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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론이 우주와 자연, 인간의 삶의 진리를 밝히는 절대 진리가 될 수 있을까?
세상은 물질들의 세계이고, 자연도,생명도 인간도 물질로 된 존재라는 입장이 유물론이다.
눈에 보이는 표면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물질들이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물질의 변화를 진화와 변증법적 방법으로 설명해냈다.
변증법은 철학적 사유의 방법이므로 관념의 영역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물질은 해석의 대상이고, 변증법적 사유는 해석이다고도 할 수 있다.
또 물질인 인간이 사유하는 존재이기도 하는 것을 유물론에서는 이 개념도 단순히 이 물질 작용의 결과일 뿐이다.
유물론은 事物의 관찰을 통해 진리에 접근해나가는 학문이라면, 물리화학,생물,천문학이라는 과학이 진리를 밝히는 학문이며, 수학이 1차적으로 증명하는 도구이고, 관찰(측정)이 최종 증명 방법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주는 물질이 차지하는 비율이 고작 4%이고, 나머지 96%는 눈에 보이지 않아 관측이 불가능하다. 즉 96%는 과학 밖의 영역으로 아예 논의조차 배제해 버린다.
그러나 이 96%의 텅 빈 공간에서도 힘은 작용하고 있고, 에너지는 흐르고,빛과 소리도 전달되고 있다.이 힘과 빛의 전달 과정에는 반드시 매개가 있어야 되지만, 현재 과학은 매개 물질도 발견할 수 없다.
이 텅빈 공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힘과 에너지(열), 빛의 상호작용으로 양전자,전자,중성자,쿼크가 생성되고 비로소 물질의 최소 단위 원자가 생겨난다.
물질을 만드는 것은 텅 빈 공간(空)이고, 물질이전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에너지인 것이다.물질은 본래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과학은 이미 생겨난 물질들의 힘의 작용에 의한 현상들의 관찰을 통해 진리를 탐구하니, 그 근본은 접근이 불가하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텅빈 세계의 원리라서 측정조차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그 근본은 수학적으로는 밝힐 수 있을지 모르지만..측정은 불가한 것이다.
그리고 텅빈 공간에서 물질이 왜, 무슨 원리로 생겨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과학은 우연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할 뿐이다.
만약 물질 생성의 근본적인 이유와 원리를 알아낸다면 텅 빈 공간에서 물질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게 된다.
지구같은 별과 행성도 만들 수가 있다.
수학은 논리의 정수인 관념의 학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실재이고 진리라면, 수학은 진리가 아니지만...논리적 증명?도 진라라면 수학은 진리이다.
즉, 근본적 진리는 논리로 증명되는 관념이라는 말도 된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경험과 체험하여 알게되는 것도 실재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바람과 소리가 한 예이다.
그렇다면 우주의 근본 진리는 유물론은 밝힐 수 없으며, 밝힐 수 있는 방법은 수학과 논리학, 체험되는 범위의 영역이게 된다.
수학,논리학은 사유의 영역이자 관념론이다.
즉 논리적으로 참眞이면 타당하고 받아들인다.
그러나 체험은 사람마다 생물마다 겪는 것도 다르며, 그 것을 느끼는 감정, 그에 대한 인식하는 자체도 경험을 정리,표현하는 방법도 다른 특성을 지닌다.
대상에 대한 경험과 감정,인식 작용이 마음心이라면, 그 마음을 통해 진리를 탐구하는 유심론적 접근의 실마리를 잡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유심론이 관념론이고, 그 증명의 방법이 과거에는 논리와 사례, 경험을 통해 증명되었다면, 현대에는
物에 대해서는 과학이라는 유력한 무기를 얻었고, 현대수학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얻었으니 증명이 훨씬 편리해졌다.
그래서 과학에 의존하는 유물론보다는, 수학과 논리,경험...그리고 과학까지 포괄하는 사유의 영역에 존재하는 유심론적(관념론) 접근이 진리를 밝혀낼 것이라고 생각된다.
눈에 보이는 것에만 세계를 한정하고, 실재라고 규정하고, 한정된 그 것들을 애착하고 탐하고, 차지하기 위한 경쟁과 다툼에서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희생되었고, 지구환경이 파괴되어 왔는지 우리는 지금 껏 보아왔다.
물질을 상대적으로 잘 다룰 수 있었던 인간이 모든 생명과 지구의 주인으로 행세하는 오만의 결과이다.
그래서 한정된 물질을 기반으로 한 유물론적 사상은 결코 인간에게 해답을 가져다 줄 수없다.
