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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한 수필평론집
존재사태,
그 사유의 악보樂譜
한상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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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의 통섭consilence은 지식의 대통합을 가리킨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다른 것과의 조화를 이루며 통합되어 있으며, 문맥을 고려하지 않은 채 분리하면 그들만의 고유한 존재의 이유가 손상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윌슨은 분석과 종합을 한데 묶어 통섭을 이룰 것을 주장하고 있다. 냇물이 강으로 환원되지 않듯 진리를 환원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진리들과 합류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는 진정 학문의 경계를 허물고 일관된 이론의 실로 꿰는 범학문적 접근의 필요, 곧 통섭의 시대를 맞고 있다함이겠다. 아직도 전통주의에 목을 맬 것인가? 시대가 변화하고 있다. 작가의 의식은 독자의 의식변화에 민감해야 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필요다. 수필창작도 이와 같다. 변화를 수용하고 그 변화의 최선봉에서 장벽을 허물고 뒤틀어보거나 새로운 시선으로 낯설게 함으로써, 사물과 대상을 통찰하여 해석하고 의미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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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찬의 수필, 다시 읽기
수필작가 손경찬은 경상북도 의회의원을 역임하였으며,
약력은.초대 영덕군의회 의원.경상북도의회 의원,(사)한국모터사이클연맹 고문,
(사)한일청소년연구소 총재,(사)한국변론협회 중앙회장,울진타임즈 대표, 대구시 광역시 태권도협회 고문,대구경북 영화인협회 자문위원,영해초등학교 총동창회 회장,
TBC 방송국 시청자 위원,경상북도의정회 부회장,대구예총 예술소비운동본부장,
박태준 기념사업회 감사,대구예총 예술발전위원회위원,계간수필시대등단,
계간 영남문학 (시)등단 시인,대구 불교문인협회 회장,국제 펜크럽 대구지부회원,
대구수필가협회 회원,대구문인협회 회원,토벽문학회 회원,영남 수필문학회회원,
영호남 수필문학협회 회장, 영남수필 작가회회장,경연인 신문사 논설위원,
매일신문 매일춘추 연재,대구일보 대일산필 연재,서울 브레이크뉴스연재 칼럼리스트,
경북매일신문 레져특집산행기 연재,대구시 등산연합회 수석부회장.사단법인 독도사랑 운동본부 대구시 연합회장이기도하다,
상훈 경력은,
사회봉사부문 국민훈장 석류장 수상,정호영 내무부장관상외 장관상 3회,
이노베이션 사회공헌 체육부분 대상,시사투뎨이 선정 사회봉사부분 대상.
대통령 표창·장관, 기관단체장 표창 등 총170회 수상, 3,1절'장한 무궁화인상'금상수상
문학상은,
국제 펜크럽 공로상,불교문인회 공로상,영호남 수필문학협회 공로상,영호남 수필문학협회 문학대상,대구예총 특별공로상을 수상하였다,
현주소 : 대구시광역시 수성구 범어2동 47-5번지
범어문화빌딩305호 전화 053-291-3665 펙스 053-219-3665
손전화 (010-8562-5240) 메일 yejuson@hanmail.net
■대표수필 |유기遺棄 외 4편 ----손경찬
■ 작품론 |존재의 궁극적 이해와 삶의 진정성 ----한상렬
[손경찬의 수필, 다시 읽기]
유기遺棄 외 4편
파리 한 마리가 온 신경을 건드린다. 크기를 보아하니 아직 어린 것 같은데 겁도 없이 남의 차에 올라 타 있다.
나는 힘이 들 때면 대보 항에 있는 작은 집에 혼자 머무르곤 한다. 버섯모양으로 지어진 그 집에 있으면 어머니 자궁 속처럼 마음이 편안하다. 반바지 차림으로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다가 바닥에 앉아 글을 쓰기도 한다. 창문을 열면 끝없는 청 보리밭이 보이고, 현관문을 열고나서면 바다에 닿지만, 모처럼만에 시간이 났던 터라 게으르게 늦잠을 잤다. 바깥에 한 번 나가지 않고 실내에서만 지내다 집에 가려고 나가보니 날씨가 여름으로 치닫고 있었다. 차를 햇빛 속에 혼자 몇 날을 세워두어서인지 열이 바짝 올랐다.
후끈한 차안의 열기를 쫓으려 문을 열어 둔 게 탈이었다. 몇 마리의 파리들이 숨바꼭질 하듯이 들락날락 하고 있었다. 그들을 다 내려놓고 나의 일상인 대구를 향해 출발했다. 며칠 쉬어서인지 몸과 마음이 가뿐하다. 에어컨을 켜고 잔잔하게 음악을 깔았다. 바다채송화가 늘어진 담벼락은 졸고, 파도도 쉬는 한 낮의 고요함이 무료하기까지 하다.
차가 고속도로에 올랐다. 바닷가의 고요에 너무 지체했는지 시간은 훌쩍 건너뛰고 있었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눈앞에 뭔가가 휙 지나간다. 앞을 주시하면서 눈을 살짝 돌려봤다. 분명 차 안에 있는 것 같은데 보이질 않는다. 잘못 봤나? 다시 속도를 냈다. 앞 유리에 움직이는 게 보인다. 파리다. 숨바꼭질 하다가 너무 깊이 숨었던가 보다. 친구들은 다 내렸는데 이놈은 혼자 여기 있다. 단지 눈앞에 있을 뿐인데 온 신경이 그곳에 간다. 양쪽 창문을 다 내리고 나가라고 팔을 뻗어 휘휘 쫒아내 보지만 유리에 착 달라붙어 꼼짝을 않는다. 손으로 여기 저기 더듬어서 휴지를 찾아 작고 까만 그를 건드렸다. 손만 댔을 뿐인데 마치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결과가 되어버렸다. 왜 건드리느냐는 듯이 성난 벌처럼 나한테 달려든다. 집을 잃어버린 아이처럼 투정질이다.
핸들을 한 손으로 잡고 연신 팔을 흔들었다. 열어둔 창문으로 뜨거운 바람이 훅 들어온다. 바람에 쓸려 나갈 법도 하건만 당체 나가질 않는다. 어깨에 올라앉는 것 같아 손으로 두드리고 머리까지 쓰다듬어 본다. 휙 돌아보니 이제 보이질 않는다. 이제야 밖으로 나갔나보다. 창문을 올리자 바람소리에 들리지 않던 음악이 자신의 존재를 나타낸다. 음악을 들으며 고속도로의 기본 속력으로 여유롭게 달린다. 하루가 다르게 불쑥불쑥 커가는 산이 보이고 말간 구름이 평화롭다. 한낮의 고속도로는 한산하다.
평화롭던 신경이 한 순간에 곤두선다. 조수석 창에서 그놈이 혀를 날름거린다. 나간 것이 아니라 아직도 숨바꼭질 하듯이 어느 구석에 숨어 있었나보다. 모른 척 해 보지만 사부작 움직이는 그놈의 발자국 소리까지 들리는 듯하다. 옆 좌석에 둔 신문으로 살짝 때렸다. 나 잡아 보란 듯이 옆으로 살짝 옮겨 앉는다. 정조준을 하고는 다시 퍽 소리가 나도록 쳤다. 무게 중심이 그쪽으로 너무 실렸던지 차가 휘청거린다. 심장이 벌렁거린다. 다시 두 손으로 핸들을 잡고 운전을 하지만 한 손은 자꾸만 신문으로 간다.
숨바꼭질이 재미가 없는지 이제 술래잡기 하잔다. 그 놈은 바람 난 선머슴 모양 좀체 한 자리에 가만있지 못하고 여기 앉았다 저기 날았다 정신없게 만든다. 서서히 내 인내의 한계가 느껴진다. 룸밀러에 비치는 내 모습이 가관이다. 파리 한 마리와 사생결단 낼 듯이 싸우고 있는 모습이 한심스럽다.
휴게소에 차를 세웠다. 마치 불한당을 몰아내듯이 차문을 확 열었다. 앞문 뒷문 다 열고는 신문을 움켜쥐고 여기 저기 두드렸다. 꼭꼭 숨었는지 보이질 않는다. 분명 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기에 믿을 수가 없다. 좌석 밑부터 뒤 유리까지 구석구석 쑤셨다. 더 이상 숨을 수가 없었던지 풀이 푹 죽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순간을 놓칠세라 신문으로 바람을 일으켰다. 떠밀리듯 그가 나가자 얼른 문을 닫았다. 되돌아와서 빈다고 절대 받아 줄 수는 없는 일이다.
