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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내용은 구복구생이 큰 글씨로 키워놨습니다. 2군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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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만세운동과 천도교
3·1운동의 기폭제를 마련한 것은 천도교, 천주교, 기독교, 불교 등 종교단체였다. 손병희를 비롯한 천도교의 간부들은 1918년 11월 세계대전이 종결되고 파리에서 강화회의가 열리게 되자 이를 독립운동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조선의 상황을 세계에 알릴 기회를 엿보고 있던 중, 1919년 1월 22일 타계(他界)한 고종황제의 장례를 차일피일 미루어 오던 일본이 3월 3일 장례식을 거행하기로 결정하자 이때를 이용하여 대대적으로 조선의 실상을 세계에 알리고 조선의 독립을 쟁취할 기회로 삼기로 하였다.
민족대표들은 장례식 이틀 전인 3월 1일을 거사일로 잡고, 이 날 아침 인사동(仁寺洞)의 태화관(泰和館)에 모여 독립선언서 100장을 탁상에 펴놓고 찾아오는 사람에게 열람하게 하였으며 오후 2시 정각이 되자 한용운이 일어나 이를 낭독한 다음 일동이 대한독립만세를 삼창하고 축배를 들었다
한편 거사 당일날 파고다 공원에서 기다리던 학생들과 시민들은 민족대표 중의 한 사람이라도 와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이들 민족대표들은 누구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하여 학생대표가 나와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시위를 행하였다. 그날 이후 삼천리 강토를 뒤덮은 뜨거운 함성에 비하면 소위 민족대표라 자칭한 33인의 독립선언은 너무나 싱겁게 끝난 것이었으며 일본경찰이 출동하자 충돌 한번 없이, 변변한 저항 한번 없이 순순히 끌려갔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이것은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았으며 민족대표라는 이 사람들이 조선 독립에 의지가 과연 있었나 싶을 정도이다. 이들의 행동은 삼일운동의 도화선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것을 보면 삼일운동 역시 상제님께서 짜놓으신 도수의 하나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전경에 보면 이날의 상황에 대해서 미리 예언해 놓으신 구절이 있다.
상제께서 “조선지말에 이란(吏亂)이 있으리라 하는데 그러하오리까”고 묻는 사람에게 말씀하시기를 “손병희가 영웅이라. 장차 난리를 꾸미리니 그 일을 말함이나 그가 선진주(先眞主)라 박절하게 성돌 밑에서 턱을 괴고 앉아서 거의(擧義)하므로 성사치 못하리라.”
― 전경 예시 60절
어쨌든 민족대표의 독립선언식이 도화선이 되어 일어난 그날 이후 만세의 물결은 삼천리 방방곡곡으로 번져갔다. 만세시위는 초기에는 북부지방에서 먼저 일어났고, 3월 10일 이후에는 남부 지방으로 확대되어 3월 한 달 동안 700여 회에 걸쳐 일어났으며 4월 초에 절정에 달했다. 만세운동에 참가한 사람들도 남녀(男女)·노약(老弱)이 없이 전 국민이 한 덩어리였으며 기생들까지도 참가한 범국민적 시위였다. 그런데 이렇게 거국적인 시위인데도 평화적, 비폭력적으로 진행되어 마치 파도타기를 하듯 전국이 태극기(太極旗)와 만세 함성의 물결로 덮여 마치 하늘에서 보면 거대한 환영행사를 하는 듯하였다.
이러한 시위운동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었으며 어떻게 보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시도였다. 그것도 일제의 무단통치가 서슬 시퍼렇게 설치던 그 시절에. 중무장(重武裝)한 일본제국주의를 상대로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왜놈의 세상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른다는 사실이 목숨을 걸고 비장한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조선의 백성들이 몰라서 그랬을까? 뚜렷한 운동지침도 없이 이렇다 할 조직도 없이. 갖추어진 군장도 없이. 마치 죽으려고 작정한 사람들처럼.
