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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 영
1
“어서 먼저들 횡하니 올러가거라. 내 담배 한 대 피우고 이내 뒤쫓아갈 게시니……”
지게 위 목판에다 마지막으로 무나물 보시기를 얹어놔주며 문 서방은 말했다. 큰놈은 그래도 철이 들어서 아버지의 눈치를 슬슬 보며 버티어온 지게 앞으로 가더니 한쪽 무릎을 세우고 어깨를 디어민다.
“엎지를라. 비알¹을 올러갈 때 몸뚱일 앞으로 폭 까우려.”
“예 ―”
“창식인 집이서 분이나 데리구 놀잖구.”
막걸리 담긴 주전자를 들고 앞서는 둘째늠을 보고 문 서방이 달래듯 말을 하니 큰놈이 받아서,
“그래라. 그 주전잔 인 주구 분이하구 간난이나 데리구 놀어.”
“나두 싫은걸.”
“인저 또!”
중식(큰놈)이는 제법 형의 위엄이나 보이려는 듯이 눈을 딱 부릅뜬다.
“간난인 누나가 보잖나. 분이두 간다는걸!”
“난두 간다나!”
하면서 저만큼이나 앞서 달아나는 분이를 보고 큰놈이 버레기² 깨지는 소리를 친다.
“가긴 어딜 가! 이놈에 지지배!”
말뚝처럼 마당 한복판에 서서 이 꼴을 보고만 섰던 문 서방은 다 죽어가는 사람의 목소리로,
“놔두렴. 거 그리 멀지두 않구 허니……”
이렇게 큰놈을 타이르고,
“철들이 나기나 해서 그런다면 좋겄다만서두……”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문 서방 아내의 삼우제를 지내러 가는 구슬픈 광경이다. 열여섯을 위로 열하나, 아홉, 이렇게 삼 남매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울섶을 돌아서 동산으로 올라가는 꼴을 바라다보는 모양이나, 그의 시선은 반드시 어린것들에게만 집중이 되어 있지도 않은 모양이다. 그 증거로는 어린것들이 아카시아 풀섶을 지나서 사태 난 골짝을 건너고 잔솔밭 등성이 너머로 사라진 후도 그의 시선은 회색 공간에 그대로 흩어진 채로 있는 것이다. 눈자위가 유달리 움푹 들어간 때문뿐 아니라 요 몇 해 동안에 사태처럼 내리덮친 불행에 안광도 무딜 대로 무디어졌다. 그의 눈은 그 무엇을 능동적으로 본다느니보다는 차라리 창망한 공간에 흩어진 그 무슨 형체가 그의 시선 속으로 기어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도 같이 보인다. 널찍한 어깨는 부러진 날개처럼 처졌다. 키 닮아서 얼굴도 바탕은 넓고 길고 하나 볼이 없고 보니 하릴없이 삼 년 굶은 빈대 쭉정이 모습이다. 볼에 살이 잡혔드면 그렇지도 않았을 것이련만 면장(面長)인 데다가 양쪽 볼따구니가 푹 파이고 보니 자연 주걱턱이 될밖에 없었다. 흙빚 그대로의 얼굴빛에 담송담송 난 노리끼리한 수염이 문 서방을 한층 더 궁상맞게 보이고 있다.
동짓달이 내일모레라는데 무릎에도 안 닿는 깡똥한 회색 홑단 두루마기가 오늘 아침의 문 서방을 더욱 초라하게 보이고 있다. 그나마도 품이 솔고 소매도 짧다. 일 년 내 개두었다가 그대로 내입었는지 접었던 자국이 그대로 굵다. 정강이에 겨우 찰까 말까 한 길이에다가 섶이 바짝 치켜 달려서 동정 여민 선이 마치 그의 목을 졸라맨 것처럼 거북상스러 보인다.
문 서방은 어린것들이 잔솔밭 등성이를 넘어 오봉산 골짝으로 사라지고도 얼마 동안이나 그 자리―처음 섰던 바로 그 자리서 움직일 줄을 모른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눈발이 차차분하니 내리덮인 오직 뿌연 대공을 향해서 흩어져 있다. 뽀얀 회색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완전한 공간에서 열심히 그 무엇을 찾는 사람의 눈이다. 완전한 무(無)에서 그 무엇이든지를 찾아보려고 초조해 하는 눈이다.
햇살도 으수이 퍼졌음직한 때건만 오늘 아침은 유달리 음침하고 신산하다. 잎도 다 진 감나무 가지에 핀 하이얀 서리꽃이 겨우 희미한 빛을 발하고 있다. 산기슭 세 집 뜸인 이 구석말에는 이렇다 이름 질 만한 음향도 없다. 추녀 끝에서 조작이는 참새 소리, 이따금 잊어버렸던 듯이 외마디 소리를 치는 까마귀의 그 음침한 울음소리. 소도 개도 없는 이 구석말의 아침저녁을 장식해주는 까치 소리도 오늘 아침에는 들을 수가 없다. 오직 음산한 하늘과 침통한 문 서방의 빈대 쭉정이 같은 얼굴과―이러한 모든 우울한 분위기보다도 더한층 불길한 까마귀 소리. 덧없이 긴 한숨을 쉬고 문 서방은 겨우 그 자리를 떠서 삽짝 안으로 들어선다.
“아버지, 그만 올러가 보시지유.”
아까부터 김치광 거적 이스매를 들치고 너무나 심란해하는 아버지를 훔쳐보고 있던 이쁜이는 행주치마 끈으로 눈물을 찍어낸다.
“아버지, 국에 진지 좀 놔 잡숫구 가셨으면…….”
“괜찮다.”
“엊저녁두 진질 설치시구 아침두…….”
그러다 말고 이쁜이는 봉당 기둥에 얼굴을 붙이고 조심성스럽게 느낀다.
“듣기 싫다. 울긴 왜.”
