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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장. 납치(拉致)...
다가오는 장영을 발견하고 쏜살같이 밖으로 쏘아져 나가는 괴인
의 신법을 본 장영은 일순 가슴이 쿵 하고 두근거렸다
신법만으로 봐서 그 괴인은 결코 자신의 하수가 아니었다
잔가지를 밟고 순식간에 제왕성을 벗어나 까마득히 멀어져 가는
그 신위는 처음의 어설픈 모습으로 웃음을 자아내게 했던 그것
이 아니었다
'뭔가 있군!'
단리장영의 반사적으로 괴인이 쏘아져갔던 그 방향으로 몸을 날
렸다
'너무 경솔했어!'
거의 무의식적으로 괴인의 행적을 쫓아 숲 한 가운데로 들어선
단리장영은 저만치 작은 초지 위에 조용히 서 있는 괴인을 보고
내심 후회했다
제왕성에 숨어들다 애초에 발각되어 도로 도망 나간 괴인을 자
신이 굳이 쫓을 필요는 없었다
다시는 그런 자가 얼씬하지 못하도록 경비무사에게 따끔하게 지
시를 내리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은 자신의 행
동을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괴인의 신법과 행위가 교묘히 단리장영의 호승심을 자극했고 마
치 맹견이 곁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달아나면 반사적으로 그 사
람을 쫓듯이 장영을 발견하자마자 뭔가 엄청난 음모라도 있는
듯 극상의 신법으로 쏘아져 나간 그 자의 행동이 장영을 자극하
기에 시기 적절하고 교묘하였다
비로소 괴인의 목적이 제왕성에 숨어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이곳으로 유인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초지 한쪽으로 천천히 내려서며 괴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당신은?"
"안녕하시오! 큰아가씨?"
이제 보니 운이 좋은 게 아니라 내부 상황을 잘 알았기에 가능
한 일이었다
경비가 가장 허술한 시간을 틈타 숨어든 곳 역시 교대시간의 사
각지대였다
"이게 무슨 짓인가요 척마단주?"
"큰아가씨께 긴한 용무가 있어 이렇게 노구를 움직인 것이니 너
무 책망하지 마시구려!"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여유 있게 말하는 모습이 흡사 친손녀의
재롱을 들어주는 듯 인자하기 그지없었다
"그럼 제 시비를 통해 정식으로 면담을 청할 일이지 이 무슨 해
괴한 짓인가요?"
장영이 서릿발같은 기상으로 나백상을 나무랐다
'호랑이 새끼라 뭐가 달라도 다르군!'
단리장영의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노도와 같은 기운을 마주한 나
백상이 감탄한 얼굴로 잠시 말을 잊었다
태산을 누를 듯 한 중압감을 느끼게 하는 그 기도는 약관의 나
이도 되지 않은 소녀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공식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내가 왜 이런 수고
를 하겠소?"
나백상의 얼굴에 못내 미안하다는 기색이 비쳤다
"환갑을 훨씬 넘긴 나단주께서 나에게 무슨 비밀스런 볼일이 있
던가요? 최근에는 폐관수련에 들어간 것으로 아는데"
단리장영이 나이를 들먹이며 은근히 격에 맞지 않는 나백상의
행위를 힐난했다
"하하 그렇게 따진다면 할말이 없소. 손녀 딸 보다 더 어린 큰아
가씨에게 내 무슨 흑심이 있는 건 아니고 아가씨 말대로 나는
최근 근 백 일이 넘게 폐관 수련을 하면서 무공을 연마했지요"
나백상의 얼굴에 언뜻 광오한 미소가 어렸다
'무슨 큰 진전이 있었던가?'
단리장의이 나백상의 일신 기도를 유심히 살폈다
그는 제왕성 내에서는 가장 패도적이 기운을 풍기는 사람이었다
맡은 바 직무가 척마단주이니 척마대전의 최 일선에서 피를 뿌
리고 피로 목욕을 하다시피 하였기에 자연히 그런 기풍이 몸에
베었고 온 무림을 상대해도 결코 호락호락 하지 않을 척마단을
통솔하고 움직일려면 없던 패기도 끌어 올려야 했다
그런데 지금의 모습은 오히려 진원진기를 다 뽑아낸 사람처럼
공허해 보였다. 그리고 그 공허함의 뒤로는 뿌연 안개의 장막이
드리워져 있었다
'기분 나빠!'
느낌 그대로 현재 나백상의 기도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나백상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얼마 전에 출관 했다오"
"그래서요?"
단리장영이 찌를 듯한 눈빛으로 나백상을 쏘아보았다
그 눈빛을 받아오는 나백상의 얼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단리장영의 칼끝 같은 한 줄기 기운은 나백상의 일신에 어린 뿌
연 안개 속으로 빨려들어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런데 나와보니 내 폐관수련의 성과가 궁금하지 않겠소!"
