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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하나님의 복음
강사:나용화목사(교수)
♠서론
▶롬 1:2-4과 고전 15:1-4에 의하면, 하나님의 복음은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자손인 예수님이 여자의 후손으로 때가 차서 태어나 성경대로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어 속죄 제물이 되신 것과, 성결의 영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 승천하여 하늘 지성소 곧,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영광과 권능으로 충만하여 대제사장, 곧 중보자로 계신 것이다.
그의 죽으심과 부활이 복음의 핵심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의 삶의 단계들, 곧 그의 탄생, 순종의 행위, 십자가에 못 박힘, 죽으심, 무덤에 묻히심, 지옥에 내려 가심과, 그의 부활 승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심, 그리고 장차 있게 될 그의 재림 등이 전체적으로 하나님의 복음이다.
하나님의 복음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에(롬 1:16),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이요(고전 1:30), 구원자이시며(벧후 1:1), 그의 생애 또한 구원이다(히 5:8-9).
1.그의 탄생이 복음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때가 차서 여자에게 나신 것(갈 4:4)은 창 3:15의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이다. 이 성취는 룻 4:18-22과 마 1:1-5에 보면, 베레스의 족보에 따른 것인 바, 다말과 라합과 룻 등 여자의 후손으로 나신 분이 곧 다윗의 자손인 예수님이시다.
이 여자의 후손이요, 다윗의 자손인 예수님은 나실 때부터 율법의 저주 아래에서 태어나 우리를 그 저주에서 속량하셨기에(갈 4:5), 그의 탄생이 복음이다. 한편, 그의 탄생은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성전으로 거하신 사건이기에 복음이다(요 1:14).
2.그의 순종의 행위가 복음이다.
▶예수님은 그의 생애 전 기간을 통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다 지켜 순종하셨을 뿐 아니라(계율적 순종, preceptive obedience)(마 5:17-18; 요 19:30),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의 형벌을 받아 죽기까지 순종하셨다(형벌적 순종, penal obedience)(빌 2:8).
이로써 하나님의 의를 획득하여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히 5:8-9). 그의 순종의 행위는 첫째 아담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은 원죄의 전가를 말소시키고, 대신 그를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의를 전가했기 때문에(롬 5:18-19) 그의 순종의 행위가 복음이다.
3.그의 재판 받으심이 복음이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의 대요리문답에 의하면, 예수님은 가룟 유다에게 배반당하고, 제자들에게 버림을 당하며, 세상에게 조롱과 멸시와 미움을 당하시고, 빌라도에게 정죄를 당하심으로써, 자신을 낮추셨다(69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으셨으나, 세상에 사는 동안에 멸시와 조롱을 당하시고, 세상의 재판관에게 마침내 재판을 통해 정죄 되신 것은 우리가 당해야 하는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으로부터 우리를 자유 하게 하기 위함이었다(38문답).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히 4:15), 재판을 받을 이유도, 심판과 정죄를 당할 이유가 전혀 없으셨으나, 범죄자로 취급 당하셨다(사 53:12; 고후 5:21; 롬 8:3). 그리고 죄인 된 우리들의 허물과 죄악을 예수님에게 담당시키고자 아버지 하나님은 예수님이 빌라도의 세상 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하셨다(사 53:8; 벧전 2:24).
그런 까닭에,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심판이나(요 3:18) 정죄가 없기 때문에(롬 8:1), 그분의 재판 받으심이 복음이다.
4.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이 복음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죄인된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와 진노를 친히 담당하여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결정적으로 속량해 주셨다(갈 3:13; 벧전 2:24). 또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우리를 값주고 사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되게 하셨고(행 20:28; 고전 6:20), 그의 언약의 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과 권세를 얻게 하셨다(고전 11:25; 고후 6:16-18).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서 흘린 그 피로 우리의 죄의 오염을 씻으셨다(히 9:14).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오히려 사탄 마귀를 파멸시키고 승리하셨다(골 2:15). 그러기 때문에, 그가 십자가 못 박힌 것이 복음이다.
5.그의 죽음이 복음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속죄 제물이 되셔야 했기에, 죽임을 당해야 했다(마 16:21). 그의 죽음이 죄에 대한 배상이 되었고(히 9:12, 26-28), 그의 죽음으로 새 언약이 효력을 발생하게 되었다(히 9:15-17). 그래서 그의 죽음은 우리가 하나님의 하늘 지성소의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는 길이 되었다(히 10:19-20; 참고, 요 14:6).
또한, 그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으로 우리도 그와 함께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께 대해 살게 하셨다(롬 6:10-11). 이 같은 까닭에, 그의 죽음이 복음이다.
6.그가 무덤에 묻히심이 복음이다.
▶무덤에 묻히신 것은 그의 죽음을 입증하는데 필요했다(마 27:57-61). 무덤은 죽음을 입증함으로써, 그의 언약의 효력이 발생한다(참고,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50문답). (참조, 히 9:15-17). 그러기에, 예수님이 죽으신 후 무덤에 묻히신 것이 복음이다.