이렇게 편한 것을. 이제 혼자가 된 나는 음악 소리에 맞춰 콧노래까지 나온다. 운전대를 한 손으로 잡고 느긋하게 운전하다보니 조금 전까지 싸웠던 그 놈이 생각난다. 바닷가가 고향인 그를 산 속에 버렸다. 어린 그는 이제 부모형제 친구들도 잃어버렸다. 그 곳에서 잘 적응하며 살아갈까? 괜히 죄를 지은 느낌이다. 쥐 죽은 듯이 내 눈에 띄지 않고 있었더라면 그리 매몰차게 버리지는 않았을 텐데. 그 놈이 조금만 눈치가 있었어도 고향에 돌아 갈 수 있었을 것을. 분위기 파악도 하지 못하고 까불다 쫓겨난 것일 뿐 내 잘못은 아니다. 나는 애써 유기죄에 변명을 한다.
거짓말
엄마보다 아빠가 더 좋다던 딸이 제 방 속에 들어 앉아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을 거부 하듯이 종일 자기 생각 속에서 나올 줄을 모른다. 서너 걸음 앞에 있는 내 생애의 중심지인 딸과의 거리가 천 리 같다. 어쩌면 딸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거짓말이라는 말을 감고 있을지 모른다. 곰 인형을 끌어안고 앉아 있는 딸에게서 어둠속에 앉아 있던 내 모습이 보인다.
영해시장 어물전에서 나는 자랐다. 어디 맡겨 질 곳 하나 없는 어린 나는 생선을 파는 어머니에게 짐처럼 매달려 있었다. 내가 태어나자마자 청상이 되어버린 어머니는 먹고 살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했다. 등에서 미끄러져 내려와 엉치에 매달린 채 엄마 아빠라는 말보다 세상의 비린 냄새를 먼저 알아버렸는지 모른다. 어물전의 비린 냄새 속에서 걸음마를 배웠고, 손님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등을 바람막이로 나는 생선상자 안에서 잠이 들었다.
어머니가 주시는 돈은 언제나 구겨지고 생선 비린내가 진동했다. 학교 기성회비를 낼 때면 포마드 기름으로 가지런히 빗질한 선생님 앞에 돈을 놓고는 제 빨리 뛰쳐나오곤 했다. 내 손에서 나는 비린내를 씻고 또 씻고는 몸에서 나는 냄새를 날려 버리려 송천강 둑을 종일 뛰어다녔다. 그러다가 허기진 배를 안고 다시 어머니가 있는 시장 난전을 찾곤 했다.
어느 날, 난전의 어머니 자리는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땅바닥에 패대기쳐진 명태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어머니와 어떤 아주머니가 서로의 머리채를 잡고 나뒹굴고 있었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희멀건 눈을 한 명태를 싱싱하다고 속여 팔았을까, 내주지도 않았으면서 잔돈을 거슬러 줬다고 우겼을까. 엿장수의 가위질 소리가 어머니의 악다구니에 묻혔다. 나는 발길을 돌려 대진 앞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송천강 둑을 다시 올랐다. 강물을 내다보며 나는 어머니를 시장바닥에 내 놓은 얼굴조차 모르는 아버지를 원망하며 하염없이 울었다.
염천 삼복더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며칠째 시름시름 앓으시던 어머니는 열한 살의 나만을 세상에 남겨 놓고 말았다. 나한테는 하지 말라던 그 거짓말이 어머니를 데리고 가 버렸다. 나는 어머니가 거짓말을 많이 해서 돌아가신 거라 믿었다.
나는 울지 않았다. 어머니는 죽어서 묻힐 땅도 묻어 줄 사람도 없었다. 나는 목재소를 기웃거렸다. 나무를 자르고 남은 길다란 나무껍질을 질질 끌며 몇 번이나 집으로 옮겼다. 면사무소에서 광목 한 필이 배급 되었다. 나는 나무껍질을 나란히 놓고 그 위에 어머니를 눕혔다. 이제는 먹고 살기 위해 거짓말 하지 않아도 될 어머니를 광목으로 둘둘 말았다.
리어카에 어머니를 싣고 그 위에 방문 앞 기둥에 달려 있는 기름병을 얹었다. 마을 동장이 어머니를 실은 리어카를 끌고 집을 나섰다. 그 뒤를 따라가는 어린 나는 내내 나는 죽어도 어머니처럼 거짓말은 하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절대 울지 않으리라 맹세하는 내 얼굴은 땀이 눈물이 되어 흘렀다.
관어대 뒷산 공터에 어머니를 내렸다. 나무껍질에 기름을 붓고 성냥을 그었다. 너울너울 불길이 솟았다. 나는 어머니의 마지막 가시는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어 한 달음에 집으로 돌아왔다. 밤새 불도 켜지 않은 외딴 집에서 나는 혼자 어머니의 베개를 끌어안고 앉아 있었다. 어머니는 혼자서 당신의 길을 가고 있다. 온 밤을 꼬박 뜬 눈으로 보냈다. 설핏 든 새벽잠이 아침 햇살에 쫓겨 달아났다. 어머니의 마지막을 수습해야한다는 생각에 화들짝 놀라 뛰었다.
저 멀리 공터에는 뼈만 남아야 할 어머니가 동그마니 앉아 있었다. 뛰던 걸음을 멈추고 나는 살금살금 다가갔다. 나무는 다 타고 어머니는 아랫도리만 잃은 채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나 앉아 있었던 것이다. 혼자 된 자식을 두고 차마 눈을 감지 못한 어머니는 밤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식을 위해 다 내 놓은 어머니는 마지막 가는 길의 노자까지 부족했다. 나는 나무를 긁어모으고 어머니를 다시 눕혔다. 어디 갔다가 이제야 오느냐는 어머니의 걱정을 못 들은 척하며 에워 싼 나무에 다시 불을 붙였다.
삶의 질곡을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뀌도록 밟아왔다. 나는 공터에 혼자 앉아 있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살아왔다. 어머니는 아비 없는 자식이라 손가락질 받게 하지 않으려 내게 무진 애를 쓰셨다. 다른 아이들보다 더 빨리 기성회비를 내게 하려 비린내 나는 돈을 한푼 두푼 꼬장주 안주머니에 모았다. 철모르는 어린 나는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보았기에 어머니의 거짓말만 보았다. 여자 혼자 자식을 키우며 살아가기에는 버거운 세상이었다. 어머니의 그 거짓말 속에 얼마나 많은 것이 들어있는지는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면서였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서도 세상을 잘 살아가리라 맹세했다.
먹고 살기 위해, 더 큰 것을 붙잡기 위해 열심히 살아오면서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자부하지만, 정작 그 거짓말은 내 딸의 가슴에 앉아 있다.
출근 하는 내 목을 끌어안고 뽀뽀하는 딸에게 일찍 오겠다는 약속은 항상 거짓으로 남겨졌다.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희생된 어린 딸과의 많은 약속들. 어머니는 청상의 몸으로 어린 나와 먹고 살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지만 나는 무엇을 위해 내 딸에게 거짓말을 남겨 놓았는가. 내가 중요시 한 게 무엇이었는지 다시금 되돌아보면서 내 딸의 밝은 웃음을 찾아 헤맨다.
잿밥
제사를 지내지도 않았는데 대낮에 음복 상을 받았다. 안동에 왔으면 헛제사밥을 먹어봐야 하지 않느냐는 친구의 말에 선뜻 따라왔던 것이다. 집에서 먹던 음복상과 그리 다를 것도 없다. 고사리 도라지 등의 나물들이 대접에 담겨 있고, 은은한 광택이 흐르는 놋그릇에 명태를 비롯한 전과, 어물과 육류를 꼬지에 꿰어 만든 적이 놓여있다. 제사 때가 아니면 잘 먹지 않던 탕을 보니 제사 밥이 확실해 보인다. 금방 익혀낸 듯이 상어고기와 고등어가 맛깔스럽지만 젓가락이 선뜻 가지가 않았다.
내게는 잿밥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다. 열한 살에 고아가 된 나는 친구 집을 전전하며 살았다. 두서너 달씩 돌아가면서 친구 부모님들이 나를 맡아 키웠다.
정월 초쯤이었나 보다. 낮부터 내린 눈이 수북수북 쌓이던 그 날은 친구네 제삿날이었다. 눈처럼 하얀 쌀밥을 먹을 수 있는 날이다. 그 시기에는 모두가 어려웠던 터라 쌀밥을 먹을 수 있는 날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남의집살이에 일찍 눈치가 깨인 나는 평소에도 마당청소며 방청소를 알아서 했지만 쌀밥을 먹을 생각에 시키지도 않은 심부름까지 도맡아 했다. 12시가 되어야 지내는 제사까지 기다리는 것은 초저녁잠이 많은 내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친구는 일찌감치 안방에 건너가 있었다. 남의 집 제사에 참석할 수 없는 나만 옷도 벗지 않은 채 이불을 덮고 누웠다. 전기를 아껴야 하기에 늦도록 불을 켜 놓을 수도 없는 일이다. 책이라도 읽으면 시간이라도 잘 갈 텐데 맹숭하게 누워 있자니 곤욕이었다. 이불을 뒤치락거리며 잠을 쫓느라 허벅지를 꼬집었다가 뺨을 꼬집기를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내리는 눈이 가는 시간의 발목을 잡는지 그날따라 시간은 더디기만 했다.
