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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시국 극복과 민주진보 진영의 과제
김 동 춘 (성공회대 명예교수)
1. 윤석열 친위쿠데타(Self-Coup) 원인과 경과
1) 논리 및 경과
친위쿠데타는 대통령이나 행정부를 장악하고 있는 권력자가 군사력을 동원하여 헌정을 중단시키고 입법부나 사법부를 완전히 통제하여 자신의 권력을 극대화하려 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선거 등 절차와 제도를 통해서 권력을 잡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안정적으로 보장해주지 않는다고 판단할 때 법이나 절차 등 거추장스러운 굴레를 벗어던지고 군사력과 행정력으로 국가를 완전히 장악할 욕망을 드러낸다. 친위쿠데타를 감행한 대통령이나 정치 세력은 모두 19세기 왕당파, 20세기 파시즘의 후예들인데, 사실 이들은 법, 민주적 절차, 정치적 타협 자체를 불신하거나 정치적 타협 능력을 갖추지 못하는 ‘통치력 지도력 결핍’ 상태에서 행정 권력을 확장하려 한다. 이들은 군사력이나 극우 대중의 힘을 동원할 수 있다면 자신의 ‘적’을 폭력으로 제거할 수도 있다는 사고 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들의 머리와 몸은 가부장 주의, 엘리트주의, 인종주의와 기독교 근본주의로 가득 차 있다.
오늘날 전 세계의 신자유주의 시대의 우익들도 자유, 시장, 효율을 진리로 생각하면서 실제로는 국가 이익과 권위, 자민족 인종 우월주의의 멘탈리티를 깔고, 분배, 정의, 절차적 민주주의, 다수결, 사회적 합의를 주창하는 세력을 ‘공산주의’라고까지 지목하여 혐오 대상으로 설정한다. 여기에다 권위주의 전체주의 성향의 최고 권력자의 통치력 부재, 위기의식과 집권 연장 욕망이 결합하여 친위쿠데타가 발생한다. 사실 오늘날 민주주의 제도를 가진 국가에서 대통령이 아무리 큰 권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전쟁이 발생하지 않는 한 과거 군주와 같은 전권을 행사할 수는 없다. 이런 조건에서 우파 대통령은 자신의 통제 밖의 국회를 ‘적’으로 여긴 나머지 국회 활동을 정지시킨 다음, 자신이 더 일방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헌법 개정, 선거, 언론 통제, 국민복종을 유도할 유혹을 갖는다.
권력 상실의 두려움과 권력 행사의 걸림돌 제거가 친위쿠데타의 기본 공식이다. 한국은 이미 여러 번의 친위쿠데타를 겪었다. 1979년 전두환 신군부가 주도한 12.12쿠데타, 그 이듬해의 5.17도 일종의 친위쿠데타였다. 그 이전인 1972년 10월 박정희의 비상계엄 선포와 유신체제 수립,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52년 5월 이승만의 계엄령 선포야말로 한국 역사에서 나타난 가장 전형적인 친위쿠데타였다. 이승만과 박정희는 다가오는 선거 일정에서 권력을 상실할 두려움을 가졌고, 이 권력 연장의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이승만은 군부를 동원하여 국회의원을 간첩 혐의로 체포하고 ‘좌익을 척결하겠다’라고 계엄령을 정당화했는데. 윤석열의 국회의원 체포 시도나 비상입법기구 설립 구상도 동일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의 계엄이 성공했다면 그는 이승만처럼 국회를 해산하고 야당 국회의원을 체포하고, 선관위 직원을 고문해서 선거 부정 진술을 받아낸 다음 장기집권을 시도했을 것이다. 통계에 의하면 세계적으로 7, 80년대에 잠잠하던 쿠데타는 1990년대 이후 빈발하기 시작했고, 최근 10년 사이에 무려 31건의 친위쿠데타가 발생했다.
이 쿠데타 대부분은 의회 권력과 시민적 견제를 기존의 대통령과 행정 권력이 받아들이지 않는 데서 기인했다. 윤석열 친위쿠데타는 과거 한국 역사의 유산이기도 하지만, 21세기형 극우폭력의 양상을 드러냈다. 윤석열의 내란은 선거 정치, 법치와 정당정치 자체를 아예 무시하는 신자유주의 시대 극우의 창궐과 폭력, 즉 지구적인 민주주의 퇴행의 한 결과이기도 한데, 특히 선거절차를 공공연하게 부인하는 점에서 2021년 1월 미국의 트럼프, 2023년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주도하여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 한 난동사태와 같은 궤도에 있다.
친위쿠데타의 결말은 어떠했나? 트럼프의 국회 난동, 이번 윤석열의 친위쿠데타처럼 실패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승만은 대통령 간선제 헌법하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직선제 개헌안을 통과시켜 8년 더 집권했고, 박정희는 유신 쿠데타를 감행하여 7년 더 집권했다. 과거 페루의 후지모리 대통령의 친위쿠데타도 성공해서 그는 몇 년 더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승만은 결국 국민에 의해 쫓겨났으며, 박정희는 최측근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후지모리도 결국 추방되었고, 이후 종신형을 받았다. 친위쿠데타 자체가 명분이 없는 권력 연장의 의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쿠데타의 주역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2) 검찰 정치의 파국적 종착점으로서 친위쿠데타
이 친위쿠데타, 즉 수천 명의 군인 즉 방첩대, 수방사, 심지어 (HID) 북파공작원까지 동원한 윤석열의 내란 사태와 그의 부하들이 진술한 쿠데타의 이유와 논리는 무엇인가? 사실 군부 방첩부대는 이미 2016년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의 비상계엄 시도를 했으나 이후 그 주동자를 단죄하지 못했다. 일찍이 한동수 대검감찰부장도 윤석열의 쿠데타 DNA를 보았고(그는 <검찰의 심장부에서>에서 2020년 3월19일 윤석열 검찰총장이 제안한 번개모임 폭탄주를 여러 잔 마신 윤석열이 “만일 육사에 갔더라면 쿠데타를 했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을 기록했다), 김민석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김용현 경호실장의 국방부 장관 기용, 그들의 대북 국지전과 북풍 시도를 의심하면서 비상계엄 선포할 것을 예고하고 그것을 경고했다. 보통 시민들도 ‘충암파’의 요직 기용, 경호처의 여러 번의 ‘입틀막’ 사건, 그리고 대통령의 담화에서 나온 ‘폭력의 언어’ 즉 야당을 ‘종북 반국가세력’이라고 여러 번 거론한 대통령의 담화를 보고서 정상적인 정치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감했다.
민주화 이후에 한국의 주류보수는 언제나 ‘전쟁정치’를 구사해 왔다. 자신의 기득권 상실에 대한 공포감을 언제가 내면화하면서 정치적 반대세력을 적으로 간주해서 보복해 왔다. 즉 이들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상실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사실 5·17 이후 모든 쿠데타는 모두 이들의 불법 정권 탈취, 정권 상실 위험에 대한 선제 대응이었다.
윤석열의 통치 불능, 야당과의 협치의 시도를 애초부터 포기한 검찰 정치의 파국적 탈출구가 비상계엄이라는 이름을 빈 내란, 즉 친위쿠데타였다. 윤석열의 친위쿠데타는 야당과의 협상이나 대화, 설득과 조정 등의 방법으로 대통령직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한 정치 초보생이 자신의 국가 운영 능력 부재와 통치력 상실을 극단적인 방법으로 돌파하려 한 극약 처방이었다. 그러나 한국 정도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성취한 나라에서, 일사불란한 명령으로 움직이는 군대와 검찰에만 몸담으면서 세상의 변화를 알지 못한 검찰 대통령과 직접 전쟁 경험도 없이 오직 권력 논리만 몸에 지닌 채 살아온 기성세대 군부 엘리트들이 자유롭고 민주적인 환경에서 자란 21세기 청년 병사들의 사포타지에 부딪힐 줄은 몰랐다.