7.그가 지옥에 내려가심이 복음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신 후 제 3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기까지 사망의 권세 아래 있었는데, 이를 가리켜 ‘지옥 강하’(‘지옥에 내려가심’)라고 한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8장 4항: 대요리 50문답)(참고, 행 2:23-24). 그가 죽으신 후 지옥에 내려가신 것은 지옥에 있는 죄인들과 악인들의 영들에게 장차 있을 심판을 선포하시되, 사망의 고통과 지옥의 어두움의 공포를 우리 대신 당하심으로써 우리를 그 고통과 공포로부터 해방하시기 위함이었다. 이런 까닭에, 예수님께서 지옥에 내려가신 것이 복음이다.
8.그의 높아지심의 삶의 단계들, 곧 부활, 승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심과 재림 등이 복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승귀’)의 삶의 단계들은 그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제 3일에 다시 살아나신 것(‘부활’)과 하늘로 올라가신 것(‘승천’)과 하나님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계신 것과 마지막 날에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는 것 등이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소요리 제28문답).
▶그가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죽음을 이기셨고, 그가 획득하신 의를 우리에게 전가하시며(롬 4:25; 5:19; 고후 5:21), 그의 부활이 우리의 복된 부활의 확실한 보증이 되었다(롬 6:4,8; 고전 15:20-23).
그의 승천은 우리가 장차 하늘의 지성소에 들어가 은혜의 보좌 앞에 서 있게 될 소망을 튼튼하게 해줄 뿐 아니라(히 6:19-20), 그 보좌 우편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대언자 곧 중보자로 계심을 알게 해준다(히 7:24-25).
이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우리의 대언자로 앉아 계셔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되, 우리들을 대적하는 모든 고소에 대답해 주시고(롬 8:34), 우리가 날마다 실수함에도 불구하고 은혜의 보좌로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게 하며(히 10:22), 우리의 몸과 행한 일들이 하나님이 앞에 기쁘게 받아드려지게 하신다(고전 3:8; 15:58). (참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대요리 54, 55문답). 또한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는 예수님이 성령을 보내시고 또한 성령의 은사들을 부어주신다(행 2:33; 고전 12:11). (참고,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51문답).
마지막 날에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어, 악인들은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녀들은 영생으로 부활하여 하늘의 기쁨과 영광을 누리게 하신다(마 25:46). 또한 그가 온 우주 만물을 새롭게 하시고 언약을 최종적으로 성취하시며, 죄와 사망과 사탄에 대한 최종적 승리가 완성된다(계 21:1-7; 고전 15:26).
♠맺는말
▶복음을 아는 자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빌 1:27),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과 동행해야 한다(마 16:24; 눅 9:23).
(The end)
♠ 녹취 자료 ♠ |
♠서론
▶우리 3부 예배 때 박 목사님이 말씀하셨듯이 긴급하게 우리가 기도할 제목이 2개 있다고 했잖아요?
하나는 방글라데시이고, 하나는 체코다. 이건 통역 안 해도 될 것 같다. 강의 시작 할 때 통역을 하기로 하고, 우선 여러분들이 방글라데시에 살람 목사가 어떤 목사냐면 방글라데시에서 아주 유명한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다. 일반 대학을 졸업하고 목사가 되었기 때문에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가 전에 보면 한국에서도 제 나이 때만 해도 일반 대학 졸업하고 신학 한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광주 전남 권에서는 저와 누구하고 두 사람 밖에 없었다. 그렇게 일반 대학 졸업하고 목사 된 사람이 부족한데, 없는데, 이 친구가 지금 방글라데시에서 목사가 되었기 때문에 장로 교단을 창립하고 있다. 장로 교단을 세울 만큼 영향이 있는 친구거든요? 그리고 이제 RUTC 같은 건물도 잘 지어놓고요. 또 아주 똑똑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와서 사는 게 8년 간 살았다. 그래서 한국어를 굉장히 잘한다. 제가 쓴 책들을 한 3-4권정도 번역을 방글라데시어로 번역을 할 만큼 번역을 잘하고 모든 면에서 굉장히 뛰어난 친구다. 그런데 아마 집안들이 좀 괜찮아서 구청장 정도의, 자치 장에, 선거에 나왔다가 떨어지니까 화살을 살람 목사에게 돌리고 있는 모양인데, 참 어려운 것 같다. 여러분들이 기도를 같이 했으면 좋겠고, 또 하나 이제 체코에 김요한 선교사님은 코로나 때문에 지금 엄청 위중한 것 같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이 시간에 그 두 목사님과 선교사님 위해서 기도하고 강의를 시작하겠다. 우리의 기도는 항상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거든요? 그래서 같이 한 번 기도합시다.