안방과 내가 누워있는 방 사이에 부엌이 있었다. 솥뚜껑 여닫는 소리, 칼질 하는 소리 하나 하나 내 귀에 들어왔다. 뚬벅뚬벅 칼질은 탕 끓일 무 써는 소리, 통통통 도마 치는 저 소리는 무 채 써는 소리, 나도 따라 칼질을 한다. 문틈 사이로 전을 부치는 기름 냄새가 기어 들어오면 나도 모르게 침 넘어 가는 소리가 이불을 제치고 나왔다. 혹여 아주머니가 들었을까 숨죽여 돌아누웠다. 안방과 부엌사이의 작은 문이 열리고 상 차리는 소리가 났다. 냄새를 보니 문어도 한 마리 삶았나보다. 어물이 들어가고 전이 들어가고, 친구의 ‘와아’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쇠고기 산적도 들어가는가 보다. 나는 누워서 제사상을 그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메밥이 들어간다는 아주머니의 소리가 들렸다. 기름이 조르르 흐르는 하얀 쌀밥을 한 숟가락만 떠먹어도 행복하겠다며 군침을 삼켰다. 떠들썩하던 친구와 동생들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을 보니 절을 하고 있다. 조금 있으면 음복을 할 것이고. 나는 부르기만 하면 단박에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시 부산한 소리가 들렸다.
“경찬이 깨워서 밥 먹여라.”
안방에서 아저씨의 말이 들렸다. 그 소리는 부처님 말씀보다 더 컸고 감사했다. 나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벌떡 일어났다.
“자는데 그냥 자게 놔두소, 내일 아침에 먹이지요” 밥을 푸는 아주머니의 그 말은 천둥소리처럼 나를 무참하게 주저앉히고 말았다. 내 집이라면 안 잔다며 뛰어나갈 수 있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우는 소리를 내 놓을 수도 없었다. 이불을 덮어쓰고 베개를 입에 물고 흐느껴 울었다. 일찍 가신 어머니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쌀밥으로 시작된 눈물은 어머니에게로 갔다.
낮부터 내리던 눈은 그침 없이 내렸다. 쌀밥 냄새를 풍기며 친구가 들어와 누웠다. 금방 코를 고는 친구 옆에서 나는 밤새 한 잠도 자지 못하고 베개가 푹 젖도록 울었다. 눈 내리는 소리가 밤새 뚜렷하게 들렸다.
아침을 준비하는 솥뚜껑 소리가 들렸다. 소복이 쌓인 눈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침햇살에 반짝였다. 나는 언제나처럼 헛간 앞에 세워둔 빗자루를 찾아 마당을 쓸었다. 밤새 내린 눈은 빗자루를 얕보고, 나는 쌓인 눈에게 화풀이를 했다. 눈은 내가 흔드는 빗자루에 훨훨 다시 하늘로 올랐다. 아주머니는 전에 없이 아침부터 괜한 심통을 부리는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셨다. 벌건 내 눈을 보며 눈병이 들었느냐며 깜짝 놀라셨다. 눈과 입 주변이 벌겋게 되어 있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밥상에는 어젯밤 그들이 먹었던 제사 음식들이 놓였다. 내 몫이었던 쌀밥이 상에 올라오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퍽 쏟아졌다. 왜 우느냐는 친구의 말이 풀무질이 되어 재속에 숨어 있던 울음을 거침없이 토해내게 만들었다. 쌀밥을 뜬 숟가락이 입에 들어갔지만 울음이 북받쳐 씹을 수도 없었다. 대성통곡을 하는 나를 모두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 혼자 속 끓이며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이해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까마득한 그 날이 아직도 내 머릿속에 있다니. 음복 상을 앞에 두고 멍청히 앉아 있는 나를 본 친구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권한 것 같은지 공연히 미안해 했다. 나는 나물이 담긴 놋대접에 밥을 얹고는 깨소금이 뿌려진 간장을 넣어 쓱쓱 비볐다. 고소한 냄새가 풍기는 잿밥을 입이 미어지게 넣고는 고등어 살점을 뜯으며 맛있다는 말을 연발했다. 그제야 친구도 밥을 비볐다. 이 제사 밥이 어린 나를 밤새도록 울게 만들었던가. 그 밤을 생각하니 눈시울이 적셔진다. 헛헛한 웃음을 날리며 눈을 식당 밖으로 보이는 월영교로 보낸다.
헌옷
신호등의 노란색이 도망치듯이 빨갛게 바뀐다. 세월에 잡히듯 횡단보도선 바로 앞에서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인파들 속에 리어카를 끌고 가는 노인의 발걸음이 무겁다. 노인의 가슴팍에 닿는 손잡이가 뒤에 끌려오는 무게를 가늠하게 한다. 하루 종일 거둔 수확일까, 며칠 모아 둔 것을 고물상으로 가져가는 것일까. 나는 노인의 리어카에 눈을 꽂고 얼마 되지도 않을 값어치를 따지고 있다. 박스를 차곡차곡 쌓은 한 보퉁이에 헌옷 보따리가 밧줄에 붙잡혀 있다. 못다 집어 넣었는지 삐죽이 튀어나온 체육복 팔 하나가 노인의 삶처럼 축 처져있다. 저 옷도 친구 공장에 가려나. 마치 노인의 리어카가 내 친구에게 가는 것 같아 눈이 저절로 따라간다.
스무 살의 우리는 패션의 한 획을 긋기로 맹세했다. 친구는 해동라사 동기다. 그 곳은 일류 멋쟁이들이 패션을 자랑하던 곳이었다. 우리는 가진 것이라고는 일에 대한 욕심밖에 없어 어떻게 하던 빨리 기술을 배우려고 밤늦도록 일을 했다. 어두컴컴한 쪽방에게 귀가 인사라도 하듯이 허리를 구부리고 들어설 때면 항상 허기졌다. 젊을 때의 위장은 돌도 소화시킨다는데 초저녁에 먹은 식당 밥으로 우리의 뱃속을 채우기엔 역부족이었다. 물을 한 대접 정도 더 넣고 끓인 퉁퉁 불은 라면에 신 김치를 넣어 휘휘저어 간을 맞췄다. 후루룩 끌어당긴 라면은 두어 번 씹을 사이도 없이 게눈 감추듯이 없어져버렸다. 소꼬리를 곤 진국을 들이키듯이 마지막 국물까지 쭈욱 마시고 나서야 삼십 촉 전등불이 제대로 보였다. 누우면 머리와 발이 벽에 닿을만한 방은 어느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지 이불을 덮어써도 한기가 뼈 속까지 스멀스멀 기어 들어왔다. 우리는 서로의 체온 덕이라도 보려고 서로를 마치 사랑스런 애인을 끌어안듯이 안고서야 잠이 들 수 있었다.
해동라사에서 시작된 인연은 고래심줄처럼 질기게 붙어 다녔다. 맞춤 양복의 근사함을 손에 다 익히기 전에 내 눈에는 새로운 물결이 보였다. 맞춤 시대가 그리 멀리까지 가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미련없이 패션에 대한 꿈을 접었다. 고향이 부산인 친구와 영덕인 나의 공통점은 바다였다. 우리는 대진해수욕장으로 갔다. 한여름 뙤약볕에서 생선이 담긴 양동이를 들고 뛰었다. 잘 달구어진 가마솥처럼 따끈따끈한 모래사장을 맨발로 뛰며 장사를 했다. 지금이야 횟집마다 수족관이 있어 언제든 신선한 생선을 먹을 수 있지만 그 때는 쉽지가 않았다. 우리는 다른 식당들과는 달리 싱싱한 회를 얻기 위해 고기를 그물에 가두어 바다에 담아두었다. 가게에 손님이 오면 친구는 양동이에 펄떡거리는 생선을 담아서 뜨거운 모래사장을 고기가 퍼덕이듯이 뛰었다. 좁은 식당은 항상 살아있는 생선을 먹을 수 있어 손님으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새카맣게 그을려서도 희망을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친구는 나를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같이했다. 서른 초반에 군의원에 나왔을 때였다. 그는 자기가 하고 있던 모든 일들을 제쳐두고 내 선거를 도우러왔다. 우리는 예전에 모래사장에서 뛰었던 것처럼 발이 부르트도록 다녔다. 행여 내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라도 하면 친구도 같이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하늘에서 별을 찾으려 애쓰며 푸른 날들을 믿음으로 채웠다. 한 표라도 더 받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내 곁에 그가 있어 언제든 비빌 수 있는 든든한 언덕이 되어주었다.
