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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어트라우마 1
얼핏 우아영이나 혜림의 이야기로 인해 아내와 사이가 좀 거시기 한줄 알지만 도치씨 전혀 그렇지 않다. 두 사람을 가리켜 알만한 주변 사람들은 모두 천생연분이라고 부러워한다.
허지만 이 세상 천생연분이란 것이 어디 있어? 천생연분이라면 하늘이 짝 지어 준 것이란 말인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해와 달 그리고 별과 구름 밖에 없는 하늘이 아무리 시력이 좋다한 들 개미발가락보다 더 적게 보일 인간과 인간을 찾아 짝을 만들어 준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천생연분이란 그저 사자성어 단어 일뿐이고 이 세상 모든 연분은 인간이 살면서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인바, 누구나 천생연분도 되고 쪽박연분도 될 수 있다. 어디까지나 도치씨 생각이다.
도치씨와 아내가 천생연분으로 보이는 것은 오로지 아내의 마술 덕분이다. 마술사나 주술사가 아닌 아내에게 특별한 마법은 없지만, 아내에겐 한국여성의 전통을 고수하는 법칙이 있다. 이 법칙을 철저히 지키는 아내가 도치씨에겐 마술로 보이고 주위사람들에겐 천생연분으로 보일 뿐이다.
넉넉하지 않아도 항상 배부른 듯.
성날 때나 미울 때나 슬플 때나 용서하고.
기쁠 때나 좋을 때는 아낌없이 나누고.
속 터지게 애먹일 때는 온유하게 오래 참고 덮어주고.
절박한 일에 부닥치면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이 도치씨 아내의 마술원리다.
반면 준법정신이 투철한 도치씨에게도 최근 아내를 다루는 새로운 원칙이 생겼다.
불편하면 만들어지는 것이 발명품이라면 도치씨의 이 새로운 원칙도 불편한 심기에서 터득하고 만들어진 것이다.
도치씨의 불편함은 다른 것이 아니다.
귀가하는 시간, 아파트 현관문 앞에 섰을 때다.
초저녁에 들어가든 한밤중에 들어가든 새벽에 들어가든, 우아영과 혜림을 만난 후 귀가할 때는 항상 자동차와 자신의 바디를 공항X레이보다 더 철저하게 검색하지만 아무리 털고 재차확인해도 현관문 앞에만 서면 불안했다.
도치씨는 이 불안의 근원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고뇌했다.
도치씨의 현관문 앞에서 발생하는 불안증세는 병은 아니었지만 그는 나를 잊혀질만한 시간에 그래서 불현듯 찾아 왔다.
“선배님, 이거 아무래도 제가 정신병인가 봅니다. 이상하게 우리 집 현관문 손잡이만 잡으면 가슴이 답답하고 후들거리거든요. 허지만 일단 집안에 들어서 5분만 지나면 아주 편해지는데 이게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천천히 그의 최근 동향을 차트에 기록하면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돈 쓸 일이 급하게 생겼나요? 그러니까 이사한다든지 아니면 사업을 확장한다든지?”
도치씨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지금 사는 집도 운동장인데 이사는요? 그리고 미친 놈 아닌 다음에야 이 불경기에 사업확장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잘 생각해보세요.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현관문에 얽힌 트라우마trauma가 있군요? 감전이라든지 또는 오물이 묻었었다든지 뭐 그런 좋지 못한 기억 같은 거 말입니다.”
“그런 일 전혀 없습니다.”
“그럼 최근에 마을에서 일어난 범죄나 아니면 직접 범죄에 연루된 일은?”
나의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도치씨가 펄쩍 뛰었다.
“선배님, 죄라니요? 저는 아직 경찰서 문 앞에도 안 가본 사람이잖아요? 죄는 아무나 짓나요?”
“흠, 그렇군요.”
동향이라 나를 항상 박사나 선생님 대신 선배라고 부르는 도치씨에게 그런 질문을 한 것이 머쓱해 도치씨를 멀거니 쳐다보며 쓴 웃음을 지었다. 직업상할 수 있는 평범한 말인데 도치씨의 반응은 폭죽 같아 다음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어정쩡해 있는 내게 도치씨가 의자를 조금 당겨 앉으며 말했다.