"제왕성내에 단주의 비무상대 하나 없던가요?"
"후후 다른 비무상대는 필요 없소. 난 제왕성의 무공을 견식하고
싶을 뿐이오"
나백상의 눈빛에 상대를 찾는 맹수의 탐심이 가득했다
"그럼 작은 오라버니와 겨뤄보면 되지 않나요?"
단리장영이 못 마땅한 듯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내 알기론 아가씨의 자질이 둘째 공자보다 몇 배는 더 뛰어난
걸로 알고 있소. 물론 속 깊은 아가씨 혼자만의 비밀이겠지만...
그러나 그건 범인들에게나 통하는 얘기고 우리처럼 밥 보다 칼
의 기운을 더 많이 먹고사는 사람들에게는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게 있는 법이오. 지금쯤이면 둘째 공자도 그것을 느꼈을 것이오"
맞는 말이었다!
애석하게도 자신이나 수영보다도 단리웅호의 자질이 한참 뒤떨
어 졌었다
큰오빠 단리웅천의 퇴락 아닌 퇴락으로 단리웅호의 자질을 서로
비교해 볼 만한 잣대가 없었고 또 장영 자신이나 막내 수영은
무공 수련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비교 자체가 무의미하
여 처음에는 잘 몰랐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단리웅호의 성취 속
도가 단리장영 자신에 비해 한참 못 미친다는 걸 알았고 그때부
터 그것은 자신만의 비밀이 되었다.
어쨌든 당장으로선 큰오빠 단리웅천의 빈자리를 단리웅호가 메
꿔야 하기에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낭중지추(囊中之錐)의 이치처럼 언제까지 그것이 감춰
질 수만은 없었다
단리웅호 역시 그것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고 그 때부터 자신이
나 막내 수영에게마저도 차가운 기색으로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만약 내가 응하지 않겠다면 어떡하겠다는 거죠?"
단리장영이 살짝 아미를 좁히며 물었다
"지금은 그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란 걸 모르겠소?"
"그렇군요 비무는 핑계이거나 부수적인 목적일 뿐 진정한 목적
은 따로 있겠죠?"
단리장영의 몸에서 서서히 살기가 피어올랐다
"정말 명불허전(名不虛傳)이오"
나백상이 감탄해 마지않았다
"진정한 목적은 무엇인가요?"
"글쎄요 날 이긴다면 다 밝혀 주겠소. 반대로 진다고 하더라도
얼마후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오. 성주의 원대한 계획, 척마단의
진정한 힘의 실체..... 얼마 후면 그 모든 것이 자연히 세상 밖으
로 표출될 것이오"
단리장영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최근에 제왕성 내부를 감싸고 있는 음울한 분위기와 좀 전에 나
백상이 일컬은 뜻 모를 이야기가 연관성이 있는 것 같았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여자로 태어난 자신의 한
계가 갑갑하게 느껴졌다
'저 노인네를 잡는다면 알 수도 있겠지!'
무공은 익히되 쓰지 않고 어머님 말씀대로 조신한 여자로 살아
가려 했건만!
문득 빈손으로 뛰쳐나온 자신을 발견하고 후회감이 밀려왔다
그런 기색을 눈치 챘는지 나백상이 둘둘 말아 안고 있던 보자기
를 풀었다
어느 싸구려 병기점에서라도 구한 듯 똑 같이 생긴 두 자루의
칼이 나왔다
"자 이건 아가씨 것이오. 평소 애용하던 보검은 아니지만 나 역
시 똑 같은 것이니 크게 불만은 없을 것이오"
나백상은 한 자루의 검을 단리장영에게로 던졌고 단리장영이 엉
겁결에 날아 온 칼을 받았다
"미리 말해 두겠는데 제왕성의 직계에게만 전해지는 비전 절기
가 아니면 통하지 않을 거요! 내 위치가 제왕성의 다른 무공을
모두 섭렵하고 단원들에게 수련시키는 위치니까"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비밀의 장막 뒤에 있는 제왕성주의 친위대인 수호단의 호법인
수신오위만 제외한다면 제왕성의 가신들 중 무공서열 일위나 마
찬가지인 척마단주이다
수신오위 조차도 나백상을 이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제껏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으니 짐작도 불가능 한
일이다
"먼저 삼초를 양보하겠소!"
팽팽한 긴장 속에서 나백상이 검을 늘어뜨리고 섰다
"제왕성의 무공을 너무 얕보는 게 아닌가요?"
"절대 그렇지 않소. 제왕성의 무공은 누구보다도 잘 아오. 하지
만 영원한 강자는 없는 것이오"
불끈 오기가 치 솟았다
감히 노복주제에 주인을 물려고 덤비다니!