우리는 대진 바다에 뜨는 해보다 한 뼘은 더 일찍 일어나 들판에서 일하는 농민들을 찾아 다녔다. 늦은 밤, 달빛도 없는 산골마을에 내 이름을 알리려 목이 쉬도록 외쳤다. 시장바닥을 종일 헤매고 다니다 의자에 앉은 체 지쳐 잠이 들 때면 잠깐이나마 눈을 붙이게 하려고 불을 끄고 조용히 문을 닫아주던 친구였다.
패션을 꿈꾸던 우리의 길은 정치가와 중견기업가로 갈라졌다. 정치를 위한 행보에 섞여 표면적으로 보이는 나와는 달리 친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부지런히 기업을 일으켰다. 그는 헌옷을 거두어 수출하는 사업을 한다. 새 옷을 만들고자 했던 꿈을 헌옷으로 이루었다.
내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 타 더 멀리 보려고 애썼다면, 친구는 버려지는 옷으로 주위를 살피는 애국자였다. 친구처럼 헌옷을 거두는 사람이 없다면 잘 썩지도 않기에 우리의 자손 대까지 환경이 오염될 것이다. 외화를 벌어들이는 것도 큰일을 하는 것이지만 그것보다 살아가기 힘든 서민들에게 일거리를 주는 것이 더 좋은 일이다. 친구로 인해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하니 노인의 힘든 삶 같던 흔들리는 체육복 팔이 희망으로 보인다.
신호가 바뀌어도, 횡단보도를 건너는 노인의 리어카는 흰 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어서려는 순간, 길을 가던 중년의 남자가 나보다 먼저 리어카를 밀어준다. 누군가의 생각지도 않은 힘이 되어 주는 그 중년의 남자처럼 내 친구도 그렇지 않을까. 눈은 내 마음을 대신하는 그 남자의 뒷모습을 따라간다. 고맙다고 연신 고개를 꾸벅이는 노인과 손을 툭툭 털고는 별 일 아니라는 듯이 웃으며 가는 그 남자를 바라보자 흐뭇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내가 한 눈을 파는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뒤차들이 빵빵거린다. 나는 편해서 오래 입는 옷처럼 그냥 좋아서 지금껏 같이 가는 친구를 생각하며 느긋하게 출발한다.
올가미
어둠 속을 카메라가 쫓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살쾡이는 밤 마실을 나온 것처럼 여유롭다. 나는 지금 멸종위기에 처한 삵을 다룬 다큐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 얼마 전까지 우리 주변의 산야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것이 이제는 그 흔적조차 발견하기 힘들다고 한다. 살쾡이는 닭서리의 명수인데다 언뜻 보면 고양이와 구별이 쉽지 않다. 예전에 많이 봤던 살쾡이기에 텔레비전 앞으로 바짝 다가앉았다. 살쾡이의 눈이 깜박이고 언뜻 적외선 카메라에 올가미가 보인다. 누군가 몰래 쳐 놓은 올가미가 있다는 사실을 카메라맨들도 몰랐을까. 살쾡이와 올가미를 번갈아 보며 나도 모르게 신경이 곤두선다.
나는 서른 초반에 군의원이 되었다. 30년 만에 다시 부활한 지방 자치단체인 군 의원을 시답잖게 보는 눈도 많았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권위를 내세우는 공무원들이었다. 예산을 관리감독하고 지역 일을 제대로 하는지 일일이 챙기니 그들에게는 없을수록 좋은 존재였다. 없던 시어미를 다시 두는 격이었다고나 할까. 자기들 보다 나이가 한참이나 적은 시어미인 내가 그들의 눈에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싫은 내색을 할 수 없었던 그들이 내게 보이지 않는 올가미를 쳤다.
첫 본 회의 때였다. 예산심의를 하기 일주일 전에 각 부서별로 내 놓은 예산편성 자료를 받았다. 글자 수가 족히 10만자나 되는 자료는 한문으로 빽빽하게 쓰여 있었다. 한글로 써도 충분히 뜻이 통하는 ‘다리공사’라는 글자부터 숫자까지 한문으로 써 놓았던 것이다. 젊은 내가 가장 한문을 모를 거라는 생각에 나를 골탕 먹이겠다는 의도가 다분했다. 한글이라고는 겨우 조사(助詞) 몇 개가 눈에 띌 뿐이었다. 나이가 많은 다른 군 의원들도 대부분이 한문인 자료를 쉽게 읽어내지는 못했다. 일주일동안 검토해서 예산편성에 따르는 질문을 해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기가 막혔다. 옥편을 찾아서 질문서를 작성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사냥감의 눈에 띄어버린 올가미는 이미 올가미가 아니다. 피해가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그들은 젊은 네가 무얼 알겠느냐고 비웃으며 더듬거리는 나를 즐기려 할 것이다. 얼밋얼밋 시간만 끈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사법서사소를 찾아가서 한문 옆에 토를 달아달라고 부탁했다. 토를 달은 한문은 한글이 되어 술술 읽혔다. 나는 읽고 또 읽은 후 현장을 뛰어다니며 자료를 모았다. 그들이 던진 올가미를 완벽하게 벗어 던져야 했다. 그런 다음 내게 던져진 올가미를 어떻게 돌려줄지 생각했다.
예산심의 날이 되었다. 그들에게는 기초의회를 약화시킬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되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본 회의장에 들어서면서부터 신경전이 눈에 보였다. 의회 업무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정치 애송이에게 가르쳐 주겠다는 듯 인사하는 내무과장의 얼굴에 슬쩍슬쩍 비웃음이 느껴졌다. 그들이 지금 기분을 실컷 즐기라고 나는 애써 굳은 표정을 지어주었다. 그는 업무 보고를 할 공무원 중에 가장 나이가 많았다. 이런 일 쯤은 산전수전 다 겪어봤다는 듯이 자료를 책상에 놓고는 느긋한 자세를 취했다. 딱딱하게 굳은 내 표정을 훔쳐보며 희열을 느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내가 질의 할 차례가 되었다. 나는 한문이 빽빽한 예산편성 자료를 전문의원의 손을 통해 그 과장에게 전했다. 내 물음에 답변을 해야 하는 내무과장은 자료를 받아들고 의아해 했다. 나는 그에게 한문이 가장 많은 쪽을 가리키며 펴 봐 달라고 했다. 한문을 잘 몰라서 그러니 위에서 몇 번째 줄을 한 번 읽어봐 달라고 정중하게 부탁을 했다. 뜬금없는 내 부탁에 그는 더듬거리며 읽어 내려갔다. 몇 줄을 읽던 그는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방청석에는 처음 열리는 예산심의를 구경하기 위해 많은 군민들이 와 있었다. 그의 얼굴은 마침내 종잇장처럼 하얗게 변하고 말았다.
나는 보란 듯이 사법서사에서 달아준 한문의 토를 줄줄 읽어 내려갔다. 연세가 많은 다른 군 의원들이 모두 놀라서 바라보았다. 권위적이던 공무원도 막히는 것을 아직 젊은 내가 그토록 쉽게 읽어내려 가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여기저기서 웅성 거렸다. 내게 던졌던 올가미에 도리어 목이 걸려버린 공무원들은 묻는 말에 대답까지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올가미의 주체와 객체가 바뀐 것이다. 나는 여유만만하게 그 상황을 즐기는 입장이 되었다. 왜 한문이 많아야 하느냐고 싸울 필요도 없었다.
미래를 설계하고 나아가는 자가 제거해야 할 장애물은 과거라는 올가미이다. 과거부터 가지고 있던 권위라는 우월주의는 제거되어야 했다. 그 일 이후로 모든 기초의회 자료는 주민들도 쉽게 읽을 수 있게 한글로 작성되었다. 꼭 필요한 한문은 괄호 안에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야생에서 살아남으려면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이 특히 뛰어나야 할 것이다. 먹이사슬의 가장 꼭대기를 차지하는 위험군은 우리 인간이다. 인간의 올가미를 피해가는 방법쯤은 아마 저 살쾡이는 미리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그들에게 던졌던 올가미를 언젠가는 다시 돌려주기 위해 부단히 머리를 싸매고 고민 중일지도 알 수 없다. 화면 속의 살쾡이가 거침없이 걷던 걸음을 멈춘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던 살쾡이는 오던 길을 살며시 돌아선다. 그의 뒤로 올가미가 슬쩍 보인다. 거울을 보듯이 카메라 앞에 서 있던 그가 입 꼬리를 쓰윽 올린다. 올가미의 주인을 이미 안다는 듯이.*
작가노트 (손 경 찬)
사람들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이유로 지나간 시간에 관대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외양이 화려하면 화려 할수록 그림자는 더욱 짙은 법이다.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지진의 진원지는 과거였다. 가끔은 그 진원지가 들끓어 나를 외롭게 했다. 수필은 가슴으로 쓴다.
