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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가을학기 준비 특강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말씀 / 디모데전서 4:1-16
요절 / 디모데전서 4:13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오늘 말씀은 가을학기 준비 특강입니다. 올해를 시작하면서 신년 방향이 되는 말씀으로 오늘 본문을 살펴보았었습니다. 우리가 가을학기를 준비하면서 다시금 이 말씀을 상기시키면서 깊이 영접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목회자로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교회를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말해줍니다. 그렇다면 디모데를 향한 바울의 권면 속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바울은 디모데전서 3장에서 교회를 가리켜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했습니다(딤전3:15).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고 세상에 대해 진리를 세워가고 나타내는 터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디모데가 책임 맡고 있는 당시 에베소 교회 안에는 이 진리를 마구 흔들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성령께서 말씀해 주십니다. 1,2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그들은 다름 아닌 믿음에서 떠나 마귀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양심에 화인을 맞았다고 했습니다. 즉 불도장을 맞은 것입니다. 양심이 마비되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교회에서 함께 식사도 하고 성찬에도 참여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서로서로 믿고 신뢰했던 사람들이었고 서로서로 의지했던 사람들이었고 깊은 정이 들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들이 어느 순간 교회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혼란스럽게 해놓고는 다른 성도들을 미혹해 함께 교회를 훅 떠나버렸습니다. 그들은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거짓말을 참말처럼, 이단 사설을 진리처럼, 짝퉁을 명품 복음처럼 속여댔습니다. 양심에 화인 맞지 않고서는 어떻게 이런 일들을 벌일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들이 주장하는 것들은 어떤 짝퉁이었을까요? 어떤 이단 사설이었을까요? 3절을 보십시오.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결혼하지 말고 평생 ‘솔로’로 살면서 육식은 금하고 채식만 하면 거룩해질 수 있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이런 금욕적인 생활을 하면 뭔가 있어 보이는 특별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보면 대개 거룩함이나 경건 등 이런 삶에 관심을 많이 가집니다. 그들은 평생 독신으로 살면 거룩해지고 평생 채식하면 경건해진다는 말로 성도들을 미혹했습니다. 그럴싸한 주장입니다. 하지만 치명적인 문제가 있는 가르침이었습니다.
바울은 이에 대해 분명하게 말합니다. 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으면 어느 것 하나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만일 금욕을 해야 하겠으면 부정하고 더러워서 하는 것이 아니라 금욕이 필요해서 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결혼해서 성생활을 하는 것이 결코 부정하고 더러운 것이 아닙니다.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산다고 해서 더 경건한 것도 아닙니다. 금욕이 우리에게 유익이 된다면 그때 금욕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금욕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감사함으로 결혼도 할 수 있고 육식이든 채식이든 감사함으로 먹으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금욕의 문제가 교회에서 복음 정신을 흐리는 심각한 이단 문제가 될 것을 내다본 것입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은 무엇으로 거룩해진다고 말합니까? 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지는 것이지, 독신주의와 채식주의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심령 깊이 영접하고 기도하므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가운데 사람이 거룩해지는 것이지, 결혼하고 안하고가 거룩함의 척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느냐 안 먹느냐가 거룩함의 척도가 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생활입니다.
그러면 잘못된 이단 사설을 가르치고 전파하는 사람들을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나쁜 일꾼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나쁜 일꾼은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마귀의 앞잡이 노릇을 합니다. 그렇다면 이들 나쁜 일꾼들과 맞서 교회를 든든히 세우기 위해서는 누가 필요합니까? 6절을 보십시오.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나쁜 일꾼들과 맞서 교회를 든든하게 세우기 위해서는 좋은 일꾼이 필요합니다. 교회는 우리 주님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든든하게 세우기 위해서는 우리 주님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교회에 필요합니다. 일꾼이라고 해서 다 같은 일꾼이 아닙니다. 어떤 일꾼은 주인의 일에 무관심하고 게으릅니다. 주인이 원하는 일을 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합니다. 자기 욕심만 채우려고 합니다. 이런 일꾼은 힘을 빠지게 하는 나쁜 일꾼입니다. 반면에 어떤 일꾼은 주인의 일에 부지런하고 충성스럽습니다. 주인이 기뻐하는 일을 항상 최우선으로 합니다. 주인의 기쁨이 되어드리는 존재입니다. 주인의 마음을 시원스럽게 해드리는 사람입니다. 이런 일꾼이 좋은 일꾼입니다.
그러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 주님의 마음을 시원스럽게 해드리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가 먼저 주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 속에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십자가 복음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주님과 교제하고 주님의 십자가를 날마다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를 주님은 성화 되어 가게 하시고 이런 우리를 거룩하다고 하십니다. 실제 우리는 말씀대로 순종해 살아가면서, 또 기도로 주님과 교제하는 가운데 주님의 뜻을 알아가고 주님의 뜻에 순종할 힘을 덧입게 되고 거룩한 주님의 속성을 닮아가게 됩니다. 또 우리가 이 같은 주님의 올바른 복음으로 형제자매들을 깨우치는 삶을 살다 보면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들이 되어 갑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입니까?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들이 되어 서로 동역하면서 교회를 세워가고 있습니다.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줍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으로 섬기며 살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으로 계속해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주님의 교회에 계속해서 힘이 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늘 스스로 돌아보고 점검하면서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들로, 또 주님의 몸 된 교회에 힘이 되는 사람으로 쓰임 받고 성장해 가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우리가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양육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6b).”
