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27일 온고을교회 주일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 예수님의 선포 Style 》
시 37:1~40
〈 땅에 대하여 〉
사람은 누구나 땅에서 살아야 합니다. 두 발을 땅에 딛고 살아야 합니다.
평생 비행기만 타는 사람도 결국은 땅으로 안착해야 합니다.
단 한 사람도 땅을 떠나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여기서 생각해 봅시다.
‘왜 인간은 땅을 근거지로 살아야하나? 왜 우리는 땅을 벗어날 수 없나?’
☞ 이것이 첫 번째 화두입니다. 두 번째 화두가 있습니다.
사람이 먹는 음식, 전적으로 땅에서 나는 것입니다.
우리 입에 들어가는 음식, 땅에서 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목사님, 피자는 피자집에서, 치킨은 닭집에서 나오잖아요, 그건 흙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한번 더 생각해야 합니다.
닭이나 소, 돼지 모두 흙에서 나는 것을 먹고 자랍니다.
흙에서 나는 것을 먹고 자란 닭, 소, 돼지 고기를 우리가 먹고 힘을 냅니다.
우리는 이런 존재입니다. 이쯤에서 의문을 한번 가져봄직합니다.
“누가, 도대체 누가? 사람은 땅에서 살아야 하고, 땅에서 나는 것을 먹도록 설계했을까?”
공자의 설계인가? 석가모니의 설계인가? 삼신할머니가 이렇게 설계하셨나?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설계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하나님께서 ‘사람은 땅을 딛고 살아야 한다. 땅에서 나는 먹거리를 먹어야 한다’
설계자가 하나님이십니다! 믿으십니까?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아멘’은 이런 때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설교를 시작하면서 제가 화두를 던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땅에서 살아야 한다.
두 번째, 사람은 땅의 소산을 먹는다.
세 번째 화두가 있습니다.
사람이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한다면, 어디에 뿌리를 내려야 할까요? ~ 땅에 내려야지요!
뿌리를 내리고싶지 않다면, 뭐 한쪽 귀로 들으시고 한쪽 귀로 흘리셔도 무방합니다!
☞ 여러분 뿌리를 내리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이 설교, 계속 들으시기 바랍니다!
〈 설교 제목에 대하여 〉
오늘 설교 본문은 시편 37장입니다.
설교 제목을 보십시오, 《 예수님의 선포 Style 》
혹시 지난 주일 설교 제목, 기억하십니까? 맞아요, 《 바울의 논증 Style 》
사도 바울이 로마서 3장에서 시편 36장을 인용하여 논증함을 설교했습니다.
36장 설교에 이어 오늘은 37장을 근거로 《 예수님의 선포 Style 》
바울은 사람이기 때문에 ‘논증’을 해야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이자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이시기에 논증보다는 ‘선포’가 합당합니다.
참, 목사들, 설교하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
단어 하나에도 이렇게 깊은 뜻을 담아내야 합니다.
예수님은 오늘 설교 본문 시편 37장을 근거로 선포하십니다!
잘 들으시고 은혜 함께 누리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시편 37장에 제목을 붙인다면 어떤 제목이 합당할까요?
전통적으로 시편 37장에는 ‘악인의 형통을 보고 불평하지 말라!’ 그래서 ‘악·형·불·금’
우리 주변에 보면, 못된 자들이 더 잘 나가는 것을 흔히 보게 됩니다.
착하게 사는 사람들은 답답해보입니다. 깝깝합니다.
요령 좋은 사람들, 꾀 많은 사람들, 은근 슬쩍 퉁치면서 이윤을 땡기는 사람들…
그들이 대박을 터뜨립니다. 일확천금을 합니다. 그걸 보면서 화가 나요, 안 나요?
솔직히 화가 치밀지요!
그런데 시편 37장에서, 그걸 보고 불평하지 말라, 시기하지 말라!
시 37:1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시 37: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악·형·불·금’ 악인이 형통하는 것을 보고 불평도 시기도 하지 말라!
시편 37장의 주제이고 제목입니다. 잘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근데, 왜 ‘악·형·불·금’해야합니까? 우리가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 이유를 알아야 지킬 수 있습니다. 덮어놓고 믿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요?
〈 악인의 형통에 불평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
시편 37장은 우리가 왜 악인의 형통에 불평과 시기와 질투를 하면 안되는지 밝혀줍니다.
시 37:2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악인은 언뜻 보기에 흥하는 것 같지만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처럼 쉽게 사라집니다.
“그러니 너희는 악인이 형통한다고 불평하지 말라!”
이러한 기조가 7절 다음, 8~9절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 37:8~9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9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악인의 형통을 보고 분통을 터뜨리다가는 오히려 악을 만들게 된다.
그리고 말씀합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은 오래 못 간다.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제가 설교시작하면서 3가지 화두를 던졌습니다.
첫째, 사람은 땅에서 살아야 한다.
둘째, 사람은 땅의 소산을 먹어야 한다. “세 번째가 뭐였습니까?”
셋째, 사람은 땅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세 번째 화두, 사람은 뿌리를 어디에 내려야 하는가? 이에 대하여 본문에 답이 제시됩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불의를 행하는 자들은 마치 물 위에 떠다니는 부평초입니다.