가슴속에 웅크리고 있는 과거 앞에 앉았다. 어머니를 잃었던 그 자리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내 안에서 훌쩍이고 있는 어린아이를 달랬다. 지금까지는 깊이 난 상처에 더덕더덕 일회용밴드를 붙여가며 가라앉혔나보다. 그 밴드는 오래가지 않아 매번 새로운 것으로 붙여주어야 했다. 글로써 내 놓는다는 것은 마음의 곪은 상처를 도려내는 일이었다. 연고를 바르고 입김을 호호 불어주자 짓눌렸던 기분이 조금씩 무게를 덜어냈다. 빠르게 지나가는 시계바늘을 잠시 붙잡아 두고 글을 쓰는 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는 것도 알았다. 기억하기 싫었던 과거라는 진원지를 파헤쳐 글로써 풀었다. 풀어헤친 그 자리가 이제야 편안한 숨을 쉰다.
수필을 쓴다는 것은 내면에 산재해 있는 삶의 그늘에서 한 발짝 물러 서 있을 때에 가능하다. 그 속에서는 감정에 파묻혀 제대로 볼 수 없어서이다. 멀리서 바라보니 아프기만 했던 그 자리에 꽃이 피기 시작했다. 나는 새로운 꽃을 피운다. 더 숨길 것도 보이지 못할 것도 없다. 이제는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볼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말 하고 느끼는 그대로를 글로 적을 것이다. 눈이 내려도 쌓이지 않는 바다처럼 있는 그대로 살아 갈 뿐이다
|작품론 |
존재의 궁극적 이해와 삶의 진정성
한상렬
hsy943@hanmail.net
1. 작품의 진정성, 그 연원의 프롤로그
작품은 작가를 반영한다. 이는 지극히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말이다. 수필작가 손경찬과 필자는 두 번인가 조우한 기억이 있다. 첫 번의 만남은 순간적인 그야말로 스쳐지나감이었다. 필자가 문예지 『수필시대』의 주간직에 있던 때이다. 『수필세계』주간으로 있는 홍억선의 천거로 그를 『수필시대』에 추천 등단시킨 이후 기독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있은 행사장에서 그를 처음으로 대면하였다. 지극히 짧은 인사로 그와 상면하였다. 그후 『수필과비평』의 여름행사가 있었던 경주에서 두 번째로 만났다. 그날 그는 멀리 찾아간 나를 염두에 두고 겸사하여 행사장에 있었던 나를 찾았다. 그날 우리의 만남 역시 잠시였다. 언제나 그렇듯 문학 행사장에서의 만남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대면 그 자체에 불과하다. 그게 그와 만남의 전부이다. 그후 필자가 『수필시대』의 주간직에서 물러나고 새로이 『에세이포레』를 발행하면서 언뜻 언뜻 그를 떠올리곤 했다. 결국 그와의 인연은 이제 비로소 진한 교감을 하게 되는가 보다.
무엇때문에 모두에 이런 황당한 개인사를 들먹이는가. 그가 바로 수필작가이기 때문이다. 그의 해적이에서 눈에 띠는 것은 그가 기초자치단체인 군위원과 도위원을 역임하였다는 데 있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그런 자리에 있는 이가 작가로 등단한다면 항용 작가라는 또 하나의 부적을 몸에 달고 싶은 치기적 목적-더러는 문학 창작보다는 외적 허울을 위하여 등단이라는 과정을 밟는 이도 보아왔기에-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없지 않았다. 일찍이 김소운은 이런 작가를 ‘사이비’라 칭했지만.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그가 특별히 나의 관심사 안에 머물게 된 것은 정작 그의 작품을 눈여겨 본 이후였다. 그의 이력과는 사뭇 동떨어진 그의 문학적 진정성, 작품의 깊이가 나를 사로잡은 것이었다. 적어도 그의 작품은 안두에서 적당히 짜아내거나 일상의 가벼운 지적호기심의 발로가 아닌, 진지한 삶에 천착한 작품이였다.
단언하건데 손경찬의 수필세계는 그만의 독특한 삶의 역정속에서 자연 발효되고 순화된 고통의 산물이었다. 그의 수필은 성공한 이의 작품에서 자연 유로되는 자기과시와 현학 또는 과장된 삶의 단면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작품 편편에서 역경과 고난의 세월을 감내해 온 진지한 삶의 흔적들이 충만해 있다. 그래 그의 수필은 무늬가 황홀찬란하지 않다. 그의 수필은 무채색에 가까운 삶의 실루엣이라 할까. 그럼에도 그의 수필은 읽는 이의 가슴을 따뜻하게 하고 희망적 메시지를 통해 희망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 바탕은 바로 그의 수필의 인자들이 ‘인간’에 바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수필은 작가와 현실의 정서적 등가에 놓인다. 그러므로 자기관조와 투영이라는 수필의 지향은 다난한 현실 위에 구축한 정서적, 사변적 깃발이 된다. ‘살되 어떻게 사느냐’ 하는 인간 삶의 궁극적 향방을 찾아 떠나는 여행. 때문에 어떻게 사느냐하는 화두는 작가적 삶의 역정에서 자연 유로되는 자기고백이 된다. 이런 독백과도 같은 자기관조의 정서가 독자의 심경에 부딪혀 메시지를 제공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손경찬의 수필을 읽어내려가노라면 이런 그만의 자기관조의 세계에 빠지게 하는 즐거움을 체험하게 한다.
헤겔의 변증법은 “역사적 현재는 언제나 피와 땀과 먼지로 가득 차 있는 고통스러운 세계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이어서 현재의 소멸은 새로운 현재의 끊임없는 형성이라고 했다. 여기서 굳이 철학적 담론을 이끌어낼 필요는 없겠지만, 수필의 향방만은 비록 미등일망정 나아갈 길을 밝혀준다. 문제는 문학의 보편성이 그러하듯, 작가의 체험의 확대 문제에 있을 것이다. 이같은 측면에서 수필작가 손경찬의 세계는 독특한 자기세계의 확대라 하겠다.
2. 섬세한 관찰과 통찰을 통한 해석의 묘미
앙리 마티스는 친구와 함께 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실루엣을 몇 초 안에 그리는 연습을 하곤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행인들의 몸짓과 자세에 나타나는 특징을 순간적으로 파악해야만 했다. 관찰력은 마티스의 스승인 외젠 들라크루아Eugene Delacroix도 중시한 능력이었다. 그는 5층에서 떨어지는 사람이 바닥에 완전히 닿기 전에 그를 그려내지 못하면 걸작을 남길 수 없다고까지 했다. 그렇다. 빈센트 반 고흐 역시 그의 목표는 뭔가 그리는 것이었고, 자신이 본 것을 나중에 마음대로 재현할 수 있도록 ‘잘’ 보는 능력을 갖는 것이었다. 고작 하루, 그것도 오후 나절 본 것만 가지고 완성한 고흐의 몇 몇 명작을 보면 그가 원하던 능력을 성공적으로 갖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글쓰기에도 이런 예리한 관찰의 기술이 필요할 일이겠다. 서머싯 몸은 “사람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것은 작가의 필수의 자세다.”라고 하였다. 이 말은 외관뿐만 아니라 대화나 행동까지도 관찰해야한다는 뜻일 것이다.
수필 <유기遺棄>는 파리와의 싸움을 소재로 하고 있다. “파리 한 마리가 온 신경을 건드린다고 했다.” 사건의 발단은 아주 일상적인 소소함에 있다. 누구든 겪었을 법한 사소한 화소에 집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단서는 전개 과정을 거치면서 점점 양자 간의 싸움이 격화되고 따라서 갈등도 고조된다. 차안의 열기를 식히고자 문을 열어둔 게 탈이었다. 몇 마리의 파리들이 들락낙락한다. 그들을 내려놓고 떠났는데 그만 한 마리가 동승했나 보다.
눈앞에 뭔가가 휙 지나간다. 앞을 주시하면서 눈을 살짝 돌려봤다. 분명 차 안에 있는 것 같은데 보이질 않는다. 잘못 봤나? 다시 속도를 냈다. 앞 유리에 움직이는 게 보인다. 파리다. 숨바꼭질 하다가 너무 깊이 숨었던가 보다. 친구들은 다 내렸는데 이놈은 혼자 여기 있다. 단지 눈앞에 있을 뿐인데 온 신경이 그곳에 간다. 양쪽 창문을 다 내리고 나가라고 팔을 뻗어 휘휘 쫒아내 보지만 유리에 착 달라붙어 꼼짝을 않는다. 손으로 여기 저기 더듬어서 휴지를 찾아 작고 까만 그를 건드렸다. 손만 댔을 뿐인데 마치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결과가 되어버렸다.
