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팔순이 넘어 텔레비전 드라마에 주로 열중하시고 인터넷 바둑 삼매경에 빠져계신 아버지가 옛날 노래에서만큼은 어머니 대신 사랑하던 여인이 있었으니 그녀가 바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였던 릴리 퐁스(Lily Pons : 1898 ~ 1976)였다.
그냥 조금 음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학창시절, 가끔씩 아버지가 틀어놓은 LP에서는 꺅꺅거리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곤 하였는데, 이걸 듣고 계신 아버지는 심각한 얼굴로 지긋이 눈을 감고 계시거나 때로는 흥얼흥얼...따라부르곤 하셨다. 조금 더 나이가 들자 이 곡이 레오 들리브(Leo Delibes)란 작곡가가 쓴 오페라 ‘라크메(Lakme)’에 나오는 아주 어려운 콜로라투라 기교가 들어간 아리아 ‘종의 노래’였음을 알게 되었으며, 이 노래만큼은 레코드 자켓에서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여가수 릴리 퐁스의 음성이 가장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던 것이다.
자연히 나는 아버지의 숨겨놓은 애인(?!!!)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고, 이후 혼자서 음반을 모으거나 여러 자료들을 접하면서 많은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릴리 퐁스의 본명은 앨리스 조세핀 퐁스(Allies Josephine Pons) - 프랑스 남부의 휴양지이자 영화제로 잘 알려진 칸느(Canne) 근처의 드라귀냥이란 곳에서 태어났다. 15세때 파리 음악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며 1등상도 받았지만,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 고향인 칸느로 돌아와 칼튼 호텔에서 피아노를 치며 가족들의 생계를 꾸리기도 하였다.
이 호텔을 찾았던 소프라노 디나 뷰머(Dyna Beumer)의 권유로 알베르티 데 고로스티아가(Alberti de Gorostiaga)에게서 성악 레슨을 받게된 그녀는 1928년 알자스 지방의 뮐하우젠 극장에서 들리브의 ‘라크메’로 성공적인 데뷔를 하게 되었다.
프랑스 지방극장에서 조금씩 이름을 알리던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것은 오페라 흥행주였던 지오반니 제나텔로(Giovanni Zenatello)였는데, 그는 즉시 그녀를 데리고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의 오페라 총감독이었던 줄리오 가티-카사차(Giulio Gatti-Casazza)에게 가서 오디션을 보도록 하였다. 당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서 일세를 풍미하던 아멜리타 갈리-쿠르치(Amelita Galli-Curci)가 은퇴하여 그녀를 대신할 수 있는 여가수를 찾고 있던 상태였기에 퐁스의 등장은 아주 적절한 것이었으며, 1931년부터 그녀는 메트에서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를 시작으로 화려한 전성기를 펼치게 된다.
1931년부터 1960년까지...30년동안 그녀는 메트의 대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서 대략 10가지의 배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는데, 여기에는 들리브의 ‘라크메’와 도니제티의 ‘...루치아’를 비롯, ‘리골레토’의 질다와 ‘세비야의 이발사’의 로지나, ‘금계(황금 닭:니꼴라이 림스끼-꼬르사꼬프 작)’의 여왕, ‘연대의 아가씨’의 마리, ‘몽유병의 여인’의 아미나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300여차례의 공연을 하면서 그녀의 인기는 미모와 더불어 뉴욕과 미국 전역에 퍼지게 되었으며, 헨리 폰다와 영화 ‘I dream too much(1935)’에서 함께 연기를 하기도 하였고, RCA 레코드와 전속계약을 맺어 음반을 내놓았다.
뉴욕 메트 뿐만 아니라 시카고와 샌프란시스코, 그리고 파리의 오페라 갸르니에와 런던의 로얄 코벤트 가든 및 브뤼셀과 부에노스 아이레스 등지에서도 활약하던 그녀는 1938년 자신의 관현악단을 가지고 크로스오버 활동을 하던 지휘자 안드레 코스텔라네츠(Andre Kostelanetz)와 결혼을 하였고(1958년 이혼), 1940년에는 미국 시민권을 취득함으로써 미국에 정주하게 되었다.
