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역사10월15일
1902년 10월15일 콜레라 창궐
개항과 함께 한반도에는 콜레라와 천연두 등 전염병이 끊이지 않고 창궐했다.
세균과 위생에 대한 교육은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입국한 후에야 의료 선교사들에 의해 시작됐다.
옥성득 미국 UCLA 교수는 최근 국내 모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19세기 말 개신교 선교사들이 내한했을 때는 천연두와 콜레라 등
전염병에 대해 정부가 손도 쓰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면서
“의료 선교사들이 전염병 예방과 환자 치료에 나서면서
교회가 희망과 치유의 공동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당시 조선에선 쥐가 콜레라를 옮긴다며 대문 앞에
고양이 그림을 붙여 놓을 정도로 전염병 대책이 허술했다.
콜레라는 1878년 부산항에서 첫 환자가 나온 이후
1902년까지 네 차례나 더 창궐했다.
1886년에는 두 달 만에 서울에서 6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오늘의역사(1900년대)10월15일 🍁
🌻02년 콜레라 창궐
🌻07년 대한체육회 설립
🌻10년 인천에 상수도 개통
🌻15년 경기 경남북 평안 강원 함경도 지방에 홍수 1092명 행방불명,
가옥유실 및 침수 2만2088호
🌻25년 조선신궁(神宮)기공:현재의 남산분수대부근.
🌻25년 서울운동장 개장.
🌻25년 서울철도 역사 신축 준공
🌻27년 한국 최초의 기계체조대회인 제1회 현상 철봉 대회열림 이인수가 우승
🌻43년 식량영단 발족
🌻46년 좌.우익, 사회노동당(위원장 여운형)으로 통합,
47년5월24일 근로인민당으로 개편
🌻46년 덕수궁 박물관, 해방후 최초로 일반에 공개
🌻49년 문교부, 국기 제작법 공고
🌻58년 뇌염으로 1900명 사망
🌻63년 박정희후보, 윤보선을 15만여표차로 누르고 제15대 대통령에 당선
🌻66년 조계종 종정 효봉 선사 입적
🌻68년 한·미 작전기획참모단 조직 (한국 방위작전 기획에 한국군이 참여)
🌻69년 태백선(정선-나전간) 개통
🌻71년 서울 일원에 위수령, 무장군인 학원에 진주.
대학생 1889명 연행 156명 제적 각대학에 휴교령.
🌻73년 소양강다목적댐 준공. 발전용량 20만㎾ 총저수량 29억톤
🌻73년 미국 소설가 펄 벅 세상 떠남
🌻79년 경기 전곡리 유적지서 양면각구석기 첫발굴
🌻79년 한강 성수대교 준공
🌻79년 서울 종암경찰서 신설(22개서, 398개파출소)
🌻80년 경주∼포항간 고속화도로 준공
🌻81년 정부, 정부조직 축소정비안 발표(행정위·국무 총리기획조정실·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국등을 폐지)
🌻83년 민정당 대표위원에 정내혁 임명
🌻85년 서울시내택시요금체제, 거리-시간병산제실시
🌻86년 정부, 유성환 의원의 발언과 관련 유의원체포 동의요구서 국회에 제출
🌻87년 정부, 추곡수매가 14% 인상
🌻88년 서울장애자올림픽 개막 제9회 (잠실∼24일), 65개국 4361명 참가
🌻89년 제2차 아시아신용보완기관회의(ACSIC) 개막 (서울),
신용보완제도의 전망등 협의
🌻89년 제주∼일본 나가사키 고속(85) 여객선취항
🌻89년 노태우 대통령, 부시대통령 초청으로 방미
🌻89년 연대생, 동양공전 설인종 군을 경찰의 학원 프락치로
오인 의자에 묶고 각목으로 치사
🌻90년 노벨평화상에 고르바초프-2월10일 오슬로 에서 청동메달
🌻90년 정부, 대통령의 '범죄와의 전쟁' 선포 후속 조치로
외근 경찰관에게 무기를 즉각 지급키로 결정.
🌻90년 제71회 전국체육대회 청주 종합운동장에서 개막.
전국각시도와 해외동포단등 21,293명이 참가
🌻91년 국회,쌀 등 기초식량 수입개방 반대결의안-우루과이
라운드협상 의원단파견 결의안 채택.
