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때 친구집에서 테레비를 자주 보았는데...................................이문세가 나왔었다.
그때 그는 늘 사회를 맡았다.
그래서 나에게 이문세는 사회자의 이미지가 새겨져 있다.
오늘 아침에 이문세 히든싱어를 하였다.
예전에는 그의 노래를 들으면......약간 자연슬버지 못한흐름으로 느꼈는데 어느새 과거가 되어버렸다.
지금은 듣기 참 편안한 노래들이다.
히든싱어는 한번 쳐다보면 끝까지 다봐야 된다.
힌눈이 날려 하늘로 올라간다는 부분은 참 슬픈 표현이다.
지금은 돌아가신 참 좋은 시인의 시라고 한다.
이문세의 노래ㅡㄴ 대부분 그의 시인가?
지금도 마음이 먹먹하다.
내겐 그의 노래에 담긴 것이 아닌 생생한 나만의 노래가 풍경과 함께 가슴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버스가 가는 먼 길.........낯선거리.......비 우산 정류소.............담배꽁초..........햇살...유리창................ㅁㄴ지......................초량너머 담벼락..............내려오는 계단.............다방........아다지오...........................
조금씩 기억에서 읻혀지고 있다.
나이가 더 들면 거의 다 잊혀질지 모르겠다.
그땐 무엇을 먹으면서 살아갈런지 궁금하다.
지금 수행자리에 앉아믄.........그 시간들이 잔잔히 마음을 가라앉혀준다.
이것이 다 이문세 노래가 만든..................젊은시절의 꿈이다.
나는 지금 그꿈에서 돌아다니고 있다.
사랑은 아름다운 것!
옆에 좋은 친구가 있었기에..............더욱 빛난다.
박경림이와 이해미 김해미? 도 다 출연하였다.
해미씨는 젊은 친구로 부터 소중한 포옹도 받았다.
영광사라는 절에 여러사람과 같이 갔었다.
노보살이 창건하였는데...................작은 마을의 끝집이었다.
조용한 마을인데....떡갈나무나 봄풀들이 푸르르가고.................저녁햇살속에 작약과 취나물과 모란이 활짝피어 있었다.
스님은 70대초반이신 것 같은데 피부나이는 30대보다 더 젊으셨다.
밝고 순수한 비구니스님이셨다.
1억 사천만원에 비구니스님께 권하셨다 한다.
아마 내가 살려고 하면 2억정도는 부를 땅으로 보인다.
북향이지만 햇볕이 적어 보이지는 않는다.
창건주 노보살의 고집스런 기도가 보인다.
시조회원들이 한사람당 천만원씩 내어 절을 살려고 한다.
^^내게 의향을 묻는다.
나는 반반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없다.
사람들의 땅에 가람을 틀면......................그것은 부처님법을 중생들이게 맡긴것과 같을 것이다.
깊은 산중에 홀로 천막을 치고 나물을 뜯어 먹을지언정 사람들의 가람은 사양한다.
아직 공부할 길도 멀고........절터를 생각할 겨를은 거의 없다.
10년만에 다시 칼을 빼어들었다.
그동안의 수행을 모두 결집하여 도전하고 개척해간다.
걷던길을 다시 걷는 것이 조금 무겁지만..............이제 새로운 경지는 놓치지 않으리라!
나는 아직 모르잖아요!
이문세 노래 모음이 흘러나온다.
나는 화양동천을 들어가서..............봉래산으로 올라갈 것이다.
학들이 끄는 수레를 타고 방장을 거쳐서 영주를 건너갈 것이다.
그대여!
대천을 건너보자!!!
첫댓글 이문세 노래를 예전에는 그렇게 즐겨 부르지 않았는데 요즘 들어보니 모두 가사도 좋고 다 좋다고 저도 느꼈어요. 노래가 모두 시에 가사를 붙인듯 좋던데요."시를 위한 시"란 노래도 좋고, 잔잔하면서 다 좋습니다. 일반인들이 절을 지어서 어쩌겠단건가요? 종교도 사업체가 되어 본래의 목적을 잃어가는 일들이 비일비재하죠. 그런일은 도모하는 사람들이 없기를 바라네요 ㅎ
그래요................................선지식에게 시주해야겠지요. 참좋은 가람을 짓기위해서.......................
좋은 생각이십니다.ㅎ 등불님을 지지합니다.
~~~그래요............................언젠가는 꿈속과 같은 포근한 고향처럼 아늑한 가람을 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