먼저, 양육입니다. 무엇으로 양육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까? 말씀입니다. 양육은 어린아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해 주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에 좋은 음식을 먹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몸에 안 좋은 음식을 자꾸 먹고 군것질을 자주 하다 보면 아이가 잘 자랄 수 없고 어른은 온갖 성인병으로 고통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 되기 위해 잘 먹어야 할 음식과 피해야 할 음식이 무엇일까요? 잘 먹어야 할 음식은 믿음의 말씀과 좋은 교훈들입니다. 바로 성경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피해야 할 음식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입니다(7a). 곧 우리 마음과 영혼을 해롭게 하는 자극적인 콘텐츠들을 가리킵니다. 우리 신앙의 문제는 우리가 몸 건강에 좋은 담백한 음식보다는 달고 짜고 매운 자극적인 음식을 찾듯이 성경 말씀은 별로 가까이하지 않고 재미있고 달달한 SNS 영상을 비롯한 콘텐츠들에 빠져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덜 가까이하고 보다 자극적인 콘텐츠만 즐긴다고 해도 지금 당장 무슨 문제가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계속 그 결과가 누적되다 보면 차이가 생겨납니다. 영적 성장이 답보 상태에 머물거나 심지어 퇴보하게 됩니다. 우리 내면이 점차 병들어 갑니다. 이런 모습으로는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으로 쓰임 받기 힘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정기적으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일을 실천해야 합니다. 쉽지 않지만,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입니다. 말씀이 주는 힘이 우리 삶을 변화시킬 것이고 우리를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으로 성장하게 할 것입니다.
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훈련입니다. 어떤 훈련입니까? 경건에 이르는 훈련입니다(7b).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우리 몸이 잘 성장하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먹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게 또 있는데 바로 운동 곧 육체의 연단입니다.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다는 표현이 너무 박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여러 가지 유익들이 있습니다.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살 수 있고 옷핏이 딱 사는 좋은 몸매를 유지할 수도 있고 함께 하는 사람들과 운동 교제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육체의 연단을 하지 않으면 스트레스도 쌓여가고 여기저기 아픈 곳도 많아지고 피부도 안 좋아집니다.
영적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경건에 이르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어떤 훈련일까요? 앞에서 나왔듯이 말씀과 기도의 훈련입니다.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써먹고 성경 말씀을 꾸준히 묵상하고 소감을 쓰며 말씀을 자기 적용하는 것입니다. 또 시간을 정해 꾸준히 기도하기에 힘쓰는 것입니다. 이런 영적 훈련을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새 삶이 달라집니다. 죄를 원하는 본성이 죽어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잘못된 습관이 하나씩 바로잡힙니다. 우리 영혼에 근육이 생겨 어떤 고난과 어려움 앞에서도 강한 멘탈의 소유자가 됩니다. 그러나 만약 영적인 훈련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늘 죄의 욕망에 걸려 넘어지고 작은 시련과 고난에도 신앙이 무너져 내리는 연약한 영혼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경건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은 아는데 경건 훈련을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어느 정도 운동하면 살도 빠지고 육체가 단련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경건을 연습하는 것은 성과가 눈에 확 띄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어도 내가 경건한지 생각해 봤을 때 꼭 그런 것 같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많이는 아닐지라도 나름대로 지금까지 기도하고 말씀 보는 삶을 그래도 어느 정도는 해왔다고 하지만 이런 삶이 뭘 얼마나 변화된 삶을 살게 할까요? 눈에 팍 띄게 보이지 않으면 우리는 별로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경건을 연습하는 것이 정말 유익하다고 말합니다. 육체의 연단도 유익이 있지만 경건을 훈련하는 것은 범사에 유익하다고 바울은 확신합니다. 왜입니까?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경건은 살아서도 유익하고 죽어서도 유익하는 것입니다. 뭐가 그렇게 유익할까요? 살아서는 변화되어 하나님을 닮아가는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게 되고 죽어서는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생을 약속하기 때문입니다. 여기 ‘약속’은 ‘기쁨과 행복을 포함한 영원한 생명’에 대한 약속입니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경건에 이르기를 힘쓰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생명력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경건은 우리 삶이 기쁨의 인생, 행복한 인생을 살게 합니다. 경건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위로와 힘을 얻게 합니다. 육체의 연단으로 얻는 것은 이 땅에서 끝이지만 경건을 훈련해서 얻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까지 영원합니다. 그러니 경건에 이르는 훈련을 하는 것이 얼마나 유익한 것이겠습니까?
