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지켜본 25년의 고스란한 삶
그 자체가 시였다.
그에 동안거 동안 썼던 시를 흔쾌히
올려 보기로 했다
시인은 시로 말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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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회원님께서도 흔쾌히 읽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甲午와 乙未 사이 詩를 게재하며
高峴
지난 해는 갑오년이었다
백이십년 전 갑오년은 조선이라는 나라의 역사에 큰 물고를 소용돌이 치게 된 계기가 된 해였다
이른바 갑오 농민항쟁으로 외세가 개입되고 나라가 망하는 빌미가 되고 그로부터 근세에 민족 최대의 암혹기인 일제 삼십육년의 치욕이 시작되었다
마무리되지 않은 미완의 갑오 농민항쟁이 일제치하에 묻혀 가고 어거리 세월이 흘러 해방을 맞았다
그러나 역사는 우리 민족의 뜻하고는 전혀 다른 상황을 준비하고 있었으니 전혀 생소한 삼팔선이 생기고 우리민족은 아무런 준비없이 이데올기의 낮선 덫에 갇혀 나라가 남북으로 분단되고 언어도 생소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대립되고 그 혼란의 와중에 육이오란 동족상잔의 최대의 비극을 맞았다
그 신산한 세월 전쟁은 잠시 호흡을 멈추고 뜨거운 화로를 가슴에 앉은채 휴전이 되었다
이듬해 1954년 갑오 농민 항쟁이 환갑을 맞는 해에 나는 태어났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어정쩡 하게 시를 처음 만나고 시를 쓰며 지나온지 오십년이 됐고 다시 맞은 갑오년
갑오년 가을을 지나며 세속적 풍진(風塵)에 벗어나 홀로 있는 시간을 통해 내 자신의 뒷 모습을 살펴보기로 뭔가를 하고 싶은 갈망에 초조해 했다
그러던 가을 옥탑방에서 찬이슬 머금은 달을 보며
182년 만에 돌아온다는 갑오년 윤 구월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로 나를 채찍하는 매를 들었다
참으로 많은 세월이 흘렀고 지나온 내 모습은 누추해져 있고 텅 비어 있었다
금강경에 이르는 말로 '여몽환포환'이니 꿈과 다를바가 없다 그 순간 앞으로 살아갈 시간이 얼마남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문득 내 육신에 죽음이 육체의 어느 한 구석에 자라고 있고 유한적 삶을 살고 있는 인간에게 생멸이 되풀이 되고 나아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나는 이제 시를 통하여 마음속에 있는 집착과 욕망을 버리며 윤구월 홀연히 두시면 깨어나 참선을 시작으로 하루 한편 시 쓰기를 시작했다
윤구월 한달동안 삼십편의 졸시를 회향했다
그리고 갑오년 가을이 깊었다
스님들이 겨울 삼개윌 동안거 정진 수행하듯 나는
윤구윌 시를 쓴 계기로 나는 또 다시 나를 거친 시의 바다에 백척간두에 진일보 하여 손을 놓았다
구십일 동안 구십편 '詩'를 하루 한편 씩 쓰기로 해서 갑오년 시월보름 부터 을미년 정월보름까지 구십편을 무사히 회향했다
그러는 동안 갑오년이 저물고 속세에 이르는 말로 환갑을 홀로 보냈고 거칠은 겨울이 지나고 을미년 춘 삼월 봄날이 따스한 온기로 대지는 심호흡이 길다
충주문학 카페에 신임 정창수 회장의 청을 받아 드려 지난 갑오년에서 을미년을 맞으며 써온 시 120수를 하루 한편의 시를 게제 하기로 했다
시집을 출간하는 대신하는 마당이다
참 덧 없이 흐르는 세월을 실감한다.
충주문협에 첫발을 디디고 삼십년이 속절없이 흘렀다
그 세월의 곡절을 구구절절 새삼 말하면 무엇하랴
충주문협에 관한 한 누구보다도 애증의 마음이 깊다
다 흘러간 세월속에 그 순간은 그 인연밖에 준비된 것 없이 일탈일수 밖에 없는 숙명이다
을미년 새로운 집행부가 출범하는 충주문협에 새 바람을 기원한다
어느 절 입구를 가다보면 부도(浮屠)곁에서 오랫동안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졌고 가끔 모든일이 부질없이 보일때가 많아진 서글픔이다
지난 가을 나는 홀연히 깨어 창문을 열고 보니 화사했던 의료원 빈 마당에는 무궁화 꽃도 지고 어느새 나무들도
낙엽이 지고 텅빈 쓸쓸함을 뒤로하고 삼년 동안 오롯하게 나를 있게 했던 그 옥탑방을 떠나왔다
해가 저물면 붉은 십자가 충열된 눈으로 다섯 곳에서 나를 호의 해 주시던 천국의 밤 그리고 별
사람도 언젠가는 근원으로 돌아갈때 영원히 살 수 있다
詩
참으로 내겐 일생 낮설고 어렵게 만나는 손님이다
. 을미 삼월 춘분 지절에
옷
高峴
평생
"사람"이란
상표의 옷 한벌로
세상이다
갑오 10월 25-1
첫댓글 좋은 글을 올려 주셔서 감사 합니다.
시를 읽는 재미도 좋지요.
좋은 시를 읽는 것 또한 행복한 마음이지요.
늘 건필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