문 서방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마당 한구석에 있는 댓돌(짚을 두드리는)에 주저앉아서 무섭게 느린 동작으로 주섬주섬 담배 연모를 꺼낸다. 먼저 오른쪽 조끼 주머니에서 한 뼘은 되는 골통대를 꺼내서 두루막 앞섶 자락에 내는 다음 왼쪽 두루막 옆 구멍으로 손을 넣어서 쌈지를 꺼내어 손바닥에 한 줌 놓고 침을 퉤퉤 몇 번 뱉어서 녹녹히 축인 다음, 대통에 몽글려 담고 이쪽 주머니 저쪽 주머니 한참을 부스럭거려서 성냥을 꺼내어 황 대가리가 겨우 뵐까 말까 한 정도로 바짝 내려다 쥐고는 확지에 드윽 그어 불을 붙인다. 불을 붙이고는 성냥불을 엄지손가락과 둘째손가락 끝으로 싹 비벼 꺼서 성냥곽을 열고 황 대가리 안 붙은 쪽을 골라 섞바뀌로 되집어넣는다. 이 간략한 동작에 그는 실로 오 분이나 실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다.
문 서방이 이 느릿느릿한 동작을 하는 동안에도 이쁜이는 아버지에게 등을 보인 채 그대로 기둥에 엎디어 울고 있다. 어미 뱃속에서 나오면서부터 오늘날까지 십팔 년 동안 배를 곯고 드센 일에 지기를 못 펴고 살아온 이쁜이건만 거짓말처럼 어깨받이가 통통하다. 제 어미의 허우대 요량해서는 이쁜이는 졸한 편이었다. 그러나 금년 접어들면서는 마치 호된 설한(雪寒)에 지질렸던 싹들이 봄 소리를 듣기가 무섭게 언 땅을 분연히 헤치고 새싹을 트듯이 이쁜이도 열여덟의 봄을 맞으면서부터는 굶주림과 육체의 발육을 억누르고 있던 몸에 겨운 무서운 노역에도 개의치 않고 수양버들 가지처럼 사지가 쭉쭉 뻗어났다. 그것은 마치 까슬까슬하니 말랐던 나뭇가지에 물이 올라 하루하루 윤기가 흐르고 파아란 생기가 소생하는 것과도 같았다. 이쁜이는 정말 금년 봄 접어들면서부터 봄을 맞은 물가의 수양버들 가지처럼 미끈해졌다. 그 노리끼리하던 얼굴빛에도 어딘지는 모르게 화색이 돌아졌고 더욱이 양 볼에는 발그레하니 핏기가 깨어났다. 일에 억눌리고 철이 들면서부터 뒤덮이는 가지가지의 불행에 오들오들 떨기만 하던 눈도 올봄을 접어들면서부터는 한결 대담해졌다.
이쁜이를 보면 누구나 옥의 옥다움을 다시 한 번 생각게 한다. 아무리 시궁창 썩은 흙 속에 묻힌 옥이라도 옥은 옥이다. 비록 성냥 한 갑, 생강 한 쪽을 사재도 십 리 길을 걸어야 하는 두메 산기슭 상엿집처럼 납작한 다섯 칸 초가집에 태어나서 흙과 검정을 뒤집어쓴 채 문명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오는 이쁜일망정 타고 난 아름다움은 어떠한 외계의 압박에도 가시어지지 않았다. 온갖 생물을 유린하는 설한도 한마디의 개구리 소리를 무시할 수 없듯이 이쁜이의 미는 자연의 법칙과 함께 부쩍부찍 자랐다. 그것은 생의 무서운 약동이었다.
문 서방은 시름없이 담배를 피우며 소담한 딸의 머리채를 물끄러미 바라다보면서 ,
“느 어미가 몹쓸 사람이다.”
거의 입 밖에 내어 이렇게 중얼거려보는 것이다.
문 서방은 겨우 몸을 일으켰다. 돌에서 온 찬 기운이 아랫배를 통해서 가슴으로 올라음을 무의식중에 깨달으며 오른손으로 한참 아랫배를 눌렀다.
“인저 그만 그쳐라. 울면 되느냐. 울어 모든 게 잘된다면 나두 오십 평생 울기만 했겠다.”
문 서방은 전에 없이 이쁜이가 측은해 보였다. 그는 가까이 가서 가벼이 머 리를 쓰다듬어주며 ,
“내 모자 내온.”
“네 ―”
운 티도 없는 맑은 목소리다.
문 서방은 딸의 손에서 다 찌그러진 고동색 중절모자를 아무렇게나 받아 쓰고,
“내 갔다 오마. 얘들은 벌써 다 갔겠구나.”
시적시적 삽짝 밖으로 나간다.
2
하늘은 여전히 뿌옇다. 보리밭에 준 퇴비를 파헤치던 까마귀 떼가 흉측스러운 소리를 치며 감나무 가지로 올라앉는다. 처적처적 울 뒤를 돌아서 사태 난 골짝을 건너 등성이를 올라가노라니 점점 눈앞이 흐려진다. 높다고 디디면 헌청하고 다리가 헛놓인다.
눈앞이 아물아물해진다. 문 서방은 하는 수 없이 잔솔 폭을 붙들고 주먹으로 눈을 비볐다. 그는 모든 것을 잊자 했다. 그러고는 걸음을 재촉해서 장군바위를 타고 부지런히 올라갔다.
솨! 솔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 사이사이로 요령 소리가 들려온다. 문 서방은 찔끔해서 발을 멈추었다. 솔새가 머리맡에서 짹짹일 뿐 다시 한 차례 솨― 바람이 솔잎을 흔든다. 문 서방은 다시 걸었다. 장군바위 밑을 지나서 감나무 숲을 지나려니 이번에는 분명한 요령 소리가 귀를 스친다. 그는 다시 발을 멈추었다.
“……인생은 칠십이라든데 워―호―워―호…… 남은 삼십은 어디 가 살려나, 워―호ㅡ워ㅡ호ㅡ 조당죽을 먹어도 같이 살아야 장하지. 워ㅡ호一워―호ㅡ 걱정 마소…… 이팜 쌀밥 지어놓고 낭군님 네 모셔가지. 워―호ㅡ워―호…….”
