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창(咸昌) 김씨는 고녕가야(古寧伽倻)의 국성(國姓)이다.
함녕(咸寧)김씨와는 이름만 다르고 같은 성씨인데, 함창(咸昌)의 옛 지명을
함녕(咸寧)으로 불렸으나 오늘날에는 상주시 함창읍으로 남아 있다.
고녕가야(古寧伽倻)의 태조인 고로왕 백진(古露王白珍, 42~156)을 시조로 삼고있다.
고녕가야는 시조 고로왕 백진에서 시작해 이현왕을 끝으로 3대 215년만에
첨해 이사금에 의해 신라에 병합되었다고 한다.
*고령은(高靈) 대가야의 도읍지이고 함창은 고녕가야국인데 이것은 이설도 있다.
고녕가야국 태조왕릉 입구
함창은 원래 가야국에 귀속되었으나 신라에 복속되면서
고동람군(또는 고령현)으로 불렸다가 경덕왕 때에 고녕군으로 이름이 고쳐졌고,
고려 때는 함녕군이 되고, 조선시대엔 함창현이 되었다가 1895년 행정구역 재편시
함창군이 되었고 이듬해인 1896년 13도제로 환원되면서 함창면으로 되었다.
고녕가야국사적비(古寧伽倻國史蹟碑)
고녕(령)가야가 신라에 병합되면서 주민들이 전국각지로 강제 이주하는 과정에서
사민(徙民)정책으로 귀족들을 이주시킨 곳이 사도성 즉 현재 영해 괴시마을이며
대표적 인물이 고려말 찬성공 벼슬을 지낸 김택(金澤)이다.
김택(金澤)의 사위가 가정(稼亭) 이곡(李穀)이며 그의 아들이 목은 이색(李穡)이다.
홍살문 오른쪽은 묘역으로 고녕가야국 태조왕릉과 제사인 만세각이 있고
왼쪽은 제향구역으로 고릉관, 숭정각, 숭녕전, 전사청, 사당 등이 있다.
가정 이곡이 청년시절 방방곡곡 명현(名賢) 거유(巨儒)를 찾아 예방하던 중
영해의 거유인 김택(金澤) 집을 찾아 머물렀는데, 사흘 밤낮을 묵으면서
품은 얘기를 나누는 가운데 두 사람은 의기가 투합하였으며
마침 김택에게 과년한 딸이 있어 사위 장인이 되기로 맹약하였다.
당시 풍습으로 이곡은 처가에서 3년간 처가살이를 하였으며
그때 태어난 옥동자가 미래 동방의 거유로 추앙받는 목은 이색(李穡)이다.
제향공간인 고릉관 앞마당과 가야문(伽倻門)
고릉관(古陵館)
왕과 왕후의 영정을 모신 숭정각(崇禎閣)과 숭녕전(崇寧殿)
전사청 (典祀廳)
고릉관 옆 고녕국 태조왕비릉(왼쪽)과 고녕국태조왕릉(오른쪽) 석비
승무문(承武門)
왕릉앞의 만세각(萬歲閣, 1930년대 건립)
태조왕릉 출입문
고녕국 태조왕릉
고녕국 태조왕릉은 조선 선조 25년(1592년) 당시 경상도 관찰사(觀察使) 김수(金睟)와
함창현감 이국필(李國弼) 등이 무덤 앞에 묻혀있던 고녕가야국왕릉(古寧伽倻國王陵)이라
음각(陰刻)된 묘비(墓碑)를 발견하여 고녕가야국왕릉(古寧伽倻國王陵)임을 확인했다.
왕릉과는 약 200여m 동쪽에 있는 왕후릉
왕후릉 출입문
태조왕후릉(太祖王后陵)
고녕가야국태조왕후릉 묘비
공검면 예주리 마을
목은 이색(李穡,1328~1396)은 부친 이곡을 따라 원나라 연경에서 유학했으며
그 당시 머물렀던 동네이름이 괴시마을이었는데, 그 후 고려에서 벼슬살이를 마치고
태어난 영해에 왔었는데 유학시절 마을과 흡사하여 동네이름을 괴시리라 하였다고한다.
목은 이색은 혼란한 고려 말 급진개화파의 역성혁명을 반대하며 온건개혁을
주창하다가 정도전 일파에게 죽음직전에 이르렀으나 이성계의 구명으로
가까스로 죽음을 면하고 이곳 상주시 공검면 예주리로 귀양을 오게 되었다.
예주리 마을앞 500년된 은행나무(보호수)
함창 인근의 공검지
공검지는 규모에 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력 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벼농사의 중요성과 함께 거대한 저수지가 축조되었는바,
제천 의림지 밀양 수산제, 김제 벽골제 등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본다.
고려 때인 1195년(명종 25) 상주사록(尙州司錄)으로 있던 최정분(崔正份)이
예로부터 있어 오던 제방을 그대로 수축했다고 하며, 제방의 길이는 860보(步)이고,
너비가 800보, 저수지의 둘레는 22리나 되며, 몽리(蒙利)면적은 260결(結)에 이르렀다.
현재의 공검지는 1,000여평 정도 남아있다.
공검지 발굴조사시 출토된 목부재는 소나무, 밤나무, 졸참나무 등으로,
수문이나 제방을 쌓는 데에 이용되었으며, 평균 연륜은 88.2년으로 조사되었다고 한다.
공검지 역사관과 공갈못 민요
상주 함창 공갈못에 연밥따는 저큰아가
연밥줄밥 내따줌세 우리부모 섬겨주소
부모섬김 어렵잖소 연밥따기 늦어가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