"하앗-"
짧은 기합성과 함께 단리장영의 칼이 순식간에 열 두개로 늘어
났다
각각의 칼들이 마치 진짜인 것처럼 요혈을 노리고 나백상의 전
신을 파고들었다
"정말 좋은 검법이오!"
나백상의 신형이 단리장영의 칼 숫자만큼 늘어났다 순식간에 하
나로 합쳐졌다
'이럴 수가!'
단리장영이 내심 경악성을 질렀다
좀 전의 수법은 운룡십이검(雲龍十二劍)이라는 비전 절기로 제
왕성 혈통에게만 전해지는 비전이었다. 그러기에 가신들로서는
익힐 수 없는 무공이었고 그렇게 쉽게 파해할 수 있는 검법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나백상이 그 검초의 파해법을 펼친 것도 아니었다.
차라리 그랬다면 이렇게 놀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찌해서 저 영감 손에 그 검결이 흘러 들어갔구나 생각하고 접
어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방금 나백상이 펼친 수법은 파해법 보다 훨씬 더 간결하
고 놀랄 만한 것이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악마의 사술 같았다
"놀랍군요 장강의 뒷물이 앞 물을 밀어낸다는 말은 허언 이었다
는 생각이 들 정도로!"
"허허 과찬의 말씀! 아가씨의 심성이 너무 고와 노부를 걱정해주
느라 전력을 다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지요"
나백상이 빙그레 웃었고 그것이 단리장영의 투혼에 불을 질렀다
아무리 새끼용이었지만 용이 이무기에게 농락 당할 수는 없었다
"이번에는 이 초를 한꺼번에 펼치고 계속 공격을 이어 나가겠어
요 그러니 나단주께서는 쓸데없는 예의 같은 건 차릴 필요 없어
요"
"좋으실 대로"
나백상이 신중히 칼을 거머쥐었고 호승심 가득한 눈으로 장영을
쏘아보았다
단리장영이 두 손으로 모아진 칼을 천천히 뒤로 이동하여 배검
식의 자세를 취해갔다
그 칼이 신형에 가려 완전히 사라질 즈음 날카로운 일갈과 함께
운룡파천(雲龍破天), 풍운격퇴(風雲擊退), 번천참마( 天斬魔)...
제왕성의 절기들이 연이어 펼쳐졌다
온 세상을 뒤덮을 듯한 검화 속에서 나백상이 감히 경시하지 못
하고 빛살처럼 마주쳐 왔다
나풀-
단리장영의 비단옷 한쪽 자락이 잘려 나갔다
"이건 내가 좀 필요해서 자른 것이니 가져가겠소"
나백상이 성큼 허리를 굽혀 잘려진 단리장영의 옷자락을 집어
품속에 갈무리했다
모욕감과 함께 상상도 하지 못했던 분노가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밀려왔다
휘두르던 칼끝에 우연히 잘려 나간 옷자락이 아니었다
필요에 의해서 정확히 원하는 부분을 원하는 만큼 잘라간 옷자
락이었다
마음만 먹었다면 살을 가르고 뼈를 취할 수도 있었다
제왕성의 절기들이 하나도 제대로 먹혀들지 못하고 무위로 돌아
갔다
우선 내력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것은 인정할 수 있는 문제다
그렇지만 제왕성의 절기들을 비켜 나가는 상식을 초월한 수법들
은 괴이하기 짝이 없었다
문득 불에 탄 초막 앞에서 비영단 무사의 초식에 자신의 검결이
가닥가닥 끊기자 무섭게 가라않던 사내의 눈빛이 떠올랐다
애초부터 용의 자식으로 태어나 언제 이런 수치를 맛 본 적이
있었던가!
죽음보다 더한 분노가 솟구쳤다
그것이 오히려 자신의 내면을 더욱 무섭게 가라 앉혔다
칼집을 버리고 자신의 영혼을 다 잘라내 버린 것 같던 그 사내
도 그때 이렇게 분노했겠지!
다시 볼 수 있을까?
툭-
칼집을 버리고 양손으로 칼자루를 잡았다
"정말 피는 속일 수 없군! 예전의 나였더라면 이 자리에서 뼈를
묻었겠어. 율자춘 그 놈에게 고맙다고 말해야 하나!"
'그 괴물이었던가?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안개를 피워 올린 자
가!"
"하앗-"
생사를 망각한 단리장영의 공격이 태양 빛 마저 가리며 나백상
을 뒤덮어 갔다.
산천초목이 흩어질 듯한 검무 속에서 한 줄기 신음성이 터져 나
왔다.
칼등으로 요혈을 공격당한 단리장영이 스르르 무너지고 있었다.
'안녕..... 보고픈 사람....'
장영의 눈가에 한 방울 눈물이 흘렀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단리장영의 운명은?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감사합니다
즐독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독입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즐독.감사합니다.
감사...
잘읽었습니다
즐독 입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잘보고 있습니다~~~
즐독이랍니다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