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부자와 中國부자/2004.12.20
<인터넷에서 퍼온 中國 거리의 모습. 아기를 업은 어머니가, 돈 많은 아이(이런 아이들을 小皇帝라 부른다)의 신발을 닦아주고 있고 그 모습을 아이의 어머니가 대견한 듯 내려다보고 있다. 땅바닥에 꿇어앉은 젊은 엄마의 등에서는 아기가 곤히 자고 있다. 중국의 빈부격차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이라, 인터넷에서 허락없이 퍼왔다.>
◆한국 부자들의 기부(寄附) 릴레이 며칠전 70대 노부부가 서울대 병원에 88억대의 주식을 기부해 우리 사회를 훈훈하게 했다. “어렵게 생계를 꾸려가면서도 남을 돕는 사람들에 비하면 우린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니다. 그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암 연구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다.”
노부부는 수년전 서울대병원에서 위암과 폐암을 조기 발견해 수술을 받고 건강을 되찾은 데 대한 감사의 마음을 여러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고 했단다. 병원측이 기부사실을 알리려고 하자 이들 부부는 이를 극구 말렸다고 한다.
부부가 기증한 돈은 50여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재테크로 모은 돈이라고 한다. 꼭 필요한 곳이 아니면 돈을 쓰지않는 검소한 생활을 해왔다고 한다. 이들 부부가 거액을 기부하는 현장에는 마흔 전후의 두 아들도 함께 했다니, 노부부는 자식을 훌륭하게 키운 것만으로도 만족하셨나 보다.
이에 앞서 지난주초에는 연말연시 불우이웃돕기 모금에 친구 3명이 차례로 수천만원을 기부했다는 소식이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이들 3명은 “좋은 일을 함께 하자”고 의기투합, 1500만~2900만원씩 기부했다고 한다. 그중 한 사람은 “경기가 어려워 사업이 예전같지 않지만 뜻깊은 곳에 사용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기부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의 부자(富子)들에 대한 비판도 많지만, 최근 경제가 어려운 마당에 ‘가진자’들의 잇따른 기부는 그래도 ‘우리는 가까운 이웃’이라는 공동체의식이 우리 사회에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의 부자들 연말 인사차 만난 한 중국 특파원은 “요즘 중국에서 재산이 3000만 위안(元)이 안되면 부자축에도 못낀다”고 전했다. 3000만 위안이면 우리돈으로 45억원이다. 중국의 1인당 평균 소득이 한국의 10분의1인 1000달러이므로, 한국으로 치면 재산이 450억원쯤 돼야 “돈 좀 있다”는 소리를 듣는다는 얘기다. 중국에 돈많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를 간접적으로 전해주는 얘기라 하겠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한 지 25년쯤 되었으니, 자산가가 생겨날 시기도 되었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중국의 자산가들 중에는 유달리 권력자나 권력과 가까운 사람들이 많다. 중국의 언론에서는 이를 ‘권전(權錢)교역’이라고 부른다. 권력과 돈의 교역이란 뜻으로, 권력의 힘을 빌어 돈을 모은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다.
한국에서도 과거 ‘정경유착’이 많이 비판받았지만, 중국의 정경유착은 한국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노골적이라는게 여러사람들의 지적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중국이 민주화되면 이런 권력형 부패에 대한 조사가 본격화되지 않을까 싶다. 한국이 역대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부패재벌 조사를 벌였던 것처럼.