이것은 만세사건이 사람의 힘이 아니라는 증명이 된다. 물론 만세를 부른 것은 순박한 우리의 백성들이었지만, 이렇게 의기(義氣)를 일으키게 한 것은 신명들의 역사(役事)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는 아이도 울음을 그치게 하는 일본 순사. 조선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일제의 헌병통치 앞에 아무런 무장(武裝)도 없이 어질고 순박한 조선의 백성들은 맨몸으로 맞섰다. 어린 소년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독립운동가도 아닌 일반 민간인이 맨몸으로 거국적인 만세시위를 벌였다는 것은 세계 식민지사에 비슷한 예를 찾아보기 힘든 장거(壯擧)로서 이후 다른 식민지에도 깊은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조선의 독립은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고 아직 동토에서는 어둠의 장막이 드리워져 있었다. 또한 만세시위에 대해서 열강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실행한 거의(擧義)는 독립으로 연결되지 못했으니 실제 성취된 건 별로 없었다.
상제님의 말씀대로 지도자들이 성돌 밑에서 턱을 괴고 앉아 거의(擧義)하였으므로 성사되지 못한 것이다.
그러면 만세시위의 역사적 의의는 무엇이며 그 숨은 뜻은 무엇일까? 무엇을 염원하며 무엇을 반기기 위해 온 국민이 하나 되어 거대한 만세시위를 하였을까?
기미독립선언문을 잘 살펴보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눈에 띈다. 독립선언문에 명시된 ‘세계 개조의 대기운’이라든가, ‘신천지가 안전에 전개되도다’라든가 ‘위력의 시대는 거하고 도의(道義)의 시대가 래(來)하도다’라든가 ‘인도적 정신이 신문명의 서광을 인류의 역사에 투사하기 시작하도다’라든가 ‘천택세의 조령이 오등을 음우하며’라든가 하는 구절이 그렇다. 뭔가 현실과 맞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독립선언문이란 글자 그대로 독립을 선언하는 문서이다. 그런데 독립선언치고는 격에 안 맞게 거창하고 웅대한 포부를 싣고 있으며, ‘착수가 곧 성공이라’ 하는 구절 등은 조선독립을 선언하기만 하면 이루어질 것 같은 낙관적인 분위기를 표출하고 있다.
2천만 동포가 다 무장(武裝)을 하고 싸워도 조선의 독립이 쟁취될지 어떨지 장담할 수 없는 판에 선언서 한 장 낭독하고 조선 독립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다니. 그것도 당면한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를 잔뜩 나열해 놓고서 말이다.
어떻게 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해방이나 독립이 그렇게 쉬우면 애초에 왜인(倭人)들의 세상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포구에 서서 일본함대를 향하여 “우리는 당신들과 거래할 생각이 없으니 당신들의 나라로 돌아가시오”라고 전달하면 될 일이었다. 현실적으로 보면 전혀 이치에 닿지 않는 선언문 내용이었다.
그런데도 어떻게 이 사람들은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를 선언문에 적어놓고 그것을 낭독하며 조선의 독립을 확신하였을까?
현실은 차고 어두웠으며 절박했다. 그날 이후 일제의 잔인한 진압과정을 보면 치를 떨 지경이었다.
그러나 도(道)를 알면 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동시에 기미만세시위 자체가 도주님에 대한 환영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당시의 민족대표 33인은 천주교, 기독교, 불교, 천도교 등 종교단체의 인사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크고 작은 항일운동에 개입되어 옥고(獄苦)를 치루거나 고초를 겪은 사람들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할 일이 없어 탁상공론적인 문구(文句)나 늘어놓고 관념적이고 상투적인 이야기를 하기 위하여 민족대표에 끼인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게다가 선언문에 피력되어 있는 웅지나 염원은 인간의 힘으로 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특히 민족대표 33인이라는 사람들이 그날 한 행위를 살펴보면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민족대표라고 하는 이 사람들은 태화관에서 선언문을 낭독하고는 일경(日警)이 들이 닥치자 충돌 한 번 없이 순순히 끌려갔던 사람들이다. 일경 앞에서도 꼼짝 못했던 이런 사람들이 무슨 권능이 있고 힘이 있어서 세계를 움직이며 인류를 움직여 도의(道義)의 시대를 펴고 신천지를 전개할 것인가?
