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뉴스 268/1012]제574주년 한글날 유감
찬샘뉴스 10월 10일자를 전하지 못했다. 새벽에 컴퓨터가 말썽을 부렸고, 아내와 함께 가을소풍을 다녀오느라 미처 쓰지 못한 까닭이다. 10월 9일은 한글, 정확히는 훈민정음訓民正音이 반포된 지 574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한글 관계자’라는 말이 우습지만, 그들 아니고는 훈민정음 반포의 역사적 의미와 세종대왕의 숭고한 뜻을 되새겨본 국민이 과연 몇 명이나 있었을까, 적이 걱정이 된다. 역사적으로 대한민국의 굿뉴스good news를 손꼽자면, 훈민정음 창제를 단군할아버지가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서 ‘한밝 민족’의 터를 잡으신 것 다음일 것이라고,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전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만들어진 과학적인 문자 ‘한글’이 이제 수출輸出이 되고 있는 마당에, 우리의 ‘우리말(한글) 사랑’의 현주소는 어디쯤에 있는 걸까? 몇 년 전인가 유해진이 열연한 영화 ‘말모이’를 기억하시리라. 일제강점기 우리글을 지켜내기 위한 선각자들이 만든 ‘조선어학회’의 피 어린 활동상을 담은, 참으로 소중한 영화, 대한민국 국민은 반드시 꼭 봐야 하는 영화가 아닐까.
한글 이야기를 좀 하자. 1940년 <훈민정음 해례본>이라는 국보책이 발견되기 전까지 기역 니은 디귿을 비롯한 28자의 창제원리를 해례(풀이)가 없었기에 자세히 알 수 없었다. 그 책이 세상에 선을 보인 이야기는 그야말로 다이내믹했다. 자칫 불쏘시개로 없어질 뻔한 것을, 국운國運이 있었던지 항일抗日 문화애국자인 간송 전형필 선생의 귀에 들어갔다. 거간꾼이 당시 고급 기와집 한 채값인 1천원을 불렀건만, 간송은 열 채값인 1만원을 주저없이 주고 입수했다. 거간꾼에게 준 돈만 1천원이었다, 문화재의 가치를 제대로 안 간송이 아니었다면, 또 그러다 자칫 일실되었다 생각하면 진정 소름이 돋는 일이다. 한국전쟁때 부산으로 피란가면서 그 책만 가지고 가 베개 속에 숨어 보관했다던가. 그 책 말미에 정인지가 쓴 발문에 반포일이 ‘정통正統 11년 9월 상간上澣’이라고 쓰여 있다. 정통은 중국 연호로 1446년이고 세종 28년이다. 상한은 상순上旬으로 음력 9월10일을 양력으로 환산, 10월 9일을 1928년 처음 한글날로 정한 것이다.
그러던 한글날을 1991년 공휴일(국가가 정한 빨간날)에서 제외한 ‘말도 안되는’ 사건이 생긴다. 2005년에야 국경일國慶日로 승격이 되고, 2013년 비로소 공휴일로 환원이 되어, 엊그제 한글날 연휴를 맞게 된 것이었으니, '오 마이 갓'이 아니고 무엇이랴. 한글날이 국경일이 아니고 공휴일로 기념하지 않으면 무슨 날을 그리 대접할꼬? 그러고도 '동사무소'를 몽땅 '주민센터'로 바꾸었으니.
한글날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지만, 어쩐지 할 말이 너무 많은 것같다. 한힌샘 주시경, 외솔 최현배, 일석 이희승 등 선각자들을 비롯해 간송 전형필 선생의 이름도 기억해야 한다. 폭군 연산군 시절, 어느 선비가 언문諺文이라 비하하던 훈민정음으로 임금 비난 상소를 올렸다던가. 언문책을 모두 불사르라는 왕명으로 ‘조선판 분서焚書사건’이 일어날 즈음에 실종된 ‘훈민정음 해례본’이 1940년 경상도 안동땅에서 나타났으니, 거듭 말하지만, 우리나라는 국운이 있는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다.
