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연합뉴스
신세계그룹 이명희 회장과 아들 정용진 부회장이 남매 재벌인 CJ그룹 이재현 회장과 유사한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이들은 모두 범삼성가다.
CJ 이재현 회장의 아버지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과 신세계 이명희 회장은 고 이병철 삼성그룹회장의 아들 딸이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는 형제자매간이다. 정용진 부회장과 이재현 회장은 이종사촌 사이다.
5일 사정당국자에 따르면 검찰은 신세계그룹 이명희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 등 총수 일가의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해 기초조사를 마치고 곧 본격적인 수사착수 여부를 결정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금융정보분석원(FIU)은 지난해 신세계 법인 당좌계좌에서 발행된 수표가 현금화돼 그룹 총수 일가의 계좌로 입금된 사실을 파악해 관련 자료를 검찰에 넘겼다.
현금화된 회삿돈은 모두 70억원 정도이며, 이 가운데 일부는 이명희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 등의 계좌에도 흘러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신세계측은 "법인카드로 결제할 수 없는 경조사비 같은 부분의 지출을 위해 70억원 규모의 현금을 만든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는 공교롭게도 이미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는 이재현 CJ회장의 혐의 내용 가운데 회삿돈 횡령 부분과 사실관계가 거의 비슷하다는 게 법조계의 반응이다.
정용진 부회장 등에게 입금된 돈이 구체적으로 얼마인 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70억원 전체가 횡령· 배임액으로 인정되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상 무기 또는 5 년이상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이득금액이 5억원만 넘어도 3 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이재현 회장의 경우 1심 법원 판결에 의해 인정된 횡령 액수는 약 603억원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4부는 지난해 2월 CJ 이재현 회장이 회삿돈 약 600억원을 빼돌려 개인용도로 사용하는 등 회사자금을 불법 영득한 혐의가 인정된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이 회장은 당시 징역 4년에 벌금 260억원의 형을 받았다.
1심 재판부는 ▲ 법인 이름이 아닌 개인 이름으로 지출된 점 ▲ 직원들 역시 '회장님으로부터 받은 돈'이라고 인식한 점 ▲ 개인재산과 함께 관리·결산 될 수 있는 점 ▲ 일반적으로 현금성 경비는 극히 예외적으로 발생하는데 긴급한 법인용 자금 충당을 위해 조성된 것이 아닌 점 ▲ 자금 조성 사실을 은폐한 점 등을 유죄판결의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항소심은 이 부분에 대해 공소시효 만료와 증거불충분으로 무죄판결했다. 곧 있을 대법원 판결에서도 이 부분의 유무죄 여부가 주요 쟁점으로 될 전망이다.
이 회장은 공판에서 "현금성 경비라는 성격 때문에 증빙자료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지만 업무와 관련된 비용으로 지출했다"고 주장했다. 신세계측의 해명과 비슷한 반박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은 여타 재벌 총수 등의 비자금 사건에서도 빼돌린 돈이 '개인재산과 함께 관리·결산 됐는 지 여부'를 주요한 포인트로 본다.
형법상 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그 반환을 거부할 때' 성립하는데, 회삿돈을 개인계좌에 입금해 혼입하는 것 자체가 횡령의 고의를 드러낸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재현 회장 사례에서도 역시 이 부분이 유죄 판결의 근거 중 하나로 제시됐다.
FIU 지적대로라면 신세계 이명희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도 이 점에서는 CJ 케이스와 다를 바가 거의 없다. 신세계 총수 일가의 개인 계좌로 회삿돈이 입금된 것이 사실이라면 그 자체로 횡령죄의 구성요건은 일단 충족되는 셈이다.
입금 이후 지출 내용은 법적으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게 법조계 의견이다. 설사 그 돈을 직원 경조사비나 회식비 등 공적 성격이 있는 용도로 주로 썼다고 해도 이미 횡령죄는 성립했고 다만 양형에서만 참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법조계 인사는 "만일 알려진 것이 모두 사실이고 검찰이 공정한 수사를 한다면 정용진 부회장을 비롯한 신세계 총수 일가는 유죄판결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