이것은 누가 보아도 관념적인 얘기에 불과한 것이다. 그저 이념(理念)이 그렇다는 것이고, 인간이면 누구나 바라는 이상적인 사회를 지향한다는 내용을 수록한 것일 뿐이다. 그러면 이 선언서 내용은 무엇을 상징하며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
조선의 독립은 눈에 보이는 현실적 당면과제였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다른 현실이 있었다. 또 하나의 다른 현실이란 바로 도(道)에 있는 것으로 바로 만주에서 귀국하여 앞으로 후천오만년의 대운(大運)을 열어갈 도주 조정산과 무사히 이루어진 종통계승을 반기며 환영하는 만세였던 것이다.
독립선언문을 잘 살펴보면 군데군데에서 도주(道主)와 도(道)를 암시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여기에 신명(神明)의 역사(役事)가 있는 것이다. 천지의 대신명들이 이들에게 응기하여 앞으로 올 후천을 암시하도록 적어 놓은 것이다.
만세사건이 신명의 역사임을 짐작케 하는 또 하나의 사건이 있다. 종로서(鐘路署)에 신철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신철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잘하는 악질형사였다. 일본말을 일본인 뺨치게 잘하는데 옷은 꼭 한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종로서 형사 10년에 사냥개처럼 후각이 예민하여 독립운동의 냄새를 기가 막힐 정도로 잘 맡는 그를 일본 경찰들은 종로서의 ‘보물 1호’라고 할 정도였다.
이 신철이 어떻게 냄새를 맡았는지 3·1운동이 일어나기 전 2월 26일 밤 천도교 보성사에 나타났다. 마침 보성사에서는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있었다. 신철은 그 광경을 보더니 아무 말 없이 총총히 사라졌다. 천도교 측에서는 아연실색했다. 여차하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당황한 천도교에서는 은밀히 사람을 보내 신철을 만났다. “당신이 입을 다문다면 역사는 신철이라는 사람을 명예롭게 기억할거요” 하며 거금 5천원을 내놓았다. 그는 한참을 곰곰 생각하더니 돈을 거절하고 정중히 인사한 후 사라졌다. 신철은 그 후 신의주에서 독립단이 잠입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하며 출장을 떠나버렸다. 그가 떠난 후, 경무총감부에 서울과 각 지방에 뭔가 이상한 낌새가 있다고 계속해 보고가 들어왔으나 보고 자체가 막연하여 구체적인 수사를 할 수 없었다. 3·1운동이 터진 후에야 일본경찰은 신철의 배신을 눈치채고 긴급체포했다. 그러나 신철은 이러한 사태를 미리 짐작하고 있었는지 품안에 넣어가지고 다니던 청산가리를 마시고 자살을 시도했다. 일경이 그를 체포했을 때는 이미 인사불성이 되어 죽음의 문전에 있었던 것이었다.
3·1운동은 바로 이런 민족반역자의 마음을 움직여 성공한 거사(擧事)였다. 만약에 그가 발고(發告)하였다면 3·1운동은 그 때를 놓쳤을 것이고 일제의 감시 및 통제는 더욱 심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 그 같은 만세시위가 일어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인 것이다.
하지만 도주님의 무극도 창도가 이루어지기 위해 3·1운동이 성공적으로 일어나야 했고, 3·1만세운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는 입을 다물어야 했다. 바로 이러한 것이 상제님께서 보신 공사(公事)에 의한 도수라는 것이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고 어떤 어려움을 직면하더라도 일을 이루어지게 하는 것, 올 것은 오고 될 일은 된다는 것이다.
상제께서는 3·1만세운동이 도주님의 행차를 환영하는 행사임을 분명히 밝히셨다.
대인의 행차에 삼초가 있으니 갑오(甲午)에 일초가 되고 갑진에 이초가 되었으며 삼초를 손병희(孫秉熙)가 맡았나니 삼초끝에 대인이 나오리라” 이렇게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고 그의 만사를 다음과 같이 지어서 불사르셨도다.