이번 윤석열 친위쿠데타의 실패는 군대가 무력 사용을 주저했거나 내부의 지휘 체계의 혼선 때문이며, 광주 5.18 비상계엄의 역사를 기억하는 새 세대 시민과 민주당이 제대로 대처했기 때문이다. 검찰 출신 대통령과 육사 출신 군부 지도자들은 1987년 이후 한국 사회가 얼마나 어떻게 변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자신의 울타리 속에서 살았으며,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쿠데타에 실패했다. 그들이 누려온 과분한 사회적 권력과 대우가 남북한 적대와 냉전, 극우 반공주의 등 한국 사회의 구시대적 잘못된 유산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더 많은 권력과 부를 앞으로도 계속 누리려는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한국의 시민들, 특히 2030 젊은이들은 윤석열의 ‘자살골’로 지난 한 달 반 동안 생생한 시민교육을 받게 되었다. 내란 진행 중인 한국은 당장은 혼란과 불안 그 자체이나 장기적으로는 새 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 희망을 품을 수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의 일원으로 발탁되었으나 자신의 ‘신화를 조작’하고 검찰 권력을 동원하여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영입된 윤석열은 과거 군사정권과 유사한 친미, 친일 반북 일변도의 외교정책과 노골적인 부자 감세 정책과 반노동 정책, 친원전 정책 외에 새롭게 국가 운영의 방향과 철학을 제시한 것이 없다. 국힘에 들어가 대통령 후보가 된 윤석열은 국힘 외에도 옛 하나회와 연관된 육사 엘리트 출신 퇴역 장성들, 극우성향의 부동산 재벌, 그들의 영향력 아래 있는 극우 종교집단, 그들이 키운 우익조직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당선되었으며. 퇴역 3성 장군 김용현을 기용하여 숨은 기획자이자 대통령과 극우세력을 연결하는 메신저 역할을 맡겼으며. 충암고를 주축으로 하는 사조직을 만들어 군/정/관계 요직을 장악하였다.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국힘 의원들은 박근혜 탄핵의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권력 장악을 위해 윤석열이라는 카드를 또다시 활용했고, 2년 반 동안 그의 실정을 묵인 추종했다. 권력 내부의 비판자나 조언 세력은 모두 사라졌다. 이러한 지도력 부재, 정치력 부재가 노골화된 시점에 그는 최측근들에게 비상계엄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극우 유튜버의 알고리즘에 빠진 검사 대통령의 머리에는 오직 과거 계엄의 성공 스토리, 극우 반공주의, 반북주의와 공안 몰이밖에 생각해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군사정권의 DNA를 간직한 국민의힘과 관료조직, 보수 언론은 그의 ‘입틀막’ 정치를 비판하지 않았고, 그래서 철 지난 비상계엄까지 선포되기에 이르렀다.
국힘은 집권을 위해 윤석열을 전격 영입했지만, 당선 뒤 대통령에 대한 영향력에서는 극우 집단에 상대적으로 많이 밀리는 상황이었고, 총선패배 후 원내 소수당으로 전락한 이후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대통령과 극우세력에게 끌려다니는 처지가 되었다.4) 좀 과장하면 국힘은 거의 신천지나 극우 개신교 집단에 의존하는 양상을 보였다.
윤석열 임기 중 발생한 거의 모든 것이 벌거벗은 권력 행사의 양상을 갖고 있지만, 검찰, 국방부, 기무사, 대기업 등 그들이 ‘내 편’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간주하는 사람들의 범죄는 그 아무리 국가의 기강과 법치를 뭉갠 매우 심각한 것이라도 수사 기피, 사면복권 등의 방식으로 봐주고, 자신의 정적인 야당 대표, 시민운동가들의 범법 의혹이나 회계 처리상의 약점에 대해서는 수백 명의 검사를 총동원하여 기어코 죄를 밝혀내고 망신을 주겠다는 의지를 발동하였다. 그리하여 온 사회가 뒤
죽박죽되고 정치 언어가 타락했다. 친일이 애국이 되고, 전체주의가 자유가 되었으며, 주권상실이 동맹이 되었다.
박근혜 탄핵을 겪고 집권한 국힘과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 민주당의 실정에 편승하여 가까스로 권력을 잡게 되었으면, 대선에서 국민의 과반 가까운 지지를 얻었고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 민주당과 협치의 길을 모색했어야 했다. 그러나 윤석열은 집권 초기부터 야당과 비판적인 언론을 ‘적’으로 간주했다. 윤석열은 이재명 야당 대표가 ‘범법자’라는 이유로 취임 700일이 넘도록 면담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극단적 성향을 지닌 인물들을 각료로 기용했으며, 국회에서 통과된 법에 대해 계속 거부권을 행사했다.
윤석열의 친위쿠데타는 그와 주변 사람들이 지난 총선 결과가 조작이라고 지속해서 선전한 극우 유튜버의 알고리즘에 빠진 결과이기도 하다. 지금 국힘 지지자의 거의 반수가 부정선거를 사실로 인정하고 있다. 한국 노인층의 극우성향은 전통적 가족주의 군사정권 교육에서 얻은 권위주의에 보수성향,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친구 찾기 과정에서 극우 유튜브의 알고리즘에 빠지고, 비판적 사고나 편향적 언론을 독해할 능력이 원초적으로 부재한 상태에서, 타인의 처지에서 생각하지 못하는 자기중심적인 태도가 결합 되어 있는데, 윤석열도 이런 상태에서 총선 부정을 거의 신앙처럼 확신하게 되었다. 이러한 파시즘 지향성은 한나 아렌트(Arendt)가 말했듯이 단순한 어리석음이 아니라 ‘사유의 불가능성’ 즉 자신이 의무로 여기는 것이 범죄로 불리게 되는 현실이다. 현실을 대면할 능력이 없다는 것. 타인의 관점에서 생각할 능력이 없다는 점, 도덕 행위를 할 능력이 없다는 등의 특징을 갖는다.
3) 윤석열 내란의 제도적 배경
한국식 단임 대통령제 자체가 문제의 원인인가? 부분적으로 그러하나 반드시 그것 때문은 아니다. 야당 대통령일 때 이런 문제는 없었다. 한국과 같은 대통령 단일 투표 승자독식 선거제도가 만든 대통령제와 지역대표의 국회가 병존하는 이중 주권 상태에서는 의회 권력과 대통령 권력의 대립, 즉 이중권력 상태는 거의 불가피하고 정치적 양극화와 적대적 분열은 항상적이다. 그런데 군사정권의 DNA를 가진 주류보수는 이런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
대통령 5년 단임제가 문제인가? 부분적으로 그렇다. 완전히 준비된 대통령이 아니면 권력 행사가 어렵다. 여당이 지지를 받지 않는다면 대통령 권력을 행사할 기간이 초기 2년에 불과하다. 민주화 이후 지금까지 역대 대통령은 거의 전원이 실패한 대통령이었다. 감옥에 가거나 불의의 죽음을 맞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특히 국힘 대통령은 대체로 감옥행이었다. 5년 단임제 대통령제하에서, 대선과 총선이 교차하여 총선 결과가 대통령의 권력을 제한하고, 대통령이 동원한 권력 자원이 고갈되면 대통령이 의지와 정치적 과제를 확고하게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확고한 개혁안이 없으면 시작부터 식물 대통령이 될 수 있다.
민주화 이후 지속한 정치의 사법화가 곧 사법 관료인 검찰의 정치세력화를 가져왔고, 그 정점에 윤석열 대통령이 있다. 윤석열 정권 지난 2년 반은 모든 국정이 검찰 때문에 통제되고 재조정되는 국정의 검찰 사법화 시기였다. 검찰은 자신의 사조직처럼 동원했던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어 국가를 자신의 사조직처럼 운영하게 되었다.
당연히 자신의 가족과 관련된 사건은 수사 밖의 성역이 되었다. 그것은 정의와 책임정치의 실종사태였다. 정치적 기소/불기소의 국민적 피해에 대해 검찰은 전혀 책임을 지지 않는다. 과거 군부처럼 그들은 국회와 거의 모든 정부 부처에 검사를 파견하여(법무부 파견검사 67명, 국회 등 외부 파견검사는 48명, 법무부와 외부 파견 검찰수사관 28명, 공공 기관 임원, 18명 총 183명이었고, 22대 총선 출마 검사는 47명, 윤석열 검찰 정치에 대해서는 참여 연대 사법감시센터, <윤석열정부 검찰보고서 2023- 검사의 나라 이제 1년>, 2023), 장관은 들러리로 세우고 차관 검사가 실질적으로 국가기관을 운영하였다. 심지어는 검사를 금융감독원장까지 임명하기도 했다. 검사 출신 26명이 22대 총선에 출마하였는데, 그중 19명은 국힘 소속이었다.
검찰 출신이 권력을 행사하면 모든 사안은 범죄/비범죄의 이분법으로 본다. 이것이 신자유주의 질서와 맞물리면 ‘형벌 국가’의 양상을 지닌다. 윤석열 정부가 형벌 국가의 양상을 보인 것은 대통령부터 최고 권력권에 검사 출신이 들어감으로써 모든 정치사회 문제를 개인 범죄의 차원에서 보는 검찰 멘탈리티가 정치 권력화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윤석열 정부의 모든 정책은 단순히 검사 아비투스가 드러난 것이라기보다는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결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권 초기부터 그들이 역점을 둔 마약사범 단속, 건설폭력 잡기, 그리고 킬러 문항, 채상병 사건, 이태원 참사 뭉개기 등이 대표적이다. 이 모든 정책에는 일관된 특징이 있다. 바로 구조적인 문제를 감추고 드러난 결과를 원인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과거나 현재 검찰이 과연 공공질서와 정의의 대변자 역할을 해 왔다고 믿는 한국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윤석열의 검찰, 그리고 검찰 정치야말로 과거 군사정권 시기 하나회를 대체하는 사적 연고로 공적인 자리를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검찰은 민주화의 최대 수혜자이자 과거 군부의 후계자이다. 그러나 군부는 자신의 식견 부족이나 지적 취약성을 지식인들의 자문으로 보완한 측면이 있었으나 검찰은 수사의 전문성과 고시 합격이라는 엘리트 이력에 대한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자신이 모든 국정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가장 똑똑한 세력이라는 오만과 착각을 하고 있었다. 군부보다 더 절제되지 않는 위험한 세력이었다.
