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수갑산/김소월
삼수갑산(三水甲山) 내 왜 왔노 삼수갑산이 어디뇨
오고 나니 기험(奇險)타 아하 물도 많고 산 첩첩(疊疊)이라 아하하
내 고향을 도로 가자 내 고향을 내 못 가네
삼수갑산(三水甲山) 멀더라 아하 촉도지난(蜀道之難)이 예로구나 아하하
삼수갑산(三水甲山)이 어디뇨. 내가 오고 내 못 가네
불귀(不歸)로다 내 고향 아하 새가 되면 떠가리라 아하하
님 계신 곳 내 고향을 내 못 가네 내 못 가네
오다 가다 야속타 아하 삼수갑산이 날 가두었네 아하하
내 고향을 가고지고 오호 삼수갑산이 날 가두었네
불귀(不歸)로다 내 몸이야 아하 삼수갑산 못 벗어난다 아하하
===[한국 대표 명시3, 빛샘]===
삼수갑산: 함경남도 삼수군과 갑산군. 깊은 산골.
기험: 기이학도 험함.
촉도지난: 험난한 세상살이 길의 어려움.
불귀로다: 돌아가지 못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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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 조선시대에 생긴 말이다. 삼수와 갑산은 개마고원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데 중죄를 지어서 가는 단골 유배지였다. 이 지역들은 험한 오지(奧地)인데 극도의 추위가 몰아치는 지역이다. 현대 기준 1월 평균 기온이 -18℃에 달할 정도다. 조선시대엔 전 지구적으로 소빙하기였으므로 이보다 훨씬 추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추운데 지리도 험하고 경작지가 적어서 지금 북한에서도 인구가 적다.
그러다 보니 과거 유배자들도 대다수 그곳에서 살아서 나오지 못했기 때문에 유배 기피 지역이었다. 윤선도의 경우 70 넘은 나이로 삼수군에 위리안치되었는데 살아 돌아왔다. 게다가 세상을 떠날 즈음인 1671년에는 경신대기근까지 한창인 상황이었는데, 그 상황에서도 유유자적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어떤 의미로 대단한 사람.
여기에서 나온 속담이 있는데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먹고나 보자." 이건 '금강산도 식후경'처럼 경치가 아름답다는 의미가 아니다. 거꾸로다. 귀양을 갈 정도로 신세를 망치는 한이 있어도 일단은 먹고 보자는,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는 말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할 것이다. 박경리의 토지에는 간도로 이주한 등장인물들이 잡담을 나누다 누가 삼수 갑산을 가더라도 운운하자 여기가 어딘지 모르냐며 웃음거리가 되는 장면이 있을 정도로 오지 취급이었다.
<나무위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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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수 없는 고향!
나라 잃은 설움을 토해내는
김소월 시인님의 시를 감상합니다.
세상에 태어나 32년을 살면서 주옥같은 시를 남기신 시인님을 생각합니다.
한 주가 시작됩니다.
어제 보다 좋은 오늘되시길 바랍니다.
=적토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