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공사에서 연약 지반의 치환, 예상하지 못했던 소일 코어시험의 추가, 또 2월 혁명 등으로 원래 3월 초에 첫 콘크리트를 타설하려 했으나 꼭 1 개월 늦어진 4월 2일에야 첫 콘크리트를 타설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유난히 승인이 지연되고 있는 후속 기초도면에 자꾸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4월 21일이 되자 감독은 설계변경이라며 679장의 새로 변경된 도면을 발급했다.
이것이 왠 청천 병력인가? 12월 말에 526매의 도면을 1차 설계변경으로 발급하더니, 우리가 대충 변경도면에 대한 파악이 끝난 1월 21일 또 600매에 달하는 변경 도면을 발급하여 이제 또 그 도면이 익숙할 만 하니까 이제 또 대규모의 설계변경 도면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도대체 공사를 하려는 것인가 말려는 것인가.
그동안 계속 승인 받을 수 있었던 Shop Drawing들이 계속 승인이 지연되고 혹은 다시 제출하라거나 시공회사의 리스크로 공사 수행하라는 코멘트가 붙어 나온 이유가 이것이었구나 하는 것을 뒤늦게나마 알 수 있게 되었다.
수많은 Shop Drawing들이 "변경된 시공도면을 반영하지 않았다" 또는 "지명하청사인 전기, 설비 사항이 반영되지 않았다"라는 Comment를 달고 "C Action"(승인 불가)으로 나와 전부 다시 준비해야하는 실정이었다.
아니 아직 받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 변경 시공도면을 어떻게 Shop Drawing에 반영하란 말인가? 아직 발주처에서 계약도 하지 않은 설비, 전기 지명하청사의 설비 전기 사항을 어떻게 Shop Drawing상에 반영한단 말인가?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가 이런 사항을 물고늘어지자 계약서 상에는 그들이 줄 수 있는 승인코드가 "A", "B", "C" 세 가지 뿐인데도 불구하고 감독은 "BR-Action" 또는 "R-Action"이라는 새로운 승인 코드를 개발해냈다. "BR-Action"이란 자신들이 붙여놓은 코멘트에 따라 공사를 수행하되 그 코멘트를 반영하여 Shop Drawing을 나중에 다시 그려 제출하라는 것이고 "R-Action"이란 위험부담을 시공회사가 지고 도면대로 공사를 수행하라는 뜻이라 했다.
원 이런? 이제는 계약서도 지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막 바꾸고 모든 자신들의 문제를 시공회사에게 모두 떠넘겨? 그래도 상전인데 어떻게 하나 그냥 좋은 것이 좋다고 하니 넘어가야지...
이 현장은 2년 공사가 5년 1개월까지 지연되는 것을 하늘도 알았는지 착공식부터 재수가 없었다. 발주처, 감독회사, 또 시공회사 등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앉아 착공식 날짜를 잡는다고 잡았는데 길일이라고 잡은 날이 현장 인수받은 지 3개월 만인 4월 8일 오전 10시 였다.
처음엔 그 준비를 대단치 않게 생각했었는데 필리핀 대통령이하 상, 하원의원장 및 거의 모든 국무위원 참석한다하고 아시아 개발은행 총재단, 감독회사 사장단 특히 우리회사 회장, 사장이 참석한다 하자 우리회사뿐만이 아니라 발주처, 감독들 모두 완전히 비상이 걸렸다.
감독 측에서 기공식장에 대한 설계를 급하게 해 와서 2 주일 내로 바닥을 90센티미터 정도로 올려 콘크리트 바닥을 타설하고 철골로 Frame를 짜서 지붕을 골함석으로 덮고 바닥은 붉은 색 카페트로 깔라는 것이었다. 물론 참석한 사람들이 떨어지지 않도록 난간도 다 목재로 짜서 안전을 고려하는 것도 포함되었다.
거의 전 작업을 중단하고 기공식장 준비에 모든 인원과 장비를 동원해서 기공식 2일 전까지 400 여명이 앉을 수 있는 의자, 음향설비 배치까지 모든 준비를 끝냈는데 아뿔사! 하루 전날 오후부터 몇 달째 햇볕이 쨍쨍 내리쬐던 날씨가 갑자기 꾸물꾸물해지기 시작하더니 퇴근하려고 하자 갑자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것이었다. 수십 년 동안의 기록에서 보더라도 5월 중순까지는 전혀 비가 내렸다는 기록이 없던데 어째서 비가 오나? 현장에 있던 기능공들은 물론, 하청회사 직원들도 모두 퇴근했는데 이를 어쩌나?