-<유기遺棄>에서
사건은 화자의 평화롭던 신경을 한 순간에 곤두서게 한다. 싸움의 단초요, 발단이다. 이어서 양자 간의 말없는 싸움은 점차 격화되어 간다. 내보내려는 이와 버티는 이의 대전은 점차 적벽전을 연상하듯 절정으로 치닫는다. “모른 척 해 보지만 사부작 움직이는 그놈의 발자국 소리까지 들리는 듯하다. 옆 좌석에 둔 신문으로 살짝 때렸다. 나 잡아 보란 듯이 옆으로 살짝 옮겨 앉는다. 정조준을 하고는 다시 퍽 소리가 나도록 쳤다. 무게 중심이 그쪽으로 너무 실렸던지 차가 휘청거린다. 심장이 벌렁거린다.” 담론의 전개에 해학이 넘친다. 그대로 체념하고 지나도 되련만 양자의 대결은 극단적이다. 파리의 성향이 화자의 안온한 평화를 건드린 것이다. “잠 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결과”에서 발단한 일이지만 싸움은 차츰 격렬해진다. 숨바꼭질을 하던 파리는 그도 재미없는지 이번엔 술래잡기를 하자고 한다. “바람 난 선머슴 모양 좀체 한 자리에 가만있지 못하고 여기 앉았다 저기 날았다 정신없게 만든다. 서서히 내 인내의 한계가 느껴진다. 룸밀러에 비치는 내 모습이 가관이다. 파리 한 마리와 사생결단 낼 듯이 싸우고 있는 모습이 한심스럽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갈등의 심화는 곧장 룸밀러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귀환의 빌미를 준다. 해학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작품이 생명력을 갖는 것은 앞에 앙리 마티스나 서머싯 몸이 말했듯 관찰을 통한 인간의 탐구에 있을 것이다.
이 수필은 마치 구양수의 <증창승부憎蒼蠅賦>의 한 구절을 보는 듯하다. 파리를 ‘창파’라 했다. 형체는 비록 미소하지만 그 미치는 해독이 여간 아니라고 했던가. 그래선지 ‘증창승부’는 사망詐妄한 간인들이 정의를 사악함으로 돌리고나 사邪를 정의인 척 온갖 구설과 곡학으로 어지럽힌다고 했다. 행간의 깊이를 독파한다면 바로 화자의 파리와의 싸움은 사와 정의의 싸움이요, ‘창파’를 물리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수필의 포커스를 현실비판보다는 ‘유기’에 두고 있다는 데 있다. 대보항 바닷가에 있던 파리 한 마리를 그는 대구로 가는 휴게소에서 기어코 쫓아내고야 만다. 싸움은 여기서 그의 승리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의 내적 감각의 행간에는 승리감보다는 그를 산중에 유기했다는 자책으로 마무리된다.
소설적 구성을 택한 이 수필의 묘미는 해학을 통반하는 섬세한 관찰과 통찰에서 오는 인간학에 입각한 해석의 의미화에 있다. 수필의 일상성을 뛰어넘는 그만이 문체가 빛나며 존재 파악의 인간학적 천착이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3. 존재의 궁극적 이해
손경찬의 수필을 읽어내려가노라면 삶의 진정성에 옷깃을 여미게 한다. 작품마다 행간에 담겨 있는 진솔한 삶의 고뇌와 질곡의 강물이 흐르고 있다. 고통의 터널을 감내하고 격랑의 파고를 넘은 이만이 진정한 삶의 가치를 깨닫듯 그의 수필은 행간에 존재의 깊은 성찰과 각성이 묻어 있다. 작가의 고뇌어린 체험이 작품에서 어떻게 생명력을 갖게하는가를 그의 수필은 잘 보여준다. 수필 <거짓말>과 <잿밥>은 루카치의 언명과 같이, “좀처럼 붙잡기 힘든 인간 영혼의 가장 은밀한 곳에 자리 잡은 마음의 미세한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서사적 진행으로 이루어진 이 수필은 배경과 인물 그 사이에 전개되는 존재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타자他者는 나를 바라봄으로써 나에게 객체성을 부여한다는 바로 그 사실로 인해 나와의 관계에서 투쟁의 당사자라는 존재론적 지위와는 정반대되는 또 하나의 지위를 갖게 된다고 했다. 사르트르는 이를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고 하였지만, 그의《존재와 무》에서 보듯 타자란 “나와 나 자신을 연결해 주는 필수불가결한 매개자”로 집약된다. 그에 의하면, 나와 타자는 ‘함께 있는 존재’가 아니며, 협력을 거부하는 관계에 놓여 있다. 그러므로 나와 타자는 서로 만나자마자 각자의 시선을 통해 자신의 힘을 과시하듯 서로가 서로를 객체로 사로잡고 주체의 위치를 차지하기 위하여 투쟁하게 된다고 하였다. 수필 <거짓말>과 <잿밥>은 이런 존재 규명의 지난한 깃발을 높인 든 작품이라 하겠다.
<거짓말>의 서두를 보자. 화자의 딸은 “세상의 모든 것을 거부 하듯이 종일 자기 생각 속에서 나올 줄을 모른다.”고 했다. 일찍 귀가하겠노라 한 딸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거짓말을 하게 된 게 발단이다. 토라진 딸이 곰 인형을 끌어안고 있다. 문득 화자의 머릿속에 어둠속에 앉아있던 유년의 기억이 떠오른다. 전개 부분은 서사적 진행을 택하고 있다.
화자가 체험한 삶의 질곡의 공간에는 대진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송천강이 있다. 송천강은 화자의 토포필리아topophilia 즉 공간애空間愛의 현장이다. 영해시장 어물전은 화자의 유년시절 삶의 공간이었다.
청상이 된 어머니. 먹고 살기 위해 질곡의 세월을 감내해야 했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에 대한 화자의 사랑이 남달랐을 것은 자명한 일. 그는 “엄마 아빠라는 말 보다 세상의 비린 냄새”를 먼저 알았다고 했다. 그런 어머니가 주는 돈은 생선비린내가 진동했다. 비린내를 날려버리려 송천강 둑을 종일 뛰어다녔다. 그러다 찾은 시장 난전 어머니의 자리는 아수라장이었다. “땅바닥에 패대기쳐진 명태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어머니와 어떤 아주머니가 서로의 머리채를 잡고 나뒹굴고 있었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희멀건 눈을 한 명태를 싱싱하다고 속여 팔았을까, 내주지도 않았으면서 잔돈을 거슬러 줬다고 우겼을까. 엿장수의 가위질 소리가 어머니의 악다구니에 묻혔다. 나는 발길을 돌려 대진 앞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송천강 둑을 다시 올랐다. 강물을 내다보며 나는 어머니를 시장바닥에 내 놓은 얼굴조차 모르는 아버지를 원망하며 하염없이 울었다.” 생활을 위해 온갖 수모와 맞붙어야했던 어머니의 삶의 현장. 화자에게 있어 유년의 회상은 어쩌면 고통의 세월을 넘어야 하는 강이기보다는 토포필리아 곧 공간애일밖에 없다. 그에게 그런 아픔이 있었기에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우뚝 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어머니의 죽음과 맞닥뜨린 화자의 체험은 시지프스의 노역에 방불하다. 화자의 나이 겨우 열한 살의 체험은 인간의 한계상황을 보여준다. 염천 삼복, 그는 어머니의 죽음을 앞에 두고 울지 않았다. “나한테는 하지 말라던 그 거짓말이 어머니를 데리고 가 버렸다. 나는 어머니가 거짓말을 많이 해서 돌아가신 거라 믿었다” 그리고는
리어카에 어머니를 싣고 그 위에 방문 앞 기둥에 달려 있는 기름병을 얹었다. 마을 동장이 어머니를 실은 리어카를 끌고 집을 나섰다. 그 뒤를 따라가는 어린 나는 내내 나는 죽어도 어머니처럼 거짓말은 하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절대 울지 않으리라 맹세하는 내 얼굴은 땀이 눈물이 되어 흘렀다.
관어대 뒷산 공터에 어머니를 내렸다. 나무껍질에 기름을 붓고 성냥을 그었다. 너울너울 불길이 솟았다. 나는 어머니의 마지막 가시는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어 한 달음에 집으로 돌아왔다. 밤새 불도 켜지 않은 외딴 집에서 나는 혼자 어머니의 베개를 끌어안고 앉아 있었다. 어머니는 혼자서 당신의 길을 가고 있다. 온 밤을 꼬박 뜬 눈으로 보냈다. 설핏 든 새벽잠이 아침 햇살에 쫓겨 달아났다. 어머니의 마지막을 수습해야한다는 생각에 화들짝 놀라 뛰었다.
