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은혜에 속다.
---(팟캐스트 방송)---
http://cdn.podbbang.com/data1/chunsd/190922.mp3
---(감우(甘雨) 라디오/TV)---
http://gamwoo.tv/천수답의-새벽묵상일요칼럼-거짓-은혜에-속다/
저는 하나님은 은혜를 너무나 좋아 합니다. 그 은혜 아니면 제가 이 땅에 설 수도 없고 살아 남을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하고 그 은혜를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만이 죄인에게 유일한 희망입니다. 그러나 이 은혜라는 것이 자칫 잘못하면 죄인들의 죄를 더하는 변명거리로 전락 할 수 있어서 주의가 요망됩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더 짓게 하는 것은 은혜가 아니라 저주입니다. 은혜를 빙자해서 자신의 영혼의 양심을 무마시키려는 시도는 거짓 은혜를 빌려 온 것이며 성경의 가르침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거짓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오해한 나머지 이런 가짜 은혜에 너무 많이 속아 넘어 갑니다.
“하나님이 이미 나를 그 은혜로 창세 이전부터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하셨으니 이제 나는 무엇을 해도 용서받고 결국에는 구원받을 것이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거짓 은혜에 속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은혜를 믿는 것이 마치 진짜 믿음인 것처럼 사람들을 현혹 시키는 목사들이 있습니다. 단언 하건데 저들은 사단의 일꾼들이요 마귀의 수하들입니다.
롬 6:1. 15, 16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고후 9:8.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빌 1:29.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은혜는 죽을 우리를 살린다. 그 동일한 은혜가 때론 우리에게 고난에 들어가게도 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편안한 자유를 주기보다는 치열한 싸움을 안락한 쉼보다는 쉼이 없는 투쟁을 주신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었다고 믿는 것이 실로 중요한 일이기는 하나 많은 사람들이 “나는 구원을 받았다”라고 말하면서 취하는 태도 가운데 따르는 위험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믿으라 믿기만 하면 살 수 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믿음과 행함은 병행해야 하며 믿는 일과 행하는 일은 잘 조화되어야 한다. 복음은 율법의 가르침을 약화시키지 않으며 오히려 율법을 높이고 존귀케 한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복음이요 은혜다.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영원한 세계의 이편에는 휴식이 없다.”(5증언, 597)는 말이 있다. 빌리그래함의 말처럼 그리스도인의 안식은 파도치는 바닷가 바위 밑에 깃을 세우고 잠든 물새의 안식이라는 말이 맞다. 우리는 지금 원수가 종횡무진 활동하는 적진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아무런 반대와 저항 없이 천국이 저절로 얻어질 것처럼 착각하고 생각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만일 우리의 삶이 너무 평안하고 걱정거리가 전혀 없다면 내가 진짜 위기 가운데 놓은 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고난마저도 은혜로 해석하는 사람들이며 고난과 시련도 우리를 단련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는다. 은혜는 우리를 고난 가운데 자라가게 하고 죄에서 더 멀리 떨어지게 만든다. 하지만 거짓 은혜는 죄인으로 하여금 죄 가운데 살면서도 마음에 평안을 주고 “그래, 괜찮아, 하나님이 다 이해하실 것이야! 너는 어쩔 수 없이 죄 지을 수밖에 없잖아” 라고 속삭인다.
사람들은 그런 가짜 은혜가 너무 달콤해서 하나님을 죄와 타협하는 하나님으로 믿고 그런 하나님에 환호한다. 죄를 지었으면 마음이 아파야 하고 성령께서 그의 양심을 찔러야 정상이다. 그런데 거짓 은혜는 계속해서 양심에 두꺼운 고무패드를 씌우고 더 이상 죄를 아파하지 않도록 만든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 은혜는 은혜가 아니라 저주, 그렇다 저주다. 이럴 어찌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