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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군산군도의 섬 고군산군도 63개의 섬들이 모여있다(유인도 16/ 무인도/47) |
ⓒ 박세원 |
파란 하늘만큼이나 길을 내어 준 청정 바다 위를 달린다. 짙푸른 바다에 하얀 길을 내고 달리는 여객선 앞으로 많은 섬들이 휙휙 지나간다. 장자항을 떠나 뱃길 따라 20리, 바다는 잔잔했다. 광활한 바다에 수호신들이 울타리를 치고 한반도 남쪽을 에워싸고 있었다.
배에서 바라본 고군산군도는 초록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풍경이었다. 어느 섬도 우뚝 솟아 있거나 혼자서 튕겨져 나오지 않고 손을 잡고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었다. 먼저 얼굴을 드러낸 방축도를 지나면서 광대도, 명도, 보농도, 말도를 끝으로 섬섬섬들이 아름답게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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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군산군도 섬을 잇다 말도와 보농도와 명도까지 다리가 연결되어 있다. |
ⓒ 박세원 |
뱃머리에 앉아서 시원하게 달리는 뱃길을 뒤로 한 채 마주하는 섬들과 인사를 나눴다. 하얀 파도가 먼저 맞아 준다. 출발한 지 30여 분을 달려 드디어 끝섬, 말도에 도착했다.
군산은 만경강과 금강, 서해바다가 만나는 곳으로 물 가운데 내가 살고 있다. 집에서 나서기만 하면 좌로든 우로든 바다와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오늘처럼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섬 가운데 나를 내려놓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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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도 등대와 천년송 노을에 물든 말도 등대(109년 된)와 토끼섬 위 천년송 |
ⓒ 박세원 |
등대섬 말도에 올라 서해바다를 빨갛게 물들이는 낙조를 카메라에 담았다. 등대 바로 앞 토끼섬에 서있는 단 한 그루 천년송은 모진 풍파 앞에서 750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거북바위가 수만 파도에 갑각류의 등딱지 같은 두루마리를 걸쳤다. 아름다운 해안, 파도소리, 갑옷을 입은 바위들, 구부러진 등을 펴보지 못한 채 억만년 세월을 담아 낸 습곡지대는 말도의 보물들이었다. 보농도와 명도를 잇는 다리 위를 걸었다. 잠자리는 이곳의 주인이 되어 푸른 바다 위를 자유롭게 날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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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도 쌍등대 고깃배들이 정박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쌍등대 |
ⓒ 박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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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도의 천연기념물 습곡지대 말도의 천연기념물 습곡지대를 품은 바위들이 즐비하다 |
ⓒ 박세원 |
바닷길이 열리는 곳 끝섬 말도에는 100년이 넘은 하얀 등대가 수많은 배들의 길라잡이가 되어 주고 있었다. 서해상로 60여 개의 섬들이 모여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내는 곳, 고군산도에 어둠이 내리자 등대가 진면모를 보여주었다.
배들의 항로를 안내하는 빛의 소리를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등대 앞에는 고깃배들이 피항하여 정박할 수 있도록 빨간색, 하얀색의 작은 쌍등대가 가는 청아한 빛으로 화답한다. 불빛은 어둠을 뚫고 수 십 키로를 달려 어부들의 뱃전에 닿는다.
밤이 되자 바다는 표정을 바꾸었다. 태풍을 몰고 섬을 휘감을 바람이 일어난다. 험악해진 바다는 포효했다. 섬에서 맞는 어둠은 그 농도가 달랐다. 갑자기 불어닥친 비바람과 격동의 세월을 감는 듯한 파도 앞에 마주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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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풍우 몰아쳐 성난 바다와 파도 거센 풍랑에 파도가 바위에 와 부딪치는 모슴 |
ⓒ 박세원 |
만조 때 이어서일까. 바닷물의 수위는 대단했다. 두렵기도 했지만 바다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폭풍우를 만난 것 또한 처음 겪는 일로 내심 당황스러웠다. 섬에 고립되었다는 불안감이 온 몸을 엄습해 왔다. 산만한 파도가 몰려와 하얗게 부서진다.
밤새 울부짖던 바다의 소리는 섬을 집어삼킬 듯 심장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바다는 나를 향해 소리쳤다. '성급하게 달려가도 네 길 위에 있을 뿐이라'고. 지나간 시절이 파노라마를 그리며 지나갔다.
자신의 속도로 뱃머리를 밀어도 다다를 수 있었던 선착장, 가까운 곳에 두고도 먼 길 돌고 돌아갔던 지난날, 질풍노도와 같은 시기에 앞만 보고 질주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빗물인지 짠물인지 모를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멀리서 주인도 없는 등대가 바다를 향해 길을 열어주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언제 폭풍우가 다녀갔냐는 듯 하늘은 맑게 개였다. 말도의 품에 안겨 이틀 밤을 지낸 뒤 돌아가는 배에 올라 탔다. 마침 고군산군도 섬들에 대하여 군산시에서 'K-관광섬 육성사업'으로 추진되고 있었다.