-<거짓말>에서
이후 그는 “공터에 혼자 앉아 있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살아왔다.”고 했다. “여자 혼자 자식을 키우며 살아가기에는 버거운 세상이었다. 어머니의 그 거짓말 속에 얼마나 많은 것이 들어있는지는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면서였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서도 세상을 잘 살아가리라 맹세했다.” 그런 그에게 “정작 그 거짓말은 내 딸의 가슴에 앉아 있다.”던 것이었다.
딸과 어머니 사이에서 화자는 비로소 타자他者는 나를 바라봄으로써 나에게 객체성을 부여한다는 사르트르의 실존을 깨닫게 된다. 이 수필이 존재파악이라는 수필문학의 궁극의 길을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일 것이다. “출근 하는 내 목을 끌어안고 뽀뽀하는 딸에게 일찍 오겠다는 약속은 항상 거짓으로 남겨졌다.”는 화자의 해석이 갖는 의미화에 독자가 다가설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희생된 어린 딸과의 많은 약속들. 어머니는 청상의 몸으로 어린 나와 먹고 살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지만 나는 무엇을 위해 내 딸에게 거짓말을 남겨 놓았는가.”라는 결미의 함축과 여운이 감동을 준다.
수필 <잿밥>은 앞서의 수필 <거짓말>의 속편으로 보아도 좋을 작품이다. 그에게는 잿밥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다. 음복상을 받았지만 선뜻 젓가락이 가지 않는다. 전개는 앞서의 <거짓말>과 같은 서사적 방법을 택하고 있다. 가슴 아픈 체험의 반추이다. 열한 살의 나이로 어머니를 여위고 고아가 된 그는 친구집을 전전하며 살아야 했다.
화제는 눈이 소복히 쌓이던 정월초의 이야기로 진입한다. 그날은 바로 제삿날이었다. 모두가 살기 어려웠던 시절, 배를 채울 기회였다. 하지만 제사가 끝나려면 밤 12시가 넘어야 했다. “남의 집 제사에 참석할 수 없는 나만 옷도 벗지 않은 채 이불을 덮고 누웠다. 전기를 아껴야 하기에 늦도록 불을 켜 놓을 수도 없는 일이다. 책이라도 읽으면 시간이라도 잘 갈 텐데 맹숭하게 누워 있자니 곤욕이었다. 이불을 뒤치락거리며 잠을 쫓느라 허벅지를 꼬집었다가 뺨을 꼬집기를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내리는 눈이 가는 시간의 발목을 잡는지 그날따라 시간은 더디기만 했다.” 남의 집 더부살이를 하던 소년이 겪어야 했던 생존의 갈등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안방과 내가 누워있는 방 사이에 부엌이 있었다. 솥뚜껑 여닫는 소리, 칼질 하는 소리 하나 하나 내 귀에 들어왔다. 뚬벅뚬벅 칼질은 탕 끓일 무 써는 소리, 통통통 도마 치는 저 소리는 무 채 써는 소리, 나도 따라 칼질을 한다. 문틈 사이로 전을 부치는 기름 냄새가 기어 들어오면 나도 모르게 침 넘어 가는 소리가 이불을 제치고 나왔다. 혹여 아주머니가 들었을까 숨죽여 돌아누웠다. 안방과 부엌사이의 작은 문이 열리고 상 차리는 소리가 났다. 냄새를 보니 문어도 한 마리 삶았나 보다. 어물이 들어가고 전이 들어가고, 친구의 ‘와아’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쇠고기 산적도 들어가는가 보다. 나는 누워서 제사상을 그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메밥이 들어간다는 아주머니의 소리가 들렸다. 기름이 조르르 흐르는 하얀 쌀밥을 한 숟가락만 떠먹어도 행복하겠다며 군침을 삼켰다. 떠들썩하던 친구와 동생들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을 보니 절을 하고 있다. 조금 있으면 음복을 할 것이고. 나는 부르기만 하면 단박에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시 부산한 소리가 들렸다.
-<잿밥>에서
하지만 그런 욕구를 마음껏 충족시킬 수 없었던 화자는 “경찬이 깨워서 밥 먹여라.”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뛰어나갈 수 없었다.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지만 소리내어 울 수도 없었다.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그렇게 미울 수 없었다. 아침 상에 올라온 “쌀밥을 뜬 숟가락이 입에 들어갔지만 울음이 북받쳐 씹을 수도 없었다. 대성통곡을 하는 나를 모두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 혼자 속 끓이며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이해 할 수는 없는 일이다.”라는 회억은 어머니와의 상관관계에서 빚어진 아픈 추억때문이었을까. 아마도 그런 아픈 추억이 있었기에 오늘에 그가 존재함은 아닐까. “그 밤을 생각하니 눈시울이 적셔진다. 헛헛한 웃음을 날리며 눈을 식당 밖으로 보이는 월영교로 보낸다.”라는 결미가 이 작품의 완성도를 더하고 있다. 그의 전생애에 각인된 어머니는 삶과 죽음을 떠올리는 화두요, 이제 딸과 화자와의 대립각에서 존재의 의미를 떠올리게 하는 과정의 진지함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몽테뉴였던가. “사람들은 가고 오고 쏘다니고 춤을 춘다. 그러나 죽음으로부터 보자면 아무도 새로울 것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 죽음이란 불가해한 문제는 인간 존재의 궁극적인 이해를 돕게 하는 깊이와 넓이를 지닌 인간 보편의 절대적인 화두이다. 그래 투쟁하고 쟁취하려하거나 과욕을 부리는 인간사의 모든 일들이 죽음으로부터 보자면 하잘 것 없는 속인의 것이 된다. 하여 “인생이라는 중고 시장에서 마치 새것처럼 앓아야만 하리라.”는 엘 사롱 드 멕시코의 언명이 더욱 새롭게 다가온다.
4. 삶의 진중함과 역발상의 승리
“야생에서 살아남으려면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이 특히 뛰어나야 할 것이다. 먹이사슬의 가장 꼭대기를 차지하는 위험군은 우리 인간이다. 인간의 올가미를 피해가는 방법쯤은 아마 저 살쾡이는 미리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그들에게 던졌던 올가미를 언젠가는 다시 돌려주기 위해 부단히 머리를 싸매고 고민 중일지도 알 수 없다.”(수필 <올가미>에서) 생존을 위한 지혜가 번득인다. 그는 젊은 나이에 기초단체 군위원이 되었고, 도위원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앞서 수필들의 행간에서 보이는 곤고한 삶의 역경을 지니고 그가 정치 일선에 뛰어들게 된 것은 유년시절 유일한 혈육인 어머니를 여위고 친구의 집을 전전하며 미래를 위해 개척해나갔던 그 뚝심과 열정이 있어서였을 것이다. 권위를 내세우는 공무원들이 처놓은 올가미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올가미를 적절히 이용하여 대세를 뒤집어엎고 승기를 잡는다. 역발상의 계기이다.
사냥감의 눈에 띄어버린 올가미는 이미 올가미가 아니다. 피해가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그들은 젊은 네가 무얼 알겠느냐고 비웃으며 더듬거리는 나를 즐기려 할 것이다. 얼밋얼밋 시간만 끈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사법서사소를 찾아가서 한문 옆에 토를 달아달라고 부탁했다. 토를 달은 한문은 한글이 되어 술술 읽혔다. 나는 읽고 또 읽은 후 현장을 뛰어다니며 자료를 모았다. 그들이 던진 올가미를 완벽하게 벗어 던져야 했다. 그런 다음 내게 던져진 올가미를 어떻게 돌려줄지 생각했다.
-<올가미>에서
공무원들의 치기인가. 아니면 관료적 편의주의인가. 그도 아니면 의원들을 길들이기 위한 올가미인가. “예산심의를 하기 일주일 전에 각 부서별로 내 놓은 예산편성 자료를 받았다. 글자 수가 족히 10만자나 되는 자료는 한문으로 빽빽하게 쓰여 있었다. 한글로 써도 충분히 뜻이 통하는 ‘다리공사’라는 글자부터 숫자까지 한문으로 써 놓았던 것이다. 젊은 내가 가장 한문을 모를 거라는 생각에 나를 골탕 먹이겠다는 의도가 다분했다.” 화자는 이런 올가미에서 벗어나기 위한 길을 찾는다.
