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예루살렘을 수복하기 위하여 일어난 십자군 전쟁(1096~1270) 은 무려 8차례에 걸친 장기간의 전쟁 이었다. 물론 이러한 전쟁의 배경에는 교황과 왕, 기사, 상인, 농노등 각계각층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도 한 몫을 했다. 그 중에서도 1189~1192년에 일어난 3차 십자군 전쟁은 여러 측면에서 역사적 화제를 낳았다. 우선 유럽의 신성로마 제국과 잉글랜드, 프랑스의 강력한 왕들이 직접 참여키로한 대규모의 출정이었을 뿐아니라, 이들을 상대한 이슬람권의 수장도 성전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살라딘이었기 때문이다.
신성로마제국에서는 붉은 수염 프리드리히 1세가 출정하였고, 잉글랜드는 기사도 정신을 상징하는 사자심왕 리처드 1세가 참여 하였으며, 프랑스는 리처드1세의 라이벌 필립 2세가 합류하였다. 그러나 출정도중 신성로마제국은 프리드리히 1세의 급작스런 익사사고로 되돌아 가버렸으며, 프랑스의 필립 2세도 잉글랜드에 대한 불신과 불화로 예루살렘 탈환을 앞두고 귀국하게 된다. 결국 리처드 1세 역시 기독교도의 예루살렘에 대한 성지순례를 조건으로 살라딘과의 강화에 합의하고 귀국하게 됨으로써 3차 십자군 전쟁은 막을 내린다.
한편 살라딘 (1138~1193)은 이라크 지방 쿠르드족 출신으로 시리아와 이집트를 통일하고 팔레스타인 지방을 기독교권에서 지켜냄으로써 이슬람의 구원자 또는 해방자 로 불리운다. 그도 그럴 것이 1187년 팔레스타인 북동부 하틴전투의 승리로 예루살렘을 장악한 이래, 1918년 1차세계 대전 직후 영국에 지배권이 할양되기 전까지 700여년간 성지 예루살렘이 계속 이슬람권에 속하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살라딘은 풍부한 지략과 담대한 덕성을 가진 보기 드문 지도자로 이슬람 세계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유럽에서도 존경을 받고 있다 (예루살렘은 이슬람권의 지배하에 두되 그리스도교 순례자들이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게 했다)
살라딘은 검소하고 청렴한 이슬람 원리 주의자이면서도 이교도에도 관대하고 합리적인 성품으로 알려져 있다. 1187년 예루살렘 탈환시에도 1099년 1차 십자군의 예루살렘 정복시 유럽의 십자군들이 무자비한 살육과 약탈을 저지른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슬람 군인들의 살육과 약탈을 철저히 금지시켜 평화적으로 예루살렘을 접수하였다 또한 3차 십자군 전쟁 중에도 리처드 1세의 잉글랜드군과 맞서 싸우면서도 항상 상대를 예우하며 신사적으로 대한 것으로 유명하다. 오늘 날에도 많은 유럽의 문학 작품들이 살라딘을 지혜와 관용의 지도자로 묘사하고 있다. 그중 대표적으로 단테는《신곡》에서 그를 '최소한의 벌을 받는 고결한 이교도' 로 묘사했다.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에서)
21세기 십자군전쟁을 선포한 IS의 행태가 과연 12세기의 살라딘과 대비될 수 있을까?
첫댓글 세상에 거룩한 전쟁은 없죠. 그러나 종교를 앞세우면 가능하죠. is는 살라딘이 아니라 십자군 전쟁 때 십자군과 같습니다. 로마를 출발하면서 폭도로 변해 만행을 저질렀으면서도 거룩한 전쟁이라 했던 바로 그 십자군.
종교를 앞세우면 성전이 되어버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