4) 윤석열 쿠데타의 역사 구조적 배경
한국 정치 권력은 미국이 관장하는 동북아 대러/대중 최전선이라는 정치지리학 변수에 종속되어 있으며, 내부로는 역사, 정치 사회적 조건에 좌우된다. 이런 안보 상황, 반공 극우, 엘리트 정치사회 권력 독점 상황에서 국가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 세력은 제한된다. 군부, 관료, 명문대 출신 정도로 강한 조직력과 네트워크, 그리고 사회적 헤게모니를 가진 세력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화의 후예인 야당이 정권은 장악해도 국가를 장악하지 못한다.
분단 체제하 한국의 우익은 북한이라는 마르지 않는 샘물을 퍼서 권력 유지의 생명수로 활용했다. 독일의 철학자 야스퍼스가 “그들(파시스트)은 한 명의 유대인도 없으면 유대인을 만들어 낼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한국의 역대 우익세력은 한 명의 친북인사가 없더라도 국가보안법을 휘둘러 종북세력을 만들어 내왔고, 지금도 그렇게 할 생각을 갖고 있다. 극우세력은 적이 없다면 적을 만들어 내고, 전쟁이 없다면 전쟁을 벌여서라도 계엄을 선포하려 할 것이다. 이번 윤석열의 경우도 북한 오물풍선 원점 타격을 명령한 것, 북한에 드론을 보내는 등의 전쟁 유발을 한 혐의가 있는데, 그게 맞다면 과거 북풍 공작을 답습, 확대한 것이다.
윤석열의 ‘좌익척결’은 학살의 담론이다. 윤석열의 ‘입틀막’ 역시 군사 통치방식의 부활이다. 윤석열 정부의 반민주적 성격, 언론사를 대상으로 한 검찰수사, 방통위와 방심위 운영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침해한 것이고 자유주의와 거리가 멀다. 이러한 독재 권력을 행사하면서도 자유민주주의, 혹은 자유를 연설 때마다 수없이 반복하였다. 그들에게 자유란 곧 전체주의적인 극우 독재의 다른 표현이다. 윤석열은 북한과 민주당 주사파를 공산 전체주의라고 지목했으나 그들이
말하는 자유를 전체주의라고 바꾸어도 별로 틀린 말이 아니다. 그들이 비판한 ‘공산 전체주의’는 바로 그들 자신을 표현하는 말이었다.
평생 법으로 밥을 먹고 산 윤석열이 헌법이나 실정법을 완전히 무시하고 계엄을 선포한 것이나, 이후에도 입만 열면 거짓말을 계속한 것. 법원의 영장 집행을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행위는 그리 놀라운 일이 일이 아니다. 경찰, 군부, 국정원, 친일 친미 세력으로 구성된 한국의 주류 우익은 태생적으로 그러했고, 국민도 그것을 알고 있다. 한국의 검찰, 경찰, 국정원은 태생적으로 법치의 정신을 지키려는 의지가 거의 없었다.
<조선일보>는 윤석열 정권 탄생의 일등 공신으로, 비상계엄 해제 후 내란을 지속시킨 지휘부의 역할을 했다. 과거 김대중 정부 혹은 군사정권 시기부터 <조선일보>는 언제나 북한이라는 적과 내부의 정치적 반대세력을 거의 동일시하였고, 이들 적, 즉 종북세력에 대해 전쟁정치의 담론을 구사해 왔다. 그리고 <조선일보>는 내부의 ‘적’에게 사실상 사회적 검사의 역할을 한다. 조선일보가 계속 공격하면 검찰, 감사원, 정부가 움직인다.
서울법대라는 학력 카르텔의 정점에 있던 윤석열. '일개' 검사장이었던 윤석열은 어떻게 검찰총장을 거쳐 대통령이 되고 내란 사범이 되었을까? 학교 교육의 실패인가? 한국 사회 엘리트체제의 민낯인가? 학벌주의, 출세주의, 고시 만능, 마초이즘, 조폭사회, 왜곡된 성문화, 기득권 종교, 반공 친미친일 엘리트 이권 카르텔 등이 모두 집약되어 있다. 윤석열은 서울대 법대 출신의 네트워크, 고시제도가 만들었다. 서울대, SKY 로스쿨, 의대, 변호사, 판검사, 사법시험이든 로스쿨이든 열심히 공부해서 최종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이 이 시대 사람들의 목표이고 이 이상의 가치였다.
그런 한국인이 윤석열을 만들었다.
2. 후기 신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실종, 극우 정치와 내란 사태
1) 신자유주의 위기와 역사적 반공 자유주의의 결합
과거 파시즘과 우익 군사 독재, 그리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맞물린 오늘날의 유사 파시즘과 극우 포퓰리즘 창궐, 극우 정당의 약진은 모두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금융자본 축적 위기의 표현이다. 물론 자본주의의 단계와 성격에 따라 나라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들 극우체제나 정당은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갖는다. 전체주의를 지향하며 권위주의를 찬양하고 칭송한다. 법적인 절차, 다원주의,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 하고, 의회 정당정치에 대한 거부감을 갖는다. 파시즘은 언제나 적, 잠재적 적을 병균과 같은 존재로 보기 때문에 청소(clearing)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10) 특히 과거의 파시즘, 오늘 미국과 유럽의 파시즘은 인종청소, 외국인 혐오의 담론을 공통으로 갖고 있다.
과거 서유럽의 파시즘은 시장경제 혹은 자유민주주의, 대의제가 자본축적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위기의 산물이다. 오늘날 세계 극우체제의 선봉장인 미국의 트럼피즘은 중국의 도전에 직면한 미국 헤게모니의 약화, 민주적 개혁을 표방하고 집권한 민주당이 세계화의 부산물인 경제 양극화, 분배, 일자리 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백인노동자들의 위기와 실망을 반영한다. 즉 서구 리버럴 세력의 위기는 이데올로기적 위기를 동시에 수반한다. 그래서 후기 신자유주의의 시장적 폭력은 전체주의, 권위주의, 국가주의, 인종주의 등 극우 이데올로기를 수반한다.
신자유주의의 극단화는 민주주의 자체를 붕괴시키고 국가주의를 강화한다. 즉 원론적으로 시장질서와 민주주의가 양립할 수 있는 지점도 있으나, 양립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각국에서의 극우세력의 등장과 집권, 그리고 유사 파시즘은 자본주의 위기, 사회주의 세력의 도전에 대한 우익의 극단화 반동적 대응이라 볼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의 우경화, 트럼피즘과 일본회의 등의 극우주의적 지향도 그런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극우체제, 파시즘은 자유민주주의, 근대국가의 전형적 양상에서 일탈한 것인가? 계엄이라는 비상체제, 학살의 담론은 분명히 그런 점이 있다. 그러나 과거의 냉전적 지배질서는 사실상 평화학자 갈퉁이 말한 구조적인 파시즘의 특징을 갖고 있으며, 서유럽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세계 자본주의의 종주국 미국의 매카시즘, 냉전,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으로 이어져 오는 과정에서 언제나 유사 파시즘적인 요소를 내장하고 있었다. ‘테러와의 전쟁’ 선포와 미국의 우경화도 그 한 결과다. 과거 식민지 종속국이었던 제3세계 후발자본주의 국가는 언제나 군사 쿠데타와 군사 지배체제가 유지되어왔다. 그렇게 본다면 20세기도 결코 민주주의가 정착된 시기였다고 말하기 어렵다. 19세기 보나파르티즘은 20세기 파시즘으로 민주주의 제도 속에 스며들어 있다. 그런데 21세기 들어와서 양상은 더욱 노골화되었다.
글로벌 신자유주의 시대에 시민권은 침식되거나 형해화된다. 참여는 오직 소비자의 참여만이 장려된다. 노동자 참여, 지역사회의 자치와 주민참여의 기반이 취약한 상태에서 닥쳐온 신자유주의 시대에 기업 권력,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힘은 강화되고 대중은 주로 소비의 주체로 호명된다. 그리고 미디어의 영향은 더 강화된다. 대중은 미디어의 소비자로서 주로 뉴스를 소비하는 존재가 된다. 공적인 의사소통의 장이 왜곡되어 팬덤 정치의 양상이 나타나는 것은 대체로 신자유주의 소비사회의 특징이다. 소비가 시민을 누르고 승리했다.