문 서방은 못 들을 소리를 들은 것처럼 허들겁스럽 게 진저리를 치고 다시 등성이를 넘어서 수리대로 빠지는 골짝을 내려 탔다.
그러나 그의 발은 저도 모르게 또 뜨먹해졌다.
‘빌어먹을 사람…… 정말 조당죽을 먹으면서두 같이 살아야 장한 게지…… 저 혼자만 넙죽 죽으면 그만인가…….’
문 서방은 정말 아내가 죽은 것이 아내의 자유의사이기나 한 것처럼 이렇게 원망해보는 것이었다. 죽으려고 마음이 변했던 탓이었겠지만 자리에 눕기 전부터 유달리 죽을 싫어하고 걸핏하면 퉁퉁증을 놓던 것이 문 서방에게는 지금도 야속하게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본심이 안 그런 줄은 문 서방도 십 년이나 살아본 터라 잘 알고는 있었다. 잘 알고는 있으면서도 죽 그릇에 숟갈을 꽂고는 쑤석쑤석하는 꼴이며 살며시 한숨을 짓는 것을 볼 때는 용하디용한 문 서방도 가끔 불끈해진다. 그러나 문 서방은 지금 아내와 동거를 한 이래 만 십 년간 단 한 번도 그 불끈 끓어오르는 감정을 표면에 나타낸 적은 없었다. 물론 그도 사람인지라 얼굴에 나타나는 것을 감출 도리는 없었다 하더라도 적어도 아내한테 손찌검 한번 하지 않았다. 그러한 그의 관대가 되레 아내의 기를 돋우었는지는 모르나 그가 병들기 전후에는 남편한테 욕이라도 능히 함직하게까지 거세어졌던 것이나 문 서방은 매양,
“거 뭘 그랴. 죽을 먹구 이팝을 먹는 것만은 사람 힘으루 안 되는 게여. 다 하느님이 태운 대루 살어야지. 투덜대면 한정이 있다든가. 이팝 먹으면 고기 먹구 싶구 고기 먹게 되면 명지옷만 입구 싶구, 그저 사람은 제 복에 태어난 대루 살구 그걸 감지득지해야 하는 게니……”
이렇게 타일러왔다.
“허, 또 죄받을 소릴 하는군!”
문 서방은 멀쭉하니 물러나앉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그도 참다 참다 못하면,
“허, 그럴 거 뭐 있나. 어디구 가서 이팝에 고기만 먹구 빈들빈들 놀려줄 데가 있음 찾어가게나. 내가 잘 먹이구 잘 입히진 못할 망정 그런 용당자리가 있다믄야 보내주기야 못할갑세……”
문 서방은 자기 아내가 그런 생각은 꿈에도 않는 줄을 잘 안다. 잘 알면서도 그래보는 것이었다. 아니 자기 아내가 비록 개가를 해 왔다고는 하지마는 덩그러니 살아 있는 남편을 두고 또 딴 집 문지방을 넘지 않을 사람인 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말도 해보던 것이었다.
그러면 아내는 매양 울었다. 서러워서가 아니라 분해서 울었다. 억울해서 울었다. 어떻게 박복해서 한 남편을 섬기지 못하고 이런 천대를 받느냐고 푸념을 했다. 삼십도 못 살고 죽올 사람이 뭣하러 태어났더냐고 죽은 남편한테 포악을 했다. 삼십도 못 살 위인이 그샐 못 참고 왜 장가는 들었느냐고도 원망을 했다. 그것은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었다. 가슴에서 우러나온 포악이요, 원망이요, 울음이었다.
그는 몸부림을 치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통해했다. 그의 그 울음이 얼마나 절통한 것인가는 그럴 때마다 침식을 잊고 애통해하는 것만으로도 짐작할 수가 있었다.
아내의 그토록이나 설워하는 것을 보는 것이 문 서방에게는 더없이 기뻤다. 전실 자식을 둘이나 거느리고 죽조차 배불리 먹지 못하면서도 일평생 이 집 문지방을 넘지 않겠다는 아내의 갸륵한 심정이 엿보이어 그지없이 즐거웠던 것이다.
“이것이 모두 하느님의 덕분이지!”
그는 아내한테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한테도 백배치하를 했다.
아내가 시름시름 앓다가 몸잠아 누웠을 때는 정말 문 서방은 뜨끔했다. 바로 십여 년 전 역시 늦은 가을 조강지처를 공동묘지에 묻고 돌아온 쓴 경험이 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문 서방은 젊었었다. 사람이 앓는다고 다 죽으랴 하는 생각도 있었다. 아내가 드디어 숨을 모으고 손발이 싸늘해질 때까지도 설마 죽으랴 했었다. 염을 하면서도 염한 지 이틀 만에 푸스스 깨어났다는 말도 있잖은가 했었다. 그러나 그의 조강지처는 기어코 살아오지 않고 말았다. 그는 칠성판을 구혈에 묻고 회를 치고 흙을 덮고 달구질을 할 때까지도 자기 아내가 정말 죽었거니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위안은 그때만 해도 그렇게 조석 끼니가 간데없지는 않았다. 비록 남의 땅일망정 젊은 기운에 겁날 것이 없던 때였다. 그는 약도 썼다. 경도 읽었고 굿도 했다. 고명타 해서 침도 맞았다. 그는 아내를 위해서 소도 팔았고 도야지 마리도 아낌없이 돈과 바꾸었다. 죽은 뒤에도 한은 없었다.
그러나 두번째 아내가 몸져눕는 것을 볼 때 그는 정말 눈이 홱 돌아갔다. 아기자기한 정도 기실은 조강지처보다도 두번째 아내한테 들었었다. 전처는 민며느리로 데려다가 십여 년 살기는 했으나 철없이 살았었다. 아내 귀여운 줄을 안 것도 이번이였고 아내의 고마움을 안 것도 전처가 죽은 뒤 이태 동안의 홀아비살림에서 뼈에 사무치게 경험했던 것이었다.
