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11시간에 이르는 시차를 지닌 거대한 땅인 러시아에 미국 외교공관이 주모스크바 미국 대사관 한 곳만 남았다. 주예카테린부르크 총영사관이 17일 사실상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원래 극동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우랄 지역 예카테린부르크,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총영사관을 두고 이들 공관을 주 모스크바 대사관이 총괄하는 네트워크를 갖고 있었다. 예카테린부르크 대신에 바이칼호수 인근의 이르쿠츠크에 총영사관을 둔 우리나라의 공관 네트워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예카테린부르크 미국 총영사관, 직원 삭감 발표/얀덱스 캡처
현지 언론에 따르면 우랄지역의 중심지 예카테린부르크에 있던 미국 총영사관이 17일 문을 닫았다. 에미 스토로우 총영사도 이날 예카테린부르크를 떠나면서 SNS에 작별 인사를 남겼다. 총영사관 측은 러시아 SNS '브콘탁테'를 통해 러시아 정부의 요구로 근무 직원이 줄어 더이상 업무를 계속할 수 없다고 밝혔다.
주예카테린부르크 총영사관에선 10여명의 미국 외교관 외에 30여 명의 현지인 직원들이 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 국무부가 주모스크바 대사관의 외교관 인력 감축에 총영사관 소속 직원들을 모스크바로 불러들이면서 주예카테린부르크 총영사관은 지난 4월 1일부터 영사업무를 중단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 정부가 지난 4월 23일 미국을 '비우호국가'로 지정하고, 외교공관에 현지 러시아인이나 제3국인 고용을 금지하는 제재 조치를 취하면서 더이상 공관 운영이 불가능해진 것으로 전해졌다.
에미 스토로우 총영사와 함께 하는 '영어 사용' 이벤트 행사 안내/페이스북 캡처
공관 폐쇄를 알리는 주예카테린부르크 총영사관 페이스북 포스팅/캡처
앞서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던 미국 총영사관은 지난해 12월 영구 폐쇄됐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던 미국 총영사관은 그보다 앞선 지난 2018년 영국에서 발생한 이중스파이 독살 시도 사건을 두고 미국과 러시아 양국이 '외교 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문을 닫았다.
한 곳 남은 미 대사관도 러시아 측의 현지 직원 채용 금지 조치로 직원이 대폭 축소되면서 정상적인 업무 수행에 제약을 받고 있다. 주모스크바 미국 대사관은 지난 4월 말 "내달(5월) 12일부터 영사관 담당 직원을 75% 줄이고 (대사관의) 영사 서비스를 최소화해 미국 시민에 대한 긴급 서비스와 최소한의 비자 업무만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러시아 비자가 만료된 미국인들은 6월 15일 이전에 러시아를 떠날 것을 권고했다.
모스크바 주재 미국 대사관/사진출처:위키피디아
주예카테린부르크 미 총영사관의 잠정 폐쇄는 조 바이든 미 행정부 출범이후 급격히 전선이 넓어진 양국간 외교 분쟁의 현실을 보여준다. 바이든 미 행정부는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과 해킹 등에 대한 보복으로 러시아 외교관들을 추방했고, 러시아측의 맞추방으로 전선이 확대됐다.
가장 최근에는 러시아 정부가 '외국의 비우호적 행동에 대한 대응 조치령'을 발표하고, 러시아에 비우호적 행위를 하는 국가의 대사관이나 총영사관, 정부 기관 등이 러시아인을 포함한 현지인을 직원으로 고용하는 것을 제한하거나 완전히 금지했다. 그리고 미국과 체코를 첫번째 '비우호국가'로 지정, 미국에 대해서는 공관의 러시아인(제 3국인) 직원 채용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러시아 측의 이 조치로 미국 외교공관은 비자 발급 등 영사 서비스를 정상적으로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대놓고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