한때 높은 복지 체제와 사회국가의 특징을 보여주었던 프랑스, 독일 등 서유럽 국가는 노동자계급의 파편화와 정치참여의 쇠락으로 계급정치가 거의 붕괴하였고, 세계화 이후 이주노동자 문제로 극우 신파시즘 정치 세력이 크게 약진했다. 그러나 동아시아 국가의 경우, 그러한 계급정치나 정당 조직화의 경험 자체가 매우 미약하거나 거의 없었다. 즉 사회민주주의적인 계급타협의 역사를 가진 서·북유럽과 달리 동아시아 발전주의 국가는 그런 시기를 거의 거치지 않았고, 오히려 남유럽 국가들과 유사하다. 그러나 동아시아는 남유럽 수준의 낮은 수준의 노동자 정치참여의 경험도 약하다. 지역사회에서의 적극적 시민 형성의 취약성과도 연결되어 있다. 자치, 공동체 형성, 주민참여의 경험도 매우 취약하다. 한국의 경우 학생운동과 사회운동 특히 21세기 이후 촛불시위 등 대중 동원이 정당정치와 제도정치의 무능을 돌파하는 동력이 되어 왔지만, 일본이나 대만은 그 정도의 동력도 매우 약하다.
20대 대선 이전에 이미 윤석열과 최재형이 국힘의 일원으로 들어와서 뱉어낸 말들은 신자유주의 사상가의 주장과 한국의 전통적 반공 자유주의가 섞여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미국을 제외한 선진 자본주의 국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식 우익 담론들이었다. 그것은 자신 주변의 부자들과 권력자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이야기였을 것인데, 자신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윤석열은 미국 신자유주의 경제학자인 프리드먼의 책을 인용하기도 했는데, 그가 하이에크나 프리드먼의 책을 읽었는지 읽지 않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오늘날 미국과 한국의 극우세력의 논리, 한국의 전경련과 <조선일보>, <중앙일보>의 논리를 거의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고 독자적인 지적인 고민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윤석열 정권은 자영업자 중산층의 위기의식을 반사적으로 이용한 점이 있다. <조선일보>, 국힘과 윤석열은 자신에 대한 비판을 언제나 자신의 이데올로기나 정치노선으로 맞서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의 이중성과 약점을 거론함으로써 돌파하려 한다. 즉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이데올로기가 없으므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렇게 보면 강한 국가, 성공한 국가가 아니라 약한 국가, 약한 제도, 실패한 자유주의가 파시즘을 불러온다.
2) 윤석열난과 서부지법 사태, 국힘의 지지율 상승은 신파시즘의 징후?
지금의 윤석열 내란과 이후 서부지법 폭력 사태가 파시즘적 요소와 징후를 보이지만, 파시즘 세력의 전면 등장으로 보기는 어렵다. 유럽과 미국 등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파시즘은 언제나 인종주의, 민족주의를 가장 중요한 기반으로 삼고 있으며, 아래로부터의 극우 사회운동, 정당 조직화 방식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일본, 중국, 한국 등 동아시아에서는 언제나 국가권력이 주도하였으며, 사회적 기반은 비교적 취약했다. 그리고 일본의 경우 인종주의적인 요소가 있으나, 식민지 종속국가였던 중국과 한국에서는 인종주의적 기반은 매우 미미하다. 단 극우 이데올로기라는 점에서 과거나 현재의 극우 파시즘 운동과는 매우 유사한 공통의 특징을 갖고 있다. 한국의 경우 역사 구조적인 요인과 지금 세계의 동시대적 요인이 중첩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과거 일제 말의 전시파시즘, 박정희의 유신 파시즘은 모두 국가의 획일적인 사회통제, 특히 사상통제의 양상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일본 천황제 제국주의 지배, 그리고 남북한의 사실상의 전쟁체제를 명분으로 해 나타나고 지속되었다. 그것은 군대의 논리, 군 통수권을 온 사회에 확산하려는 것이었다. 과거 한국의 파시즘은 모두 군부 지배의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면 이번 윤석열의 내란은 군과 유사한 조직문화를 갖는 검찰 지배의 극단적 양상을 보여준 것이다. 그것은 정당정치의 취약성, 국힘이 정당정치를 수행할 능력이 결여된 것을 보여준다.
서구의 극우 파시스트는 조직된 사회세력, 정당으로 존재했다. 그러나 동아시아에는 국가, 관료, 검찰, 경찰 등 억압적 국가기관이 파시즘의 주역이고 조직된 대중, 아래로부터의 파시즘 운동은 매우 미약했다. 지금도 그러하다. 아시아에서는 여전히 국가가 전부다.
한국 극우세력의 계급적 사회적 기반은 취약하다. 대체로 자기 집단이 희생자라는 생각이 파시즘의 대중적 동력인데,17) 한국의 20대 남성의 보수화, 여성 혐오와 그것에 기초한 우익지향성도 어느 정도는 희생자 의식에 기초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대체로 바로 옆의 현실을 최고의 현실로 인식한 인지 착오에 기인한 것이다. 백인노동자들이 이주 노동자 때문에 일자리를 잃었다고 생각하는 것과, 젊은 남성들이 여성 때문에 불이익을 당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 현실, 그 상위의 실재를 알지 못하는 데서 오는 인지 착오다.
한국적 극우 행동주의, 극우세력의 폭력은 국가권력을 가진 윤석열 정권이 격려하고 조장한 것이지만, 특히 근본주의 기독교, 대형교회가 그 주력군이 된 점에서 나름대로 역사 사회적 기반을 갖추고 있다. 친미/반북의 이데올로기 지형 위에서 반중 혐오 담론이 결합하였고, 젊은 남성들의 여성 혐오와 기독교 근본주의가 직접적인 동력으로 작용했다.
전광훈 목사의 등장이 그것을 집약한다. 국힘이나 사랑의교회 등의 장로들을 포함한 한국의 엘리트 주류보수는 우익 대중을 선동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했다. 그들은 비인가 신학교 출신에다 주류와 거리가 먼 출신 배경을 가진 그의 선동적 메시지를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기성 대형교회도 그의 선동적 메시지를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18) 전광훈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며 보수층의 불만을 자극했다. 소외된 노인층, 열등감과 패배주의에 빠진 일부 2030남성 등의 불만을 집결시킬 대안으로 그를 발탁하고 이용했다. 반동성애, 반중, 반이슬람의 자극적인 언행을 통해 그는 보수 언론의 조명을 받았고,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유튜브 등 뉴미디어 플랫폼은 극우 이념의 주요 매체였다.
그래서 한국 극우의 사회적 기반은 미국과 가장 유사하다. 미국은 20세기 초기부터 복음주의 교단, 기독교 근본주의 목회자들이 인종주의, 반이민, 공산주의 혐오와 반대의 선봉에 섰고, 실질적으로 폭력적인 행동을 했다. 성조기와 십자가는 미국 파시즘을 상징한다. 그러나 트럼프나 미국의 극우는 미국의 국가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지만, 한국의 극우는 성조기 심지어 이스라엘기를 들고나온다. 식민지 파시즘의 유산이다.
한국의 우익, 극우세력은 민주주의의 교육, 선거 외 시민참여의 경험을 거의 갖지 못하고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는 교육을 받아보지 못한 60대 이상의 사람들, 그리고 지역에서 정권교체의 경험을 해보지 않은 대다수 영남 고령층, 기독교 보수파로 주로 구성되어 있다. 즉 70대 이상과 영남 출신의 경우 19세기 유럽의 왕당파, 보나파르트의 복귀를 지지한 농민들과 마찬가지로 국가나 최고권력자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영웅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전근대적 신화를 간직한다. 영웅숭배와 인종 숭배는 사실상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인데, 한국은 식민지 차별의 경험을 갖고 있으며, 아직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 내에서 중요한 세력으로 부상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종주의적인 생각은 약하다. 그러나 민주주의 훈련의 부족으로 ‘독재의 상투성’(banality of dictatorship)은 갖고 있다.
3. 윤석열난을 통해 본 내란진압 이후의 우선 개혁과제
1) 사법 카르텔 개혁
윤석열 권력은 검찰 장악을 통해 법을 통해 집행되는 모든 기관을 장악하려 하였다. 내란 이후 한국인들은 모두가 법 전문가가 되었다. 판사·검사는 법에 따라 정의를 실현하는 특수한 관료들인데, 이들이 정치적으로 종속되지 않고 법대로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법 집행의 대가로 금전을 수수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사법 카르텔 개혁, 즉 민주주의 시민주권 확보의 가장 중요한 과제다. 이들의 귀족화 특권화 성역화를 차단해야 한다. 검사, 판사들은 재직 중에도 특권적인 신분을 유지하다가 퇴직 후에는 그 인맥과 경험으로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수임료를 챙긴다. 대장동 로비에서 드러난 화천대유의 법조 고문단은 빙산의 일각이다. 권순일, 곽상도 등의 50억 클럽이 대표적이다.
검찰 개혁에 대한 안은 이미 나왔고, 수사·기소 분리도 부분적으로 제도화되었다. 공수처 설립이 이번 내란 사태에도 한계는 있으나 약간의 역할은 했다. 그러나 검찰 권력의 분산, 기소의 정치 편향성 제거, 시민적 통제는 여전히 남은 과제다.