두번째 아내가 죽었을 제 문 서방은 정말 절통해했다. 오봉산이 찌렁찌렁하게 아내를 부르며 울었다. 아내를 묻고 와서도 그는 이틀 동안이나 자리에 누웠었다. 가슴이 띵띵 부었었다. 땅을 치며 울어서 손이 말 못 되었다. 문 서방은 그길로 안질이 생겨서 늘 운 사람처럼 충혈이 되었고 눈곱이 끼고 지적지적 했다.
“복통할 노릇이지! 자식 새끼들이나 적은가?”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한 번두 아니구 두 번이 아닌가베. 하느님두 무심하지. 그 용하디용한 사람한테…… 그런 적악이 어딨나.”
이렇게들도 말했다.
그러나 문 서방의 설움은 다른 데 있었다. 다섯이나 되는 자식들이 불쌍키도 했다. 하느님이 준 시련이 너무 자기에게 가혹한 것을 원망하는 설움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무엇보다도 전처처럼 시약도 못 했고 굿 한번 못 해준 것이 더욱 서러웠다. 먼저 처는 내종이었다. 그러나 이번 아내는 감기였다. 감기가 쇠해서 몸살이 되고 몸살이 더치어 열병이 됐다. 그는 약을 안 쓴 것이 설운 게 아니라 약을 쓰지 못한 것이 한이었다. 약 한 침 변변히 쓰지 못하고 밥 한 그릇 변변히 못 해 내버린 채 죽였다. 그는 자기가 죽인 게나 진배없다고 생각한다. 본처 때, 소와 돼지를 팔아서 약을 쓰고 굿한 보람을 못 봐서 안 쓴 것이 아니었다. 사실 지금의 그는 팔 것도 없었다. 세상이 변해서 오 푼변을 주고도 빚을 얻어 낼 재간이 없었다, 그의 집은 단돈 십 원에도 잡으려는 사람이 없었다. 돈 있는 사람들은 주머니 끈을 잔뜩 졸라매고 말대꾸도 변변히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보다도 절통한 것은 아내의 어리석음에서 생긴 비극이었다. 문 서방이 한이나 없게 마지막으로 굿이나 한번 해본다고 빚을 얻으러 갈팡질팡 다닐 때 아이 어머니한테 돈 십 원쯤은 있을지 모른다고 귀띔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도랫말 술집 여편네였다. 자기도 작년에 한 번 오 원을 빚내다 쓴 일이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그럴듯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믿을 수 없었다. 믿을 수는 없으면서도 아내한테 물어보았던 것이나 역시 그런 돈이 있을 리 만무였다.
그랬던 것이 역시 아내에게는 돈이 있었다. 개가해 울 때 몸에 지니고 왔던 돈 십오 원에 살을 붙이고 붙이고 해서 꽁꽁 몽친 채 백 원 돈이 있었다. 연전 중식이란 놈이 담으로 앓을 때 친정에 가서 얻어왔다던 전후 이십 원 돈이 그의 주머니 속에서 나왔다는 것을 안 것도 그가 죽은 후였다. 전실 자식을 살리는 데는 아낌이 없이 돈을 내놓고는 자기 병에는 일전 한 푼 못 쓰고 죽어버린 어리석은 서모. ―그런 아내의 심정을 생각할 때 문 서방은 그 어리석은 서모를 위해서 다시 한 번 울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빌어먹을 사람!”
문 서방이 장군바위 넘어 잔등을 타고 싸릿골 쪽으로 내려갈 무렵에 문득 눈이 날리기 시작하였다. 금년 접어들어 첫눈이었다. 첫눈치고눈 송이가 컸다. 문 서방은 문득 발을 멈추고 십여 년 전 본처를 묻으러 가던 날도 눈이 왔던가? 그런 생각을 해보는 것이었다. 역시 그때도 눈이 왔던 성싶었다. 그는 생각 없이 손바닥을 내벌렸다. 활짝 핀 매화 송이처럼 소담스런 눈송이가 한 개 두 개 손바닥 위에 떨어진다. 먼저 떨어진 눈송이가 녹으면 다시 파시시 한 송이 내려와 앉는다. 잠깐 동안에 그 눈송이도 사르르 녹아버린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한평생이란 긴 것이로구나. 먼저 온 눈은 녹아 없어지고 또다시 딴 눈이 오고…….”
문 서방은 이런 부잘없는 생각에 잠겨 있는 자신을 문득 발견하고 멈칫해하며 사방 공사 자리인 노가주나무 비탈을 싸릿골 쪽으로 내려섰다.
거기서는 저 아래로 공동묘지가 내려다보였다. 어린것들도 멀찍 하니 보였다.
아이들도 아버지를 보았는지 분이란 년이 손을 내두르면서 아버지를 부른다. 둘쨋놈도 얼른 오라고 고함을 친다.
“오 ― 냐.”
문 서방은 이렇게 대답을 하려고 했으나 어쩐지 목이 컥 메면서 목소리 가 갈래갈래 흩어져 버리는 것이었다.
3
산에서 내려온 그날 밤…… 이렇게 문 서방의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면 지금까지의 문 서방의 행장을 보아온 독자는 깜박깜박 하는 등잔불 앞에 앉아서 한숨짓는 그를 상상하기가 십상이리라. 그렇지 않으면 도랫말 주막에서 곤드레만드레 콧노래를 부르고 있는 그를 연상하기도 쉬우리라. 또 그것이 사람의 상정이기도 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날 밤도 문 서방은 여느 날 밤처럼 가마니틀에 매달려 있었다. 오른쪽에는 이쁜이, 왼쪽에는 창식이가 제가끔 짚을 먹이고 문 서방은 오늘이 그처럼 아끼던 아내의 삼우젯날이라는 사실조차도 잊어버린 사람처럼 바디⁶를 치기에 경황이 없었다.
“창식아, 네 짚은 좀 가는가 부다.”
“이쁜아, 세 번 넣군 창식이더러 넣으라구 일러라.”
“중식아, 너 부지런히 새끼 꽈야 낼 날거리가 되겠다!”