모두 저녁 먹고 다시 현장에 나오기로 하고 숙소 들어가서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저녁 먹고 나와서 보니 햇빛만 가리도록 설치된 골함석 지붕에서는 폭포수처럼 물이 아래로 쏟아지고 있고 바닥 카페트는 완전히 홍수 난 듯 빗물이 고여 출렁이고 있고 의자마다 물이 흥건하게 괴어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 인원이라고 해봐야 나이 드신 소장 님과 자재, 중기 임직 2명을 을 포함해서 모두 18명, 이제는 공무부장이고 공사부장이고 할 것 없이 모두가 잡부가 되는 것이었다. 소장 님이 총괄 지휘하고, 부장들이 의자 한쪽구석으로 몰아 대충 물을 털어 내고 비닐 씌워놓고, 과장들은 픽업트럭에 모래를 퍼와서 출입구 주변의 물웅덩이를 메우고, 나 같이 젊은 측들은 6 미터 정도 되는 지붕에 기어올라가 지붕 위에 비닐을 덮고......
그런데 도비공 출신이라는 창고지기 임직 박 재두 반장의 몸짓이 예사롭지 않았다. 우리는 6 미터 높이의 지붕 위를 올라가느라고 벌벌 떨며 갖은 힘을 다해 올라가는데 이 사람은 완전히 원숭이 한 마리 갖다 놓은 것처럼 150 미리 짜리 파이프로 된 철 기둥을 타고 쪼르르 올라갔다 비닐 가지고 온다고 쪼르르 내려갔다 하고 골 함석 위에서도 성큼성큼 걸어 다니는데 이게 사람인가 싶었다.
지붕 커버를 다 씌우고 내려와 카페트 위의 물을 넉가래를 현장에서 급조하여 기공식장 밖으로 밀어내는데 감독들과 발주처사람들도 걱정이 됐는지 전부들 현장에 나와서 구경들을 했지만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들은 없었다. 아구! 이게 무슨 챙피람? 소위 고급기술자라는 사람들이 밤중에 개 잡부 일들을 직접하고 있으니... 새벽 3시까지 7 ~ 8 시간을 쉬지 않고 했는데 이제는 일을 하고 싶어도 더 이상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전부들 의자 위를 걸레질하다 도저히 일의 끝이 안보이자 이젠 완전 포기 상태가 되었다. 야! 이젠 들어가서 잠깐 눈 붙이고 6시까지 다들 나와서 마지막 마무리하자 하시던 소장 님의 한마디가 왜 그리 반갑던지?
세시 반에 숙소 들어가서 다섯 시 반에 현장 나와 보니 비는 이미 그쳐 있었고 벌써 절반 정도의 직원들이 나와서 작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밤중에 난리 굿을 하며 지붕에 비닐을 덮었는데 괜히 덮었나 보다. 지붕 여기저기에서 계속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데 저걸 어떻게 막아?
진공청소기 가지고 바닥 카페트 위의 물을 계속 빨아내고 의자 다시 걸레질하여 다시 배치해 놓고, 현장 정문서부터 행사장 무대 앞까지 모래로 물웅덩이 다시 메꾸고 있는데 빨리 들어가서 옷 갈아입고 나와서 사진을 찍으란다.
준비해서 나와 보니 벌써 귀빈들은 다 나와 있고 곧 이어서 대통령이 도착했는데 이것저것 사진 찍다 보니 마음이 조마조마 해졌다. 여기저기서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데 아이쿠! 정면에 앉아있는 대통령의 머리위로 물방울이 하나 똑 떨어지자 고개를 들고 쳐다보는데 주르르하고 물이 쏟아 내릴 줄 알고 정말 조마조마 했었다.
다행스럽게도 그것으로 끝... 엉망진창인 속에서도 1시간 남짓 계속된 기공식이 그런대로 성공적으로 끝났고 우리회사 사장님으로부터 성공적으로 현장을 완공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이외에는 별 문제된 일이 없었다.
이 기공식 때문에 약 2주간 현장의 공사가 지연되었으나 그 기간동안에도 설계도면의 검토나 승인은 제대로 이어질 수 있었고 모자란 기능공 및 장비는 추가로 들여왔어야 한다는 이유로 보안을 위해 기능공들의 현장 출입이 완전히 금지된 기공식 전날 정오부터 기공식이 끝난 당일 정오까지 단 1일에 한해 공기 연장이 인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