그러나 경건에 이르기 위해서는 많은 수고와 헌신이 따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는다고 했습니다(딤후3:12). 지금도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아픔과 고난을 겪고 있는 것을 많이 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경건을 훈련하는 데에 수고하고 힘써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10).” 우리의 소망이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경건은 금욕하고 결혼 안 하고 채식 먹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는 데 있습니다. 경건은 썩어질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경건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말씀과 기도로 경건을 연습하고 훈련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경건한 사람들로 성장해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내면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가르칠 책무가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막중한 책임입니까? 그런데 디모데에게는 한 가지 핸디캡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의 나이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디모데의 나이는 삼십 대 중반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아주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에베소 교회 안에는 그보다 연배가 높은 선배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디모데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쉽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또 디모데와 비슷한 또래 성도 중에는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디모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좋은 일꾼이 되고 싶어도 일할 분위기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사도 바울은 디모데가 이런 약점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줍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본이 되는 것입니다.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디모데가 성도들에게 본이 된다면 그의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않을 것이라고 일러줍니다. 교회의 리더십은 힘이 아니라 본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본이 되는 삶으로 양들을 이끌어야 합니다. 그럴 때 외적인 약점들은 가려지고 삶과 인격을 통해 인정과 존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
둘째, 말씀에 전념하는 것입니다. 디모데가 가진 권위의 근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만약 디모데 자신에게 있다면 그가 가진 약점들이 항상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디모데의 권위가 궁극적으로 디모데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디모데의 영적 권위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13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으로서 디모데의 권위는 바로 디모데가 읽고 권하고 가르치는 말씀에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디모데의 가르침의 근거가 자기 생각이 되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성경이어야 합니다. 가르침의 근거가 성경이어야만 그의 권위가 하나님으로부터 올 수 있습니다. 오직 그럴 때만 디모데가 자신의 연소함에도 불구하고 업신여김과 반대와 어려움과 온갖 장애물을 무릅쓰고 담대하게 말씀을 가르치고 선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씀을 권면하는 것에 전념하라고 말합니다. 사도행전 20장에 보면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어떻게 권면하며 섬겼는지 잘 나타납니다. 바울은 겸손과 눈물로 권면하며 가르쳤다고 했습니다. 삼 년 밤낮을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권면하며 섬기는 삶을 이제 에베소 교회의 목자인 디모데가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거기에 전념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으로 권면하는 삶을 목자가 살아갈 때는 오래 참음과 눈물과 겸손이 필요합니다.
또한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성경의 의미를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성경 공부와 같은 것입니다. 성경 선생으로서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양들에게 필요한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양들은 어느새 바른 복음 위에 굳게 서서 또 다른 양들을 가르치고 있게 될 것입니다.
셋째, 은사를 잘 발휘하는 것입니다. 14,15절을 보십시오.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받을 때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디모데는 장로들의 모임에서 목회자로 안수받을 때 어떤 은사를 받은 것 같습니다. 그 은사가 어떤 은사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디모데가 에베소 교회를 섬기며 스트레스받다 보니 은사를 발휘하는 것 또한 많이 위축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같이 능력도 없고 실력도 자격도 안 되는 사람이 어떻게 교회를 책임 맡아 섬길 수 있겠어?” 하면서 자존감이 바닥을 찍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디모데에게 바울은 받은 은사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하나님께서 디모데를 교회를 섬기는 직분으로 부르실 때 그 사역을 감당할 만한 은사도 함께 주셨습니다. 디모데는 그 은사를 발휘하여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에베소 성도들은 디모데를 하나님이 세우신 일꾼으로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디모데는 은사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어리고 부족하다고 하지 말고 경건에 이르기를 힘쓰며 본이 되며 말씀을 읽고 권하고 가르치는 일에 전심전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신앙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야 합니다. 헬라어로 ‘전심전력하라’라는 말은 ‘너의 존재가 그것들 안에 들어가 있어라’라는 의미입니다. 그만큼 말씀을 읽고 권하고 가르치는 삶과 하나가 되라는 말입니다. 그만큼 삶이 온통 그 일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남모르는 자신과의 싸움이 있어야 합니다. 앞으로도 교회 안에 크고 작은 어려움들은 있겠지만 디모데가 그렇게 살아가는 한 디모데 자신의 성장과 함께 에베소 교회를 통한 구원 역사는 계속될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완벽해지기를 욕심내기보다 우리의 신앙이 날로 성장해 가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상대방의 성장해 가는 모습을 격려하고 기도해 주어야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으로서 완벽성보다 믿음 안에서 성장해 가는 모습을 나타내도록 권면하는 것 같습니다. 목자는 양들의 성장을 보면서 기뻐합니다. 또 동역자들 서로 간에 성장하는 모습을 통해 예수님의 은혜를 보게 됩니다. 믿음 안에서 서로 성장해 가는 모습이 서로에게 힘이 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해 가야 합니다. 우리가 경건에 이르기를 훈련하고 양무리의 본이 되며 말씀을 읽고 권하고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므로 더 나은 신앙의 성숙과 성장을 이루어가는 가을학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할 때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맡겨주신 양들도 생명이 살아나는 은혜의 역사가 충만히 일어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