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도 제임스 "알" 파치노(Alfredo James "Al" Pacino, 1940년~ )


사람의 혼을 빼놓을 정도로 강렬한 카리스마 연기와 감성 연기의 최고봉이자 헐리우드 갱스터 느와르의 상징
더이상 말이 필요 없는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연기파 배우. 또한 수많은 신세대 할리우드 배우들의 우상이기도 하다. 강렬한 연기 덕분에 찬사도 받지만, 모든 영화에서 거의 혼자 튀기 때문에 다른 배우를 죽이는 배우라는 평도 받는다. 뭐 그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히트에서 로버트 드 니로와 함께 식당에서 대화하는 장면은 뛰어난 호흡을 보여줬다. 미남이었지만 이탈리아계 혈통과 작은 키 때문에 앵글로색슨 중심의 미국 사회에서는 주류 스타로 보기엔 힘들었다. 그러나 수많은 걸작에서 엄청난 명연들을 펼쳐서 이제는 할리우드 역사상에서 빼놓을 없는 전설로 등극했다. 오로지 연기력과 남긴 명작들만으로 편견을 이기고 레전드의 자리에 오른 셈이다.
아무튼 영화계 역사에 두고두고 회자될 만큼 빛나는 캐릭터들을 수없이 남긴 명배우다.
성을 보면 알겠지만 이탈리아 시칠리아 이민자 출신이다. 부모가 둘 다 이탈리아인 이민자의 후손이고, 그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시칠리아의 코를레오네 출신이다. 알 파치노 본인은 뉴욕 브롱스에서 태어나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냈고, 그 시절 유일한 정신적 위로가 되었던 영화 때문에 자연스럽게 배우를 꿈꾸기 시작했다. 이렇듯 이탈리아 이민자들로 구성된 뒷골목 특유의 정서와 감성 속에서 성장한 경험이 훗날 대부에서 자연스럽게 터져나오게 된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이 시절을 회고하면서 20살에 음식과 숙소를 받으려 남창으로 일한 것을 후회한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3. 배우 커리어
연극 배우로 시작하여 1969년에 영화 배우가 되었다. 느와르를 발판으로 성장했고, 대부에 출연하면서 부와 명성을 쌓게 되었다. 하지만 대부1을 촬영할 때까지만 해도 파라마운트에서 키가 작다고 그를 반대했다. 파라마운트 관계자들이 하나같이 반대해서 혼자서 파치노를 밀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고민에 빠졌으나 마르샤 루카스(스타워즈의 감독 조지 루카스의 부인)가 "알 파치노를 캐스팅해. 왜냐하면 그는 눈빛으로 여자의 옷을 벗기거든"이라고 한 조언을 듣고 파치노를 캐스팅한다. 1부의 대성공 이후 2부부터는 파라마운트 픽쳐스에서 돈다발을 들고 찾아와 제발 출연 좀 해달라고 빌었다고 한다.(...)
시드니 루멧의 명작 서피코와 뜨거운 오후에서 뛰어난 연기를 선보이고 브라이언 드 팔마의 스카페이스 이후로 휴 허드슨 감독의 '혁명'이라는 작품에 출연했는데 이 영화가 캐망하고 한동안 버로우. 지금도 혁명은 흑역사 취급을 당한다. 이 영화가 얼마나 망했나면 제작비가 2800만 달러나 들었는데 미국 내 수익이 겨우 36만달러에 불과했다. 이는 찰리 채플린 등이 세운 유서 깊은 영화사 유나이티드 아티스트를 망하게 만든, 그래서 미국에서 흥행 참패한 영화로 손꼽히는 천국의 문(1980년작, 제작비 4400만달러-북미수익 350만달러)보다 더한 최악의 결과였다. 이에 실의에 빠진 알 파치노는 1989년 복귀하기까지 4년 동안 영화계를 떠나게 된다. 하지만 그 동안 연극 활동은 꾸준히 했다.
그리고 1989년 해롤드 벡커(생도의 분노 감독)가 감독한 스릴러물 <사랑의 파도(Sea of Love, 원제보면 사랑의 바다가 맞지만 한국에서는 이 제목으로 나온 영화가 많다고 사랑의 파도로 개봉했다.)>에 주연으로 나와 1900만 달러로 만들어진 이 영화가 전세계 1억 1천만 달러 대박을 거두면서 재기에 성공한다. 그 다음, 1990년작 영화 딕 트레이시에서 악역으로 나왔는데 이 작품도 당시 거액인 4500만 달러를 들여서 전세계 1억 627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흥행에 성공하며 흥행배우로 확실히 돌아왔다.
아카데미와는 지독한 악연이였었는데, 남우주연상에 6차례나 후보에 올랐지만 전부 외면당했고, 7번째인 후보작이며 1992년작인 여인의 향기에서야 주연상을 수상했다. 그게 잘 먹힌다고 생각했는지 여인의 향기에서의 연기는 그의 괴팍한 미중년의 스타일을 정립하기도 했다. 그 같은 해에 글렌게리 글렌 로스의 남우조연상에 동시에 후보로 오르기까지 했다.
그 뒤 흥행과 평에서 중박인 여러 작품을 거치고 라이벌이자 친구인 로버트 드 니로와 함께 마이클 만이 감독한 히트에 출연하여 90년대 느와르의 정석을 보여주었고, 이 전설적인 작품에서 할리우드 연기파 양대 산맥의 대결은 그야말로 팬들의 혼을 빼버렸고, 그들이 다시한번 손잡기를 바랬는데, 그후 두 연기의 신이 다시한번 합작하여 기대를 모은 2008년작 의로운 살인(Righteous Kill)은 흥행에 실패했다.
키아누 리브스와 나온 <데블즈 애드버킷>에선 아버지이자 사탄인 존 밀튼 역을 하기도 했다.
조니 뎁과 함께 도니 브래스코에 출연했다. 기존의 마초적인 갱스터 캐릭터와는 달리 신선하게 찌질하고 여기저기서 치이는 갱스터로 명연기를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