“제가요. 요즈음 사는 데 아주 재미가 붙었거든요.”
“오호, 이 불경기에 경기가 좋으시다니 다행입니다.”
“아 그게 아니구요. 그냥 하루 종일 콧노래도 나오고 일하는데도 힘들지 않고 모든 것이 즐겁습니다. 그런데요. 제가 현관문 앞에만 서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다리에 힘이 빠지고 꼭 무슨 일낸 놈 같이 후들거린단 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왜 이럴까요?”
“집안에 들어가면 기분은 어떻게 변하나요?”
“처음 한 1, 2분은 끔찍해요. 허지만 아내를 바라본 그 순간부터 기분이 완전 업 되죠. 아내가 저 한텐 극진하잖아요? 저 없인 숨도 못 쉴 여자거든요.”
바로 그 순간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직감이 있었다. 오랜만에 본 그가 아주 많이 변해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한동안 못 보던 사이 패션스타일도 달라졌고 헤어스타일도 달라졌고 얼굴의 표정도 아주 밝아져 있었다. 자신감에 가득 찬 얼굴이었다.
물론 평소에도 사교적인 도치씨가 어지간해서 표정을 굳히거나 얼굴에서 웃음기를 내려놓는 일은 없었다. 싹싹하고 친절한 도치씨다.
그러나 지금 내가 발견한 도치씨의 일상은 확실히 종전과 차이가 있었다.
남자들의 이런 생태계변화는 연애밖에 없다.
나는 도치씨에게 여자가 생겼다는 것을 확신했지만 대놓고 말할 수 없어 은유법으로 그의 대답을 유도했다.
“요즈음 좋은 일이 생긴 모양이네요.”
도치씨는 눈꺼풀에 강한 힘을 한번 준 후 대답했다.
“좋은 일이라니요? 장사도 평균에서 왔다갔다하고, 로또는 글자 두자이상 맞아 본적 없고, 물고기도 불황 타는지 낚시가도 신통찮고, 모두가 가뭄 때문인가 봐요.”
이번엔 내가 궁금했다.
“낚시도 가뭄 타나요?”
도치씨가 명쾌하게 대답했다.
“가뭄 안타는 것이 있겠어요? 해수염도가 올라가면 물고기도 맥을 못 춥니다. 너무 짠물만 먹는데 물고긴들 갈증을 배겨내겠어요?”
“아니? 바닷물에 사는 물고기가 갈증에 시달린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요?”
“우리가 음식에 소금으로 간을 하듯 물고기들은 민물로 간을 해서 마시거든요.”
나는 도치씨를 또 한 번 물끄러미 바라봤다.
어느새 서로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이제 그가 마인드솔버solver인지 내가 소울soul카운슬러인지 구분이 안 되었다.
벙벙해 있는 내게 거꾸로 그가 느닷없이 질문했다.
첫댓글 도칬 세여자를 좋아하니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가 봅니다.
당연지사 당연만끽 세상살맛...즐거운 오후 맞으세요
도치의 이중성격이 고스란히 담겨 있슴니다.
시간이 필요하겠네요.
와이프와 사이를 잘유자 할려면~~ㅎㅎ
젠틀맨님보다야 한수 아래 겠지만 잘 나갈거에요...ㅋㅋㅋ
제대로된 오입쟁이네요.
가정을 그렇게 잘 다스리고 남의껏 넘봐야지~~ㅎㅎ
ㅋㅋㅋㅋㅋ...성질나셨나보네요?
용서허여요...다 살자고 그러는건데....ㅋㅋㅋㅋ
즐거운 오후 되세요
도치씨 불륜을 저지른것 치고는 고단수네요..
제미있게 잘보았슴니다.
이제 시작인걸요...도치씨 진짜 멋쟁이죠?
정말 부러울 테니 두고 보세요...ㅋㅋㅋㅋ
남은 오후 멋진시간만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