문 서방은 이렇게 이르면서도 대견한 모양이다. 굵은 짚이면 한 오리, 가는 짚이면 두 오리씩 댓가지에 꿰어서 양편으로 늘어진 가마니 날 새로 집어넣는 것이나 둘쨋놈 창식이의 손은 날 듯이 재빠르게 움직인다. 이쁜이의 손에서도 바람이 인다. 이면치레⁶로 불이라고 등잔이 놓이기는 했으나 우중충한 방 안을 비춰주기에는 너무도 흐리다. 그렇건마는 그들은 어둠 속에서 제 코, 제 눈을 만지는 것보다도 손이 익다. 매끈매끈한 댓가지가 새끼 날을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가 금속성처럼 맑고 가늘다. 그 짚 스치는 소리가 새액 나기가 무섭게 덜컥 바디 치는 소리가 난다. 새액, 덜컥, 새액, 덜컥, 한창 신이 날 때는 이 새액 소리와 덜컥 소리가 거의 동시각에 난다.
만일 독자가 전장의 이야기를 듣지 않은 채 산촌 들창 밖에서 이 가족의 가마 치는 소리를 들었다면 거기에서 좋은 음악을 듣는 때와 같은 일종의 즐거움을 느꼈을 것이다.
“아버지, 그만 주무시지요.”
이쁜이가 짚을 먹이면서 간절하니 말한다.
“왜, 고단한가 보구나. 난 괜찮으니 느나 먼저들 자거라.”
“아녀요. 즌 괜찮아요. 인저 골른 짚두 얼마 안 남었구, 이깟 거야 창식이하구 둘이만 해두 잠깐 해칠걸유, 뭐.”
“그럼 다 같이 끝막자꾸나. 느들만 시키구 내 맘이 좋겠니, 그까짓 잠깐 먼저 잔다구 살이 찌겠느냐.”
“그럼 중식이 네나 먼저 자렴. 아버지하구 해치구 잘 게니.”
“뭐, 난 좀더 자면 살찌나.”
“넌 아침이 일르니께 말이야.”
“참 그러렴. 어린것이 그 꼭두새벽에 그게 할 짓이냐. 모두 애비가 못난 탓이지……”
문 서방은 이렇게 혼잣말처럼 하더니,
“허지만 사람이란 밥값을 해야 하느니라. 일복두 태는 사람이 있는 게니 암만 일을 허구 싶어두 일이 안 생기는 사람이 있거든. 너머 여러 날 못 가서 뭬라구 않을는지나 모르겠다.”
중식이는 보름 전부터 용산역 열차구 석탄고에 다니는 것이었다.
“뭘요. 워낙 사람이 많어노니께, 누가 왔는지 누가 안 왔는지두 모르는걸요. 가만히 보면 아침에 호명만 하구 저 석탄고 뒤에 가서 실컷 놀다간 나중엔 덴뾰⁸에 도장만 맡아가지구 오는걸요.”
중식이는 아직 나이 열여섯 살이나 문 서방네 집에서는 없을 수없는 장정이다. 문 서방을 닮아서 기골이 장대하고 어려서부터 드센 고역으로 다질러진 몸뚱이라 강철처럼 모질다. 해동을 하면 그럴 겨를도 없지마는 거둠새가 끝나고 보니 땔나무에 잔일이 없는 바는 아니나 하루 일로서는 신푸장스럽던지 석탄고에라도 다녔으면 하는 눈치였다.
이 근동에서 용산 열차구 석탄고에 다니기 시작한 것이 삼 년 전 흉년이 시작되던 해 겨울부터다. K역에서 새벽차를 타고 용산가서 일올 하고는 저녁 일곱 시 차로 돌아들 온다. 일이란 석탄고에서 기관차에 석탄을 실어주는 것이다. 온종일 삽질을 하는 고역이기는 하나 어른은 하루 일 원 오십 전부터 이 원 가까이 받았고 아이들도 팔십 전부터 일 원 사오십 전까지는 나왔다.
그런 말을 들었을 제 문 서방은 겨울 동안에 그것이나 해볼까도 했었다. 그러나 아내가 있는 것도 아니요, 어린것들한테만 집을 맡기고 새벽에 나가서 밤중에 올 수도 없어 멈칫하고 있는데 중식이가 가겠노라고 서둘렀다. 부지런히만 다니면 한 달에 삼십 원 벌이가 되는 것을 생각하면 괴이치 않은 일이나 정거장까지 십 리 길이나 되는 구석말에서는 암만 생각해도 헤어날 것 같지 않아서 한사코 말렸던 것이다.
“뭘 그러셔요. 지가 지 생각 못 할라구요. 정 못 견디겠으믄 그만두지요.”
“그래, 기어코 가보련?”
“한곁만 단겨볼래유. 아침잠 남보다 조곰만 들 자면 한 달에 삼십 원씩은 곶감 빼 먹듯 할 겐데유.”
“글쎄, 정 가보겠으믄 가보라만. 해두 정 몸이 고된 듯하건 억지루 참진 말어라. 없는 놈은 몸뚱이가 밑천인데…….”
이렇게 해서 중식이가 석탄고에 다닌 지가 한 보름 된다. 중식이는 하루 일 원 오 전이었다.
“그래, 너두 더러 남들처럼 그렇게 베때려봤니?”
문 서방은 여전히 바디 치는 손을 쉬지 않고 물어본다. 은근한 말씨다.
“안적 들어간 지두 며칠 안 돼서 그런 짓을 하면 되나요.”
“그럼 오래되면 너두 하겠구나?”
“어이, 아버지두.”
중식이는 천부당만부당이란 듯이 펼쩍뛴다.
