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진년 푸른 용의 해다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10간에 첫 번째 갑에 12지에 다섯 번째 용인 진이다. 올해가 10간에 첫 번째라니 왠지 기분이 좋다 더구나 12지에 첫 번째인 쥐띠는 용과 합을 이루는 해라 설레기도 한다 이 나이에 설레봤자겠지만 100세 시대에 60을 넘었을 뿐이니 청춘아닌가? 모든 책임에서 떠나 자신만의 인생을 살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다 더구나 올해는 누런 용도 아닌 젊고 푸른 용이 아닌던가
태어나서30대까진 부모 슬하에서 30대부터 60대까진 사회와 자식에 대한 책임감으로 산다면 60대야말로 내 세상인 나이다
벌려놓은 일들이 너무 많아 마무리를 할 수밖에 없어 다시 회장에 추대된 한국산악회 변기태 회장님이 매년 직집 쓴다는 신년사를 읽다 혼자 웃었다 17세에 한산의 준회원으로 20세에 회원이 된 건 처음 알았다
17세에 준회원? 부모 속 엄청 썩였겠구나!
지난 해 수락산장 현판식 날 회장님이 이렇게 돈을 쓰면 속 상하지 않냐는 말에 사모님이 "자기가 벌어서 자기가 쓰는대요!" 그 말은 "말려봤자지! 말 듣게 생겠니?" 라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그러기까진 회장님 나이도 한 몫했으리란 생각도 든다 40대나 50대라면 회장님이 돈을 쓰고 싶어도 이리저리 걸리는 게 많아서 맘대로 쓰지 못 했으리라
간이 배 밖으로 나오는 60이 넘으니 이 눈치 저 눈치 보지 않고 하고자 하는 일을 의욕적으로 할 수 있는 거 아닐까
부모 걱정이야 시켰겠지만 17세에 준회원이 됐다는 건 산을 다니며 건강을 다졌다는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가장 중요한 걸 얻은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 건강이 받쳐줘야 하고 싶은 일도 할 수가 있는 거 아니겠는가 나이가 드니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게 건강이다
이쁜 거? 딱 한 달이다 이뻐봤자 길어야 30년이다 그 다음은 다 거기서 거기다 이쁜 사람일수록 나이가 들면 늙은 미인은 없다라는 말이 진리란 생각이 든다 오히려 인물이 빠진다고 느낀 사람들이 나이가 들수록 중후해지고 인물이 펴지는 걸 보면 40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하고 명함이 얼굴이라는 말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품위 있고 고상하게 살았다는 거겠지
미인이고 고상이고 지금 나에게 가장 절실한 건 건강이다 49기 때 회전근 하나가 끊어진 게 지금까지 말썽이다 재활을 하며 쉬었어야 하는데 바로 50기와 연달아 51기까지 너무 욕심을 부렸다 내 몸에 예의를 지키지 않았던 거지 몸이 비명을 지르며 나에게 복수를 하고 있다 낮에는 그럭저럭 참겠는데 자려고 누우면 고통이 배가 된다 똑바로 누우면 어깨 부위의 회전근육이 벌어져 극심한 통증이 와 비명이 절로 나온다 옆으로 누우면 골반 옆 뼈가 결린다 도대체 어떻게야 하나... 벼개를 받쳐놓고 앉아서 잠을 자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 눕게 되면 또 다시 반복되는 통증 아침마다 비명을 지르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다 수술도 할 수 없는 부위다. 의사가 1년 간 재활하며 절대 안정하라고 했는데 병원에 가면 의사에게 혼쭐이 날 게 빤하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가야하는데 암벽!!!" 회전근이 끊어졌을 때 얼마나 혼이 났던가 정신 못 차리고 또 암벽을 했다고 하면 그 성격에 불 같이 화를 내고 진료조차도 봐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천을 들으며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게 싫기도 하지만 수술도 못하는데 가봤자다 "손!!!" 뼈 사이로 주사를 찌를 때 아파서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가도 고함을 쳤는데 이번엔 더 화를화를 내며 더 아프게 스테로이드 주사를 찌르겠지 그것도 잠시뿐이다 세월이 약이다 생각하고 견디는 게 최선이다
