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취산 / 영축산
경상남도 양산군의 통도사가 위치해 있는 산 이름은 원래 영취산(靈鷲山), 취서산(鷲棲山) 등으로 불리어 왔는데, 2001년 1월 양산시 지명위원회에서, 1463년(세조 9)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법화경언해(法華經諺解)본을 근거로 하여 그 이름을 영축산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이 산에 위치한 통도사 당국도 영축산으로 부르고 있다.
영취산은 본래 고대 인도 마갈타국(摩竭陀國)의 왕사성(王舍城) 북쪽에 있는 산인데, 이곳에서 석가가 법화경(法華經)을 설하였기 때문에, 매우 신령스러운 곳으로 여기고 있다. 절의 법당에 그려져 있는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는 이 산에서 석가가 설법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영취산은 기사굴산(耆闍崛山)으로 음역되기도 하고, 취산(鷲山), 취봉(鷲峰), 취대(鷲臺)로 번역되기도 한다.
산의 이름에 ‘독수리 취’자가 들어간 것은, 이 산이 독수리 모양을 닮아서 그렇다는 설과 독수리가 많이 살았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실제로 이 산에는 독수리 모양의 바위가 있다.
어떻든 이 산은 불교와 관련된 산이기 때문에, 예부터 성지로 여겨져 불승들의 참배지가 된바, 그 옛날 인도를 기행했던 법현(法顯)의 '불국기(佛國記)'나 현장(玄奘)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도 등장한다. 이런 연유로 우리나라에도 영취산은 여기저기 여러 곳에 있다. 전남 여수시, 경남 창녕군과 함양군, 울산광역시에도 영취산이 있다. 그 외에 대동여지도에는 영취산이란 산 이름이 전국적으로 8곳이나 나온다.
그런데 지금 여수, 함양, 창녕, 울산에 있는 영취산은 다 영취산으로 부르고 있으며, 표지석이나 안내판도 다 그렇게 적혀 있다. 양산의 통도사가 위치해 있는 것만 유독 ‘영축산’으로 부르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이것이 과연 합당한 것일까?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영취산은 법화경에 나오는 산 이름이다. 법화경 제4권 제바달다품(提婆達多品)에 “이들은 큰 바다의 사갈라 용궁으로부터 저절로 솟아올라 허공을 지나 영취산에 이르렀다.”는 구절이 있고, 또 제5권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에는 “신통력이 이와 같아 아승기(阿僧祇) 오랜 겁(劫)에 영취산과 다른 곳에 머물러 있느니라.”는 시구(詩句)가 있다.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영취산은 모두가 법화경에 나오는 이 산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불교와 관련한 이러한 지명이 수없이 많은데, 모두가 불전에 근거를 두고 있다. 통도사가 위치한 산을 종래에는 모두가 영취산으로 부르고 그렇게 써 왔다. 그런데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갑자기 이 산을 영축산이란 이름으로 고쳐 부르도록 한 것이다. 신라, 고려 이래로 영취산이라 불려온 이 산을, 어느 한 문적의 번역을 기준 삼아 영축산으로 고쳐 부르는 것이 합당한 일일까? 그럼 이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보기로 하자.
먼저 과연 조선 시대에 간행된 '법화경언해'에는 영취산이 영축산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일까?
독수리를 뜻하는 취(鷲) 자는 ‘취’ 이외의 다른 음은 없다. ‘독수리 취(鷲)’ 자는 ‘취’ 자일 뿐, ‘축’이라는 음은 어디에도 없다.
영취산을 영축산으로 이름을 바꾸는 데 전거로 삼았다는 '법화경언해'에도, 사실 ‘鷲(취)’ 자는 ‘축’이 아니라 ‘쯈’으로 적혀 있다. ‘쯈’은 동국정운(東國正韻)식 한자음이어서 당대의 현실음이 아닌, 인위적으로 만든 음이다. 중국의 음을 참고하여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다. 훈민정음언해에 나오는 ‘나랏 말쓰미 中듕國귁에 달아’에서 ‘中國’을 ‘듕귁’으로 표기한 것도 현실음이 아니라, 중국의 음을 절충하여 새로 만든 것이다. 당시에도 ‘中國’을 일반에서는 ‘듕귁’으로 읽지 않았다.
위와 같이 각종 운서에 나타나는 ‘취’ 자의 음은 ‘주’ 혹은 ‘쥐’다. 이로 보아 '법화경언해'의 ‘쯈’은 당시 현실음인 ‘주’나 ‘쥐’ 혹은 ‘취’를 그렇게 바꾸어 적었을 개연성이 크다. 어떻든 ‘쯈’으로 적었지 ‘축’으로 적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이름 변경의 근거로 삼았다는 '법화경언해의 鷲의 음인 ‘쯈’은, 당시의 현실음을 동국정운식 한자음으로 바꾸어 적었을 뿐, 결코 ‘축’으로는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럼 양산시 지명위원회에서 전거로 삼았다는 '법화경언해' 제1서품 제1부분을 보자. 여기에는 영산(靈山)의 딴 이름인 취두산(鷲頭山)을 ‘수리머리산’으로 번역하고, 이어서 영취(靈鷲)를 ‘령쯈’이라 적고 있다. 이로 볼 때, 鷲 자를 ‘수리(독수리)’의 뜻으로만 분명히 썼으며 ‘쯈’으로 읽었음을 알 수 있다. 鷲 자는 독수리 이외의 다른 어떤 뜻으로도 쓰지 않았으며, ‘쯈’ 이외의 다른 음으로는 읽지 않았다. 덧붙이면 ‘축’이라고 전혀 읽지 않았다.
이처럼 鷲 자를 ‘쯈’으로 읽은 것은 '법화경언해'의 다른 부분, 곧 제4권 제바달다품 제12와 제5권 여래수량품 제16 등에서도 똑같다.
또 어떤 이는 ‘鷲’를 ‘축’으로 적는 것을 가리켜, 남무(南無)를 나무로 읽고, 반약(般若)을 반야로, 정화(幀畵)를 탱화로 읽는 바와 같은, 불교의 독특한 독음(讀音) 방식으로 보는 것 같기도 하나, 鷲 자는 그런 갈래의 말과 같은 근거나 일반성이 전혀 없는 글자다. 그러므로 영취산을 새삼스럽게 영축산으로 적어야 할 당위성은 없다.
영취산은 신라 때부터 그 이름이 영취산으로 불리었다. 통도사가 위치한 이 산을 독수리가 서식하는 산이라 하여 종래에 취서산이라고도 불렀으니, 독수리와 관련이 있음에 틀림이 없다. 그래서 영취산을 줄여서 취산(鷲山) 또는 취령(鷲嶺)이라고도 했는데, 축산이나 축령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영취산을 영축산으로 바꾸어 불러야 할 하등의 당위성을 찾을 수 없으므로, 영축산은 원래의 이름 그대로 영취산으로 부름이 타당하다.
♣ 법화경언해의 ‘鷲’ 자는 음이 '쯈'인데, 이 글자의 ㅁ 아래 'ㅇ'이 붙어 있는 글자이다. 그런데 이 화면에서는 그런 글자를 타자할 수 없어 '쯈'자로 나타냈음을 알린다.
첫댓글 제가 알던 봐도 같은 산 이름 영취산이 여러 곳에 있다고 생각 했어요!!
양산 영축산 통도사로 알고 있었는데 고대부터 전해져온 독수리 '취'자로 관련된 신령스러운 영취산이 합당하군요?
박사님 귀한 공부를 하였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다은 선생님 늘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