(기도) 좋으신 아버지, 주께서 우리 방글라데시의 살람 목사님을 기억하시고, 두려움 없게 하시고, 하나님이 피난처가 되시고, 산성이 되어 주시고, 또 날개가 되어 주셔서 귀한 아들을 품어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귀한 아들을 통해서 방글라데시와 또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여러 곳에서 아버지 하나님, 귀한 사역이 일어나고 있는데 주님 귀한 아들을 아버지 하나님이 붙잡아 주셔서 세계복음화 이루게 하시고 동남아 선교에 기둥이 되게 해주시기를 원합니다. 도와주시고 붙잡아주시고 영광 받아 주실 줄 믿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그 심령 속에 모든 두려움, 모든 위험으로부터의 지켜주셔서 귀한 아들이 정말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해주시고, 또 그와 함께 동역하는 우리 정 선교사님을 아버지가 기억하시고 함께 합심하여서 주님께 영광 돌리게 하옵소서. 체코에서 수고하는 우리 김요한 선교사 또 사모님을 기억하시고 저들이 코로나19에 감염 되어서 굉장히 어려움 가운데 있습니다. 주님께서 건강을 붙잡으시고 함께 하셔서 영광 받아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귀한 선교사님과 귀한 우리 살람 목사를 통해서 주님이 하시고자는 일을 이루어주시고, 세계복음화를 아버지가 이루어주시옵소서. 저들 가운데서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줄 주님께 감사하옵고 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의 짧은 기도 같지만 합심 기도는 항상 응답을 한다. 그래서 여러분, 선교사님을 위해서 기도하시면 응답도 되고 우리 자신들이 또 복을 받는다. 기도의 은혜를 받으니까 꼭 해주시면 좋겠다.
▶이 시간에 이제 “하나님의 복음”에 대해서 우리가 함께 공부하겠다.
1)복음의 깊은 지식- 신앙 성장
▶우리가 복음에 대한 깊은 지식이 있으면 여기에 신앙이 생겨나요. 우리의 신앙은 복음을 알 때 그 신앙이 깊어지는 것이지, 복음 모르면 신앙이 형식적이다. 여러분들은 복음에 대해서 많이 들으셨고, 복음에 대해서 확신을 갖고 있다고 저는 생각한다. 그러나 신학교에서, 강의실에서 가르쳐보면 배워야 할 것이 많다, 아직도 배워야 될 부분이 있다고 저는 느낀다. 신학생들의 경우도 복음을 더 배워야 한다고 생각 들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공부를 하면 좋겠다 싶어서 하나님의 복음을 여러분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2)구원의 확실성, 확신
▶롬8장을 제가 강의할 때에 말씀 드린 것이지만, 복음의 깊은 지식이 있으면 구원의 확실성을 우리가 알게 된다. 구원이 확실하다, 이 얘기는 메모지에 없다. 구원의 확실성을 알게 되면 구원의 확신이 생긴다.
3)하나님의 자녀→ 복음의 증인(성화, 영화)
▶이 확신이 생기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과 권세를 우리가 잘 누릴 수가 있다. 그런데 이 자녀의 신분과 권세를 누림으로 해서 우리가 어떻게 되냐면 사실은 성화, 거룩해지고 영화롭게 된다. 그리고 이제 이런 자녀의 권세를 잘 누릴 때에 복음의 증인 노릇을 할 수 있다. 우리가 복음을 알지 못하고서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있다, 그건 아니잖아요?
4)롬1:2-4, 고전15:1-4
▶지금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그리고 설명하는 복음들을 제가 옆에서 들어보면 너무 아직은 좀 아니다. 얕다. 일단 우리가 하나님의 복음을 알려고 하면 롬1:2-4을 잘 알아야 되고, 또 고전15:1-4을 잘 알아야 된다.
(1)롬1:2-4(하나님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그러면 여러분들이 롬1:2-4을 보면 하나님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다. 그렇게 결론되어 있다. 하나님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다. 그러면 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복음인가?
①육체를 따라서는 다윗의 자손- 거기에 보면 육체를 따라서는 다윗의 자손이라고 그런다.
②성결의 영을 따라서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고 성결의 영으로 따라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그런다.
▶로마서를 저한테 공부하신 분들은 설명을 들었지만 조금 여기서 더 설명을 드리겠다. 이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는 이 말은 여러분들이 룻4:18-22과 마1:3-6로 근거해서 이걸(다윗의 자손) 이해해야 된다. 룻4장에 보면 베레스(Perez)의 족보가 나온다. 베레스(Perez)는 어떤 사람이냐면 창38장에 보면 유다가 다말에게서 난 쌍둥이 중에 한 아들이 베레스(Perez)다. 이 베레스(Perez)의 족보에서 다윗이 나온다. 그것이 룻4장이다. 그런데 이 룻4장을 배경으로 해서 마1장에서 마태가 소개하는 것을 보면 다말을 소개하고, 라합을 소개하고, 룻을 소개한다. 다말, 라합, 룻하고 다윗의 자손, 이런다. 그러면 이 사람들이 다 여자들이잖아요? 그러면 여자의 후손, 여자의 후손으로서의 다윗의 자손이다. 여러분들이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면 왕의 자손, 왕권의 자손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게 아니다. 육체를 따라서는 다윗의 자손이라 할 때는 왕권과 관계가 없다. 여자의 후손으로서의 다윗의 자손이다.
▶그러면 여러분, 여자의 후손 그러면 성경 구절 뭐가 생각나는 것이죠? 창3:15, 여자의 후손이다. 그러면 여자의 후손, 창3:15에서는 어떤 존재냐고 하면 사탄에게 발꿈치가 상하고,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자이잖아요? 즉, 십자가에서 희생 제물 되신 분이 바로 여자의 후손이다. 맞죠? 그래서 육체를 따라서 자손의 자손이라 할 때는 희생 제물 되신, 여자의 후손으로서의 예수다. 그 분이 하나님의 복음이다. 육체를 따라서는 다윗의 자손으로서 십자가에서 희생 제물 되신 그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복음이란 말이다. 그런데 제가 자주 말씀드리는데 골2:15에 보면 십자가로 사탄 마귀를 결박하고 승리하신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희생 제물인데 창3:15에 있는 대로 사탄 마귀를 이기신 것이다. 죄를 이긴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복음인 것이다.