“그래야지. 사람이란 남의 눈을 기우면 못써. 한 번 기우구 두번 기우면 재미가 나거든. 남을 속여먹구 잘사는 놈 없느니라……”
준준히 이렇게 타이르고는,
“하기는 난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후루 단 한 번두 남을 속여먹은 일이 없어두 지금 이 꼴이다만…….”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자식을 훈계하느라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문 서방은 사실 그런 사람이었다. 오십 평생에 별로 남과 이렇다 할 시비를 한 적도 없거니와 남을 속여먹었다거나 남을 해쳐서 제 속셈을 차렸다 하는 둥 사가 도시 없는 사람이다. 아무리 사람이 용하다 해도 젊은 결기에 시비도 하고 싸움도 하고 더러는 상처도 나고 하는 것이 사람의 일생이겠건만 문 서방은 철들면서부터는 남의 뺨 한 대 쳐 본 일이 없다. 그의 뺨을 친 사람도 없다.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저 잘난 맛에 사는 겐데 저 잘났단 사람을 못났대서 쓰겄나. 남은 찰난 맛에 사는 대신 난 못난 맛에 살면 시비가 날 리 없지.”
문 서방은 늘 이렇게 말했고,
“사람이 절하구 뺨 맞는 법은 없느니.”
이것도 그의 세상 사는 법이요,
“맛난 것은 생(사양)을 하구 일엔 탐을 내보지. 어떤 실없는 사람이 시빌 거나.”
말뿐이 아니었다. 문 서방은 매사에 그랬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조롱했다. 그의 별명은 ‘생불’이었다. ‘생불’이란 별명은 반드시 그를 존경하는 데서 온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치욕으로 생각지 않는다. 자랑으로도 생각지 않았지만.
문 서방에게는 생에 대한 굳은 신념이 있었다. 그것은 악하지 않은 사람은 반드시 끝장이 좋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믿었다.
세상에는 착하고도 끝장이 좋지 못했던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그것은 하느님이 그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돌보시도록 그가 착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했다.
이 ‘선자는 반드시 흥한다’ 는 진리에 문 서방은 또 다른 지론을 갖고 있었다. 즉, 착한 사람은 반드시 흥하기는 하되 그것은 당대에보다도 자손 대에 가서야 그 혜택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가 언제부터 그런 지론을 갖게 되었는지는 물론 알 길이 없으되 동리 사람들은 두번째 처를 죽인 후부터라고들 한다. 어디로 따져보아도 자기는 악인은 아니다. 일찍이 남을 속인 일이 없고, 남을 해친 일이 없고,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서 남에게 손을 보인 일이 없다. 그러고 보니 내게는 반드시 복이 오리라. 초년고생은 돈 주고도 못 산다지 않는가. 말년에는 나도 남처럼 살 수가 있으리라. 이렇게 생각하고 믿고 했던 것이 두 번이나 상처를 당하고 어미없는 자식을 다섯이나 떠안고 보니 악하지 않다고 반드시 흥하지 만은 않는가 보다, 이렇게도 생각게 되었으리라― 이렇게들 생각했다. 그리고 또 그것은 사실 이기도 했다.
문 서방은 하늘의 뜻이 어디 있는가를 의심도 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지론을 버리기에는 너무나 하늘에 대한 신념이 강했다. 그 신념이 없이는 그는 단 하루도 살 수가 없었다.
비 한 줄금, 눈 한 송이까지도 하늘이 주심이라 하고 또 믿고, 하루에 물 한 모금을 얻어먹는 것도 오직 하늘의 뜻이라 했고, 또 믿는 그로서 자기의 처가 죽었다 해서 곧 하늘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아마 당대에는 하늘님의 혜택을 못 받는가 보다.”
듣기에는 매우 궁한 변명이나 문 서방은 사실 그렇게 생각함으로 해서 그의 맘도 어느 정도로 편했을 것이었다.
그는 오직 하느님에 대한 감사의 정으로 살았다. 비를 주니 감사했고 눈을 내리시니 감사했다. 병을 주심은 잘못에 대한 꾸지람이라 했다.
그렇다고 문 서방은 교육을 받은 사람은 아니다. 그는 종교를 가져본 일도 없고, 어느 포교사의 강화를 들은 적도 없다. 하느님에 대한 그의 신앙은 오직 오십 평생의 그의 흙 생활에서 빚어진 것이다. 흙 속에 씨를 뿌리면 싹이 트고, 싹이 트면 비를 주시고 열매를 맺게 하시고, 중생으로 하여금 그 열매로 연명을 하게 하신다. 보리를 심어노면 얼어 죽을까 눈으로 덮어주시고 눈을 녹
여서 봄갈이 물을 마련해주신다.
만물은 또 그에게 있어서 모두가 하느님의 것이었다. 재물도, 목숨도. 재물이 생기면 하늘이 내리셨다 했고 그것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었다.
이러한 그의 굳은 신념은 그의 생에 그대로 나타나지는 것이다. 그는 일찍이 단 한 번도 나라에 바치는 세금을 하루라도 늦추어 본 적이 없다. 언제 한번 많다 적다 논란을 해본 적도 없었다. 바로 수년 전 면소 옆에 학교를 질 때다. 남의 소작으로만 연명을 해가는 문 서방에게 사십이 원이라는 큰돈이 배당이 되었었다. 그것은 분명히 면의 착오였다. 그러나 그는 기일까지에 아무 말없이 갖다 물었다. 나중에 그것이 잘못된 것이 판명도 되었고 그가 그 기부금을 물기 위하여서 집을 잡혔던 것도 드러나서 면장으로부터 상장과 상품을 받으러 오라는 통지를 받았다.
그때 문 서방은 이런 말을 했다.
“면장 어른이 처사는 잘하는구먼서두 농사꾼의 사정은 모르시는군.”
마침 논갈이가 시작될 때라 끝끝내 문 서방은 가지 않고 말았었다(후에 면에서 일부러 보내서 종이 한 장과 호미 한 자루를 받기는 했었지마는).
문 서방이 오늘처럼 마음 산란한 날 밤에도 이렇게 유쾌하게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도 그의 하느님에 대한 굳은 신념 때문이었다. 그는 간밤에도 변변히 잠을 못 이루었다. 조반도 설쳤다. 그 극진히도 먹고 싶던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쌀밥도 모래알처럼 깔깔했다. 그만큼 그는 오늘 슬펐다. 적어도 산에 올라가기까지에는.