知忠知義君事君 一魔無藏四海民 孟平春信名聲先生大羽振一新
― 전경 예시59절
│한시풀이│
충을 알고 의를 알아 임금의 일을 하는 임금이다. 사해의 백성들에게 단 하나의 마도 없게 하니, 맹상군, 평상군, 춘신군 보다 그 명성이 더욱 높다. 선생의 큰 깃을 떨치니 세상이 새로워지도다.
삼초(三哨)는 석 ‘삼(三)’ 망볼 ‘초(哨)’로써 세 번 망을 본다는 뜻이다.
일초인 갑오년(甲午年, 1894)에 전봉준에 의해 갑오동학운동(甲午東學運動)이 일어나 그 끝에 청과 일본이 조선으로 들어와 청일전쟁이 일어났으며, 이초인 갑진년(甲辰年, 1904) 7월에 이용구가 동학의 잔당들을 모아 조직한 진보회(進步會)에 의해 갑진개화혁신운동(甲辰開化革新運動)이 일어났고, 이 진보회는 이후 일진회로 바뀌어 일본이 대한제국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민의(民意)를 조장하여 1910년에 한일합방이 되는데 앞장섰다. 삼초는 갑인년(甲寅年, 1914)으로 이해 8월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손병희는 일본의 패망을 기대하고 보성사 내에 천도구국단(天道救國團)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갑오(甲午), 갑진(甲辰) 그리고 갑인(甲寅, 1914)을 잇는 삼갑운동(三甲運動)을 추진하였다.
천도구국단(天道救國團)의 첫 사업은 9월에 시작한 제1차 세계대전에 따른 국제정세 분석이었다. 그들은 일본이 패망할 것으로 판단하고 수권태세 준비로 선언문을 기초해 두었으나 1915년 9월 7일 발각 압수되었다. 1918년 l월 민족자결의 문제의식은 터득하였으나 이는 극히 회의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일면 무장세력 양성에 주력, 농어민·노동자·상인·학생 등의 범국민적 봉기를 계획하였다. 그 이유는 이 해에 일본 내의 쌀 소동이 폭동화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오독립선언문(戊午獨立宣言文)까지도 작성하였다. 그런데 11월 말경 독일이 패배하고 일본 등 연합국의 승리가 확정되자 민중봉기 계획은 주춤하였다. 그러나 강화회의가 1919년 1월에 파리에서 열리게 되면 국제정세는 반드시 한국에 유리하게 돌아갈 것으로 판단하고 봉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1919년 1월 고종이 승하하자 국민의 격분을 야기시켰으며 그것이 민중운동의 봉기를 앞당기게 하였다. 2월 15일 천도교 측에서는 유교·불교·천주교·기독교 측을 비롯한 학생단(學生團) 등과의 연락을 완료하고 3월 1일을 거사일로 택하였다.
그리하여 드디어 손병희와 민족대표 33인이 1919년 3·1만세운동을 벌였던 것이다. 바로 삼초인 갑인(甲寅)에 손병희가 시작한 천도구국단(天道救國團)의 운동이 3·1만세운동으로 결실을 맺어 나타난 것이다.
이때 도주(道主)께서 만주에서 귀국하셔서 상제님의 봉서(封書)를 받고 황새마을로 돌아오시던 때이다.
이 삼초를 손병희가 맡아 만세운동을 주도한 것은 바로 도주(道主) 조정산(趙鼎山)의 행차를 환영하는 만세운동이었던 것으로 삼초 끝에 나오는 대인(大人)은 바로 도주(道主) 조정산(趙鼎山)이셨다.
갑오동학운동(甲午東學運動), 갑진개화혁신운동(甲辰開化革新運動), 갑인천도구국단(甲寅天道救國團)을 삼갑운동(三甲運動)이라 하며 이 삼갑(三甲)에 일어났던 세 가지 동학(東學)의 운동이 바로 일초, 이초, 삼초로써 모두 일본을 한국에 들어오게 하면서 도주님께서 무극도(无極道)를 여실 수 있도록 돕는 움직임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대인이 행차하기 위해 세 번 망을 보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후에 오는 갑자년(1924년)부터는 대인의 행차가 본격적으로 일어나게 되었으니 갑자년(甲子年)에 전북 구태인 도창현에 무극도장을 영건(營建)하시고, 천지만물 모든 것이 새롭게 바뀌어 일어난다는 의미로 다음글을 발표하셨다.