▶그 다음에 성결의 영을 따라서는 이 부분을 좀 우리가 이해를 깊이 생각해야 된다. 이 성결의 영이라고 할 때는 성령이 아니다. 주의하셔야 된다. 성령을 가르키지 않는다. 성결의 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러면 왜 성결의 영이라고 하고 예수님을 얘기하는가? 여기에 하나님의 아들이죠? 하나님의 아들의 위치가 어디에 어디냐면 하나님 보좌 우편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있는 자리는 하나님 보좌 우편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이 보좌 우편에 계신 분은 바로 누구냐면 대제사장이면서 우리의 중보자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대제사장이자 우리의 중보자이시기 때문에 그 분이 하나님의 복음이다. 그러면 대제사장일 경우를 생각하면 대제사장은 구약에서 보면 먼저 자기 자신을 물과 피로 성결케 해야 된다. 지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대제사장이 먼저 자기를 피와 물로 깨끗하게 하고서 들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 영으로서 자기의 몸을 피와 성령으로 깨끗하게 하셔야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우리의 중보자로 서 계시는 것이다. 따라서 이 부분을 보면 하나님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는 육체를 따라서 말하면 다윗의 자손, 여자의 후손이다. 희생 제물 되신다. 성결의 영을 따라서 말하면 하나님의 아들로서 대제사장, 중보자다. 구약에서 희생 제물을 드림으로 죄 문제가 끝나는 것 아니다. 희생 제물을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서 대제사장이 들어가서 피를 뿌리고 하나님의 죄 용서를 선포 받아야 죄 문제가 해결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가 하나님의 복음이신 것은 그 분이 육체를 따라서는 희생 제물이 되셨고, 성결의 영으로서는 우리의 대제사장, 중보자가 되셨기에 하나님의 복음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 승천해서 하나님의 보좌에 나아계시지 않고, 하나님 보좌 우편 옆에 계시지 아니하면 죄 문제 해결 안 된다.
▶지금 비대면 예배를 온라인으로 드리고 있잖아요? 그러면 예배를 드린 것처럼 보이죠? 사실은 그건 예배 아니다. 예배 아니다! 저는 절대 반대한다. 예배는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는 자와 말씀을 듣는 자가 얼굴과 얼굴을 대해서 함께 예배를 드려야 예배다. 특히 여러분들이 행2장을 보면 말씀을 받고나서 기도하고 교제를 한다. 식사 교제다. 지금 우리가 식사 교제 못하고 있잖아요? 사실은 식사 교제도 예배의 한 부분이다.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좀 발전 된 게 성찬식이거든요? 여러분, 식사 교제가 엄청 중요하다. 식당에서 수고하시는 우리 권사님들, 집사님들의 수고가 사실 예배를 돕는 것이거든요? 식사 준비 할 때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열심히 하시라. 또 식사를 풍성하게 준비하셔야 된다. 그냥 어떤 교회에 보면, 좀 큰 교회들 보면 국수나 삶아 먹고 끝나거든요? 그러면 못 쓴다. 저는 반대한다. 점심 좀 넉넉하게, 맛있게, 풍성하게, 우리의 교제가 풍성해야 예배가 풍성하잖아요? 생명이 풍성하잖아요?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번제단에서 희생 제물로서 죽으심으로 해서 죄 문제 끝나는 것 아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얼굴과 얼굴을 서로 마주하고 중보 기도함으로 죄 문제가 해결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모세와 말씀을 나눌 때 얼굴과 얼굴을 대하면서 말씀을 나눴잖아요?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복음이신 것은 희생 제물 됨과 동시에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우리의 대제사장, 중보자가 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음이다. 십자가에서 죽은 것으로 복음이 다 되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구원이 성취 되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우리에게 대제사장으로서 중보기도 하실 때에 구원이 성취가 된다. 그래서 우리 성도인 경우도 우리가 십자가만 지는 것으로 성도의 삶을 사는 게 아니다. 우리도 중보기도를 해야 성도로서의 사명을 다 하는 것이다. 중보기도는 우리에게 주어 진 엄청난 특권이다. 중보기도 함으로 구원을 함께 누린다. 중보기도 하지 않는 성도의 삶은 구원과 관계가 없다. 좀 심하게 말하면 아무리 그리스도 십자가의 희생 사역을 믿는다고 해도 중보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그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도 아니다. 중보기도가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거든요? 복음의 권세거든요? 여러분, 오늘 오후에 창12장 가지고 목사님이 아브라함을 얘기했잖아요? 아브라함이 왜 믿음의 조상이에요? 중보기도의 사람이었거든요? 아브라함의 생애를 보시라. 중보기도를 얼마나 많이 하는가, 소돔 고모라를 위한 중보기도, 또 아비멜렉에 대한 중보기도, 롯을 위한 중보기도, 중보기도의 사람이다. 그렇게 해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고 언약을 이루어 가거든요?
