 보았다. 공자가 <시경>을 중요한 교과서로서 학문의
입문으로 강조한 속뜻은 인간의 참모습을 느끼고 이해하게 하고자 함이었다. 시의 내용에 남을 욕하거나 원망하는 것도 있지만, 사람들의 자연스런
감정을 노래한 것이란 생각을 했기에 공자는 편집과정에서 이를 버리지 않았다. 다양한 사람들의 처지와 심정을 노래한 시를 읽으며 얻어지는 가이흥,
즉 감수성이 풍부해지는 효과를 인식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경>의 노래들이 솔직하고 자연스런 사람들의 감정을 노래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평한 말이다.
둘째,可以觀. <시경>을 읽으면서 풍부한 삶의 지혜를 볼 수 있다. 즉, 얻을 수 있다. 내가 처한 상황을 직시하고, 상황에
맞게 대처하는 힘을 얻기도 한다. 시는 정치를 올바로 하는 능력과도 통한다. 말로는 <시경>에 통달했다고 하면서도 정사와 외교에
능숙하지 못하다면 그것은 장구의 지엽적인 것만 익혔기 때문이다. <시경> 300편을 다 외웠는데도 맡겨진 정사를 완수하지 못하고
타국에 사신으로 가 독자적으로 응대하지 못한다면 시를 공부한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즉, <시경>은 그저 많이 외우고 알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을 실제로 정치에 활용하고 외교에 응용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느끼고 배운 것만으론 부족하다. 현 상황, 정치외교적 협상에서
실제 적용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셋째, 可以群이다. 공동작업을 위한 소통력을 길러 잘 어울리게 된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오래전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고, 멀리
있는 사람의 느낌과도 만나는 것이다. <시경>을 읽으면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잘 헤아릴 수 있게 돼 관계를 조화롭게 이끈다. 이 같은
생각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아들 백어(伯魚)와의 일화이다.
공자께서 백어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시경의) 주남, 소남편을 배웠느냐? 사람으로서 주남과 소남을 배우지 않으면 담장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서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양화편). 공자의 문하생인 진항(陳亢)이 공자의 아들 백어에게 “선생님께선 그대에게만은 우리들한테 하신 말씀과는
다른 무슨 특별한 것을 들려주시지요?”라고 물어보았다. 이에 백어가 대답하길, “여태껏 이렇다 할 특별한 가르침을 따로 받은 적은 없습니다.
다만 언젠가 아버님이 홀로 계실 때, 내가 황급히 뜰을 가로지르려 하자 나를 불러 세우고는, 너는 <시경>을 읽었느냐, 하시기에 아직
안 배웠다고 말씀드렸더니, <시경>을 배우지 않은 인간은 말상대가 안 된다고 꾸짖었습니다. 그다음 날부터 나는 <시경>
공부를 하기로 했습니다”는 내용의 일화가 전한다. 물론 아들에게 ‘시경을 공부할 것’을 강조하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공자는 이처럼 <시경>으로 자신의 감정을 적절히 표현해 소통력을 기르는 것 외에 원망을 적절히 표현하고, 충효의 교화기능과
자연과학적 지식을 익힐 수 있는 등 <시경>의 효용에 대해 다양하게 지적한다. 공자는 리더의 ‘인문학적 소양’과 학습이 단지 교양이나
호사적 취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리더십에 얼마나 효용이 되는지를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김성회박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교수.
첫댓글 잘 ㅐ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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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은 크게 풍(風), 아(雅), 송(頌)의 세 가지로 나뉘는데
‘풍’은 15국의 민간가요이고,
‘아’는 궁정의 아악,
‘송’은 제사 음악을 뜻한다. 잘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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