물론 물질문명의 발달이 가져다준 인류의 편리함, 인식의 확장 등 과학의 공功을 부인 할 수는 없다.
한편으로, 희한한 것은 진리 자체라는 수학도 결국 자연에 실재로 존재하는 자연수만으로는 증명에 한계가 있고, 우주에 존재하여 측정된 과학적 사실조차도 증명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현대 수학에서는 0은 물론 무리수,무한,허수(복소수)라는 개념, 즉 실제로는 특정조차 할 수없는 가상의 수를 도입해야만 증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실재한는 자연수外에 실재하지않는 허수들의 개념이 적용될 때만, 눈에 보이는*관측되는 물질들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실재=관측=증명=논리인 셈인데 논리는 존재하지 않는 허수를 기반으로 성립된다니...
세상은 보이는 것이 실재가 아니다.
관념론의 중심에 있는 불교 유심론이 대두 될 것이고...
心이라는 개념의 해석과 증명을 놓고 치열하게 논의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心, 氣,빛,파동...그리고 영혼과 神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으로 본다.
그러면 윤회,환생,사후세계, 만물과 靈과 神들의 세계도 논리적,과학적으로 탐구될 것이다.
첫댓글 위대한 과학자 아인슈타인이 우주에는 하나의 의식이 있다고 말했고, 그것이 바로 우주의식이다.
나는 아인슈탄인의 우주의식과 칼 구스타프 융의 순수집단무의식, 그리고 불성, 하늘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이 같거나 통한다고 본다.
우리의 순수무의식도 이것과 하나이다.
그래서 우리는 불성,신성,하나님 마음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인 것이다.
나는 이것을 경험,체득하여,실천하는 것이 인간으로 태어난 내 숙명이라고 여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영적성장을 이루어야만 한다.
그리고 만물은 생성 소멸하나 相,象을 달리하는 것일 뿐 그 에너지로서 기억들은 보존되고 다른 모습으로 변화된다고 생각한다.
과학도 에너지(정보) 보존법칙으로 증명한다.
그래서 윤회사상을 신뢰한다.
그리고 천부경의 인간이 神性,하늘을 품은 위대한 존재라는 것도 신뢰한다.
자연自然은 스스로 생겨서 존재하는 것들이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니 스스로 생겨나 존재하는 것이고, 내 의지로 태어났다는 말도 된다
왜? 하늘의 마음에 닿는 영적성장을 이루어 살아서는 지상에 천국을 만들어 가고, 더 높은 차원의 천국과 그 이상의 세계의 일원으로 살아갈 자질을 갖추기 위해서...
인간은 뇌의 10%만 사용한다고 합니다.
전구 100개가 있는데, 불이 들어오는건 10개뿐이라는 것이죠.
1만3천년전 지구적 기후변화와 지각변동전에는 인류의 뇌에 전구100개 불이 다들어왔다고 봅니다.
그러면 그리스,로마신화는 신들의 얘기가 아니라, 우리 인간들의 얘기인 것 이지요.
그리스로마 신들의 이야기는 인간의 모습 그대로 입니다~^^
신과 인간이 사랑,질투,증오,갈등,전쟁...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고...
인간의 능력은 과연 어디까지일지...
인식하는 만큼? ...
인간들의 의식이 확장되는 만큼 능력도 비례해서 발휘될 것입니다.
지식을 통한 확장이던,경험을 통한 확장이던...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1.04.08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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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하신 인향만리님께 첫 댓글입니다
인향만리님의 글은 항상 잘 보고 있으며 감사한 마음을 지니고 있답니다
진지한 염원이 담긴 글이 감동입니다 고맙습니다 ~^^
아직은 짧은 생각에 공감해주시니 고맙습니다~^^
물질과 에너지는 같다.
다만 존재형식만 달리할 뿐이다.
의식은 생명의 존재형식이자 물질(외계존재)의 반영(인식)형식이자 《주관정신》이다.
학문(수학.과학.사회과학)은 《 객관정신》이다.
불교적 인식체계는 객관세계의 인과율(인과관계)의 주관의식의 반영으로서의 《마음의 인과관계:연기법》을 설한 것이다.
물질과 의식.정신의 통일체는 오직 사람이며, 사람은 물질, 의식으로 나눌수 없는 불가분체인 생명존재다.
신이니 윤회니 사람과 물질을 삭제한 영이니 하는 것들은 《상상적 비존재:용, 유니콘 등등》다.