(2)고전15:1-4- 자, 여기 고전15:1-4에서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주로 언급한다.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사셨다.” 죽으심을 중심으로 해서 우리가 이걸 가르켜서 낮아지심, 낮아지심의 단계라고 그런다. 또 부활을 중심으로 해서 높아지심의 단계라고 그런다. 이 낮아지심의 단계의 삶과 높아지심의 단계의 삶을 통해서 복음이 되는 것이다. 여러분 이제 유인물에 있는 대로 낮아지심의 단계인 경우는 죽으심이지만 탄생, 순종, 십자가에 못 박히고, 묻히시고, 지옥에 내려가시고, 그런 단계들이 다 낮아지심의 삶에 해당 된다. 또 높아지심의 단계에서는 부활도 있고, 승천도 있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심, 재림, 이런 단계들이 바로 높아지심의 단계로서 복음이다.
▶본론- 그러면 이제 우선 낮아지심의 단계와 관련해서 탄생, 순종, 재판 받으심, 이런 것들이 왜 복음인가를 하나하나 말씀을 드리겠다. 유인물을 잘 보시라.
1.율법의 저주 아래에서 태어나심
▶거기에 보면 갈4:4-5이 소개 되어 있다. 예수님의 탄생은 때가 차서, 여자에게서 나셨기 때문에 복음이다. “때가 차서, 여자에게서” 창3:15대로, 여자에게서 나셨다. 그렇게 해서 창3:15,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한 것이죠. 그리고 앞서 설명했듯이 룻4:18과 마1:1-5에 그 족보들을 보면서 “아, 다윗의 자손으로서 오셨구나. 여자의 후손으로 오셨구나. 예수님이” 그런데 여자에게서 나실 때에 보면 율법의 저주 아래에서 태어나셨다고 그런다. 태어나실 때부터 율법의 저주 아래에, 이미 저주 아래에서 태어나셨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저주만 받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고 나실 때부터 이미 저주를 받고 태어난다. 왜 율법의 저주 아래에서 태어나셨는가? 갈4:5에 보면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기 위해서라고 그런다.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서, 자유와 해방을 누리게 하시기 위해서, 태어나실 때부터 율법의 저주 아래에서 태어나신 것이다. 그래서 그의 출생이 창3:15을 성취한 것이기 때문에 복음이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그렇게만 여러분이 찬송하고 끝나는 것 아니다. 갈4:4-5을 알고 탄생을 얘기해야 된다. 우리는 롬8:2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했다.” 그렇게 알고 있다. 성령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켜줄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율법의 저주 아래에 태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또 한 편 예수님의 탄생은 요1:14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성전으로 거하신 사건이기 때문에 복음이다. 여러분들이 요1:14을 이해하실 때에 성전이 우리 가운데 임했다는 것을 아시고 읽으셔야 된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예루살렘, 웅장한 성전과 초라한 몸으로서의 예수의 성전 중 어느 것이 더 매력적이에요? 우리가 또 이제 이렇게 생각해보시라. 그냥 우리 교회, 예배당 말고 어떤 옆에 있는 벧엘 교회 아니면 다른 어떤 큰 교회 보면 예배당의 건물 보면 화려하고 대단하잖아요? 서울 서초동에 있는 사랑의 교회, 또 옛날 미국 LA에 있었던 Crystal Church, 어마어마했잖아요? 또 로마에 있는 교황청, 베드로 성당이 어마어마하잖아요? 어마어마한 성전과 육체로 오신 예수님, 육체와 비교하면 어떠하겠어요? 사람들이 어디에 더 관심 가겠어요? 베드로 성당 아니면 Crystal Church, 사랑의 교회의 영광이 대단하다고 그럴 것 아니에요? 나사렛 사람 예수, 사53장을 보면 몰골이 형편이 없잖아요? 멋진 데가 없잖아요?
▶제가 예일교회 와서 저에게 인사를 저에게 90도로 깍듯이 하신 분이 박 권사님이시더라. 나는 저 권사님 잘 모른다. 그래도 굉장히 아름답게, 곱게, 나이를 잡수고 계시는데 노인네는 노인네잖아요? 걸음도 느리게 걸으시고, 그런데 이 권사님이 사실은 우리 예일교회에서 참 모범적인 성전 중에 하나다. 그러면 여러분, 건물로서의 성전과 박 권사님이라고 하는 이 여자 권사님으로서의 성전하고 보면 어디에 더 영광이 충만해요? 건물처럼 보이죠? 그런데 여러분들이 요1:14을 보면 육체로 오신 예수님을 두고, 그 성전 되신 예수님을 보고 은혜와 진리와 영광이 충만하다고 그런다. 그래서 요2장에 보면 예수님의 육체를 두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그런다. 또 고전, 고후 3장, 6장을 보면 우리를 두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그런다. 우리가 육신을 보면 초라하기가 짝이 없다.