그러나 그의 설움은 산에서 내려온 때 말끔히 개어 있었다. 사람의 수명은 하늘에 매였다. 하늘이 살리고 싶으면 살리고 죽이고 싶으면 죽인다. 아무리 집을 팔고 도적질을 해서 약을 쓰고 굿을 했다더라도 아내는 죽었을는지 모른다. 사람이 병들었다고 다 죽으랴. 이렇게 문 서방은 생각하는 것이었다. 아내를 죽인 사람이 이 세상에 어찌 나뿐이랴. 아내는 죽었지만 자식들은 살지 않았는가. 아내가 죽었으니 아니 아내가 죽었으니까 나는 한층 더 부지런히 일을 해야 하리라. 아내가 죽었다고 슬퍼만 하랴. 슬퍼한다고 죽은 아내가 살아올 것이 아니겠고 저의 죽은 어미를 위해서 슬퍼했다고 어린 자식들이 붕어처럼 물만 먹고 살아지지도 않을 것이다.
문 서방은 이렇게 그날 밤 뚱뚱 부은 눈을 비비고 다시 손에 일을 잡았다. 일을 하는 것이 죽은 아내한테 안심을 주는 유일한 방법이요, 자식들에게 대한 유일한 도리라 했다. 하늘이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실 때 하늘은 내게 일을 주셨다. 그 일을 어찌 남기고 가랴.
그에게 있어서 하느님은 반드시 하늘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면 서기도, 주재소 순사도 그에게는 하늘이었다. 금융조합 서기도 그에게는 극진히도 고마운 하늘이었다. ㅡ아니 동리 구장도 그에게는 범할 수 없는 하늘이었고, 진흥회장도 그에게는 하늘이었다. 진홍회 사환 아이, 동리 소임의 말도 그에게는 바로 하느님의 명령이었다.
그가 지금 짜는 가마니도 기실은 동리 소임의 명령을 받았던 것이다. 여편네도 없는 홀아비살림에 가마니 백 개란 좀 과한 짐이었다. 그러나 그는 한마디 대꾸도 안 했다.
“아, 치구말구!”
그는 그 자리에서 대답했다. 소임도 구장의 명을 받아 하는 것이요, 구장은 면장의, 군수의 그리고 군수는 또 그 위의(문 서방은 그 바로 위의 벼슬이 무엇인지는 모르거니와) 지시를 받아서 행하는 것이고 보니 나이 사십에 은동곳⁹ 같은 콧자루를 늘어뜨리고 다니는 소임도 따지고 보면 결국은 나라 명령을 백성들에게 전갈해주는 셈이 되잖는가.
문 서방은 이렇게 생각는 것이었다……
바로 며칠 전 가마니 이야기가 났을 때도 문 서방은 의젓하니 앉아서 이런 이야기를 삼남매를 놓고 타일렀던 것이다.
―그날도 그들은 저녁술을 놓기가 무섭게 가마니틀 앞으로 모였다. 중식이는 가마니 새낏날을 꼬고 앉았었고 둘쨋놈은 바로 등잔불 밑에서 짚신을 삼고 있었다. 눈썰미가 있어서 작년부터는 제 발에 꿰는 신발은 제 손으로 얽어 신는다. 물론 날도 제 형이 쳐주고 신총도 꽈주기는 하는 것이나 제법 얽어놓는다. 이쁜이는 언제나처럼 짚을 먹이고 있었다. 문 서방은 매양 바디질이다.
그날도 무슨 말 끝에 짚두 없는데 가마닌 그렇게 많이 쳐서 뭣을 하느니, 만성이네는 쉰 장 배당인데 반만 치고 안 친다느니 그런 이야기가 벌어졌었다.
“허, 그래서 쓰나!”
문 서방은 바디를 쉬고 펄쩍 뛰었다.
“걔가 학골 좀 다니더니 너무 아는 체하나 보드라. 없는 짚에 바쁜 백성들한테 가마닐 치울 젠 나라에서두 쓸데가 있어 그러겠지, 공연히 백성들 들볶느라구 그럴까.”
그는 이렇게도 말했다.
“사람이란 남의 공을 알어야 하느니라. 부모의 공두 알어야 하구, 이웃집 사람의 공두 알어야 하구, 나라 공두 알어야 하구, 바른대루 말이지만 지난해 삼 년이나 내리 흉년이 들었을 제 나라에서 그처럼 해주잖었으믄 이 근동만 해두 수백 명 굶어 죽었으리라. 뭐 벼 한 톨 있었다든? 너들은 모르겠지만 옛날엔 흉년이 들면 그대루 앉아서 굶어 죽었느니라. 있는 놈두 못 견디어났지! 생각하면 지금 세상은 고마우니라. 연전 을축년 장마 때만 해두 몇 만 명이 굶어 죽은 줄 아니? 그런 공을 모르구 가마 좀 짜란다구 이러구저러구 해? 몹쓸 생각이니라. 나라 공을 알어야지. 고마운 줄 알어야지. 만성이 그놈 잘못 생각이지.”
“주성네보다두 많이 돌아갔나 봐유”
하고 중식이가 미처 말을 마치기도 전에 문 서방은 말꼬리를 툭 채서 ,
“거 다 못된 생각이지. 그런 일거리가 아니구 나라에서 모찌떡을 남보다 더 줬대두 그 녀석 투정을 할까? 도시 그 애가 못쓸레라. 제 부모 은혤 모르는 놈이니 나라 공을 알랴만서두…….”
이런 문 서방이다.
어느 때나 되었는지 감나뭇골서 말꾼 넘어오는 소리가 왁자하다. 이쁜이는 연성 짚을 먹이면서도 문밖으로 귀를 기울이는 양 하더니,
“누가 뭬라는가 바, 아버지.”
“어디”
하고 잠시 세 사람의 손이 일제히 멈췄을 때 누가 소리를 친다.
“중식아!”
“뭐?”
중식이가 문을 열고 뛰어나간다.
“동룡이냐?”
“그래 .”
“왜?”
“너 낼 가니?”