여기 섬들이 보유한 독특하고 고유한 경관과 함께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로 부상 될 날을 기대해 본다. 말도에서 장자도를 향해 떠나는 뱃전에 섰다. 고군산군도가 손을 흔들어 준다. 여전히 서해를 지키며 기다리겠노라고.
덧붙이는 글 | 군산매거진 24.07월 호에 기고했으나 그 내용은 극히 일부분만 유사함.
Copyright © 오마이뉴스.
[박세원 기자]
파란 하늘만큼이나 길을 내어 준 청정 바다 위를 달린다. 짙푸른 바다에 하얀 길을 내고 달리는 여객선 앞으로 많은 섬들이 휙휙 지나간다. 장자항을 떠나 뱃길 따라 20리, 바다는 잔잔했다. 광활한 바다에 수호신들이 울타리를 치고 한반도 남쪽을 에워싸고 있었다. 배에서 바라본 고군산군도는 초록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풍경이었다. 어느 섬도 우뚝 솟아 있거나 혼자서 튕겨져 나오지 않고 손을 잡고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었다. 먼저 얼굴을 드러낸 방축도를 지나면서 광대도, 명도, 보농도, 말도를 끝으로 섬섬섬들이 아름답게 펼쳐졌다.
뱃머리에 앉아서 시원하게 달리는 뱃길을 뒤로 한 채 마주하는 섬들과 인사를 나눴다. 하얀 파도가 먼저 맞아 준다. 출발한 지 30여 분을 달려 드디어 끝섬, 말도에 도착했다. 군산은 만경강과 금강, 서해바다가 만나는 곳으로 물 가운데 내가 살고 있다. 집에서 나서기만 하면 좌로든 우로든 바다와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오늘처럼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섬 가운데 나를 내려놓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등대섬 말도에 올라 서해바다를 빨갛게 물들이는 낙조를 카메라에 담았다. 등대 바로 앞 토끼섬에 서있는 단 한 그루 천년송은 모진 풍파 앞에서 750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거북바위가 수만 파도에 갑각류의 등딱지 같은 두루마리를 걸쳤다. 아름다운 해안, 파도소리, 갑옷을 입은 바위들, 구부러진 등을 펴보지 못한 채 억만년 세월을 담아 낸 습곡지대는 말도의 보물들이었다. 보농도와 명도를 잇는 다리 위를 걸었다. 잠자리는 이곳의 주인이 되어 푸른 바다 위를 자유롭게 날아다녔다.
바닷길이 열리는 곳 끝섬 말도에는 100년이 넘은 하얀 등대가 수많은 배들의 길라잡이가 되어 주고 있었다. 서해상로 60여 개의 섬들이 모여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내는 곳, 고군산도에 어둠이 내리자 등대가 진면모를 보여주었다. 배들의 항로를 안내하는 빛의 소리를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등대 앞에는 고깃배들이 피항하여 정박할 수 있도록 빨간색, 하얀색의 작은 쌍등대가 가는 청아한 빛으로 화답한다. 불빛은 어둠을 뚫고 수 십 키로를 달려 어부들의 뱃전에 닿는다. 밤이 되자 바다는 표정을 바꾸었다. 태풍을 몰고 섬을 휘감을 바람이 일어난다. 험악해진 바다는 포효했다. 섬에서 맞는 어둠은 그 농도가 달랐다. 갑자기 불어닥친 비바람과 격동의 세월을 감는 듯한 파도 앞에 마주 섰다.
만조 때 이어서일까. 바닷물의 수위는 대단했다. 두렵기도 했지만 바다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폭풍우를 만난 것 또한 처음 겪는 일로 내심 당황스러웠다. 섬에 고립되었다는 불안감이 온 몸을 엄습해 왔다. 산만한 파도가 몰려와 하얗게 부서진다. 밤새 울부짖던 바다의 소리는 섬을 집어삼킬 듯 심장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바다는 나를 향해 소리쳤다. '성급하게 달려가도 네 길 위에 있을 뿐이라'고. 지나간 시절이 파노라마를 그리며 지나갔다. 자신의 속도로 뱃머리를 밀어도 다다를 수 있었던 선착장, 가까운 곳에 두고도 먼 길 돌고 돌아갔던 지난날, 질풍노도와 같은 시기에 앞만 보고 질주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빗물인지 짠물인지 모를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멀리서 주인도 없는 등대가 바다를 향해 길을 열어주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언제 폭풍우가 다녀갔냐는 듯 하늘은 맑게 개였다. 말도의 품에 안겨 이틀 밤을 지낸 뒤 돌아가는 배에 올라 탔다. 마침 고군산군도 섬들에 대하여 군산시에서 'K-관광섬 육성사업'으로 추진되고 있었다. 여기 섬들이 보유한 독특하고 고유한 경관과 함께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로 부상 될 날을 기대해 본다. 말도에서 장자도를 향해 떠나는 뱃전에 섰다. 고군산군도가 손을 흔들어 준다. 여전히 서해를 지키며 기다리겠노라고. 덧붙이는 글 | 군산매거진 24.07월 호에 기고했으나 그 내용은 극히 일부분만 유사함. Copyright © 오마이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