국민참여 재판의 확대 제도화로 재판의 정치편향, 자본편향을 막는 것도 큰 과제다. 변호사법을 개정해서 판·검사와 변호사의 길을 달리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우선은 ‘전관예우 관련 법’을 더욱 강화하여 판검사의 기소와 판결이 퇴임 후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막는다면 이들의 권력 행사의 기본 유인을 크게 제한할 수 있다.
법조계 ‘자체 정화’는 거의 불가능하다. 검찰, 변호사, 판사도 서로 끼리끼리 불법을 덮어주고 있는데 이 고리를 어떻게 해체할 것인가? 그래서 로스쿨이라는 법조인 선발 및 양성 제도를 만들었지만, 애초 로스쿨의 이상은 거의 사라졌다. 연수원이 아닌 대학에서 법학 교육을 내실 있게 받아서 법조인을 만들기 위한 취지는 거의 사라졌고, 로스쿨은 거의 고시학원이 되었다. 당연히 아무리 공부 잘하더라도 강한 권력 지향성을 갖고 있거나 인권의식이 결여된 사람은 결코 법조인이 되어 국민의 권리를 지켜줄 자격이 없다.
서울대 카르텔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더 심각한 형태로 나타날 위험이 있다. SKY대 로스쿨 출신이 자신들의 카르텔을 형성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이들이 5대 유명 로펌에 입도선매 취업하여 자신들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면 이들 중에 판사가 되고 검사가 되며, 그렇게 되면 이제 유명 로펌이 한국의 사법체계를 좌지우지하게 될 것이다. 과거에는 검찰과 법원의 정치 편향성, 강자 추종이 문제가 되었지만, 앞으로는 훨씬 노골적으로 자본 편향성, 계급 편향성이 문제가 될 것이다.
2) 관료집단 개혁
민주화 이후 37년은 양당이 번갈아 지배한 것처럼 보이나 실질 권력은 관료들에게 이전된 시기였다. 이 점에서 일본 중국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는 거의 동일하다.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직전의 각료회외에서 누가 찬성하고 반대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2년 반의 윤석열 국정운영의 책임의 상당 부분은 각료들에게 있고, 그 핵심 인사들인 관료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한덕수와 최상목은 누구의 편에서 권한대행의 역할을 하고 있을까? 정당들이 합의해오지 않았기 때문에 거부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겉으로는 중립적인 행정조치인 것처럼 보이지만, 현재 내란 상황에서 여야의 적대적 대립국면을 고려하면 다수당인 야당을 반대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다수 국민의 이해에 부합하는가? 그들은 이 편향을 중립의 이름으로 말한다.
윤석열은 검찰, 즉 사법관료 출신이다. 국힘의 지도부를 보면 사실상 관료당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군, 검찰은 특수한 관료집단이지만, 이들의 행태는 승진과 출세에 목을 매단 전형적인 관료다. 국힘은 검사, 판사, 고위공무원 등 ‘국민의 세금으로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얻게 된 사람들’의 정당의 성격이 강하다. 이번 윤석열 정부의 각료 중 핵심인 한덕수, 최상목은 전형적인 관료들이고 이들은 2년 반의 윤석열 정부 파행의 모든 책임을 갖고 있다. 윤석열 친위쿠데타 진행과 체포 저지 과정에서 고위 관료들은 충실하게 윤석열의 내란을 지지해 왔다. 그들은 국민의 편이 아니라 권력자의 편이었다.
한국에서 여러 번 정권교체가 있었고, 민주당과 국민의힘 두 정당도 여러 번의 총선에서 호된 심판을 받았지만, 경제관료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고 언제나 승승장구했다. 윤석열 정부가 기용한 한덕수, 노무현 정부가 기용한 이헌재 등은 김앤장과 정부를 회전문 드나들듯이 오가면서(2008년당시 재경부 출신 김앤장 근무자는 9명이었다. 국세청 관세청 출신은 27명이었다. 임종인. 장화식, 『법률사무소 김앤장 - 신자유주의를 성공사업으로 만든 변호사 집단의 이야기 』 , 후마 니타스, 2008,147-149쪽), 거의 모든 정부에서 사회경제정책 결정의 최고위 자리에서 막강한 힘을 휘둘렀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사실 김앤장 공화국이라 할 정도로 이들 경제관료가 청와대 각료 진출이 많았고, 심지어 박근혜의 청와대는 김앤장 출장소라 부를 정도로 김앤장 출신이 많았다(이명박 정부의 한승수 국무총리, 윤증현 기재부 장관을 포함해서 10명이 고위직에 포진했고, 박한 철 헌법재판소 소장, 윤병세 외교부 장관,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 곽병 훈 법무비서관, 조응천·권오창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김학준 청와대 민원비서관 등이 김앤장을 거쳤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등에서도 김앤장 출신은 계속 기용되었다.
과거 민주정부 즉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는 모두 고시 출신 관료들의 정책 결정에 의존하였으며, 이들 관료에 의해 결국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접거나 굴절시켜, 대체로 실패한 정부가 되었다. 재정 세제, 복지와 분배, 외교와 남북관계에서 이들은 대체로 국힘의 노선과 유사한 입장을 갖고 있으며, 이들은 국힘이 집권했을 때 저항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나 개혁자유주의 정권이 들어서면 저항한 경우가 많았다. 김진표, 김동연 등 민주당에 들어간 사람도 있으나 이들은 민주당의 우경화에 이바지하여 결국 중도진보 진영이 민주당에 등을 돌리게 만드는 데 이바지하였다. 김대중 정부 중앙인사위원장을 지낸 김광웅은 민주주의의 적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관료주의라고 일갈했다.22)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한 이동걸은 국회와 관료집단의 힘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관료에게 ‘대통령은 5년짜리, 국회의원은 4년짜리, 외부에서 임명된 장관은 1년짜리 임시직’이지만 공무원은 ‘종신 정규직’이다. ‘임시직’이 ‘종신 정규직’ 공무원에 대해 지속적이고 일관된 통제를 할 수 없다”.... “우리 사회에는 재벌-보수 관료-보수 언론의 삼각 권력 카르텔이 구축되었고, 그 외곽에서는 이를 이념적으로 지지·지탱하는 보수 지식인·교수 등이 열성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의 최고위 관료는 누구를 대변할까? 공식적으로 이들은 국가와 국민을 대변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오직 자기 자신만을 대변한다. 승진, 출세, 정치생명 유지, 경제적 부가 그것이다. 고위 관료, 검찰, 사법부의 고위직은 경제력에서도 선출된 의원을 압도할 뿐더러 한국의 최상류층에 속한다. 노무현 정부 당시 재경부 3급 이상 관료의 60%는 강남 거주자들이고, 이촌동과 분당 등 아파트값이 높은 지역을 포함하면 88.2%가 이 지역에 거주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경제부처(기재부 금감원 등) 고위 관료 70명 중 64.3%인 45명에 강남 3구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공무원이지만 실제로는 상위 0.1 % 최상층 자산가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은 허구적인 논리다. 한국에서 정치적 중립성이란 오직 저항하는 세력에게 재갈을 물리는 논리로 작용한다. 이번 한덕수, 최상목의 내란 사태 관련 의사결정과 거부권 행사는 가장 적극적인 정치였다. 행정기관이 명백하게 피아 구분을 전제로 하는 정치/행정행위를 하는 것을 우리는 목격한다. 기재부, 검찰, 사법부에서 일하다가 곧바로 정치권으로 뛰어든 사람들은 거의 국힘의 후보가 되는데, 그렇다면 이들은 공무원인 시절에 이미 그러한 입장에서 행정을 펴왔다는 이야기이며, 국민의 세금으로 얻은 지식과 정보를 특정 정당 특히 기득권의 이익을 옹호하는 정파의 이익을 위해 곧바로 사용한다는 말이 된다.
관료체제 개혁의 모든 방법은 이미 충분히 나와 있다. 권한 축소, 아래로부터의 견제, 자체의 패거리 형성 차단, 위로부터의 정당의 통제가 그것이다. 단지 이들의 전문성의 힘을 견제할 수 있는 정당의 역량 부족 때문에 실행하지 못하고 있을 따름이다.
3) 정당의 시민적 호응성과 사회적 대표성 강화
내란 정국에서 국회는 민주주의의 보루가 되었다. 의회의 권능은 강화되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에 지금 정당 간의 안정적인 정책 경쟁과 평화로운 정권교체가 대안인가? 불행히도 지금의 후기 신자유주의 시대에 그러한 정당정치 체제는 한국의 대안이 되기 어렵다. 국힘이나 민주당이나 대선 승리, 총선 공천에 사활을 건 패거리 집단의 성격이 강하다. 정당의 민주화, 당원과 시민의 통제, 정책 정당화는 여전히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근대화와 민주화의 경로를 힘겹게 걸어왔지만, 그리고 모델로 삼았던 유럽과 미국의 민주주의는 이제는 우리의 대안으로 삼기 어렵게 되었다. 정당의 사회적 대표성이 시급하다.