진통제도 지나치게 복용하면 신장과 간이 나빠지는 건 물론 내성이 생기고 마약성까지 들어있어 끊기가 힘들다 지난 해 암벽을 하며 달고 살던 진통제를 끊기 위해 약장 문 앞을 서성거리며 유혹을 참아내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던가 내가 한 짓이 있으니 인과응보려니 하고 참아야했지만 고통은 만만치 않았다 거울을 보니 얼굴까지 팍삭 늙은 것 같다 아니 늙었다 거울을 보기가 싫어진다 봄에 과연 바위를 할 수 있을까라는 서글픈 생각까지 든다 클라이밍도 일 년간 끊어놓고 못 나가고 동계도 어깨를 사용해 바일로 얼음을 찍을 자신이 없어 포기하고 우울하다
어제 눈이 오는데 나가서 눈도 맞고 쓸고도 싶은데 짝꿍이 눈을 쓰는 걸 부럽게 쳐다보다 들어왔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 '저 인간도 어깨가 아프다면서 또 얼마나 아프다고 엄살을 떨며 사람을 잡으려고 저러나'
아들에게 눈이 내린 사진을 찍어 보냈다 "또 눈이 와? 고립되겠다 ㅠㅠ 그런데 전경이 넘이쁘다!" "이쁘긴한데 고생스럽다" "원래 세상 만물이 고생이 들어가야 예쁘잖아 엄마" "울 아들 철학자네!" "엄마 닮아서 그렇지!" 짜식 말도 이쁘게 하고 엄마보다 나은 것 같다
하루 햇살이 무섭다고 빛이 쌓일수록 종이 한 장씩의 두께만큼 조금씩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다 모든 게 내 탓이긴 하지만 회복이 더딘 것 역시 내 탓이다 조금 나아진다 싶으면 내 나쁜 머리가 아픈 걸 깜빡 잊는다 무거운 냄비나 빨래 바구니 등을 들게 돼 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렇게 다시 통증이 시작되고 악순환이 되풀이 된다 머리가 좋아야 몸이 고생을 안 하지 짝꿍을 부르기보다 내 손이 먼저 나가는 급한 성격도 한 몫을 단단히 한다 지난 번 눈이 왔을 때 짝꿍이 외출했다 통증이 어느정도 진정도 된 것 같아 악을 쓰며 25K 염화갈슘 푸대 3개를 들어 손수레에 실었다 결과적으로 75K를 든 거다 그 후에 통증으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생각하기조차 끔찍하다 "왜 하필 눈이 올 때 외출을 해!!!" 통증이 심해 억지까지 부렸다 "누가 들래? 좀 기다리면 됐잖아!! 그넘의 급한 성격 때문에 하여튼!!" "염화칼슘은 눈이 많이 온 다음에 뿌리면 효과가 떨어진다고! 오기 전에 뿌려야해!!" "물기가 있어야 녹지 이 사람아" "그건 근거없는 상식이고!" "근거가 없긴! 상식적으로 물기가 있어야 녹는 거 아니야?" "그건 자기 생각이지! 과학적으로 미리 바닥에 깔아놔야 눈이 염화칼슘 위로 떨어지면서 녹는 거야!" 과학적인지 아닌지 솔직히 나도 모른다 그냥 우기는 거다
올 들어 최고로 춥다는 매서운 추위에 짝꿍은 눈을 쓸고 와 서예와 기타를 배우러나가자고 한다 미쳤나보다 부럽기도 하고 몸도 늘어지고 나갈 엄두가 안 난다 뭐든지 시작하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덥든 춥든 미련하리만큼 꾸준히 하는 걸 보면 그래서 공부를 했나싶기도 하다 그래도 대학성적을 보면 나보다 못했던 것 같은데
"반장인 당신이 빠지면 어떡해! 기타선생님도 당신만 쳐다보고 있고!" "기타 선생이 왜 날 쳐다봐?" "당신이 있어야 자기 배 고픈 것도 챙겨주고 하니 그렇지! 왜 자꾸 꾀를 부려?" "무슨 꾀를 부려? 아프니까 그렇지! 오늘도 다 토했어!" 벌컥 "저넘의 성질머리! 성질이 못 됐으니 소화가 안되고 토하지! 토하는 것도 습관이야!" "뭐라고? 누군 토하고 싶어서 토해? 속이 답답하고 괴로우니 토하지? 한번씩 토하면 속이 뒤집히고 얼마나 진이 빠지는 줄 알아?" "그러니까 좀 움직여. 움직여야 소화도 되지. 쇼파에 누워 껌딱지처럼 붙어 책만 들여다보고 있으니 소화가 안 되잖아" "교활하게 왜 갑자기 말을 돌려? 성질이 못 돼서 토한다며?" "언제 성질이 못 돼서 토한다고 했어? 성질이 못 돼 소화가 안 된다고 했지!" "그게 그 말이지? 그리고 성질이 못 된 거하고 소화가 무슨 상관이 있는대?" "그럼 좋은 성질이냐?" "비겁하게 또 말 돌린다! 성질 못 된 거와 소화가 무슨 상관이 있냐고?" "상관이 있지 없냐? 먹는 것도 까탈스럽고 신경은 바늘 끝처럼 날카롭고 아프기만하면 사람을 들들볶고!" "뭐라고? 내가 매일 밤 아파서 신음할 때 잠만 쿨굴 잘 잤으면서 들들볶아?" "아,아, 됐어! 올 때 뭐 사다 줘? 필요한 거 없어?" "됐어! 다 필요 없어!!!" "저넘의 성질!" 문을 닫고 나가버린다
'들어오기만 해 봐! 넌 죽었어!내가 꾀를 부리며 안 간다고? 몸이 움직여주지 않는 걸 어쩌라고! 너도 아프기만 해봐라! 나보다 더 늙었으니 언젠간 아프겠지! 그때 복수해 줄 거니까!'
