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모데나마2 - 성악가 파바로티 영결식 열린 그란데광장 두오모에 가다!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에서 밤에 출발하는 페리를 타고 밤새 아드리아해를 건너
이탈리아 동부 안코나 에 도착해서는 유로스타 기차를 타고 10시쯤 모데나 에 도착한다.

우리 부부는 모데나를 구경하고는 다시 기차로 파르마 에 내려 도시를 본다음 또다시 기차로
밀라노에 도착해서는 공항버스로 말펜사 공항으로 가서 귀국 비행기 를 탈 예정이다.

그런데 큰일 났네? 기차역 구내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라기쥐 라커 가 보이지 않으니
무거운 배낭을 메고 이 도시 모데나를 구경하게 생겼네?


역 광장으로 나와서는 1.2 유로 하는 버스표를 구입한후 로마 광장으로 가는
버스를 물으니 11번은 안가니 4번을 타라고 하네?

버스를 타고는 노부인에게 “피아짜 로마”에 서느냐고 물으니 못알아 듣는데
버스 기사가 알아듣고는 되게 발음하며 “두칼레”에 내리라고 한다.

피아짜 로마 그러니까 로마 광장에 두칼레 궁전 Palazzo Ducale 이 있는데
버스 정류소 이름을 로마 광장이라고 하는게 아니라 두칼레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모데나 Modena 는 서쪽의 파르마나 동쪽 볼로냐 처럼 에밀리아 가도의 연변에 BC 183년
로마인이 식민도시 로 건설한 것이 기원이며 랑고바르드족의 침입으로 폐허가 되었다.

9세기부터 재건되기 시작하여 1452년에는 모데나 공국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특히
1598 년에 페라라가 교황령이 되자 모데나는 페라라 대신에 에스테가(家) 의 수도가 되었다.

명문 에스테가의 수도로 학문과 예술의 중심지로서 번영하여 궁전, 박물관, 미술관등에서
흔적을 찾을수 있는데 북이탈리아 최대 종루를 가진 로마네스크풍의 대성당 두오모 가 있다.


에스테가의 두칼레 궁전 은 수리중인지 문을 닫았기로 보지 못하는게 서운하지만.....


다행히 바로 옆에 있는 산 도메니코 교회 는
문이 열린지라 들어가 쉬면서.... 이 도시 "모데나의 역사" 를 생각해 본다.


BC 44년 10월 카이사르 가 로마 원로원에서 암살 되자 원로원파는 물론
카이사르파 내부에서도 세력다툼이 시작되어 서로 군사력을 확보 하고자 혈안이 된다.


이때 카이사르의 지휘로 파르티아(이란) 를 원정하려던 군단이 방향을 돌려서는
그리스로 부터 아드리아해를 건너 이탈리아 동남부 브린디시에 상륙한다.


자기세력을 확보할 목적으로 카이사르의 부장이었던 안토니우스 가
이 군단을 접수하려고 브린디시 까지 달려갔으나...


카이사르의 유언이 외손자 옥타비아누스를 후계자 로 지명했음이 알려진 후라....
군단의 병사들은 안토니우스의 지휘를 거부한다.


이에 안토니우스는 북이탈리아 속주인 이 도시 모데나 총독 데키우스 부르투스의 병력 을
인수하려지만 총독이 거부하자 급하게 군단을 조직해 모데나의 데키우스를 공격한다.


그러자 원로원이 이를 제지하려고 정규군을 모데나에 파견하니...
옥타비아누스 도 자기 군대를 조직해 함께 참전해서는 안토니우스를 물리친다.

19세에 집정관이된 옥타비아누스 는 화해한 안토니우스, 레피두스와 2차 3두 정권을 수립해
군단을 몰고 그리스에 상륙해서는 마케도니아의 필리피 들로 진격한다.


안토니우스는 암살파로 공화주의자인 카시우스 롱기누스군을 격파했으나
반면에 군사적 재능이 떨어지는 옥타비아누스는 마르쿠스 부르투스군에게 패한다.


하지만 안토니우스의 도움으로 전투에 승리한 이후 안토니우스는 동방을...
그리고 옥타비아누스는 서방을 통치하는 데, 그 두 영웅이 부딪혔던 곳이 여기 모데나 라!!!


교회를 나와 오래된 거리인 Via c. Battisti 를 걸어서 그란데 광장 Piazza Grande 에
이르니... 로마네스크 양식을 대표한다는 대성당 두오모 Duomo 가 보인다.


두오모 는 빌리젤모가 제작한 조각이 아름다우며 코무날레 궁전 쪽에서 보면 교회의 구조와
종탑이 비뚤어져 보이는 세계 문화유산이라지만 보수공사로 문을 닫았으니 어쩌랴!!!!


그런데 여기 그란데 광장 Piazza Grande 에서는 2009년 전설적인 테너 가수 인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장례식 이 열렸는데 5만여 애도 군중이 영결식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파바로티 는 1,935년에 이 도시 모데나에서 태어나 모데나 합창단에서 활동하다가
1,961년 라보엠에서 로돌프역 을 맡으면서 오페라 가수로 데뷔한다.

이후 1,968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이 라보엠을 공연할 때 출연해 유명하게 되었는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와 더불어 세계 3대 테너가수 에 올랐다.

2009년에 대성당 두오모 Duomo 에서 장례식 이 열렸는데 아침부터 인파가 몰리면서
1,978년 아버지 페르난도 파바로티와 함께 불렀던 Nessun Porma 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나!


그리고 5만여 애도객 앞에서 4살짜리 딸 알리체 는
“아빠는 하늘 나라에 가셔도 나를 보호해 줄것으로 믿는다”는 조사를 읽었다고 하네....

그는 이 장례식에도 참석한 전처에게서 3명을 딸을 둔 가운데 2003년에 34살 연하의 비서
니콜레타와 재혼하여 68세에 낳은 딸 이 바로 4살 짜리 알리체 Alice 라고 한다.

그가 71 세에 췌장암으로 이 도시 모데나에서 사망한 원인은 비대증 때문으로 보는데,
그의 식도락 은 하도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들이 없었다고 한다.

2007년 메빈 주타 가 병문안 을 오자 “당신이 매운 파스타를 좋아하는 것을 알아!”
말하고는 병상에서 벌떡 일어나 즉석에서
요리 대접을 했다는데 호세 카레라스에게도 마찬가지 였다고 한다.

친구집에 저녁초대 를 받고는 “내가 미리 가서 요리를 만드는걸 도우면 안되겠느냐고” 말해
안주인을 당황하게 만드는가 하면, 구체적으로 음식 재료 를 주문하기도 했다네?

만년에 오페라 아이다의 라데메스역을 맡았지만 비대증 으로 걷는 것이 힘들게 되자....
앉아서 구경 하는 것으로 감독이 무대 장치를 변경 시켜줄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여러 오페라에 출연해 수많은 곡을 불렀는데 그중에서도 도니제티가 작곡한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서 주인공 네모리노 역 을 맡아서는.....

아리아 “남몰래 흘리는 눈물”을 부른게 가장 마음에 든다고 주변에 말했다는 데,
20 세기가 낳은 위대한 테너 가수는 이 광장에서 우리 곁을 떠나간 것이라!!!

첫댓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도시이지요? 파바로티의 모데나는....