수학이나 과학을 관념론이라 하거나 양자역학이 불교사유를 증명한다고 비약하는 것은 종교장사치들의 호객행위일뿐이다.
종교는 그저 종교일뿐이다.
마음의 수양은 소중한 것이고 수양법의 전통도 인간의 문화적 자산이다.
그 이상의 논리적확장은 경계가 무엇인지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잡념과 망상으로 추락하게 된다.
유물론과 관념론에 대한 철학적.과학적 논쟁은 맑스로부터 이미 종결된 역사적사실이다. 관념론은 철학으로서, 과학으로서 사멸한지 오래다.
변증법적으로 발전하는 것만이 과학이자 철학이고 진리이다. 종교(적 관념)는 변증법적으로 발전할 수 없는 관념의 산물, 상상적 비존재다.
감사합니다. 아래는 가벼운 사유 꺼리로 생각해 주시면...^^
에너지는 안보이고 실체적 형상은 없지만 존재한다고 수학,과학은 인정합니다.
안보이는 에너지가 곧 보이는 물질이라면... 안보이지만 작용하는 힘은 실재입니다.
안보이지만 작용하는 힘이 氣, 주파수,파동,의식,영혼입니다.
너른들님은 안보이는 민족혼, 너른들님의 마음은 인정하시나요?^^
너른들님의 사랑의 마음은 물질의 힘인가요?
그렇다면 자유의지는 무엇입니까?
그것도 물질의 인과법칙을 따르는 것인가요?
그러면 자유의지는 인간에게 없네요? 물질의 법칙처럼 작용하는 프로그래밍된 로봇일뿐...^^
진리는 《인식》과 《실천》의 일치여부로 판단하는 것이며, 그 시대의 최대치를 《절대적 진리》라 표현할 수 있지만 인간의 인식의 범위의 확장과 실천의 범위의 확장으로 《진리의 폭과 깊이》는 점점 증대해 나가는 것이다.
실천이란 과학적 《관찰》뿐만 아니라 《실험》을 거쳐 《생산》이라는 산업.기술.과학체계에 까지 이르게 되므로, 그 객관 법칙의 인식의 정확성이 증명된다.
사회과학도 주관적 망상들이 아닌 객관적 정세와 환경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거쳐 주관적.주체적 실천을 통해 의도한 목적과 개혁과 변화와 혁명을 이루어 냄으로써 그 진리의 정확성이 입증된다.
《목적-행위-결과》에서 중간항을 매개항이라 한다. 목적이 과학적 인식은 바탕으로 주체의 의지가 작동하여 행위(실천.노동.생산.투쟁)가 있게 되는 때 의도한 결과에 이르게 되는 경우, 그 목적은 《원인》이 된다.
진리를 <눈에 보이는> <실재하는><관찰> 등등의 비과학적이고 몰개념적인 잣대로 판단하려는 건 현대과학을 초등학교 산수로 재단하려드는 것과 같다.
철학사는 인류인식의 변증법적 진화과정이다.
과학의 발전역사는 철학의 발전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불교철학이 유의미한 사상과 내용을 담고 있으나 주관관념론에
머문 채 2500년을 유지되어 전승되어 왔으나 그 체계에서 과학이나 혁명이 나올 수 없는 것은 주관관념, 즉 《상상적 비존재》체계이기 때문이다. 용을 수억년 사유한다고 용이 실물로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윤회를 수억년 사유한다고 그대가 살아 돌아오는 것(재탄생)은 아니다.
윤회.신.영은 나약한 인간의 상상의 산물이다.
인간은 사회적존재로 영생을 추구해야 한다.
이순신이 영생하듯 사람은 사람답게 사회와 민족의 성원으로서 보람차게 사는 것이 영생이다.
자본에 포획된 종교장사치들의 세치혀에 놀아날만큼 이 세상은 여유롭지 않고 인간은 그러나 거기에 놀아날만큼 유약하지 않다.
종교가 비진리가 아니라 사회와 역사와 과학과 진리를 눈가리고 민중을 눈가리고 나약하게 만들면서 제잇속만 차리는 자본제적 종교집단과 그들의 허황된 논리가 비진리다.
《민족공동체》를 사고의 중심에 두면 민족이 보이고 민족의 논리가 서게되고 민족의 생명운동과 반민족의 아귀들의 반생명적.반민족적 작태가 다 보인다. 보이면....그것이 유물론이자 변증법이다.
라이프니쯔는 철학적으로는 관념적 형이상학에 갇혀 있었으나 동양철학인 《주역》에서 힌트를 얻어 《이진법》을 창안했고 이 원리가 현대컴퓨터의 원리가 된 것이다.