“간다!”
“그럼 낼 덴˙뾰 가주가!”
“그래 !”
“낼 간죠 타나 보군요, 아버지”
하고 이쁜이는 생긋한다.
중식이도 인차¹¹ 뛰어들어오면서 ,
“낼 간좃날야, 아버지.”
“거 좋겠구나.”
문 서방도 더없이 만족한 모양이다. 벌써 자식이 돈벌이를 한다. 생각만 해도 대견했다.
“그래, 첫 월급을 타믄 애빌 뭣 좀 사다 주겠지?”
어쩐지 농담이라도 한두 마디 하고 싶었다.
“들어가기 전부터 방한모자 사다 드린다구 별렀대요, 아버지.”
이쁜이가 잽싸게 받는다.
“방한모자? 허, 건 비쌀걸. 다 그만두구 네 누이 분이나 한 갑 사다 주렴.”
“아니 래요, 아버지. 누인 구리무하구…….”
하다가 ‘아얏’ 소리를 친다. 이쁜이가 댓가지보 찌른 모양이었다.
“구리문가, 뭔가두 분이겠지? 허긴 지금은 박가분¹²두 없어졌으니까.”
“뭐 박가분이 있으믄 누나가 그런 걸 바를까 봐서유.”
“조게 괜히”
하며 중식 이를 또 대꼬챙이로 찌르는 모양이다. 중식이는 찔끔해서 문 서방 곁으로 바짝 다가들며,
“누나, 내 암말두 않을게 내 말 들어줄 테야?”
“에― 피一 말 안 해두 난두 알어! 내 알아맞춰볼까?”
“그래!”
“밥 줌 달란 말이지 뭐!”
“흐흐흐흐…….”
중식이는 소처럼 웃는다.
“누나 참 용하네! 흐흐흐흐…….”
“허허허허……”
문 서방은 커다랗게 웃었다.
“그래―라. 거 뭐 어려운 노릇이냐.”
문 서방은 주먹으로 잔허리를 꽁꽁 두세 번 조긴다.¹³
“온, 인전 조굼만 꿈지럭거려도 허리가 아퍼노니…….”
“아버지, 좀 누워 계시지요. 팔자 존 어른 같았으믄 아랫목에 앉아서 담뱃대나 뚜드리고 계실 나이신데…….”
천연덕스럽게 이런 한탄을 한다.
“재 좀 보게. 너 아랫목에 앉아서 담뱃대나 뚜드리고 큰기침이나 하고 있는 사람이 팔자가 존 사람인 줄 아느냐? 너 거 모르는 소리니라. 사람은 일을 해야지. 일복 타고난 사람이 젤 팔자가 존 게다. 아침부터 밤까지 담뱃대만 뚜드리고 앉었을 팔자가 오죽해서 그러겠느냐. 난 일거리 끊치잖는 게 젤 고맙더라. 참, 낼은 나두 중식이하구 같이 새벽밥 먹겠다.”
“왜, 어디 가셔요, 아버지?”
“지금 얘길 하다 생각이 났다만 낼부터 김 구장네 뒷산 벌목이 시작된다는구나. 재목감 다루는 사람은 한 사이 삼 전씩이란다! 삯품으루는 하루 일 원 이십 전이구…… 허니, 사이 풀이를 한다구 친다면 하루 이 원이야 못 허겠니?”
“벌목을 하긴 해두 모두 서울루 가져가지 여기선 팔두 사두 못한대요.”
중식이가 신푸장한 듯이 말한다.
문 서방은 담배를 담다 말고 연성 허리를 잡으며,
“사람 사는 게 다 그러니라. 우리네 농군은 서울 사람한테 쌀, 나무 대줘 먹구살구, 또 대처(도회) 사람들은 옷감이구, 성냥이구, 고무신이구, 이런 걸 만들어서 우리넬 주구. 너들은 가끔 학교 못 다닌 걸 한하지만 공불 못 했으믄 대수냐. 우리네 같은 무식꾼두 더러 있어야 세상 사람들이 쌀밥을 먹지. 그래, 모두 공부만 했어봐라. 제가끔 공부했다구 면 서기가 됩네, 조합엘 다닙네 해노면 농사질 사람은 없잖냐? 면 서기나 단긴다구 우리네 농군은 발때꼽만큼두 안 알어주지만. 네들 봐라, 정말 도저한 사람들은 안 그러니라. 군수 같은 양반들두 우리네 능군을 여간 소중히 여기는 게 아니야. 올부터 벼 한 섬에 오 원씩 장려금을 준다잖든? 그게 다 그런 게니라…….”
문 서방은 기운이 버쩍 나는지 성냥을 허들겁스럽게 드윽 그어 담배에 불을 붙인다.
중식 이도 행결¹⁴ 기운이 났다.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자기는 아무 쓸데도 없는 식충이거니쯤만 생각해오던 그로서도 어쩐지 어깨가 우쭐해지는 것 같았다.
이쁜이도 행결 가볍게 몸을 일으키었다.
“아버지, 그럼 밥을 볶을까요?”
“거 그러렴. 헌데 밥은 있니?”
“밥은 많아요.”
“그럼 됐지, 뭐. 김치나 숭덩숭덩 썰어 넣고 깨소굼이나 치구 해서 들들 볶아서 좀 먹자꾸나……”
“덕준네가 꿔 갔던 참기름두 아까 가져왔어요. 무나물도 좀 있구요…….”
“허, 그건 과하구나. 그래, 어서 가 좀 맛있게 볶아 오너라, 나두 좀 후출하구나.”
“네 ―”
가냘픈 대답을 하며 밖으로 나가더니 이쁜이는 문을 닫을 줄도 모르고 소리를 친다.
“아규! 어쩌믄! 그양 별이 총총 났네!”
“누나가 뭘 알어! 내가 봐야 정말 별인지 아닌지 알지”
하고 중식이도 따라 일어서 나간다.
“낼 이 원 돈은 떼논 당상이로구나…….”
문 서방은 흐믓해서 혼자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끝-
2016년 6월 23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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