갑자기 아픈 게 싹 잊힌다 분노는 나의 힘?? 매일 분노하며 살면 아픈 것도 잊고 힘이 생길까??? 싸움도 힘이 있어야 하고 분노도 힘이 있어야 생기는 건데 어떻게 매일 분노하며 사냐고
다시 울컥 꾀병처럼 다친 곳이 눈에 딱 띄게 보이지 않는 게 더 서럽다 매일 아프다는 소리를 들으면 지겹기도 하겠지 그렇지만 누군 아프고 싶어서 아픈가? 매일 아파 힘들어 하는 걸 눈으로 보면서! 두고 봐 꼭 복수할 거니까!
책도 눈에 안 들어오고 훌쩍거리며 핸드폰을 이리저리 뒤지다 변회장님의 신년사까지 읽게 됐다 올해 마음 먹은 3가지 목표 중 수락산 인테리어를 6월까지 마친다는 게 가장 마음에 들고 기대가 된다
'현판식 때 약속한대로 6월이 되면 은은한 커피향이 나는 수락산장의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거겠지' 그때까지 어깨가 나아줘야 하는데
작년에 전재산을 기부하고 돌아가신 권정달 종신회원님의 유지를 받들어 강원지부 창립50년이 되는 10월 31일까지 강원지부를 위한 계혹을 마무리한다? 강원지부가 50년? 역시 설악의 힘은 대단하구나!
한산의 80년 역사를 정리하는 일 역시 나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니 그건 전문가인 회장님이 알아서 하실 거고
그건 그렇고 저녁엔 또 뭘 해 야하나 움직이는 것도 힘이 드는데... 끼니마다 약을 한 알씩 먹으면 식사가 해결되는 약은 왜 만들지 않는 걸까
마음 같아선 쫄쫄 굶기고 싶지만 산 짐승이니 굶길 순 없고 굶기는 것도 치사한 것 같고 싸울 때 싸우더라도 먹이면서 싸워야지 혈당까지 떨어져 누워버리면 죽어나는 건 나니까
가만 분명 복수한다고 했는데 지금 저녁 걱정? 단순한 나 또 잊은 건가 안 되지! 일기장에 써놓고 잊지 말아야지! 그런데 복수한다고 일기장에 써놓은 것들이 헤아릴 수 없이 수두룩하지 않은가? 빨간줄까지 쳐놓았는데 아 이 참을 수 없는 단순함이여 벌컥하며 싸우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내 자신이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 피식 웃다 끝난 일도 부지기수다 싸우다가도 전화를 받고나면 싸운 걸 잊어버리고 짝꿍에게 전화 받은 내용을 설명하고 있는 나 아니던가 벌컥하지만 그때 뿐 곧 잊고 나중엔 왜 싸웠는지 생각조차 안 난다 단순함을 넘어 머리가 나쁜 게 틀림 없다
"그 성질에 잊지 못하고 뒷끝까지 있어봐! 사람이 살겠어!"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거지 저 인간 보내려면 뒤끌 있음 되겠네 간단하네 지금부터 뒤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갈고 닦아야겠네 이것도 일기장에 쓰고 잊지 않게 빨간줄 쳐놓아야지! 잊지말자 공산당!
땅속이 얕다는 듯 몸은 한 없이 땅속으로 가라앉고 마음은 깊이를 모르는 마음 속으로 잠수하고
첫댓글 글을 읽으며
선희님 옆지기와의
공간이 상상이 됩니다.ㅋ
만화를 그릴줄알면
글만 읽고 표현을 할수 있을듯~
선희님 본인을 들었다놨다
알콩달콩 잼나게
사시는 표현이
너무재미 있어요.
한편의 엣세이
잘읽었습니다~^^
선배님
새해 건강하고 행복하실 거죠?
내 글을 꼬박꼬박 읽어줘서가 아니라
선배님은 나이를 잊은 듯 착하고 고와요
이 나이가 되면 대충 그 사람이 보이지요
그림은 제 딸이 전공인데 결혼을 하더니 제 남편만 알아요
그래야 하지만 사람이다보니 가끔 서운해요
딸보다 살갑게 구는 아들도 결혼을 하면 달라지겠죠
아들 말대로 그게 세상의 이치겠죠^^
미리 실망할 준비를 해둬야겠어요
다음에 만나면 따뜻한 차 마시며 대화했음 좋겠어요
남은 겨울 건강하게 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