▶저를 봐도 속안 머리가 없잖아요? 우리 집사님이 그런다. 속안 머리가 없다고 한다. 겨우 주변머리만 있다고 그런다. 그것도 그냥 하얀 머리밖에 없다. 그래도 하나님의 성전이다. 왜? 예수님의 피로 저를 사셨고, 성령으로 인 쳐주시고, 성령을 내 안에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이다. 여러분, 예수의 탄생이 왜 복음이냐? 한편으로는 율법의 저주 아래에 태어나셨기 때문이고, 다른 한 편으로는 태어나셔서 성전 되셨기 때문에 복음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까지도 성전 되게 하셨기 때문에 그의 탄생이 복음이다. 어마어마한 것이다. 우리가 육체를 따라 생각하면 굉장히 참 초라하기 짝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와 영광이 우리 위에 있다. 여러분들이 박 권사님을 보거나, 저를 보거나, 에스더 사모를 볼 때에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와 영광이 충만하다고 보셔야 된다. 제 속안 머리 없는 것만 보면 안 된다. 탄생이 왜 복음인지 아셨죠? 엄청 중요하다. 엄청 중요하다. 뜻이 엄청 깊다.
2.순종하심
▶그 다음 순종의 행위가 복음이다. 아담이 창3장에서 죄를 범할 때에 보면 한 번 죄를 범함으로 그 죄가 원죄가 된다. 한 번의 불순종으로 모든 인류가 다 죄인이 된다. 그래서 시51편에 보면 다윗이 고백할 때 내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뱃속에 있을 때부터 죄인이었고, 태어날 때도 죄인이었다고 그런다. 아담이 한 번의 불순종의 종으로 인해서 우리 모든 인류가 다 죄인 된다. 그런데 예수님은 한 번의 순종만이 아니고, 전 생애를 걸쳐서 순종함으로 해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한다. 롬5장에서 아담이 한 번의 불순종하고, 예수님의 한 번의 순종, 그렇게 비교를 한다. 그건 논리적인 구색을 맞추기 위한 것이고, 사실은 첫 째 아담은 한 번 불순종 했지만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은 전 생애를 걸쳐서 순종을 하시는데 그 순종의 결정적인 사건은 십자가다. 그런데 아담이 불순종할 때에 우선 보면 말씀에 불순종한다. 그 말씀에 불순종하기 때문에 어떤 게 오냐면 형벌이 따라온다. 그래서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은 순종 할 때에 말씀을 이루는 순종하고, 형벌을 다 받는 순종, 두 가지를 다 같이 해야 된다. 즉, 말씀을 지키는 순종도 해야 되고, 첫 째 아담이 안 지킴으로 해서 오는 형벌의 순종도 해야 된다.
▶그래서 요19:30에 다 이루었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 즉, 계율적(戒律的) 순종이라고 그런다. 그런데 빌2:8에서 죽기까지 순종할 때 할 때는 형벌과 진노의 저주, 형벌을 받는 순종이다. 형벌적(刑罰的)순종이라고 그런다. 이렇게 계율적 순종과 형벌적 순종을 통해서 순종하셨기 때문에 구원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말씀도 다 이루고, 순종하셨고, 형벌도 다 받아주셨기 때문에 그의 순종이 구원의 근원이 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을 지켜주시고, 형벌, 저주를 당하신 것이 우리에게는 복음인 것이다. 이렇게 순종이 복음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또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우리로 하여금 우리에게도 순종하라고 그런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 모든 진노와 저주를 당해주셨기 때문에 또 말씀을 다 이루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최선을 다 하면 된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최선을 다 하면 된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주의할 것이 예수님께서 다 순종하셨다, 해서 “나는 괜찮다. 순종 안 해도 괜찮다.” 이렇게 생각하면 큰일 난다. 그렇게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다. “예수님이 다 이루셨다! 그래서 나는 괜찮아!” 아니다. 예수님이 순종하신 것처럼 우리도 순종해야 된다. 예수님이 십자가 희생 제물 되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몸을 산 제물로 드려야 된다. 예수님이 십자가 지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의 십자가를 져야 된다.
3.재판 받으심
▶그 다음 재판 받으신 복음이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으신다. 거기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대요리 문답>이 59문답으로 되어 있는데 49문답이다. 수정하시라.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형벌을 대신 받으실 때에 먼저 재판을 받으신다. 왜 재판을 받으셨는가? 우리가 당해야 될 심판을 대신 받아주신 것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우리에게 심판과 정죄가 없다. 여러분들이 요3장을 보면 예수를 믿지 않는 자체가 심판이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체가 정죄다. 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멀리 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롬8:1에서 예수 안에 있으면 정죄도, 심판도 없다고 한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재판을 받아주셨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심판을 받아주셨다. 정죄를 당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빌라도의 법정에서 재판 받으신 것이 바로 복음이다.
4.십자가에 못 박히심
▶그 재판에 따라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다.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바로 복음이다. 이 부분, 이 내용은 여러분들이 잘 아신다. 못 박히심으로 의미가 2가지가 있다. 하나는 십자가에 달리진 자마다, 못 박힌 자마자 저주를 받은 자라고 했다. 갈3:13, 벧전2:24이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서 우리를 위해서 모든 저주와 진노를 결정적으로 당해주셨기 때문에 복음이다. 두 번째는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피를 흘리셨다. 그 흘린 피로 우리를 값 주고 사신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되게 한다.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과 권세를 얻게 한다. 또 그 흘린 피로 우리의 죄를 씻어준다. 또 십자가 못 박힘으로 사탄 마귀를 파멸시키고 승리한다. 이렇게 4가지다. 저주와 진노를 받고, 우리를 값 주고 사시고, 피로써 죄를 씻어주시고, 그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사탄 마귀를 파멸시키고,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복음이다. 할렐루야! 이걸 더 깊이 설명을 드려야 되지만 여러분들이 잘 이해를 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냥 간략하게 이만큼만 한다.