한국에서 의원의 엘리트 독점은 매우 심각하다. 19대 이후 지역, 비례를 모두 포함한 국회의원의 전직 직업 분포를 보면 농민이나 노동자 출신의 비율은 극히 낮고, 법조인, 공무원 등의 비중은 상당히 높다. 22대 국회의원의 구성을 보면, 평균 연령이 56.3세로 20대는 한 명도 없을 뿐더러 30대 1명, 40대를 포함해도 14.7%에 지나지 않는다. 남성이 80%이고, 여성이 20%이다. 직업별로는 현역 국회의원 143명, 정치인 80명, 변호사 23명이다. 법조인 출신이 61명, 전체의 20.3%로 이 중 가장 많다. 19~21대 한국 국회의원의 출신 직업 분포를 통해 보면, 인구의 0,06% 정도를 차지하는 판·검사, 변호사 출신이 국회의 15% 내외를 차지한다. 법률가 비중에서 보수정당인 국민의힘과 민주당 간에 큰 차이는 없다. 이들 법조인, 고위공무원은 대체로 명문대학 졸업과 사법·행정고시 합격이라는 지식자본, 지위자본을 갖고 있다. 대체로 한국의 제도정치, 국회의 의원 구성에서 공직자, 법조인, 전문정치인, 기업인, 언론인 출신이 좌우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7년 민주화는 선거 및 정당 간 경쟁의 새로운 공간을 열었지만, 정작 그러한 공간에서 대표되는 정당은 여전히 과거 민주화 이전의 균열을 어느 정도 대표한다. 거대 양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시도하였으나, 결국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누더기 제도가 되었다. 국민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당명을 개정하면서 여전히 한국의 기득권 세력을 대변하는 국민의힘과, 자유주의 개혁세력에 더해 국힘의 실정에 반사이익을 얻어서 집권하는 민주당의 양당 구도가 의연히 고착되고 있다. 국민의힘과 이전의 집권 보수정당은 자신의 정치력과 도덕적 능력의 결핍을 극복하기 위해 정당 외부에서 영입한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어내지만, 그 후보들은 임기를 제대로 마치지 못하거나 마칠 무렵 대부분 감옥으로 간다.
대체로 양당제보다는 다당제, 즉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 상의 정당이 존재하는 경우, 합의제와 권력분점, 그리고 연합정치에 의해 복지국가가 형성되어 왔다. 아이버슨과 소스키스는 연합정치(coalition politics)의 특성으로 인해 다수제는 중도 우파정부를, 비례제는 중도 좌파정부를 만들어 내는 경향이 있으며, 따라서 비례제 하에서보다 재분배적인 정책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경험적 분석을 통해 보여주었다.26) 정치 정보가 적은 저소득층 유권자들은 고소득층 유권자들과 비교하면 비정책적 요소에 의해 투표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인물투표를 촉진하는 선거제도는 우파정부의 집권을 가져오고, 결국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는 단순 다수제 투표제도가 가지고 있는 인물투표 촉진 성향이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1987년 헌법의 산물인 우리나라의 소선거구-단순 다수제 선거제도는 정치의 지역화 혹은 선거구 중심의 정치를 결과하는 경향이 있다. 지역에서 1등만 당선되는 선거제도는 유권자들에게 사표방지와 집권 가능성을 의식하여 기성 거대정당 후보에게 투표하게 만든다. 진보정당이 지역 기반으로 의회에 진출하는 것이 어렵고, 결국 사회의 다수자, 특히 노동자, 여성, 약자들의 의사가 대표되지 않는다. 비례성이 약한 소선거구-단순 다수제 하에서 유권자들은 정권에 대한 지지/비토 중심의 투표를 하거나, 복지나 조세, 노동정책 등 전국적인 정책 이슈보다는 인물 중심 투표를 한다. 이에 반해 비례제 선거제도에서는 정당의 정책 경쟁을 유도한다. 물론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선거 정치에서 우경화되는 것과 같은 이유로, 진보·민주 대 보수의 양당 구도에서도 진보 민주 계열의 당은 중도파나 부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계속 보수화될 수 있다.30) 미국과 한국의 민주당이 그런 예에 속할 것이다.
한국의 단순 다수제 소선거구제의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대통령제와 결합되면, 기존 정권에 대한 심판과 비토가 선거의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되어 ‘정책 없는 정당체제’를 확대재생산한다. 민주화 이후 지역 맹주로 자리잡은 여야의 정치지도자들은 단순 다수제 선거제도의 대표적 수혜자로서 선거에서 지역주의를 최대한 동원했고, 결국 득표율보다 높은 비율의 의석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래서 거대 양당은 정책 경쟁에 나설 유인이 별로 없다. 유권자들은 거대 양당의 국가 차원의 사회경제 정책에서는 차별성을 거의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정치적 관심을 두기 어렵고, 지역 후보자들의 지역개발 의제에 관심이 끌린다. 결국, 정작 서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복지 담론은 제도정치의 의제로 떠오르지 못한다.
그래서 다양한 정책 대안을 제공할 수 있는 적정한 수의 정당의 존재는 유권자의 선호 변경이 가능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정당 네트워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2025.1.1.)
첫째, 지역정당 및 부문정당의 창당과 활동을 보장하는 새로운 정당제도의 구성, 둘째, 분권과 자치를 핵심으로 하는 지방자치법 등 관련 제도의 제·개정이 그것이다. 주권자의 의지가 직접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심화, 이를 통해 마을에서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작동하는 민주적 제도의 정착,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정부에서 대표를 선출하는 방식의 다양화 등이 변화되는 제도의 내용이 될 것이다. 북유럽 국가나 스위스 정도의 의회 개혁을 추진하는 것도 한국으로서는 언감생심이다. 시민 발의, 숙의민주주의, 국회 입법 논의과정에서 전문가 청문회, 시민교육의 제도화 등이 그것이다. 21세기 민주주의는 숙의민주주의, 직접민주주의, 세계시민 민주주의, 생태주의, 결사체적 정당 모델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
결국, 시민의 참여를 최소로 제한해서 정당을 패거리집단으로 만드는 현재의 선거법, 정당법, 언론 관계법 등을 개정해야 한다. 대중의 선택지를 제한하는 양당 독점구조의 해체, 국회의 교섭단체 의석수의 축소, 이번의 탄핵 조치에서 목격하였듯이 국회의 결정을 최종적인 것으로 하지 않고 또다시 헌재 등 법원의 판단을 최종적인 것으로 해서 ‘사법 권력을 신의 반열에 올려놓은 제도’ 역시 개정되어야 시민의 참여와 대표자인 국회의 권능을 올릴 수 있다.
4. 무엇을, 누가, 어떻게, 이 시대적 과제를 추동할 것인가?
1) 거시 구조적 국가사회 개혁
윤석열 친위쿠데타 상황의 완전한 극복은 극우 쿠데타 재발 방지 장치 마련을 1차 과제로, 그리고 실질적 민주주의 수립을 2차 과제로 해야 한다. 그리고 더 장기적으로는 직접민주주의의 도입, 정당체제의 완전한 개편을 전제로 한 생태·평화·복지국가 건설을 지향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세계적 조건에서 한국은 유럽식 사회국가, 혹은 사회민주주의를 국가의 헌법적 가치로 삼을 수 있는가?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논의할 주제다. 그보다 더 일차적인 질문은 “과연 한국은 현재의 안보경제적 조건에서 주권국가로서의 독자적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을까?”, “어떤 조건에서 그것이 가능할까?”
아직 밝혀지지 않은 점이 많이 있으나, 윤석열이 국힘 후보로 낙점되거나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데는 미국의 힘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그리고 일본 주류 보수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은 무엇보다도 일차적으로 ‘한미일 군사동맹체제의 유지와 확대’이다. 윤석열은 그것에 적극적으로 호응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이번 계엄에서 바이든의 미국은 상당히 비판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트럼프는 이번의 내란 사태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국회 난동
사건 관련자 사면 조치 등으로 유추해봐도 그는 국힘 편일 것이다.
한국 극우의 기반은 반공주의다. 여기에다 미국 복음주의와 근본주의 기독교가 이식해 상업화한 대형교회의 보수주의가 결합되어 한국적 극우세력의 배양터가 만들어졌다. 반공, 반복, 맹목적 친미의 이데올로기 정치지형의 변화는 거시적으로 성취해야 할 구조개혁의 과제다. 윤석열과 전광훈은 이 무대의 주인공이나 그들을 움직이는 세력은 무대 위와 무대 아래에 존재한다. 무대 위에는 80년 분단, 냉전체제, 동아시아 반공주의 체제를 관장하는 미국이, 무대 아래에는 한국의 거대 자본 세력이, 무대 옆에는 SNS, Youtube 등 새로운 전달 매체와 그것이 만들어내는 폐쇄적 소비자 집단화 현상이 있다.
이번 윤석열 쿠데타 직후 대만의 민진당이 지지 성명을 내서 파문을 일으켰고, 일본의 극우단체 유신회의 바바 노부유키 전 대표가 “한국에서 일어난 일은 일본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라며 “헌법 개정으로 긴급사태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는 글을 발표했다가 비판을 받았다. 냉전 시기 일본-한국-대만의 정치는 반공이라는 큰 사실 속에서 하나의 궤도 속에 있었는데, 민주화 이후에도 그 잠재적인 연결고리가 존재한다. 거꾸로 말하면 한국에서의 윤석열 내란의 진압과 민주화는 동아시
아 민주화에도 심대한 영향을 주는 사건이다.
