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이모저모 5 - 후쿠다무라(福田村) 사건
후루카와 교코(古川 京子)
관동대지진으로부터 100년이 되는 2023년 9월 1일, 영화 '후쿠다무라 사건'이 공개된다. 감독은 모리타츠야(森達也), 주연은 지난 번 소개했던 양영희 감독의 극영화 '가족의 나라'에도 출연했던 이우라 아라타.(井浦 新, 1974년생 일본 배우)
관동대지진 직후인 9월 6일, 카가와현에서 치바현 후쿠다무라에 와있던 약장수 행상 15 명 중 아홉 명이 마을 자경단에 의해 살해되었다. 젖먹이와 임산부도 살해당하였다. 지진이 일어나기 4년 전인 1919년 3월 1일에 일어났던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염원했던 조선의 3.1독립운동 이후, 조선인에의 차별과 탄압이 악화되고 있었다.
거기에 대지진의 혼란 중에 관청으로부터 시작된 조선인에 대한 유언비어(조선인의 밤 습격이 있을 것이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등)로 인해 민관합동으로 조선인 색출작업이 강화되었다. 단어의 시작음이 센 조선어의 특징을 악용하여 '십오엔 오십전'을 일본어로 말하게 하였다. "쥬우고엔 고짓센"이 아니라 '츄우고엔 코짓센"으로 발음하면 조선인이라 판단하였다. 지방에서 올라와 어리둥절했던 일본인 행상들도 발음이 이상하다고 하여 조선인으로 본 것이다. 후쿠다무라에 와 있던 카가와의 행상들이 폭행당하고 살해당했던 사건 전말이다.
포크싱어인 나카가와 고로(中川 五郞)는 이 후쿠다 사건을 '1923년 후쿠다 학살'이라는 제목으로 20분을 넘는 노래로 만들어 불렀다.(2009년) 가사는 무서운 공포, 목숨을 구걸하는 상인들, 집에서는 인자한 아버지였지만 조직을 만들어 악귀같은 사람으로 변해가는 자경단원의 모습을 상세하게 그리고 있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처참한 광경을 그리고 있는 노래이다.
저의 경험을 말씀드리면, 십수년 전 관동대지진 재해와 조선인 관련 사건 기사의 번역을 도운 적이 있었다. 서재가 없어서 식탁을 책상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아직 어린 우리집 아이들이 언제나 내 주변에서 놀기도 하고 방해도 했었다. 그런데 몇 년 전, 우연히 아이들로부터 "엄마 얼굴이 무서워서 말을 걸지 못했던 때가 있었어요." 하여 깜짝 놀랐었다. 생각해보니 관동대지진 기사의 번역을 하고 있던 때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전혀 작각하지 못했는데, 아마도 굳은 표정으로 일을 하고 있었나보다. 당시의 가사들도 참으로 처참한 광경을 보여주었으니까 말이다.
'후쿠다 학살'의 노래는 피해자의 배경과 가해자의 이후 생활까지 이야기한다. 행상인들은 고향에서도 일을 얻지 못한 차별받는 부락 출신이었기 때문에 먼 카가와지방에서 도쿄까지 왔던 것이다. 행상인들을 덮친 수십 명의 자경단원 중 체포된 사람은 겨우 8명이었고, 쇼와천황 즉위의 사면 혜택을 받아 모두 바로 석방되었다. 주범 격인 한 사람은 이후 촌장도 하고 시의회 의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이윽고 시의원으로 당선되어 지역을 위해 힘을 다했다.
당신을 밤에 잠이 오는가? 악몽으로 괴롭지는 않은가?"
미구니 렌타로(三國 連太郞)가 강제연행된 조선인 징용공 역으로 일본아카데미상 최우수 주연남우상을 수상한 영화, '세 번의 해협'(1995년, 神山 征二郞 감독)에서 조선인들을 때리고 괴롭혔던 탄광의 노무감독이 전후에 선거운동을 하는 장면에 대해 묘사한 가사이다.
이외에도 2009년 일본영화, '변호사 후세다츠지(布施辰治)', 2017년 한국영화 '박열' 등 관동대지진과 관련된 영화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말하기는 지면의 한계가 아쉽다. 후쿠다 사건 소개로만 글을 마치고자 한다.
'지난 3년 코로나 사태로 유언비까지는 아니지만, 지금 생각하면 솔직히 이상한 소문에 휘둘렸다든지 겁을 먹었던 것 같다. 물론 코로나가 가벼운 일이라는 건 아니다. 주의를 하면 되는 일이었는데, 불필요한 두려움, 불안, 의심, 압박이 크지 않았나 생각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불안에 선동되어 빠져들었던 것 같다. 물론 이런 불안은 아직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백 년 전의 후쿠다무라로 타임슬립해서 간다면, 나는 어느 편에 서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