갑자년 十一월 태인 도장에 가셔서,
“庚은 변경지이시(變更之伊始)하고
申은 신명지의당(神明之宜當)이라
천어사어경신(天於斯於庚申)하고,
지어사어경신(地於斯於庚申)이라.
만물종어경신(萬物終於庚申)하고,
아역여시경신(我亦如是庚申)이라”
고 밀양의 이우형, 김용국, 박 민곤, 안동의 권태로, 청송의 조호규, 의성의 김장회, 봉화의 박붕래, 김천의 김규석 등에 말씀하셨도다.
― 전경 교운 2장 31절
│한시풀이│
경(庚)은 변경(變更)의 시작이고, 신(申)은 신명이 마땅히 그렇게 하는 것이다. 하늘이 새롭게 바뀌고, 땅이 새롭게 바뀌도다. 만물이 마침내 새롭게 바뀌니, 나도 역시 이와 같이 새롭게 바뀌어야 하리라.
그리고 을축년(1925년)에는 전북 구태인 도창현에 도장이 완공되고, 무극도(无極道)가 창도(創道)되기에 이른 것이다.
첫댓글 ^^시간들이 없으시다니, 아직은 시간 많은 구복구생 읽어보시라고 글귀 찾아 올려 드립니다. (출처: 이 곳 게시판), 이 글 조차도 읽을 시간이 없으신 분들을 위해 구복구생이 글자 키워놓은 부분 있으니 그 부분만 보시기 바랍니다. 앞으로는 이렇게 명확하게 설명되어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천부천모논리>로는 써먹지 않기를 바라면서 글을 인용합니다.
^^아울러 남들이 쓴 글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 맞장구 치는 사람이 있다면 수도자의 자세에 대해서 한번 반성해보시기를 권고합니다. 물론 시간들이 없으시니까 이 글을 읽어보시지 않아서 이런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고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블루님 글 을 보고 평하신 거 군요
그러나 예시편에 있습니다.
이는 한번 살펴 봐야 하는 부분 이겠죠
^^예시편에 있는 글들은 전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인가요? 구복구생의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하게 답변을 해야 백의님 머리 속에 있는 한 생각이 비워져서 편해질 수 있습니다. 이런 질문 해줄 사람 이 곳에는 없습니다. 구복구생이 백의님한테 꼭 필요한 질문하고 있으니 이번 기회를 꼭 잡으시기 바랍니다.
@구복구생 선도삼법 이야기중입니다. 옛날 옛날 오랫적에 어떤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을 백지로 만들어라. 하얀 도화지로 만들어라......그것이 1탄이었고, 선도삼법이 2탄입니다. 비움-채움-세움, 마음은 어려우니 몸부터 비워라. 몸은 비울 수 있지 않느냐? 적어도 운수받는 날까지 몸은 있어야 되지 않느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구복구생 예 전 그렇게 봅니다 상도에서 나온 대순전경 은 이는 상도 도전님께서 도수에 맞춰 나온 책 이니까요
@백의 그렇죠. 하늘시계에 맞춰 나았죠. 대순전경 뿐만 아니고, 다른 책들 역시....예시편에 있는 글들 전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진짜루
@구복구생 전 신대순전경 이 그렇다 말씀 드렸습니다.
신 대순전경도 발간된 이후 이뤄진 예시편 이 있겠지요.
제 생각에는 삼초 끝에 대인이 나오는 내용은 분명 도주님의 이야기가 맞습니다.
예시글에 있다는 것은 우리 도문의 일에 비춰 보라는 뜻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여하튼 후천의 일을 이룰 마지막 대인의 일에 촛점을 맞출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도의 시작은 태극도의 도주님으로부터 시작이니 생각해 볼 수 있을것 같아요...
도주님 -박우당-상도현도전님... 이렇게 세 번 망을 본 후에 진법이 나온다는 뜻이겠죠!
너무 잘 갖다 붙이는 걸까요!