즉 주역이든 불교철학이든 유교든 그 자체로는 과학으로 직접적인 발전을 할 수 없는 체계이나 《참조》《활용》으로서 자연과학이든 사회과학이든 혁명적 실천에서든 인류문명의 내용과 형식으로 유용하고 의미있게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네~ 상호보완적이죠.
물질문명의 발전은 명확히 수치로 계산, 측정되어 정밀도가 높은 수학,과학이 유용한 도구입니다.
그렇다고 오로지 그 도구로써만 증명되어야만 진리이다는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
아직도 밝히지 못한 영역은 무한합니다.
하물며 세포들이 인간의 몸의 각 장기와 조직을 만들고 운영하는 시스템 원리조차 못밝히고 있죠.
인류문명도 상상,호기심 등 사유가 앞에서 이끌고 수학,과학적 도구로 따라 가면서 그것을 발견, 증명하고 있습니다.
상상,호기심,사유도 형이상학적 관념의 영역입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1.04.09 18:14
좋은 글인데 나같은 어리석은 사랔은 많이 명심해서 읽어야 할것같습니다.
우주의 근본 원리를 알게 되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보통이죠.
통찰력이 생긴다든가 초능력이 생긴다든가 말입니다.
근본원리를 알게 되어서 통찰력이 생기는 것입니까? 아니면 통찰력이 있으니 우주의 근본원리를 알게 되는 것입니까?
어느것이 먼저입니까?
유물론의 최고 핵심은 사람의 의식이나 생각이 전부다 과거에 주입된 데이타이고 결국엔 그런것들도 물질의 일부다 라는 것이죠.
인간의 의식이나 생각은 고고한 하늘의 의식과 동질의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재로는 그런 신성한 것들과 전혀 관련이 없고,
다만, 인간이란 물질의 영역에 속한 현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물론의 의미입니다.
자 이런 상황에서 유신론이라든지 신성한 하늘의 의식을 추구하는 것이 타당한가요?
아니면 우주의 근본을 파헤치기 이전에 먼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요?
자신의 이해에 대한 도전이 벽에 부딪힐때
인간의 생각은 우주로 나아갑니다. 거기서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것이죠.
천부경이니, 고대의 조상이니, 심오한 예언서이니 전부다 그런 것들입니다.
지금의 인류의 두뇌는 우주의 근본원리를 이해하도록 되어있지 않아요.
우리의 몸과 마음이 곧 유물론과 유심론 사유와 연계되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마음은 오로지 육체의 반응에 대한 투영일뿐이냐? 몸은 DNA로 영향받고 후손에 전수되지만, 살아오면서 경험의 정보들이 마음이라면 그 정보들은 육체에만 존재하느냐, 다른 어딘가에도 전달되어 존재하느냐?
@인향만리 그것의 한 예는 문화이고,종교이고,철학이고,학문일텐데...
결국 과학이 밝힌 몸도 마음도 빛과 파동인 에너지의 상호작용인데...
그 에너지는 큰 하나로서 모습만 달라질 뿐 변함없이 보존되고...
그것을 실 생활에서 어떻게 적용하면서 살 것인가 문제가 남습니다.
올빼미님... 말씀 중에 지금의 인간의 두뇌는 우주의 근본원리를 이해하도록 되어있지 않다는 말씀에 질문드려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인간의 두뇌를 그 근본원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가능할까요?
인간의 두뇌는 아직도 진화가 덜 되어서 앞으로도 수만년 더 진화가 되어져야 한다?
아니면 어떤 훈련으로 두뇌를 그것이 가능하도록 변화시킬 수도 있다?
@인향만리 훈련으로는 불가능하고요
즉각적인 이해가 모든것을 시작하겠죠.
그때는 내가 없을때입니다.
@올빼미 즉각적인 이해라는 것이 가능하나요?
내가 인지하는 만큼만 나갈 수 있는 것인데...
@인향만리 벼랑끝에 매달려 있을때
가능 불가능을 생각하진 않겠죠. ㅎㅎㅎ
@올빼미 ^^ 경험을 말씀하시는군요
그때 경험이 일시적 환각이나 착각일 수도 있지않을까요?
@인향만리 제 경험은 아니고요.
말하자면 불교경전이나 선현들의 이야기를 제 스타일로 말씀드리는것이죠.
제가 머리가 나빠서 똑똑한 사람들이 잘 못보는것을 몇가지 알고 있을뿐입니다.