지난 2003년초 필자가 운영하던 차이나클럽에,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우동석 사장이 ‘중국부자들 이야기’를 연재한 적이 있다. 사업을 하면서 만난 중국 부자들 얘기로, 사회 이면에 가려진 중국 부자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글들이었다. 그때 1번으로 소개된 ‘푸(潽)선생’이란 사업가도 앞에서 얘기한 ‘권력을 통한 부의 축적’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 글의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푸선생은 주로 국가 단위의 큰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해군 고위층과 집안관계에 있어 그가 초기 부를 획득한 근간이 밀수가 아니었나 짐작을 할 뿐이지만 뚜렷하게 그의 비위사실이 언론에 노출된 적은 없는 것으로 미뤄봐서 사실이 아니거나 그의 수호세력이 만만치 않음을 짐작케 한다. 그의 집은 다섯채가 된다. 북경시 5환을 끼고 있는 신흥 아파트 단지에 있는 아파트는 면적이 217평방미터(약66평)이다. 그의 말로는 접대용 집이라고 한다. 국가 감시기관이나 정부 관계자들에게 너무 눈치 보이지 않게 하는 집이라고. 그의 단독 주택은 북경시 중심에서 꽤 먼 밀운이라는 곳에 있었다. 근방에 보위부가 있었다. 쇠문으로 된 문을 통과하자 깨끗하게 넓은 잔디밭과 10대 쯤 차가 들어설 수 있는 독채 차고, 수영장이 갖춰진 대저택이 나타났다. 집은 아무리 안되보여도 우리 평수로 1000평은 넘어 보였다. 전체 부지는 8000~9000평쯤은 돼 보였다. 그리고 잔디밭에 서자, 눈앞에 펼쳐지는 밀운 저수지의 모습, 정말 장관이었다. 미국에 가서도 쉽게 만날 수 없을 듯한 저택이었다. 최근에 산 상해의 집은 우리 평수로 690평짜리 아파트란다. 한층 모두가 한 집이다. 그곳을 현재 꾸미고 있는데 우리돈으로 9억쯤 들어간다고 엄살이다.>
중국의 부자 형성과정에 정경유착이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사례라고 하겠다. 중국인들은 또한 음성수입(黑收入)이 많아 정확한 소득을 파악하기 힘들지만, 중국의 부자가 한국보다 많은 것은 틀림없다. 미국 포브스 집계에 따르면, 금융자산만 100만 달러(약10억5000만원)가 넘는 중국인은 23만6000명으로 한국의 6만5000명에 비해 약 4배나 많다. 개혁-개방 25년만에 중국에 이토록 많은 부자가 생긴 것이다.
◆韓-中간 빈부격차의 차이 지난 여름 중국의 국가발전계획위원회(國家發展計劃委員會)는 오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의 제11차 국가발전 5개년계획의 9대 중점 목표를 발표했다. 그것은 실업문제(就業問題) 농업문제(三農問題) 금융문제(金融問題) 빈부격차(貧富差距) 생태환경문제(生態資原問題) 대만문제(台灣問題) 세계화문제(全球化問題) 사회불신풍조(信心和誠信問題) 에이즈와 공공위생문제(艾滋病和公共衛生問題) 등이다. 이중 빈부격차 문제가 4번째로 올라있어, 중국 정부가 빈부격차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중국에 부자가 많아진 것과 함께 빈부격차도 이미 아시아 최고 수준이란 것이 정설이다. 중국내 경제전문지인 경제참고보 보도에 따르면, 2003년도 도시가구 가운데 소득 상위 20%의 2003년도 가처분 소득이 1만7472元으로, 하위 20% 소득(3295元)의 5.3배에 달했다. 한국의 경우, 통계청에 따르면 올3분기 현재 상위 20%의 소득이 하위 20%의 소득에 비해 약 5.35배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중국의 국민소득이 한국의 10분의1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중국의 빈부격차가 한국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중국에 약 4년간 주재하면서 중국의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거액을 기부했다는 소식을 별로 듣지 못했다. 좋은 소식이 있으면 대대적으로 선전하여 영웅(英雄)으로 만드는 중국 언론들이지만, 평생 모아온 재산을 장학재단에 기부했다거나, 거액을 대학에 기부했다는 보도를 거의 본 적이 없다. 오히려 홍콩의 최대 재벌 리카싱이 고향에 학교를 짓고, 매년 거액의 장학금을 낸다는 소식은 여러번 들었다.