🌻91년 서울지검,이화여대 무용과 입시2명 부정입학 시키고
돈받은 홍정희 육완순교수와 학부모를 구속
🌻92년 외무부는 노태우대통령 취임이후 외국방문에
총 452억 2885만 2000원의 예산을 사용 보고
🌻93년 마리오 소아레스 포르투갈대통령 비공식방한,
김영삼 대통령과 공동 관심사논의
🌻93년 남북 특사교환을 위한 제2차 실무접촉 (남측,10월중 특사 교환을 촉구)
🌻93년 청와대, 일제때의 총독관저 건물인 舊 본관의 철거공사 시작
🌻93년 삼성, 기아자동차 주식매입-6월부터 집중매입 자동차산업 진출의도
🌻93년 김영삼대통령, 부마항쟁 14주년을 맞아 이 항쟁을 `민주화운동'이라 정의.
🌻93년 전교조, 해직교사복직문제와 관련해 교육부의
`선탈퇴 후복직' 조건 수용하고 복직하기로 최종결정
🌻94년 일본 법륭사 금당벽화 45년만에 첫공개
🌻96년 국무회의, 한국과 유럽연합간 `한국과 유럽 공동체및
회원국간 무역과 협력 기본협정' 체결안의결
🌻96년 유엔안보리, 한국정전협정이 평화체제로 대체 될때까지
계속 유효해야 한다는 의장성명 채택.발표
🌻97년 쌍방울 그룹 화의 신청
🌻99년 서울 NGO 세계대회에서 '서울선언' 채택
🌻99년 국경 없는의사회,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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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정 중인 마오쩌둥(毛澤東).
1934년 10월 15일 새벽 중국 남부 강서성 서금 소비에트(공산당 점령지역).
아직 걷히지 않은 어둠을 뚫고 8만명의 중국 홍군(공산당 군)이 군수품과 온갖 물자를 등에 지고 탈출하기 시작했다.
탈출은, 장개석이 1년 전부터 70만여명의 대군으로 소비에트 주위에 철조망과 시멘트 요새를 설치, 물샐틈없는 포위망을 치면서부터 예고됐다.
국민당 군의 압박으로 소비에트 지역이 점점 생활필수품과 의약품 등의 부족으로 고통을 받게 되자, 공산당 지도부는 마침내 중국 남부의 강서와 복건성 일대의 근거지를 버리고 중국 서북부의 오지인 섬서성에 새로운 근거지를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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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3년 10월15일 소양강땜 준공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 천전리 산4번지. 서울에서 46번 경춘국도를 타고 가다
신북IC에서 양구 방면으로 6km 쯤 달리니 두 개의
산봉우리를 이은 거대한 언덕이 눈앞에 펼쳐진다.
높이 123m에 제방 길이 530m의 소양강(昭陽江)댐이다.
댐 꼭대기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장엄하다.
이 웅장한 댐이 경제적으로 빈곤했던 1970년대 초
우리 기술과 인력으로 건설됐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콘크리트 없이 흙과 모래와 돌만으로 이뤄진 댐이
오늘날까지 끄덕없이 버티고 있다는 것 또한 신기하다.
소양강댐은 1967년 4월 착공해 1973년 10월에 완공됐다.
총 공사비가 290억원 투입된, 당시로서는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댐 건설로 형성된 담수호 면적은 2703㎢, 총저수용량은 29억t에 이른다.
10만kw 용량의 수력 발전기 두 대가 돌아가면서
연간 3억5000만kWh(벙커C유 40만 드럼분)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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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 10월15일 대동강 철교 폭파
“맥아더는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하고, 9월28일 서울을 탈환했다.
서울 수복 뒤 나는 북진하는 국군과 유엔군을 따라 평양으로 가기로 했다.
그때만 해도 평양은 ‘적지’여서 민간인들은 갈 엄두를 못냈다.
하지만 난 ‘고향’이어서 그런지 두렵지 않았다.
나는 문총(문화단체총연합회), 정부의 국방부와 공보처 발급의 세 가지 신분증을 갖고 있었다.
마침내 10월19일 국군은 평양을 점령했다. 고향에 도착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중성리의 종가에 가니 큰어머니가 집을 지키고 있었다.
내가 살던 수옥리 집은 47년 월남 이전에 팔았던 까닭에 할아버지 거처이기도 했던
생가에 살면서 ‘평양 예술 재건사업’을 위해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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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5년 10월15일 오늘,
프랑스의 나폴레옹1세가 세인트 헬레나 섬에 유배되다.
6년 동안의 유배생활 끝에 생을 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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