5.십자가에서 죽으심
▶자, 그 다음 죽음이 복음이다. 왜 죽음이 복음인가? 일단 속죄제물은 죽임을 당해야 제물이 되는 것이다. 죽지 않으면 제물이 될 수 없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죽음으로 해서 죄에 대한 배상을 하는 것이다. 죄 값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히9:15-17에 있는 대로 죽음이 있어야 언약이 효력을 발생한다.
▶좀 예를 들어서 삼성에 이건희 회장님이 아직 안 죽으셨잖아요? 안 죽으면 그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들이 자녀들에게 상속이 돼요, 안 돼요? 자녀들이 “아버지 이건희 회장의 그런 모든 재산을 내 것이다!” 주장할 수 있어요, 없어요? 안 된다. 죽어야 유산으로 상속이 된다. 유언이 효력을 발생한다. 그런 것처럼 예수님의 죽음이 있음으로 해서 언약이 효력을 발생한다. 언약은 일종의 유언과 같다. 그래서 영어로 언약이 New testament, Old testament 그러잖아요? 그게 유언이란 뜻이 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죽으심이 정말 복음인 이유가 또 있다. 예수님이 죽으실 때에 성소의 휘장이 갈라지잖아요? 성소의 휘장이 갈라진 것을 두고 육체의 죽음으로 비유를 한다. 그러면 성소의 휘장이 갈라짐으로 해서 어떤 일이 생겨나요?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사람이면 그 성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우리도 예수님의 뒤를 따라서 그의 죽으심 때문에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은 길인 것이다.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의 죽음은 죄에 대한 죽음이잖아요? 또 하나님께 대해서 살아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우리도 예수와 함께 죄에 대해 죽게 하시기 때문에 그의 죽음이 복음이라는 것이다. 롬6:10-11이다.
6.무덤에 묻히심
▶여섯째로 무덤에 묻히신 게 복음이다. 어떤 사람이 죽어도 무덤이 없으면 그 죽음이 입증이 안 된다. 사망과 실종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아세요? 사망과 실종, 어업 지도 선의 공무원이 지금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잖아요? 시신이 없잖아요? 시신이 없으면 무덤도 없거든요? 그러면 그 사람이 법적으로 사망으로 처리 되요, 아니면 실종으로 처리 되요? 아직은 사망 신고 못한다. 무덤이 없으면 죽음이 입증 안 된다. 옛날에 우리 광주 국회의원, 동구 국회의원 중에서 어떤 분이 이름 얼른 기억 안 나는데 괌으로 연수를 자기가 데리고 가서 비행기가 폭파되어서 떼죽음 당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비행기가 불에 확 타버렸기 때문에 시신이 남아 있지 않다. 전부 재가 되었다. 시신 수습을 못한다. 죽었어요, 안 죽었어요? 죽었다. 그런데 시신이 없다. 사망 선고를 못한다. 국회의원이 죽어서, 국회의원 보궐 선거를 해야 되는데 사망으로 선고를 못하기 때문에 보궐 선거 날짜를 못 잡는다. 어떻게 하는지 아세요? 재중에서 한 삽 퍼서 와서 그걸로 무덤을 만들었다. 무덤을 만드니까 사망 선고가 되었다. 보궐 선거 했다. 마찬가지 무덤이 없으면 죽음이 입증이 안 된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을 입증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무덤에 묻히신 것이다. 그래서 그가 무덤에 묻히신 것도 복음이다. 거기에 하이델베르크 요리 문답, 50문답으로 되어 있는데 40문답으로 바꿔주시라.
7.지옥에 내려가심
▶일곱 째, 지옥에 내려가신 게 복음이다. 우리 지금 사도신경 할 때 보면 지옥에 내려가심이 빠져 있다. 이건 정말 잘못 된 것이다. 우리 사도신경에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것을 넣어야 된다.
▶제가 몇 년 전에 우리 한국의 교회들이 진보, 보수 다 연합해서 사도신경을 재 번역한 일이 있다. 지금 찬송가 보면 새로 번역 된 사도신경이 있다. 그 번역할 때에 제가 석의였다. 모든 실무적인 책임을 맡고 했었거든요? 그래서 그 사도신경을 전부 마무리 번역해서 결론짓는 모임을 한 일이 있다. 그때 저와 몇 몇 신학자들이 지옥에 내려가시고를 넣어야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나이 먹은 목사님들이 몇 분 참석해서는 말도 안 된다고 하면서 반발을 엄청 한 것이다. 그래서 칼빈의 <기독교 강요>에도 지옥에 내려가심이 설명한 것도 있고, 우리 <웨스트민스터 고백서>에서도 다 진술 되어 있다. 한국교회가 정통적으로 뺏으니까 우리도 빼야 된다는 것이다. 아무튼 우리 선교사님들이 선교 정책상, 전략상 뺀 일이 있었거든요? 그러나 성경적으로나, 신학적으로나, 우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적 관점으로 보면 지옥에 내려가신 것을 넣게 되어 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사도신경 할 때에 지옥에 내려가시고를 넣고 고백한다. 또 제가 개척 설립한 오치애양 교회도 사도신경 고백할 때는 제가 번역한 것 같고 한다. 우리 장로교회는 헌법상으로 반드시 지옥에 내려가시고를 고백하게 되어 있다. 그러면 우리 나이 드신 목사님들이 지옥에 내려가시고를 반대하는 이유가 뭔가?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지옥에 내려갈 수 있느냐? 불신자들의 저주와 고통의 장소인 그 곳에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거기에 갈 수 있느냐?”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거룩한 분이 그 고통 속에 추악한 곳에 들어 갈 수 있느냐? 사탄이 왕 노릇하는 곳에 들어갈 수 있느냐?” 이것이다. 그러면 바꿔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저주의 죽음을 받았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저주의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었다. 왜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었어요? 우리를 대신해서 저주와 진노를 당한 것이잖아요? 그러면 예수님이 왜 지옥에 내려가셔야 되요? 우리가 당해야 될 지옥의 저주, 지옥의 진노, 지옥의 고통을 대신 당해주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지옥에 그런 모든 고통과 두려움을 당하지 않게 해주신 것이다. 그래서 지옥에 내려가신 것이 복음인 것이다. 정말 중요하다.
