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이하 메트 오페라)로 제작된
베르디의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가 메가박스에서 상영되고 있다.
<일 트로바토레>는 메트 오페라 2015-2016 시즌의 첫 번째 작품이다.
<일 트로바토레>는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와 함께
베르디 오페라의 3대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이 세 작품은 베르디 중기에 작곡되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역사적 배경을 가진 복수극
트로바토레는 중세에 자작시와 음악을 읊고 연주하던 음유시인을 뜻하며,
무예와 예술창작에 두루 능한 기사를 칭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일 트로바토레>는 중세기사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낭만주의 작품이다.
낭만주의는 중세를 완벽한 시대로 상상하여,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중세로부터 추구하려는 사조이기 때문에 흔히 생각하지 못하는
이야기 구조를 가진 경우가 많다.
<일 트로바토레>는 스페인에서 카스틸랴와 우르헬 두 가문의 아라곤
왕위계승 전쟁이 있었던 1411년을 역사적 배경으로 하여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을 가진 복수극이다.
▲ <일 트로바토레> @ The Met ⓒ 메가박스 |
|
<일 트로바토레>는 회전하는 무대를 통하여 장면의 전환을 표현하였다.
사랑의 열정으로 온 몸이 불타는 느낌을 전달받은 관객의 감정선을
유지하는데는, 암전이 되며 무대가 바뀌는 것보다 <일 트로바토레>처럼
회전하면서 오버랩되는 느낌으로 무대가 바뀌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일 트로바토레>의 이야기는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고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런데, 개연성에서 얻지 못하는 관객의 감정이입을 <일 트로바토레>는
캐릭터의 행동을 통하여 공감하게 하여 대치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일 트로바토레>에서 복수를 위한 아주체나의 행동을 보면
논리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일 트로바토레>가 관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는 것은
연속극 드라마의 소재와 내용에 관객들이 깊게 감정이입되어
빠져드는 모습처럼 흡입력이 있기 때문이다.
2002년 이후 처음으로 메트에서 만난 두 명의 러시아 슈퍼스타
<일 트로바토레>는 복고적 성향의 음악이 주를 이루며,
성악이 핵심에 놓인 작품이다.
그런 이유로 평론가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지 못할 수도 있지만,
관객들로부터는 기립박수를 받는다.
이번 메트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를 보면 관객의 환호와
기립박수의 강도가 상대적으로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 트로바토레>의 제2막에서의 노동요 합창곡인 “집시들의 합창”은
<일 트로바토레>를 처음 관람하는 관객들도 익숙할 수 있는 유명한 곡이다.
<일 트로바토레>는 합창곡에서 웅장함과 친근함을 느낄 수 있고,
독창, 이중창, 삼중창 곡에서 절절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 <일 트로바토레> @ The Met ⓒ 메가박스 |
|
<일 트로바토레>는 초호화 캐스팅으로
관객의 입장에서는 귀가 즐거운 공연이다.
바리톤 드미트리 호보로스토프스키와 메트 오페라에서 10년을
활약한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는 2002년 이후 처음으로
메트에서 만난 러시아의 슈퍼스타이다.
<일 트로바토레>의 관객 중에서는 안나 네트렙코의
노래를 듣기 위해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도 많았을 것이다.
뇌수술 후 무대에 복귀한 드미트리 호보로스토프스키는
공연중 아리아를 부를때 마다,
그리고 커튼콜에서 가장 큰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일 트로바토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성악가는 만리코 역의
테너 이용훈과 만리코를 양육한 집시 여인 아주체나 역의
메조 소프라노 돌로라 자직이다.
돌로라 자직은 아주체나가 그녀의 간판 배역일 만큼 절절한 감동을 전해준다.
<일 트로바토레>에 등장하는 여인 중 레오노라와 아주체나는
상반된 캐릭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그렇지만, 젊은 귀족 처녀 레오노라와 복수심에 불타는
나이든 집시 아주체나는, 운명 앞에 굴복하지 않는
주도적인 여성상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한국인 성악가 테너 이용훈
<일 트로바토레>에서 테너 이용훈은 음유시인,
우르헬 공작 군대의 젊은 지휘관인 만리코 역을 맡았다.
이용훈이 아리아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노래를 편하게 부른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용훈은 가창력과 연기력을 모두 갖춘 검증된 성악가이다.
이용훈에게서 한국인의 특징인 열심히 하는 모습도 보이긴 하지만,
미국식의 편안함도 느껴진다.
무대에서의 이용훈의 움직임은 타고난 것인지 철저히 계산되어
연습으로 이루어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크지 않게 움직일 때도 움직임이 자연스럽다.
<일 트로바토레>에서 연기적인 면에서 보면
이용훈은 표정에 쉼취한 모습과 무표정한
모습을 넘나들며 다양성을 표현한다.
또한, 얼굴 표정과는 다른 톤의 눈빛을 보여줄 때가 있는데,
절제된 내면을 보여주는 배우적 능력이 느껴진다.
▲ <일 트로바토레> @ The Met ⓒ 메가박스 |
|
이용훈은 자연스럽게 움직이다가도 동작의 브레이크를 잠시 주기도 한다.
동작의 잠시 멈춤을 통해 주변을 환기시키는 능력 또한 이용훈은 발휘한다.
오페라에서 남자의 질투도 중요한 소재이다.
<일 트로바토레>에서는 만리코 역의 이용훈과 루나백작 역의
드미트리 호보로스토프스키의 경쟁적 호흡도 돋보인다.
상당히 역동적인 검투 장면도 보이는 <일 트로바토레>는
음유시인의 달달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잔혹 동화의 느낌을 준다.
<일 트로바토레>는 처해진 상황에 따라서 다른 운명으로
살아갈 수도 있고,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정에서 사랑하여 보살피고 결과로 복수하는
<일 트로바토레>를 보며 자비와 복수에 대한 생각이 여운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