며칠 전 뉴스에도 나왔지만, 제2의 훈민정음 해례본이 십수년 전 대구 헌책방에서 발견되었다. 원 소유자와 그 책을 ‘도둑처럼’ 사간 사람간의 소유권 재판이 이뤄지고, 구매자는 형사소송으로 감옥살이를 하고, 원소유자는 죽어가면서 그 책을 국가에 기증했다. 구매자는 그 책을 꽁꽁 숨겨놓고 국가에 1조원에 사가라며 기증은 택도 없는 소리라고 큰소리치고 있는 골치아픈 사건말이다. 최근 울진시에 기부를 약속했다, 그런 일 없다, 1000억을 주기로 했다, 찌그락짜그락하고 있다. 이게 '밀당'할 일인가. 우째 이런 일이다. 아무래도 현 소유자가 국가 귀속으로 공증된 책을 갖고 ‘놀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게 어찌 개인의 책이 될 수 있는가. 하여 간송미술관에서 보관하고 있는 해례본은 ‘안동본’이라고 하고, 지금 이슈가 되어 문화재청이 쩔쩔매고 있는 해례본을 ‘상주본’이라 부르는데, 상주본은 아무도 실물을 본 적이 없다. 소유주를 주장하는 분이 불에 탄 일부를 휴대폰으로 공개한 것뿐이다. 수백 년 동안 내려오며 훼손되기 십상인 그 국보國寶를 일개 개인이 자기 것이라며 갖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또 하나 짚고 넘어갈 이야기가 있다. ‘한글세대’라는 말이 공공연히 쓰인 지는 아주 오래됐다. 어쩌면 50년대 말부터 태어난 이들을 몽땅 한글세대라고도 부를 수 있겠는데, 소위 말하는 ‘한문漢文’과목을 초중등교육과정에서 배우지 않은 국민을 지칭한다. 이들은 기초한자 1800자커녕 1000자, 어쩌면 300자도 모를 수 있겠다. 각자가 취미가 있어 독학하지 않았다면 도리가 없지 않은가. 실제로 자기의 한자이름을 괴발새발 쓴다기보다 그리는 친구들도 있고, 대학을 나온 친구들조차 자기 부모와 조부모의 이름을 쓸 수 없는 친구들이 태반일 것이다. 이것은 심각한 정도가 아니라, 내 표현으로는 ‘나라 망하는 지름길’인 것을 왜 모르냐는 것이다. 실제로 용龍자를 글자가 아닌 디자인 개념의 캐릭터로 알고 있는 젊은이를 대학로에서 만나고 실소한 적이 있다.
낱글자 한자漢字는 결코 중국 글자나 외국어가 아니라는 이 명명백백한 사실을 외면하거나 왜곡하여, 마치 한글로만 쓰는 것이 나라사랑의 첫째라고 생각하는, 한글학자들의 무지막지한 단견短見이 수십 년째 지속되고 있다. 아니다. 결코 아니다. 한자는 우리 민족과 역사를 같이 해오고 있는 ‘우리의 말’이 아니고 ‘우리의 글’이다. 우리 국민의 70%는 이제 정부의 교육방침에 의해 ‘한자 문맹자文盲者’가 되었다. 한글(훈민정음)과 한자는 '두 바퀴의 한 수레'임을 왜 모르는것일까? 이런 경우를 '가슴을 두 주먹으로 치면서 뛰다 죽을 일'이라고 할 것이다. 아니, 우리말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무슨 뜻인지는 알아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말과 우리글로만 쓰고 사용하자면서 정작 우리나라는 미연방공화국의 한 주州가 되어버린지 오래이지 않는가.
아무리 생각이 짧은 생각이라도 ‘한자=외국어foreign language’라는 단세포적인 등식等式이 어찌 가능할까? 한자로 이루어진 한문漢文을 배우고 익히자는 게 아니다. 우리에게 한문은 이미 '죽은 문자'인 것을. 어찌 그 심오한 한문의 세계 알기를 기대할 것인다. 영어보다도 훨 어려운, 긑도 갓도 없는 게 한문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한문이 아니고 한자이다. 한자를 안다는 것이 한글사랑과 눈곱만큼 배치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니 한자를 알아야만 수학修學 효율이 몇 곱절 더 난다는 것을, 한글전용론자들은 왜 모를까? 내 생각으로는, 다 잘 알면서도 일부러 눈을 가리고 있는 것같다.마치 그것만이 자신들이 살아가는명분이 되고 죽도록 주장해야 하는 길이라는 자기최면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세종대왕님에게 여쭈어볼까? 아마도 애민군주는 혀를 끌끌 찰 것이다. 내가 언제 한자를 쓰고, 배우지 못하게 했던가? 하면서. 같이 쓰면 되는 걸, 공부와 인생의 이중낭비가 아닌 걸 왜 모르는 걸까? 몹쓸 생각, 아주 나쁜 생각이다. 국민이라면 누구나 나라의 발전과 번영을, 백범 김구선생님처럼 세계 최강의 아름다운 문화국가가 되기 위한 노력과 꿈을 꾸지 않겠는가. 그런데 일부러 자구 훼방을 놓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시간이 없는데 말이다.