^^생각은 자유이니~~~..~그러나 상도님은 그렇게 이야기하신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있다면 찾아주셔도 됩니다.
" 도의 시작은 태극도의 도주님으로부터 시작이니 생각해 볼 수 있을것 같아요."
@구복구생 전경을 <비결서>라고 보는 사람과 <퍼즐>푼다고 보는 사람의 시각차라니 정도 생각합니다.
잘 갖다 붙이고 있습니다. . 도주님이 둔궤 이야기하실 때 둔궤가 도망친 것에 대해서 한 말씀 하십니다. 도수에 쓰였으면 되었노라고.....
@구복구생 상도에서도 망을 잘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곳이 진법의 마지막이라면 빛 담금질에 대한 책이 많이 나와야 될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상도는 진리에 대해서 자꾸 말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여전히 도전님께서는 여러분은 도를 몰라라고 하시죠!
즉 도=소 의 이치를 모른다는 의미가 됩니다.
근원을 여러분들은 다 알잖아 하시면서 내용은 근원을 모르잖아로 끝이 납니다. 무엇을 감추기 위해서 말씀을 자꾸 돌리실까요!
도전님의 신명의 정체를 많이도 바꾸어왔습니다.
백마선은 천주라 했다가. 수부인 천모라 했다가 다시 구천상제라고도 했다가 또 천주 대속주,... 그래도 그때마다 수긍하시며 그냥 받아들이십니다.
@구복구생 구천하감지위 →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 →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상제
옥황상제하감지위 → 조성옥황상제 → 옥황상제
서가여래하감지위 → 박성미륵세존 → 미륵세존
신천주대속주
신위의 바뀜은 상제님이 처음 남겨 주신 난법주문으로 돌아갔습니다.
도전님은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왜 백마선의 이야기를 그저 받아만 주실까요!
현 주문은 난법주문이죠! 진법으로 내려오던 주문을 난법으로 돌려 버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자로 오신 천자님의 성씨를 모두 빼 버리셨습니다.
그것을 이미 난법주문이라고 하셨죠!
@구복구생 그리고 화천하시지 않으셨어도 땅으로 오신 신명의 존함은 바뀔 수가 없습니다.
도전님의 신명의 존함, 즉 신명의 정체가 바르지 않다는 생각은 안해보셨는지요!
저는 그렇게 들립니다. 신명의존함이 바르지 않다. 너희는 올바른 신위를 모신 곳을 왜 찾지 않느냐고 말씀하시는듯해요...
물론 구복구생님의 생각이 중요합니다.
@구복구생 저는 퍼즐도 비결도 둘 다 맞다고 봅니다.
@새신 구복구생이 알고 있는 주문을 난법주문이라고 하신다면, 새신님이 알고 있는 주문도 본문글로 올려서 난법주문으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구복구생은 대순카페에서 글 쓴지는 꽤 됩니다만 한번도 상대방의 주문을 난법주문이라고 해본 적 없습니다. 왜냐하면 틀리든 맞든 그 주문으로 기도를 모시기 때문입니다. 상도님의 입에서 그런 말씀 하신 적 없습니다.
@구복구생 구복구생의 이 글은 분명히 답글 달아야 합니다. 답글 안 달리면 못 보신 걸로 알고 본문글로 다시 올리겠습니다.
@구복구생 죄송합니다. 그런의미에 올려드린 난법 주문은 아니었는데 결과가 그렇게 되었네요.
다시한번 사과말씀드립니다!
@새신 약속해주신 걸로 믿겠습니다.
@구복구생 '천모가 땅에 와 있어'
는 무슨 의미로 하신 말씀일까요!
나들이 오셨을까요!
하늘에계신 천모라면 영대에 어떻거 모셔야하죠?
모두 인자로 오신분들을 모시고 있는데 말입니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입니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모습은 못 보신 것으로 보입니다. 영대란 삼신을 비롯하여 천지신명을 모신 곳입니다. ^^...아직 신선이란 말을 써먹지 못해서 생기는 사단이니 어찌하겠습니까? 신선이란 말을 완벽하게 이해 못해서 저런 질문을 하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