1960년 12월 14일 메트에서 고별 갈라 무대를 가진 그녀는 이후 1973년까지도 무대에 섰으며, 특히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북아프리카 등지에서 전시순회공연을 함으로써 프랑스 정부에 의해 레종 드 뇌르 훈장까지 받았다. 77세 되던 해에 댈러스에서 췌장암 판정을 받은 그녀는 팜스프링스 자택에서 투병중 사망하였다. 그리고 그녀의 유해는 고향인 칸느로 이송되어 묻혔다.
그녀의 목소리는 성량이 크거나 심하게 드라마틱하진 않다. 대신, 남프랑스의 기후와도 같은 온화하고 화사한 음색에 절묘하게 꺾여드는 기교와 하이 C를 넘어선 초고음역의 발성은 다른 가수들이 따라할 수 없는 그녀만의 특기로 자리매김 하였던 것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그녀의 오페라 전곡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혹시 찾아보면 있을 지도 모르겠으나, 라크메나 루치아 같은 음반이 존재한다면 그녀의 오페라 무대에서의 전모를 알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RCA에서 발매된 그녀의 대표적인 오페라 아리아와 가곡들을 모은 앨범이 그녀의 일부분의 모습만 전해주고 있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더 좋아하는 음반이 있다...
“Lily Pons in Mozart Arias”라는 콜럼비아 음반인데, 여기에는 RCA의 음반들에서 들을 수 없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아리아들과 노래들이 수록되어져 있다.
첫곡인 ‘마술 피리’에서의 유명한 ‘밤의 여왕의 아리아’는 비록 오늘날의 조수미 등 뛰어난 콜로라투라 가수들보다는 조금 미흡한 점이 있지만, 당시인 1940년대 말~50년대 초반의 최전성기 목소리로서 거의 경쟁자가 없이 까다로운 모차르트의 이 아리아를 최상의 소리로 들려준다는 것만으로도 희소성의 가치가 있다.
뿐만 아니다...‘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유명한 아리아 ‘Voi che Sapete...’는 예쁜 소리란 이런 것임을 보여주는 듯하며, 모테트 ‘Exultate, jubilate...’에 나오는 ‘알렐루야’는 늘 마음속의 기준인 엠마 커크비(Emma Kirkby)와는 또 다른, 그러나 깨끗하고 투명한 음색으로 색다르게 다가선다. 이러한 모차르트의 아리아와 노래들의 반주를 브루노 발터가 부드럽고 편안하게 받쳐주고 있어서 더더욱 좋다.
그보다 더 좋아하는 것은 바로 B면의 첫곡인 ‘아, 어머니께 말씀드리죠(Ah, vous dirai-je, Maman)’ 변주곡 K.265이다. 피아노 원곡인 이 음악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프랑스 동요를 바탕으로 한 변주곡인데, 그녀는 여기에 성악을 붙여서 노래한다. 이러한 음반이 드문 만큼 그 가치도 있겠지만, 마치 어린아이처럼 느껴지는 그녀의 순진무구함이 깃든 목소리는 그야말로 일품이라고 생각한다. 관현악의 반주 역시 그녀의 부군이었던 코스텔라네츠가 맡고 있다. 그녀의 장기였던 ‘종의 노래’에서의 초절정 기교와는 반대로 천진난만함을 담아 사랑스럽고 예쁘게 노래한다. 이 음반에 이 곡 하나만 수록되어져 있다고 해도 충분한 값어치가 될 수 있을 듯하다.
이젠 세월의 더께속에 파묻혀버린 릴리 퐁스란 이름 - 요한 슈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을 물결만큼 아름답게 부르고 루치아와 마리, 그리고 질다와 라크메를 나름 또렷하고 화려하게 불렀으며, 모차르트를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불렀던 그녀의 음반이 좀 더 발굴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버지에게 아련한 옛 추억을 되살려드릴 수도 있을 테니까...
= 2009. 8. 26 南猪 조희영 씀
첫댓글 좋은글..잘 읽었습니다~~~
퐁스에 대해 어렴풋 알고 있었는데, 잘 정리를 해서 올려주시는군요.^^ 담에 콜럼비아 음반 꼭 들려주세요.^^
덕분에 릴리 퐁스의 아리아를 찾아서 들어봤습니다.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