그들은 땅에 뿌리를 내리지 않습니다. 부평초는 물에다가 뿌리를 내립니다.
9절 뒷부분을 봅니다.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 정리해보겠습니다.
시편 37장에서 악인은 누구이고 의인은 누구인지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37장에서 악인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이고, 의인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입니다.
예수 안 믿고 세상에서 씽씽 잘 나가는 자들을 보고 불평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왜 불평하면 안 되는지, 밝혀줍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의 형통은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처럼 금방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 금방 사라지는 이유는 그들이 뿌리를 땅에 내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의 선포 〉
오늘 설교 제목이 《 예수님의 선포 Style 》입니다.
설교 제목을 이렇게 정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이 대목을 신약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이 인용합니다.
마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온유한 자” 그들이 누구인지 분명해졌습니다.
온유한 자는 다름 아니라, “악.형.불.금”을 실천하는 자들입니다.
악인의 형통을 보고 불평하지 않는 태도, 이것이 ‘온유’입니다.
‘온유’ 기독교인들이 참 좋아하는 단어입니다.
목사님들 중에 자신의 이름을 ‘온유’로 바꾸시는 분들이 더러 계십니다.
자녀들의 이름을 ‘온유’로 지어주는 분들도 있습니다.
기왕에 ‘온유’의 뜻을 분명히 해 둡시다!
‘온유’란 ‘악을 행하는 자들이 형통해도 그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이 선포합니다! “온유한 자는 땅에 뿌리를 내리는 자다!”
악을 행하는 자들은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둥둥 떠다닙니다.
우리는 그래서 온유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 우리가 바로 온유한 자입니다!”
〈 악인의 형통 vs 의인의 고통 〉
어떤 나무는 그 뿌리를 물속에 뻗습니다.
어떤 나무는 그 뿌리를 흙속에 뻗습니다.
물 속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쉽습니까?
흙 속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쉽습니까?
물에 뿌리를 내리는 것, 참 쉽습니다. 아무 고통이 없습니다.
흙에 뿌리를 내리는 것, 쉽지 않습니다. 힘이 듭니다. 고통이 따릅니다.
물 속에 뿌리를 뻗는 것, 그것이 ‘악인의 형통’입니다.
흙 속에 뿌리를 뻗는 것, 그것은 ‘의인의 고통’입니다.
쉽게 물 속에 뿌리를 내리겠습니까?
힘들지만 흙 속에 뿌리를 내리겠습니까?
쉽게 번 돈은 쉽게 나가고, 힘들게 번 돈이라야 야무집니다.
“그러니 악인의 형통을 보면서 시기하지 말고, 질투하지 말고, 불평하지 말라!”
☞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하는 줄 믿습니다!
시편 37장에서는 누가 땅을 차지하느냐? 반복하여 강조합니다.
(9절)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11절)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29절)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서 영원히 살리로다”
(34~35절) “여호와를 바라고 그의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똑똑히 보리로다 내가 악인의 큰 세력을 본즉 그 본래의 땅에 서 있는 나무 잎이 무성함과 같으나”
세상에서는 예수 안 믿어도, 씽씽 잘 나갑니다.
나는 예수 믿고 말씀에 순종하다보니 거북이 걸음입니다.
때로 믿음을 포기하고, 저들처럼 ‘대박 한번 터뜨리자!’ 이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하나님이 말씀해 주십니다.
(10절)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물속에 뿌리를 내렸으니, 흔적 없이 사라집니다.
고통스럽지만 흙 속에 뿌리를 내려야 땅을 차지합니다.
땅을 차지해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장마철에도 홍수에도 휩쓸려가지 않습니다.
악인은 물 속에, 의인은 흙 속에 뿌리를 내립니다.
〈 악인의 형통 vs 의인의 고통 〉 잘 기억해야 합니다.
〈 땅에 대한 의미의 반전 〉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만드신 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치밀한 설계를 하셨습니다.
첫째, 사람은 땅에서 살아야 한다.
둘째, 사람은 땅의 소산을 먹어야 한다.
셋째, 사람은 땅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넷째가 있습니다.
넷째, 사람은 땅을 차지하는 것이 복이다.
당연합니다. 땅에 뿌리를 내리려면 땅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잠깐,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오해하시면 안됩니다.
“사람이 땅을 차지하는 것이 복이다” 여기서 땅은 물리적인 땅이 아닙니다.
농사지을 땅, 재테크로 사둔 땅이 아닙니다.
“악·형·불·금” 악인의 형통에 불평하지 않는 온유한 사람들, 그들의 믿음이 ‘땅’입니다.
예수 믿음으로써 땅위에 굳게서는, 예수 믿음으로써 뿌리를 든든하게 내리는 그 땅입니다.
마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예수님이 선포하셨습니다. 여기서 땅은 믿는자만이 받는 ‘기업’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 예수님의 선포 Style 》입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이 이 땅에 성육신하기 1천 년 전에 다윗이 이 시를 썼습니다.
시의 주제가 “악인의 형통에 불평을 금한다!” “악·형·불·금”입니다.
시편 37장입니다.
예수님이 이 시에 근거하여 선포하십니다.
“악·형·불·금”하는 것이 “온유”이다!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그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이들이 복이 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