그것을 이야가하는 것이고요. ㅎㅎㅎ
@올빼미 올빼미님의 경험을 언급한 것이 아닙니다.ㅎ
경험을 해야 알수 있다...에서 그 아는 사람은 경험을 해서 알게된다는 뜻입니다.
임사체험자들이 자신의 경험이 확실하니까 흔들리지않는 것과 같겠지요~^^
@인향만리 경험을 중시하는것은 여전히 기억에 의존하는 물질적인 삶의 방식입니다.
환각이나 착각이란
여전히 에고의 발현이 되겠죠.
내가 없을때 환각이나 착각은 없겠죠.
@올빼미 에고도 또 다른 나 입니다.
에고를 떠나서 현실 세계에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참나와 에고가 일치되게 하는 과정이 삶이고 깨달음의 과정이 아닐지요?
@인향만리 ㅎㅎㅎ
참나도 에고의 다른 모습이죠.
옳다와 그르다의 싸움은 끝이 없죠.
그러나 의도하신 뜻에는 공감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에고는 적당한 자기자리를 찾아서 간다는 말씀이죠?
저는 그것이 중용이라는 말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참나와 에고는 같은것입니다.
@올빼미 중용이 뭔지는 잘 모르지만...
참나는 에고이다는 공감합니다만,
에고는 저마다 너무 다르고, 내 에고조차 그대로 인정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인향만리 먼길이란 없습니다.
쟈스트 원스텝이죠.
처음이자 마지막 한걸음일뿐입니다.
기나긴 훈련은 나태함의 다른말이죠.
조금씩 발전하는것은 없어요.
깨달음의 세계에서는 그렇습니다.
@올빼미 네, 무슨말씀인지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살인자도 성폭행범도, 아동학대범도 모든 저마다의 에고가 참나라면 현실 세계는 아귀의 세상이지 않을까요?
그것은 현실이 극락정토이고 그대로 완전하다는 말의 모순입니다.
그렇다면 다 자기 마음대로 살면 되는 것이되고 삶과 지식,사유는 모두 헛짓거리지요
@인향만리 지금의 세상이 아귀의 세상이 아니라면
석가모니가 모든것을 버리고
험난한길에 뛰어들었을까요?
군인이 백성을 학살하고 그것을 못본체하는 세상입니다.
지구의 동물들은 개체수가 줄어들고
바다생물들이 오염으로 고통받고.
지구가 아파서 몸부림치는 소리가 안들리시나요?
이런게 아귀의 세상이 아니라면
어떤세상이 아귀의 세상인가요?
삶과 지식 그리고 사유의 결과가 지금의 우리들이고 지구죠.
@올빼미 참나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보세요.
그들이 얼마나 피폐하고 탐욕스런 삶을 사는지.
그래서 참나와 에고는 본질적으로 같은것이라는 말입니다.
@올빼미 에고의 반대는 참나가 아닙니다.
에고의 반대는 무아죠.
@올빼미 내가 없을때 모든것이 시작됩니다
@올빼미 모든 존재가 다 완전하고 그대로 존귀한데...인간 에고의 오만이 동물들을 자기 판단하에 함부로 짐승이라 업신여기고 살생하며,
스스로 지구의 주인이라 착각한 결과입니다.
자기가 선택한 가족들의 영혼마저 돌보지 못하면서 인간 저마다의 에고들의 힘이 만든 질서에 휘말려 존귀한 다른 영혼들에게 상처를 주는 어리석은 짓들을 서슴치않습니다.
저는 무아든 참나든 인간들이 만든 관념일 뿐이고...이것들의 집합체 전체로 하나인 큰 의식?에 내 에고가 어떤 주파수를 맞추어 에너지를 끌어다가 살 것인가?
전체로서 큰 하나의 의식에는 우주의 존재들의 경험? 특성?이 만든 선악이 함께 하는 하나의 집단 에너지이고...이것도 존재들의 힘의 작용 속의 변화, 확장되는 것이라 사료됩니다.
@올빼미 저는 그래서 불교의 방편도 더 이상은 안통한다... 설교도 과학과 접목해서 직설로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숱한 임사체험, 윤회라고 믿을 수 밖에 없는 체험 사례들이 직접 공유되어 인간들이 착각에서 깨어나는 것이 교육,철학,종교를 통한 가르침보다 오히려 빠른 길이 아닐까도 생각합니다.
지금 시대는 공간과 문화를 뛰어넘어 그것들을 공유하고 확장하기 좋은 시대이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