◆韓國부자, 증오의 대상인가? 흔히 한국의 빈부(貧富)격차가 크고, 한국의 부자들이 이기적인 사람들로 묘사되기도 한다. 물론 그런 측면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여러 은행에 빚을 진 ‘다중(多重) 신용불량자’가 늘어나고, 청년 실업자가 36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청년실업률(정부발표)은 7.3%이지만, 한달에 몇번 아르바이트하거나 막노동판에 나가는 사실상의 실업자를 포함하면, 10%도 훨씬 넘을 것이다. 전체 취업자수는 10만명이 감소해, 국내의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상도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서 실업자의 눈에는 좋은 차 타고, 넓은 집에 사는 부자들이 아니꼽게 보일게 틀림없다. 특히 대학을 졸업하고도 몇년씩 ‘백수’로 지내는 젊은이들의 좌절감은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지금 경제가 어렵고, 또 그래서 청년실업자가 늘어난다고 해서, 부자들을 미워하고 폄하해야 옳은가.
한국의 재벌 형성과정에서 정경유착이 있었고, 또 일부 부자들 가운데 도덕적으로 문제있는 사람이 있지만, 그래도 한국 부자들의 도덕심이 중국보다는 낫다는 게 본인의 생각이다. 한국의 재벌들도 중국의 대형 국유기업보다는 특혜를 훨씬 덜 받았다고 본다. 또 한국의 빈부격차가 중국보다 훨씬 덜하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평등하게 사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사회주의를 표방한 중국이지만, 빈부격차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사례는 너무나 많다. 위에 사진에서 보듯이, 부잣집 아이들은 세계 어느나라 어린이 못지않은 부를 누리지만, 농민이나 실업자의 자녀들은 매우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 중국에서 구걸하는 어린이에 대해 중국인들은 "돈을 주지 말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한 아이에게 주면 여러명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기 때문이란다. 필자 역시 이와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농촌에서는 아직도 돈이 없어 학교를 못가는 어린이들이 수두룩하고, 도시에 일하러 나온 이농민의 자식들은 호구(戶口)가 없다는 이유로 정상적인 교육을 못받는다.(최근 일부 도시에서는 이를 개선하고 있다) 또 농촌 출신의 여대생들 가운데 비싼 대학 학비를 못내, 방학 동안 유흥업에 종사하는 학생도 많다.
지금 한국 경제가 어려운 상황은 ‘부자를 증오’함으로써 풀리는게 아니라, 그래도 중국보다는 도덕적인 한국의 부자들을 인정해주고, 그들의 기부행위에 박수를 보냄으로써 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자를 욕하는 사회에서 어떤 부자가 투자를 하고, 돈을 써겠는가. 부자를 증오하면 할수록 부자들은 해외로 도망칠 생각만 하게 될 것이다.
한국을 방문한 한 중국 교수는 “타워팰리스 앞에서 어떤 사람이 부자들을 비판하는 1인 시위를 벌인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말한 것을 이 블로그에서 소개한 적이 있다. 그의 눈에는 한국의 ‘평등주의’가 중국보다 훨씬 강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또 정부가 그런 분위기를 방치 내지는 조장하고 있다는데 놀랐다는 것이다.
세모에 ‘릴리이 기부’를 하는 한국의 부자들이 적지않다. 언론에 나지 않은 이름모를 기부행위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다. 이것이 한국의 저력이라고 본다. 더이상 부자를 비판하고 증오하기 보다, 사회에 기여하는 부자에게 박수를 보내자. 그래야 일부 못된 부자들도 그들을 따라하게 될 것이고, 한국 부자들의 도덕성도 더욱 높아질 것이다. 새해에는 사회에 기여하는 부자들에게 더 많은 박수를 보내자. 그것이 경제를 살리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hbj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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