화자의 역발상은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필연이었을 것이다. 그가 어떤 이인가? 수필 <헌옷>은 바로 화자의 생존의 역정이 담겨 있다. 횡단 보도를 건너는 인파 속에 리어커를 끌고 가는 노인의 무거운 발걸음을 보며 그는 팍팍한 삶의 모습 위에 겹쳐지는 친구의 사업을 떠올린다. 둘도 없는 그의 절친한 친구이다. 스무 살 무렵, 해동라사에서 패션의 한 획을 긋기로 결심한다. 하루바삐 기술을 배우려는 그들의 욕심은 감내하기 힘든 일이었다. 맞춤양복이 사양길로 접어들자 미련없이 패션에의 꿈을 접고 친구와 함께 대진해수욕장으로 간다. “한여름 뙤약볕에서 생선이 담긴 양동이를 들고 뛰었다. 잘 달구어진 가마솥처럼 따끈따끈한 모래사장을 맨발로 뛰며 장사를 했다. (중략)가게에 손님이 오면 친구는 양동이에 펄떡거리는 생선을 담아서 뜨거운 모래사장을 고기가 퍼덕이듯이 뛰었다. 좁은 식당은 항상 살아있는 생선을 먹을 수 있어 손님으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새카맣게 그을려서도 희망을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옆에 혈육보다 더 가까운 친구가 있어 그는 외롭지 않았다.
친구는 나를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같이했다. 서른 초반에 군의원에 나왔을 때였다. 그는 자기가 하고 있던 모든 일들을 제쳐두고 내 선거를 도우러왔다. 우리는 예전에 모래사장에서 뛰었던 것처럼 발이 부르트도록 다녔다. 행여 내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라도 하면 친구도 같이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하늘에서 별을 찾으려 애쓰며 푸른 날들을 믿음으로 채웠다. 한 표라도 더 받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내 곁에 그가 있어 언제든 비빌 수 있는 든든한 언덕이 되어주었다.
우리는 대진 바다에 뜨는 해보다 한 뼘은 더 일찍 일어나 들판에서 일하는 농민들을 찾아 다녔다. 늦은 밤, 달빛도 없는 산골마을에 내 이름을 알리려 목이 쉬도록 외쳤다. 시장바닥을 종일 헤매고 다니다 의자에 앉은 체 지쳐 잠이 들 때면 잠깐이나마 눈을 붙이게 하려고 불을 끄고 조용히 문을 닫아주던 친구였다.
-<헌옷>에서
친구가 있어 그는 군위원에 당선되었고, 패션을 꿈꾸던 그들은 이후 정치가와 중견사업가로 다른 길을 택하게 되었다. 새 옷을 만들고자 했던 꿈이 비록 헌옷으로 바뀐 친구의 모습이 노인의 리어커 옆으로 삐죽이 드러난 헌옷을 통해 중첩된다.
신호가 바뀌어도, 횡단보도를 건너는 노인의 리어카는 흰 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어서려는 순간, 길을 가던 중년의 남자가 나보다 먼저 리어카를 밀어준다. 누군가의 생각지도 않은 힘이 되어 주는 그 중년의 남자처럼 내 친구도 그렇지 않을까. 눈은 내 마음을 대신하는 그 남자의 뒷모습을 따라간다. 고맙다고 연신 고개를 꾸벅이는 노인과 손을 툭툭 털고는 별 일 아니라는 듯이 웃으며 가는 그 남자를 바라보자 흐뭇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헌옷>에서
그에게 있어 친구는 오래된 옷처럼 편안하다. 이 수필의 마력은 삶의 진정성이요, 해석의 진중함이자, 의미화의 성공일 것이다.
5. 에필로그
손경찬의 수필을 통해 단편적으로 살펴본 작품세계는 섬세한 관찰과 통찰을 통한 묘미가 나타나 있으며, 존재의 궁극적 이해와 삶의 진중함과 역발상의 승리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이 점은 그의 수필이 일상성에서 자유로우며, 일상이 아닌 존재 파악에 닿아있다는 점에서 작품 해석의 긴장감을 해소시켜준다. 하여 그의 수필의 지향은 에술의 진리에 닿아 있으며, 수필의 향방을 제시해주고 있다 하겠다.
예술은 존재자를 모방하려 했다. 하지만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에 따르면, 예술의 본질은 모방이나 재현에 있는 게 아니었다. 예술의 진리는 무엇보다도 사건을 일으키는 데에 있었다. 그래 모든 존재자의 아래에 묻혀 잊혀진 존재의 체험을 일으켜, 우리를 존재 망각의 상태에서 깨어나게 한다. 피카소의 그림이나 고야의 그림을 통해 체득하는 예술의 세계는 바로 우리들 삶의 모습 그대로였다. 미셀푸코Michel Foucault가 말했듯, “사유의 전 지평을 산산이 부숴버리는” 존재의 의미를 해석해냄으로써 비로소 우리는 진실에 눈뜨게 되지 않는가. 손경찬이 일궈나가는 수필의 밭을 기대해도 좋을만하다.*
도서출판 에세이포레
저자 눈재 한상렬韓相烈
1945년 충남 아산 출생
『현대문학』작품발표로 문단활동 시작(1987년)
『시대문학』(1989년 수필), 『문예한국』(1993년 평론)데뷔
한국문인협회회원. 이사 역임. 『월간문학』편집위원
한국문학비평가협회 이사
국제펜클럽인천지역위원회 명예회장
『수필시대』주간 역임
『에세이포레』발행・편집인
강남문화원 문예창작 지도교수
저서: 수필집 《미로찾기》, 《비움과 없음》외 15권
문학평론집 《허물벗기와 미로찾기》외 19권
창작론 《수필문학 강독》외 10권 등 70여 권
신곡문학상, 한국문학비평가협회문학상. 구름카페문학상 등 수상
이메일 :hsy943@hanmail.net
주소: 인천광역시 남구 수봉안길35번길 12(숭의동)우)402-812
손전화:011-706-9436(032-867-9436)
존재사태,
그 사유의 악보樂譜
한상렬 지음
머리글-새로 책을 상재하며
이제 한국문학의 키위드는 수필문학이다. 속중문화인 키치가 난무하고 대중의 인기에 영합한 단세포적인 문화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지만, 영원불변한 것은 문학의 순수지향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우리 수필문단은 아직도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서성이는 양상이다. 필자의 관심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그래 한국수필의 미래지향적인 탐색은 이 저술의 기조일 것이다.
통섭統攝이론이 새롭게 회자되고 있다.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의 통섭consilence은 지식의 대통합을 가리킨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다른 것과의 조화를 이루며 통합되어 있으며, 문맥을 고려하지 않은 채 분리하면 그들만의 고유한 존재의 이유가 손상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윌슨은 분석과 종합을 한데 묶어 통섭을 이룰 것을 주장하고 있다. 냇물이 강으로 환원되지 않듯 진리를 환원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진리들과 합류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는 진정 학문의 경계를 허물고 일관된 이론의 실로 꿰는 범학문적 접근의 필요, 곧 통섭의 시대를 맞고 있다함이겠다.
아직도 전통주의에 목을 맬 것인가? 시대가 변화하고 있다. 작가의 의식은 독자의 의식변화에 민감해야 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필요다. 수필창작도 이와 같다. 변화를 수용하고 그 변화의 최선봉에서 장벽을 허물고 뒤틀어보거나 새로운 시선으로 낯설게 함으로써, 사물과 대상을 통찰하여 해석하고 의미화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일관되게 이런 의견을 수필문단에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역설하였다. 하지만 애초 배운 바 적고, 아는 바 적은 필자로서는 독자가 흡족해할만한 이론이나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까닭으로 이번에 새로 내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한 수필창작의 길라잡이는 이런저런 이유로 집필한 수필평론을 중심으로 한국수필의 표정을 찾고자 하였다. 여기에 최근 발표한 수필문학에 대한 견해를 덧붙여 제 20 문학평론집을 세상에 나놓는다. 수필창작에 임하는 독자들의 길라잡이가 되리라 여긴다.
평생 이 일에 바친 필자의 노고의 산실인 동시에 수필문학에 대한 애정으로 보아주길 기대한다. 아울러 이 일에 도움을 준 평생의 은인인 서해출판사의 강내인 사장에게 감사한다. 강호 제현의 질책과 고언을 기대한다.
첫댓글 처절한 자신과의 싸움에 두려움 없이 뛰어드는 손회장님의 기질은 결코 우리에게 부여된 삶이 옹냐옹냐 달래고 보듬기만 할 대상이 아님을 일러줍니다. 진흙탕에 뒹굴면서도 번쩍 살아나는 눈빛.... 문득 생의 한가운데를 꿰차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너무 존경스러울뿐입니다,,,,무에사 유를 ,,,창조하신 회장님에 앞날에 좋은 일만 있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