전광훈과 태극기, 보수 기독교 세력은 과연 한국의 영토 경계 내에서만 활동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미국 및 국제적인 연계를 갖고 있나? 단순한 반북이 아니라 중국혐오 담론, 반중시위에 상당한 의심이 간다.
2) 탄핵, 개헌, 대선
거시 장기적 대안은 본격 논의해야 하지만 지금은 대통령 탄핵, 내란죄 직권남용, 그리고 외환죄까지도 수사해서 윤석열 일당을 탄핵하고 엄하게 처벌해야 할 국면이다. 그런데 궁지에 몰린 국힘, <조선일보> 등 내란 주도 동조세력은 부분적으로는 개헌 담론을 퍼뜨리고, 주요하게는 모든 것을 대선 대립 구도로 전환하려 한다. 즉 내란은 없었던 것으로 하고, 이재명을 계속 타격해서 민주당을 후보 부재 상태로 몰아넣고, 대선에서 승리해 재집권하자는 것이다. 과거에 제기했던 개헌론(내각제)도 다시 꺼내고 있는데, 이 역시 탄핵을 없었던 것으로 하고, 대선에서 유리한 조건을 만들 수 있는 개헌을 하자는 것으로 다분히 정략적이다.
개헌론이 블랙홀이 되어 내란의 분노를 빨아들여서도 곤란하고, 모든 것을 대선 구도로 가서 개혁 의제를 대선에 종속시키는 것도 매우 위험하다. 내란진압의 문법과 개혁의 문법, 그리고 선거의 문법은 완전히 다르다. 내란진압은 엄한 처벌이, 개혁의 문법은 모든 억압받은 세력과 소수자를 포함한 사회세력의 동원과 참여가, 그리고 선거는 대립의 구도가 핵심이다. 대중들은 보수 언론과 매일 계속되는 여론조사와 인기투표 정국이 주도하는 선거 구도로 빨리 흡인된다. 조직된 시민사회의 힘이 그만큼 약하다.
이번 친위쿠데타를 막은 결정적인 역할은 이재명의 민주당이 해냈다. 2016-2017 박근혜 탄핵은 언론(조선, JTBC, 한겨레)과 촛불 시민의 힘으로 가능했으나, 그 성과는 민주당이 모두 가져갔다. 이번 윤석열 탄핵은 윤의 자살골을 민주당의 매우 적절하고 기민한 대처와 촛불(응원봉)의 합작으로 성사시킨 것이었고, 민주당과 의회 권력의 기여가 컸다고 볼 수 있다. 민주당은 지금까지 윤석열 구속기소 과정에 50% 이상 기여했다. 그러나 윤석열 탄핵이 인용되는 바로 그다음 날부터 탄핵은 곧바로 대선 구도에 묻힐 가능성이 크고,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면 탄핵 성과의 100%를 가져갈 것이고, 조국혁신당 등 소수 야당은 그냥 민주당의 대선 전략에 동원될 것이다. 개헌, 개혁의 과제는 2017년처럼 결국 제도정치권 밖의 요구와 청원으로 그치고, 대선 승리에 사활을 건 정당들의 전쟁에 묻혀버릴 가능성이 크다.
지금 개헌론 제기가 성급한가? 아니다. 개헌론은 제기할 수 있고, 그 내용에 대한 논의도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언제 어떤 내용으로 할 것인가? 민주당은 개헌론을 꺼내지 않는다. 대선에서 유리한 국면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민은 탄핵과 수사만을 주시하고 동원되어야 하나? 어느 정도는 그렇다. 우선 대선 구도로 편승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시민은 민주당이 대선에서 승리하라고 시위에 참여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시민사회는 민주당과 힘을 합쳐 탄핵/수사를 밀어붙이
되 개헌과 개혁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
헌법 개정에 포함될 제도적 개혁과제는 현재의 대통령제를 손보거나, 근본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방안(대통령제 폐지, 4년 중임제, 이원집정부제, 내각제?), 국회 및 정치 개혁 방안(비례대표제 확대, 소선거구제 폐지, 정당법 개정?), 성평등, 동일노동 동일임금, 생태국가 지향성 명시, 그리고 권력의 집중성 완화(연방제 수준의 자치분권), 국민발안·국민소환 제도의 도입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논의해야 할 사안이다. 대통령의 국가원수 지위 폐지, 사면권을 제한, 거부권 제한도 포함해야 한다.
헌법 개정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대선 이전에 헌법 개정을 하는 것은 정치 역학상 매우 어렵다. 그런데 과거의 경험상 대선 이후에 집권 세력이 헌법 개정에 나갈 가능성은, 시민사회의 강력한 견인과 견제가 없는 한 크지 않다. 그래서 지금 ‘국민주도 상생 개헌운동본부’가 원포인트 개헌(국민발안제) 이후 2단계 개헌을 주장한다. 국가와 사회가 시급히 필요로 하는 개헌을 민주당과 국힘당의 정략적 이해를 넘어서 추진할 가능성은 어디에 있나? 하더라도 또다시 정부 형태, 대통령제나 내각제냐 등의 문제로 논란이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 여러 가지 쟁점이 포함된 개헌안은 내년 지자체 선거 때에 추진해서 국민 투표에 부치는 방법이 현실성이 있다. 이것을 민주당에 어떻게 강제할 수 있을까?
3) 촛불(응원봉) 시민세력과 민주당
기성 정당으로 대표되지 않는 시민의 기여와 요구는 어떻게 개헌과 개혁의 의제화와 현실화, 그리고 정치세력의 사활을 건 마지막 전쟁인 대선 국면에 삽입할 수 있을까? 촛불 응원봉 당이 결성되어 대선에 참여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난망하다. 그렇다면 독자적인 세력을 만들어서 의제와 요구, 개헌, 선거법 등 개혁을 수용하도록 해야 하는데, 촛불 응원봉 시민이 설사 시민을 대표하는 조직을 만들어도 그 조직의 대표성을 인정할 수 있을까? 그리고 시민 대표기구가 만들어서 개헌 개혁안을 수립한다고 해도 과연 민주당이 받을 수 있을까? 민주당의 집권이 어려워지면
그렇게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2017년 당시 ‘촛불’의 미래에 대해(많은 사람이 촛불혁명이라고 했으나 필자는 그런 표현을 쓰기를 주저했다) 당시 필자는 한국의 촛불 이후의 정국이 1960년 4.19 이후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기대했지만, 현실적으로는 그 길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4.19 당시 야당인 민주당이 이바지한 것은 별로 없었지만 7.29 총선으로 그 성과의 100%를 먹었고, 결국 5·16쿠데타를 맞이하고 말았다. 양상과 시차는 크지만, 2017년 이후 문재인-윤석열 8년의 과정도 그러했다. 그것은 분단-반공체제 아래에서 제도권 민주당 외부의 사회세력이 정치적 기반을 갖출 수 없는 구조적 제약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혁명도 불가능하지만, 개혁도 매우 힘든 것이 한국의 정치지형이다. 우선은 극우 파시즘 지지 사회세력을 축소해야 한다.
2016-2017 촛불시위 후 필자는, 그 최대 성과는 민주 개혁세력의 승리가 아니라 새누리당(국힘)의 분열(바른미래당 등장)이라고 봤다. 그런데 그 분열은 그 이후 원점(국힘으로 재통합)으로 돌아갔다. 대통령제 하에서 다당제가 성립하기 어려운 구조적 조건의 제약 때문이었다. 그런데 국힘은 이번에는 갈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윤석열 내란에 동조하는 집단이 여전히 지도부를 차지하고 있으며, 일부 탄핵 찬성의원들은 분당을 감행할 정도의 세와 기반, 그리고 담론을 갖지 못하고 있다. 한동훈은 그들의 리더로서 부상할 기회가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전반적으로 국힘이 윤상현 등 극우파를 내치지 못하고 내란, 그리고 아스팔트 극우의 지지에 기댄 것은 심각한 판단 오류다. 그들은 윤석열은 곧 내치겠지만, 여전히 전광훈이 동원한 기독교 극우파, 태극기세력에 기대는 것은 몰락을 자초하는 길이다. 설사 다가오는 대선에서 국힘이 승리해도 국가의 미래는 어둡다. 아무런 지도력이 없기 때문이다.