8.부활, 승천, 우편에 앉으심, 재림
▶끝으로 이제 높아지심의 단계, 8번이다. 부활, 승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 재림 등이 복음이다. 이 부분은 사실은 제가 다루기 안 하려고 그랬는데 그래도 조금 다뤄놓고 여러분들이 해야 오해가 없겠다 싶어서 다룬 것이다. 부활하심으로 죽음을 이기셨다. 또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부활에 확실한 보증이 되었다. 또 승천하심으로 해서 우리의 대언자, 중보자로 계시게 되었다. 또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심으로 우리의 대언자로서 중보기도 해주실 뿐만 아니라 모든 고소에 대해서 대답을 해주신다. 또 성령을 보내주시고 성령의 은사를 우리에게 주신다. 또 재림하실 때에 우리를 생명의 부활로 나타나도록 도와주신다. 또 새 하늘, 새 땅이 열리게 해주신다. 그의 부활, 승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 재림 등이 복음이다.
♠결론- 구원의 목표
▶여기서 한 가지 여러분들에게 꼭 좀 또 한 번 강조 드리고 싶은 게 있다. 가끔 제가 들어보면 어떤 분들이 말하기를 보면 “아,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타락 이전에 첫 째 아담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담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분이 있다. “또 구원의 목표는 우리가 에덴동산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의 목적이 바로 첫 째 아담과 거기에 있었던 에덴동산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건 말도 안 되는 비성경적인 얘기다. 주의하셔야 된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새 하늘과 새 땅이다. 옛날 에덴동산 아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의 나라의 예표에 불과하다. 실체인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는데 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지 않고 예표, 그림자와 같은 에덴동산으로 돌아가려고 하는가?
▶우리의 구원의 목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하고, 첫 째 아담과 비교가 되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과 권세를 누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의 그 분의 신분과 권세를 다시 함께 누리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의 목표이지, 첫 째 아담이 목표가 아니다. 고전15:45을 보면 첫 째 아담은 하나의 피조물, 생물에 불과하다. 그러나 둘 째 아담이신 예수님은 생명을 주시는 영이다. 생명을 주는 영이신 그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의 구원의 목표이지, 첫 째 아담이 아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난 것은 재창조이지, 옛날 창조로 돌아가는 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지금 누린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그 형상을 본 받는다. 그것이 우리의 구원의 목표다. 이 구원을 누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복음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이 복음은 오늘 창12장에 아브라함과 관련해서 보면 우리 삶의 방향을 바꿔주는 것이 복음이다. 우리의 삶의 가치관을 바꿔주는 것이 바로 복음이다.
▶제가 대학 2학년 때 예수를 믿었다. 복음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제 인생이 확 바뀌었다. 가치관이 바뀌었다. 말씀이 임하니까 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과 권세가 어떤 것인지를 알면서 너무너무 기쁘고 행복했다.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좋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복음을 열심히 전했다. 대학 다닐 때 작은 목사 노릇을 했다. 친구들이 “어이, 나 목사” 이랬다. 또 여학생들이 제 옆에 와서 성경 공부를 배워도 연애감도 가질 수도 없었다. 그래서 저는 연애를 못했다. 여학생들이 옆으로 못 오니까, 그렇게 여러분, 삶의 방향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어 지니까, 그 복음이 주신 능력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그런데 복음을 받고 나면 성경 전체적인 말씀들이 다 그냥 내게 임한다. 성경 읽을 때마다 그냥 은혜가 넘친다.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는다. 그리고 복음에 합당한 생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된다.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있다. 삶이 없는 증거는 증거가 아니다. 복음으로 살지 아니하면 복음을 전한다, 그러면 사람들 안 받아드린다. 우리가 온유와 겸손함으로 이웃을 축복하며 복음을 따라 살 때에 복음의 좋은 증인으로 살 수가 있다. “복음으로 삶의 방향을 바꿉시다. 복음으로 삶의 가치관을 바꿉시다. 복음에 합당한 삶을 통해서 복음의 증인이 됩시다. 아멘!” 기도하고 마친다.
(기도)
좋으신 아버지, 감사합니다. 복음을 깊이 알고,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서, 복음의 귀한 증인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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