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린 시절 흔적이 묻어있는 성지곡 수원지는 주머니가 비어
있는 나에게는 어쩔 수 없이 가는 피난처였지만,
영혜와 함께 오솔길을 걸을 때에는 교양 있고
점잖은 척했다.
호숫가 벤치에 앉아 ' 둥둥 떠다니며 즐겁게 노는 물오리 '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영혜가 뜬금없이 " 욱곤아 ! 내 발 참 이쁘제 " 라고 하던 마누라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때는 우리가 서로를 알아가던 시절이었다.
마누라와 함께 했던 세월을 회상해 보니 자기를 내세운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이
왜 그 말을 했는지
마누라를 먼 곳으로 떠난 보낸 지금이야 비로서 그 말을 왜 그때 했는지 조금은 알 것같다
온천천 벚꽃길을 걷다가 보이지 않던 '어스 공방' 이라는 아담한 간판을 벽에 달고 있는 가게를
보고 들어가니 머리를 길게 기르고 안경을
낀 여자가 맞이한다.
" 신발도 도자기처럼 빚어 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한 번 해볼 테니 어떤 신발을 원하는지요." 하며 긍정적인 답변을 해주어
그때 신고 있었던 여름 신발인
' 발등에 두 줄이 쳐진 샌들' 모양을 설명해주고 목이 긴 부츠와 두 켤레를 주문했다.
그해 추석 선물로 내 洗禮 받는 사진과 함께
봉안당에 안치했다.
올 설날에는 " 이제 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라는 내 모습을 보여 주러고 최근에 찍은 사진 한 장을 큰 딸에게 현상해오라고 해두었다.
그때 그 시절이 여기까지 오면서 보낸 세월 중에서 "행복했다" 라고 생각되는 시절은 아닌데도
내가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내가 지치고 힘들어할 때 연민의 정으로 나에게 쉬어갈 그늘이 되어 준 마누라가
그기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재센터에 근무할 때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지게차 기사분이
저녁을 함께 하자고 해서 달려가는 길은 본 듯한 길이었다.
" 야 임 형 ! 여기가 어디요 "라고 물으니
내가 평소에 자주 에덴공원에 관한 이야기를
하길래 그곳이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이라 그기로 가고 있다고 한다.
가보니 그곳은 내 기억에 있는 곳이 아니었다.
여하튼 산마루에는 흰 구름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하늘에 황혼도 저물어 가고 있었다.
이 친구가 잘 안다는 다방에 들어가니 내가 즐겨 찾는 시골 다방이었다. 예쁘장한 마담을 소개해 준다. 전혀 낯설지가 안다.
새벽달 보려고 으스름달 안 보랴 !
막무가내로 커피 대신에 소주를 가져오라고 생판 되지도 않는 어거지를 부렸다.
자고 일어나니 웬 여자가 다소곳이 앉아 있다.
저녁을 먹고 2차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후는 깜깜하다
"누구세요 "라고 하니 " 금옥이입니다."
아침은 먹어야 했기에 식당으로 갔다. 결제해 달라고 요청하니 지급 정지되어 있다
정화조에 빠진 생쥐처럼 허우적거리니 보기 안쓰러웠든지 금옥이란 여자가 대신에 결제해 주며 "시나미 잡수세요" 라고 한다.
술이 안 께 ' 내가 지금 강원도에 다시 발령받았나' 했다.
집에 돌아가 횡설수설하니 ' 어디서 자고 오느냐' 고 묻지도 않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대해주었다.
후에 알고 보니 마누라가 밤이 깊어져도 내가 집에 오지 않아 회사에 연락해보니 정상 퇴근 했다 하고, 고등학교 동기하고 카풀하고 있다고 들었던 ㅇㅇ의 전화번호를 물어 전화도 해보고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알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핸드폰으로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결제 내역을 보고 내가 사고를 당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얼마나 속이 터져 을까.
술집 등에서 결제되는 것을 몇 번은 보고 있었으나 더이상 두엇다가는 생계에 지장이 있을만한
금액이 결제되고 있어 지급정지 했다고 한다.
이제와서 생각하니 마누라의 고운 心性에 이런 행세를 하는 나를 자기 탓으로 하며 얼마나
애처롭게 여기며 가슴 아파했을까.
그때 마누라가 느낀 연민의 슬픔을 지금 내가 마누라를 다시 못 보는 아픔에 비교할 수 없을 것 같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ㅇㅇ이는 자기 나름대로
내 행방을 찾는다고 수소문하다보니 사무실 사람 모두가 그날 나의 행적을 알게 알게되어 체면이 말이 아니었고
지게차 기사는 기사대로 둘만의 일을 그렇게 떠블리면 어쩌냐고 불만을 토로하니 내가 저지른 일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물에 빠진 생쥐 처지가 되었다.
살아보니 옛날이나 지금이나 돈에 쪼들리기에는 마찬가지이고
잃을 게 없는 자는 다 잃은 자이고, 잃을 게 있는 자는 덜 잃은 자 일 뿐이다.
결국은 모두가 다 잃게 되는 것이다.
" 꼭 목표를 달성했다고 해서 행복한 것도 아니었고 실패했다고 해서 불행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본전이었다.
나는 지금도 지난 세월만큼 각박한 시간 속에
헤매고 있지만 그것이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연민의 정으로 나를 안아주는 마누라가 없다는 것에 가슴이 저리고 아프다.
그 힘든 세월을 겪어내는 것이 본전치기인 줄 알았다면 차라리
아둥바둥 살지 말고 나와 마누라를 위하여
" 좀 더 지혜롭게 살 수 없었는냐"라고 후회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