나도 한글을 사랑한다. 어쩌면 지나치게 사랑한다. 두 아들과 손자의 이름을 순우리말로 지었다. 최한울과 최한솔 그리고 최윤슬. 한울은 한울타리(공동체의 건실한 일꾼이 되라), 한솔은 사시사철 변함없는 큰 소나무(독야청청), 윤슬은 달빛이나 햇빛에 비치어 반짝거리는 강이나 호수의 잔물결처럼 소중하게 빛나라는 뜻으로 지었다. 그렇다고 성인 ‘높을 최崔’자조차 ‘으뜸’으로 하여 ‘으뜸한울’ ‘으뜸한솔’ ‘으뜸윤슬’이라고까지 지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의미에서는 내가 고향인 ‘냉천冷泉마을’ 이름을 ‘찬샘마을’이라고 하듯이, 내 이름조차 ‘으뜸00’으로 개명하고 싶다. 그런 내가 다섯 살 손자에게 ‘하늘 천’ ‘따 지’를 비롯해 ‘천고일월명天高日月明 지후초목생地厚草木生’ 추구推句 구절을 가르치려는 까닭은 분명하다.
한자를 모르면 공부를 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말 어원語源의 70~80%가 뜻글자인 한자에서 왔기 때문이다. 한두 단어만 떠올려봐도 금세 알 수 있다. ‘한국韓國’을 보라. ‘클 한’자에 ‘나라 국’이므로 ‘큰 나라’이다. 거기에 ‘대한민국’은 ‘큰 대’자가 있으니 ‘크고 또 더 큰 나라’이다. 나라 이름 덕분에 ‘한강의 기적’도 이룩했을 것이고, 경제대국 10위권도 넘보게 됐을 것이다. 이런 큰 나라가 제 나라 문자교육을 이렇게 시킨다는 말인가? 왜 21세기 대명천지에 하는 일마다, 하는 짓거리마다 밴댕이 속일까? 내가 지금 당장부터 기초한자교육을 시키자고 목이 터져라고 외치는 까닭은 한자를 모르면 ‘절름발이 교육’이 되기 때문이다. 서너 살 애에게 사과를 애플apple라고, 코끼리를 ‘엘리펀트elephant’라고 꼭 그렇게 먼저 가르쳐야 할 일인가? 하늘을 가르키며 스카이sky라고 하지 말고 ‘하늘 천’이라고 제발 먼저 가르치시라. 진정 하늘이 무섭지 않는가.
나는 우리말인 한글(훈민정음)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그것도 참 많이. 진짜다. 또한 나는 한국어韓國語를 좋아하고 사랑한다. 그것도 참 많이. 이것도 진짜다. 한자漢字가 있는 게 한국어이다. 부디 착각하지 마시길. 한글전용, 한글사랑과 한자 사용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이 아침, 흥분한 것을 해량하시라.
첫댓글 한글날 뉴스에 관공서들도 외국말쓰기 바람이불어 사무실 이름을 모두 글로벌 시대에 맞게
영어발음으로 바꾸었다고하니 웃음이 날수밖에한동안 간판도 외국어 간판을 못달게 단속할때도 있었으니 세월 많이 변했다고 해야하나?
시어머니가 아들집에 못찾아오게 아파트 이름을 영문으로 길게 지었다는 말에 그냥 웃어넘겼었는데 다시 생각하게되네
친구네 아파트가 평화동 니미씨X 아파트라기에 깜짝 놀랐는데 알고보니 할머니가 영어발음을 못해서 리젠시빌을 니미씨X로 불렀다는 웃는소리. 한글을 사랑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