윤석열이 집권하는 동안 심어놓은 행정부, 사법부, 검찰, 경찰, 공수처의 최고위층은 거의 친위쿠데타에 동조적이고, 그를 대통령으로 올린 국민의힘과 그 지지자들은 이해관계, 지역주의 의식, 인지 착오, 무지 등의 이유로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던지지 않으려 한다. 이들을 모두 극우 파시스트 혹은 그 동조세력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그들은 내란을 문제로 삼지 않는다. 특히 윤석열 정부를 지탱한 국힘 당원, 고위 관료, 기업가, 법조인의 대부분은 윤석열은 복귀하지 않더라도 국민의힘이 재집권할 수 있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국가나 사회에 대해 아무런 대안을 갖지 않고 있다. 노동자들이 죽고, 자영업자들이 모두 가게를 닫고 은행이 파산해도, 자신의 권력만 유지되면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의 사활적 과제는 정권교체다. 그런데 왜 정권교체를 해야 하나? 생활대중은 민주화도 비상계엄도 탄핵도 ‘그들’의 일로 바라본다. 대선 승리를 위해 이재명 대표는 ‘실용’ 노선을 걷겠다고 한다. 중도파가 이재명과 민주당 편으로 돌아올까? 매우 회의적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탄생에 기여한, 즉 문재인 정부 5년의 실패에 대해 국민에게 그 경과를 설명하고 적절한 사과를 해야 한다. 그렇게 해도 민주당은 겨우 집권을 할까 말까 할 정도일 것이다. 역대 민주정부의 정책에 대한 복기가 중요하고,34) 어떤 나라를 만들기 위해 정권을 교체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먼저다. 민주당이 지난 촛불시위처럼 윤석열 탄핵에 50%의 이바지를 한 시민사회의 몫을 인정하지 않으면 상황은 도돌이표로 갈 것이다.
윤석열 탄핵과 처벌을 외친 시민들은 자신을 대표할 주제, 조직이나 정당이 없다. 선거 정치에는 그냥 동원될 유권자일 따름이다. 그러나 이들은 정권교체가 아니라 사회경제 개혁을 원한다. 양자는 합치할 수도 있고 충돌할 수도 있다. 2월 말 3월 초에 혹시 탄핵이 인용되면 양자 간에 충돌과 긴장이 발생할 것이다. 윤석열이 복귀하면 한국은 더 심각한 내전에 빠질 것이다.
4) 어떻게?
개혁의제의 제기와 개혁운동은 위와 아래에서 동시에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 헌법 개정을 예로 들면, 1987년의 밀실 합의 방식을 완전히 청산해야 하고, 가까이는 문재인 정부에서의 전문가 논의 방식도 극복해야 한다. ‘국민참여 개헌운동’ 측이 주장하듯이 이제 헌법 개정의 대안은 위와 아래에서 동시에 병행해야 한다. 즉 촛불 응원봉 대중 가운데 지역사회에서 탄핵 반대 의원들의 퇴진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동력을 확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개헌을 위한 국민회의’ 등의 전국적인 조직도 필요할 것이다.
의사, 변호사 등 기득권의 집단행동은 공익을 희생하고서라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있으나, 사회적 약자들은 더욱더 자신의 집단 이익과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제기하도록 격려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긴급하고 구체적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사회에 계속 알릴 필요가 있고, 그것을 통해서 더 큰 의제로 올라가야 한다. 모든 시민은 자기 직업과 계급의 정체성을 더욱더 분명하게 한 다음, 자기 이익과 공공의 이익이 어떻게 충돌하거나 합치하는지를 논의하는 것이 한국의 미래를 위해 중요하다.
지자체 조례 제정에서 주민들이 일정한 입법권을 갖고 있듯이, 이제 개혁 의제 수렴과 헌법 개정도 주민자치회, 지역 시민사회와 정당이 함께 논의하도록 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마을과 지역의 실정, 농민과 자영업자의 실정은 이런 자리에서 제기되어야 한다. 헌법과 선거법 개혁도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정치세력에게 모든 결정을 위임하고, 정당의 입법권을 물신화하기보다는 사회적 권력의 행사를 입법 활동과 연결해야 한다. 헌법과 선거법에서 국민발안, 시민의회의 개입을 인정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의 개정이 필요하다. 정당의 입법 독점권은 축소되어야 한다.
이번 탄핵 시위에서 큰 역할을 한 2030 여성들은 세력으로 조직될 수 있을까? 이런 발상 자체가 구시대적일까? 중요한 것은 박근혜 윤석열 탄핵, 퇴진을 위한 이러한 힘겨운 시민의 정치노동은 앞으로 더 이상 지속되어선 안 된다는 점이다. 사회운동이 정치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은 맞다. 그러나 정당이 모든 국가 의사결정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20세기의 이야기다. 의회도 개혁되어야 하고, 비례대표의 확대, 의회정치의 정상화라는 대안을 계속 추구해야 하지만, 정치는 정당만의 것이 되어서는 안 되고 사회단체, 시민의회 등의 제도화, 그리고 시민의 직접 참여를 통해 보완되어야 한다. 21세기 우리 한국은 장차 대통령제의 시대, 정당의 시대, 대의제의 시대, 선거의 시대 그 너머로 가야 한다.
5. 맺음말
이번 윤석열의 친위쿠데타는 87년 민주화, 대통령 단임제와 단순 다수 소선거구제로 집약된 1987년 헌법과 국회의원 선거법의 한계, 그리고 더 직접적으로는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당명을 바꾸면서 사실상 한국의 지배세력으로 군림해온 주류보수 세력의 통치 능력 상실을 극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다. 사실 박근혜 탄핵으로 현재의 국힘의 한계는 드러났으나, 이후 촛불 시민의 위임을 받은 문재인 정부의 실패로 그것이 8년 지연돼 이렇게 극적인 방식으로 터진 것이다.
앞으로 극우 쿠데타는 없을까? 미국은 2021.1.6. 폭동과 같은 친위쿠데타를 겪었으면서도 다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그 사회적 지지기반이 건재하고 상황이 더 나빠졌기 때문이다. 1934년 프랑스의 우익 폭동세력은 독일에서 나치의 집권과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곧 비시 정권의 주역, 파시즘화의 기둥이 되었다. 세계가 전쟁에 휘말리게 되면 지금 한국의 극우는 사라지기는커녕 폭력적 형태로 재집권할 가능성도 있다.
우선 한국 정치는 극우 쿠데타를 무산시키는 일에 가장 크게 이바지한 민주당과 시민에게 주어져 있다. 이번 탄핵 국면이 또다시 정권교체, 즉 개헌 보장과 개혁적 시민사회의 요구 수렴 없이 민주당 집권으로만 귀결되면 문재인 정부 시즌(season) 2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지금 트럼프 2기 집권, 한국경제의 성장동력의 취약성 등과 맞물려 당장 국제적인 정세나 경제환경은 한국의 민주개혁 세력에게 매우 불리하며, 양당의 지지율이 비슷하고 국힘 지도부가 여전히 윤석열의 내란을 옹호하는 태도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극우 파시즘의 사회적 기반이 매우 강력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설사 민주당 대통령이 집권하더라도 또다시 개혁을 유보하거나 민주당이 더 우경화될 수도 있다.
현재의 양당 독점구조, 그리고 선거 승리를 위한 민주당의 지속적인 우경화와 타협, 고위 관료들의 민주당 개혁세력 포획은 지난 37년간의 6공화국 시기의 정치과정, 가까이는 문재인 정부의 인기 관리 중심의 정치와 개혁 자제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충분히 겪었다. 설사 영웅이 나오더라도 현재의 헌법, 정당 체제, 매우 결손된 대의제 민주주의 하에서는 세상을 바꾸기 어려울 것이다. 정당, 선거, 대의제가 정치적 결정을 독점하던 시대는 끝났다. 민주주의의 질적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민주당의 정치 엘리트들은 윤석열 정부의 미일 일변도 외교정책의 기조를 전환하여 북한과의 관계에서 과감하게 미국을 설득해 한국전쟁의 종전과 남북한 동아시아 평화 논의를 시작하고, 트럼프의 방위비 분담 증액에 미군 철수나 독자 핵무장 카드를 내놓는 등 한국의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안보, 경제외교를 펼 역량이 있는가? 기후위기, 저출산, 수도권 집중, 양극화 문제를 정면으로 대면할 수 있을까?
트럼프의 대중·대외 고관세 정책은 성공하기 어렵고, 미국 제조업의 고용 창출도 쉽지 않을 것이다. 지구 에너지 위기와 기후위기는 가속화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은 가속화되고. 중국의 deepseek 개발 청년들이 던진 충격처럼 앞으로 중국의 영향력은 더 커질 것이다. 모든 우수한 청년들이 의대와 로스쿨로 몰리는 한국은 더 중국에 종속될 것이다.
한국은 이 구도에서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것이지만, 이제 한국이 가진 국제적 위상도 만만치는 않다. 주류보수는 한국이 여전히 1950년대 혹은 1980년대에 있다고 보는데, 그동안 한국이 성취한 민주화의 성과, 경제적 성과, 그리고 K-pop과 한류 열풍이나 청년들의 재능을 보면 한국은 정치적 지도력 여하에 따라 국제적으로 중견 국가의 역할을 할 수 있고 당연히 해야 한다. 단, 윤석열의 자살골 정국을 시민사회의 총 지혜를 흡수하여 전면적인 전환의 계기로 삼으려는 담대한 의지와 비전을 세울 때 가능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